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광고문의
연락처: 604-877-1178

이방인의 소리 없는 아우성

권은경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25-12-05 17:13

권은경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외국에 살면서 이방인이라고 느끼는 순간들은 복잡한 감정을 동반해 찾아온다. 현지 사람들이 특정 TV 프로그램에 대해 말할 때 함께 웃지 못하고, 문화 차이에서 오는 감정 표현의 방식이 서툴러 무감각할 때, 은행이나 병원, 행정 기관 등의 시스템을 이용하면서 복잡한 절차나 서류에 압도당할 때, 직장 동료와 철학, 정치 또는 깊은 감정에 대해 진지한 대화를 할 수 없을 때,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마다 어디서 왔고 왜 이곳에 살고 있는지를 반복적으로 설명해야 할 때면 깊은 피로와 소외감을 느끼며 이방인의 쓸쓸함에 잠기곤 한다. 이방인은 자신이 속한 곳의 지리나 관습을 잘 모르는 낯선 사람을 이르는 말이다. 약간의 배타적인 뉘앙스가 포함된 이 단어가 언제부터인가 나의 또 다른 이름이 되어버렸다. 
 
책장에서 알베르 카뮈의 소설 <이방인>을 꺼내 들었다. 부조리의 철학을 대표한다는 이 작품은 주인공 뫼르소가 어머니의 죽음에 무관심하고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지른 후, 사회적 관습과 기대에 순응하지 못하면서 결국 '이방인'으로 규정되는 이야기이다. 뫼르소가 사회의 부조리와 모순 앞에서 점점 더 냉소적이고 무관심해졌던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 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저마다의 모습과 생각을 가지고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간다. 때로는 납득할 수 없는 순간들을 맞닥뜨리기도 하고, 때로는 그 부조리에 맞설 용기가 없어 순응하거나 무력감을 느끼면서 숨을 죽인다. 이는 단순히 개인의 도덕성 문제라기보다는 살아남기 위한 생존 전략일 수 있다. 다수가 만들어 놓은 규범, 기대, 가치관 등에서 벗어난 사람들에게 우리 사회가 얼마나 냉혹하고 배타적일 수 있는지, 이방인이라는 주홍글씨를 달고 법정에 서 있는 뫼르소를 보며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일까? 우리는 과거에 부조리에 맞섰지만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고, 오히려 불이익을 당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현실을 왜곡한다. 애써 봐야 아무 소용없다는 무력감을 학습하며, 누군가 나서서 나를 대신해 싸워주기를 바라기만 한다.
 
인간이 불완전하고 부조리함을 품은 나약한 존재라는 이유로, 보편적인 시각에서 조차 수긍할 수 없는 세상의 혼동과 무자비를 용인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일까? 뫼르소처럼 나는 질문을 던지고 싶다. 삶의 본질적인 의미에 대해, 부조리한 세상의 편견과 억압에 대해 반기를 들고 싶다. 세상에서 논의된 공동의 합의 따위는 깨부수고 진실되고 정직하게 세상을 보고 그 안에서 살아야 할 이유를 찾고 싶다. 
 
매일 반복되는 무의미한 일상과 노동은 삶의 본질을 탐색하고 찾고자 하는 인간 본연의 욕망조차도 작게 만든다. 죄로 인해 바위를 산 정상으로 올려야 하는 형벌을 받았다 해서, 다시 굴러 떨어지는 바위처럼 방향을 잃고, 삶을 놓아버린다면 그것이야 말로 존재를 부정하고 삶을 포기하는 비겁함이다. 나는 종종 내가 형벌을 받고 있는 시지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주변에서 소리 없이 삶의 의미를 찾아 운명을 초월하는 작은 영웅들을 보게 된다. 늙고 약해진 부모님의 모습과 성실한 친구와 이웃들 속에서 나는 기적과도 같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음을 본다. 거대한 세상의 모순과 부조리에 맞선 인간은 너무 작아서 쉽게 무릎 꿇을 것 같지만 소리 없는 아우성 속에 자신의 삶을 묵묵히 꾸려 나가고 있다. 이는 무의미하고 부조리한 세상을 인식하지만 그 운명에 매몰되지 않고 삶의 의미를 찾아 바위를 굴리는 인간의 위대함일지도 모른다. 인간의 실존적 고독과 부조리한 세상에 저항하며 나의 길을 가고 싶다. 작고 보잘것없는 하루살이의 날갯짓에도 삶의 의지와 생명의 위대함이 숨겨져 있고, 자연의 이치와 원리가 담겨있다. 타협하지 않고, 나의 약함을 인정하며 다시 굴러 떨어질 바위라도 야무지게 밀고 나아가 찰나의 행복들을 영원처럼 간직하리라. 이방인이라는 낙인을 벗어 버리고 오늘도 자유롭게 비상할 것이다.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자식의 자식 2026.01.12 (월)
등에서 잠든 너를 내려놓지 않는 건내 어머니 골수를 먹고 자란 기억 때문무릎이 시큰거리다콧등까지 싸해지는 따스한 대물림 어제와 오늘도 혼동하는 너에게내일 다시 하자는 약속,울음을 삼키는 너의 눈을 피해주었던 걸 뺏는 건 참으로 곤란하지 동네 애들 다 데려간 피리 부는 아저씨집안 일 다 해도 미움 받는 신데렐라‘왜’냐고 묻는 삼십개월 너에게‘사람‘에 대해 무슨 설명 하리오 잎을 다 떨군 나무에 기댄 너의 숨소리찬 바람...
윤미숙
  우리는 흔히 자신의 삶이 길다고 느끼며 살아간다. 젊은 시절에는 앞날이 끝없이 펼쳐져 있는 것 같고, 나이가 들수록 지나온 세월이 결코 짧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시간을 영원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순간, 그 생각은 조용히 무너진다. 시작과 끝을 초월한 영원의 시간 속에서 한 인간이 이 땅에 머무는 기간은 얼마나 될까. 백 년을 산다 해도, 그 시간은 한 점에 불과하다. 점이라기보다, 잠시 스쳤다 사라지는 빛의 흔적에 가까울지도...
이종구
  아파트 9층인 우리 집 거실에서 베란다 쪽 소파에 앉으면 사거리가 보인다. 건너편 아파트와 시내로 나가는 길이 교차되는 길이다. 그 사거리를 바라보며 가끔 무료하게 시간을 보낸다. 신호에 따라 밀려왔다 밀려가고 달리다 멈추고 하는, 하등 신기할 것 없는 차량의 행렬을 신기하게 바라본다. 저렇게 많은 차들은 대관절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새벽부터 밤중까지 끊임없이 굴러가는 지친 바퀴들은 언제 어디쯤에서 쉬게 될 것인가.'나는...
최민자
그리움만 남기고 2026.01.12 (월)
비바람 몰아치는 창가에 서서멍울진 가슴을 어루만지며홀로사무친 그리움만 삼킨다 이제는 느낄 수 없는 추억의 파편들말없이 숨겨온 따스한 손길들마음속 깊이 가득 담는다"보고싶다"그 이름 부르면허공에 메아리로 울린다 그 흔한 ''사랑한다"는 한 마디왜 그토록 아껴 두었을까겹겹이 쌓아 두기만 한 채어리석은 자만심으로따스한 눈 빛과 말 한 마디 더 건네지 못했을까 이제는 저 멀리 하늘의별이 되어버린 사람들사랑했고...
손정규
병오년 새아침 2026.01.02 (금)
계속되는 강 추위망각의 지혜는설국만이 존재한다는 착각에한해가 저물어 간다대지가 숨쉬고 있다는 증거나이테 한줄 추가된무상함의 세월꽃잎이 피어 흩 날리었고푸른 가지위 새들 둥지 틀며강열한 햇살은주렁 주렁 익히었다자연은 일 순간도 숨쉬기를포기 한적이 있었는가허락된 삶을 감당한 우리지나간 순간 순간들아름다운 추억으로남겨야 하지 않을까눈 아래새싹들의 큰 울림의 기지개그날을 기다리고 있는데밝아오는 병오년희망 태운지칠줄...
리차드 양
세월은 강물처럼 흘러 어느덧 내 삶을 저만치 데려가 버렸다. 어린 시절에는 시간이 왜 그리 더디게 가는가 의아했었고, 군대 시절에는 하루가 한 해처럼 길게 느껴졌다. 그러나 결혼의 기쁨은 찰나였고, 신혼의 행복조차 누려보지 못한 채 공부와 생계의 전선에서 몸부림치며 열 네번의 이사를 거듭했다. 목사가 되면 모든 것이 순탄하게 잘 될 줄 알았으나, 이해할 수 없는 교회 정치는 나를 희생양으로 만들었다. 그 후 나는 이를 반전의 기회로 삼고...
김유훈
어머니의 섬 2025.12.31 (수)
  참 알 수 없는 일이다. 왜 잘 기억도 되지 않는 것에 이토록 애 닳아 하는 것일까. 이건 필시 병일 것 같다. 그렇지 않다면야 수십 년을 넘은 이 나이 이르러까지 연연해 할 이유가 없잖은가. 돌아가신지 50년이나 되신, 얼굴도 기억 안 나는 어머니의 추모예배를 드리는데 괜시리 심통이 나고 가슴이 답답해진다. 물론 우리 가족 네 식구만 드리는 조촐한 예배다.  그런데 오늘따라 어머니뿐 아니라 아버지, 할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최원현
물러가는 어둠의 끝자락에서우리는 살며 차마 말하지 못한 아쉬움을한 줌 눈처럼 조용히 내려놓습니다 병오년 새해, 말의 기운이 들판을 깨우고로키의 우람한 어깨 위로침묵하던 밤이 물러납니다태평양의 검푸른 파도를 가르며 솟는 희망그 첫 빛은 상처 난 골짜기까지 공평하게 적시며묵은 한숨 위에도 새로운 길을 그려 놓습니다 살면서 놓친 것에 대한 미움마저산맥과 산맥 사이, 평원과 평원 사이로 흘러새해의 화두 속에...
이상목
지난 주에 이어 계속 집도의는 캐나다에서도 이름 있는 Doctor라 했다. 수술실에 들어가니 남자가 7사람 여자 두 사람이 있다. 수술은 집도의와 보조의가 하겠지만 의대생들이 견학하는 걸 허락했던 것이다.수술은 성공적으로 잘 마무리 된듯하다. 수술을 하고 정신을 차려보니 방광에 호스를 꽂아 소변을 받아내고 양팔 혈관에 주사바늘을 고정시켜 줄이 달려있다코로 호수를 따라 식사대용 영양제가 들어간다. 또 수술한 부위에도 호스를 넣어...
박병준
 ▶지난 주에 이어 계속 암이 자리 잡은 곳, 그 위치가 어디인가. 그게 중요하다.폐라면 힘 든다. 췌장이라면 수술이 어렵다. 급성으로 여러 군데 전이가 되었다면 걷잡을 수 없이 위험하다.내게 온 곳은 목이다. 후두암이라고도 한다. 그 자리는 어떤 곳인가?매우 정교하고 복잡한 부분이다. 거기는 기도(Air way)와 식도가 만나는 곳인데 코와 입을 통해서 공기가 들어오고 또 입에서 식도로 넘어오는 음식이 지난다.또 허파에서 나오는 공기가...
늘산 박병준
늘산 본인이 암 판정을 받고 수술을 하고 퇴원을 하면서 그간에 있었던 일들을 정리하고 싶습니다. 이는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 암에서 예방될 수 있는 일에 다소나마 길잡이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면서 이 글을 시작합니다.암의 발견은 우연적일 수도 있고 필연적일 수도 있다.나는 우연적이라 생각하며 그나마 일찍 발견하였다는데 다행이라 생각한다.산에서 사람을...
늘산 박병준
다음페이지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