거센 물살을 이기며 본향으로 역류하는 연어의 몸짓을 본 적이 있는가? 영어의 바다에서 한글로 문학작품을 쓰는 이들이 연어의 몸짓을 닮고 있다. 금년 한카문학상 응모작품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캐나다에서 오래 살다 보면 언젠가부터 영어도 잘 늘지 않고, 한글은 잘 잊어버리는 경향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말을 살리고, 우리 글을 익히려는 한국문학 지망생들의 도전은 처연하게 아름답다. 이제 수상자들은 온갖 어려움을 뒤로하고 상류에 올랐다. 남은 것은 유연하게 고향을 찾아가서 훌륭한 문학작품을 산란하는 것이다. 모든 수상자들의 정진과 건투를 빈다.
[작품 별 심사 평]
<산문부문 으뜸상 수필 ‘바람이 전해준 말’ / 지연옥>
‘이제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전혀 다른 세상을 보았습니다. 비로소 삶의 의욕이 충만해집니다.’
그가 제 14기 한국문예창작대학을 수료한 소감이다. 그는 과정 중 숙제인 시와 수필쓰기도 성실히 해냈고, 강의에 한 번도 빠진 적이 없다. 또한 그의 응모작을 보면 정도를 걷는 모범생다운 듯 글쓰기가 돋보인다. 내용 뿐 아니라 문단 들여쓰기, 내어 쓰기, 띄어쓰기, 단락 나누기 등 흠잡을 데가 없다.
눈부신 초록의 나라가 시야에 확 펼쳐졌다. 눈이 맑아지고 머리가 시원해진다. 문득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 나오자, 설국이었다.’로 시작되는 설국(雪國)의 첫 페이지가 떠올랐다. 하얀 눈의 나라로 들어가는 대신, 나는 온 세상이 초록으로 물든 별세계로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풍경화 속을 걷고 있는 영광을 누리게 한다.
앞 부분부터의 맛 갈 나는 정경묘사는 독자들로 하여금 그와 함께 디어 레이크 주변을 함께 거니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된다.
수필의 주요 구성요소인 사유도 나무랄 데 없다. 예컨대 ‘살아있는 모든 존재는 늙어가고 소멸한다. 살아가는 과정, 늙어가는 과정, 죽어가는 과정은 다름이 아니라 동시에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삶을 극대화하면서 남은 시간을 보내야 하지 않을까?’라는 의문을 던지고는 ‘ 죽는 날까지 낭만적으로 자유롭게 살려면 공부하면서 사는 것이라고 한다. 죽을 때까지 깨어 있고 굳어지지 않아야 하는데, 그러려면 늘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이 내 남은 삶 중에서 제일 젊은 때이다. 뭔가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미루지 말고 오늘 시작해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라면서 그의 연륜이 배어 있는 답을 내 놓는다.
문장이 어색하지 않고 글 흐름에 일관성이 있다. 앞으로도 생각하는 삶, 생각하는 문학을 통해 독자들의 많은 공감을 얻으리라고 본다. 글은 독서량과 습작에 비례하니 많은 사람의 글을 읽고 쓰면서 자신의 양분으로 삼기 바란다.
<운문부문 버금상 시 ‘그리움’ / 김정임>
그의 그리움의 대상은 무엇일까? 우리는 모른다. 그러나 독자들은 문학작품을 통해 자신을 견준다. 디아스포라의 삶을 사는 교민들은 그 그리움이 조국일수 있고, 먼저간 배우자일 수도, 부모님일 수도 있고, 또는 형재자매나 친구일 수도 있다.
그래서 ‘그대 향한 서성임이/아픔의 태산 되어 울고’
이윽고 텅 빈 가슴마다 ‘요란한 살여울/지쳐 밀려온 그 자리/차디찬 빙산이어라’라고 고백하게 된다.
홀로 남은 외로움이 얼마나 차갑고 쓸쓸한가.
그러니 그는 ‘볕 뉘 사이로 스며드는/따뜻한 당신 목소리에/오늘도 목이 메이네.’하며 그리움에 울먹이고 있다.
아름다운 순수 우리말 '볕뉘'(작은 틈을 통하여 잠시 비치는 햇볕)를 사용할 줄 아는 그의 재능은 앞으로 좋은 시인으로 빛날 것이 예감된다. 세밀하고 정감있는 글로 독자와 만나기 바라며 앞으로 더욱 정진하시길 기대한다.
<산문부문 버금상 수필 ‘분가’ / 고희경>
자식은 애물단지다. 늦도록 시집 장가 못가고 부모와 함께 하면 지옥이 따로 없다. 특히 아들은 더 그렇다. 그러나 제 짝을 찾아 ‘분가’할 때는 시원함과 섭섭함이 동시에 밀려온다.
‘아들이 분가했다. 처음 집을 떠나 독립해서 살아보겠다고 했을 때, 내 안의 일부가 떨어져 나가는 것처럼 허전한 느낌이 훅! 들어왔다.’
생활 수필의 장점은 독자들의 공감대를 불러 일으키는 것이다. 그의 수필을 읽으며 독자들은 아들이 분가하던 때의 기억을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마냥 어린이 같은 생각이 드는 아들도 새로운 가장이 되어 분가하면 나름대로의 삶을 잘 꾸려간다.
‘아이는 지금껏 그래왔던 것처럼 지혜롭고, 묵묵하고, 독립적인 개체로 자기 앞가림을 잘해 나가고 있다. 한 달에 한 번 꼴쯤 만나면 오랜만에 친정 찾는 자식 들과의 상봉처럼 반갑고 마냥 유쾌하다.’
그러니 세상의 부모님들은 분가한 아들을 물가에 내 놓은 듯 생각할 필요가 전혀 없다.
그의 작품에서 약간 아쉬운 점은 전반부와 후반부의 흐름이 아들에서 본인으로 바뀌면서 연결고리가 다소 매끄럽지 못하다는 점. 그리고 영어문의 사용과 말없음표(---) 사용이 빈번하다는 것이다. 지엽적인 문제이니 향후 배움을 통해 얼마든지 수정할 수 있다. 좋은 생활수필가로써 거듭나기 바라며 언젠가 단단히 자리매김하는 날이 오리라 기대한다.
<산문부문 버금상 수필 ‘오늘이 그날이다’ / 우제용>
사랑하는 아내를 먼저 보낸 그의 망부가(亡婦歌)가 솔직하고 담담하게 수필로 옮겨져 있다. 살아생전 아내사랑이 구절마다 절절하고 애틋하다.
‘아내의 생일이 오면 나는 아침 일찍 일어나 미역국을 끓여 놓고 출근하곤 했다.
아내는 아침 잠이 많아 내가 출근한 뒤에 야 일어나기 때문에, 함께 아침 식사를 하는 건 아예 기대하지 않는 편이 서로를 위해 좋았다. 그래서 그날도 내가 끓여 놓은 미역국을 아내가 혼자 늦게 일어나 먹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요즘은 남자의 부엌일이 흠이 아니라지만, 예전에는 아내의 생일에 남편이 미역국을 끓여준다는 것은 감히 생각도 못할 일이었다. 그만큼 그의 아내사랑을 응모작품을 통해 잘 엿볼 수 있다. 상처한지 오래지만 아직도 그는 아내와의 추억을 지우지 못한다. 가슴속에 항상 간직하면서 일상을 살아가는 그의 모습이 작품 말미에 잘 표현되어 있다.
‘누군가에게는 죽은 사람의 생일은 기억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내겐 그렇지 않다. 함께한 날들의 추억은 여전히 따뜻하고 아름다워서 지울 수 없는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래서 7월 13일이 되면 아내를 생각하고, 함께했던 날들을 떠올리며 감사한다.
비록 나보다 먼저 하늘나라에 가서 아쉽지만, 언젠가 다시 만날 날을 생각하며 위안을 삼는다.
그래서 오늘은 더욱 그립다. 오늘이 바로, 그날이기 때문이다.’
아쉬운 점은 수필이란 ‘사건’ 중심의 독백에서 벗어나 독자가 수긍할 수 있는 ‘사유’가 내재되어야 하는 데 좀 부족한 점이 있다. 문예창작기법도 배움이 요구된다. 그러나 내면의 소리를 글로 표현할 수 있는 능력만으로도 수필가로서의 향상이 기대 된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체험적인 다양한 소재의 글을 접하기 바란다.
<운문부문 버금상 시 ‘만년설’ / 문선혜>
이번 한카문학상에서는 청년인 그의 응모가 참신하고 반가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타국에 있어서랴. 물론 경륜도 부족하고, 삶에 대한 나름대로의 피력이 덜 여물었지만, 누군들 처음부터 어른이 된 사람이 있을까? 청년은 무한한 성장 가능성만으로도 아름답다.
‘소복이 쌓인 눈이/어느새 쌓인 눈이/하얗게 쌓인 눈이/봄이 왔다고/마음대로 눈물이 된다’
첫 문장이 다소 동시같다고 느껴지지만 어느새 그의 은유가 빛을 발한다. ‘만년설’은 풀릴 것 같지 않은 우리의 슬픔과 고통과 괴로움이지만 그래도 봄은 오고, 아픔은 어느새 눈물이 된다. 그러나 그 눈물은 오랫동안 참아온 눈물이었다. 왜냐하면 그는
‘숨죽여 울고/소리 내어 울고/가슴 치며 울어도/녹지 않는 마음이라는 게 있다’고
응어리진 마음을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나 양처럼 사람은 태어나자마자 금방 걸을 수 없다. 수십, 수백번을 넘어지고 일어서는 과정을 겪어야 비로소 걷고 뛸 수 있다. 그는 지금 여러 사람들의 축하속에 한 발을 내디뎠다. 언젠가는 활기차게 걷고, 뛰고, 달리기를 기대한다. 상투성에 안주하지 말고 소재와 형식에 구애됨이 없이 빗장을 활짝 열고 더욱 존재감 있는 글을 쓰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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