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현숙 (사) 한국문협 밴쿠버지부 회원
오늘도 워커를 짚고 길을 나선다. 2년 전 교통사고로 손상된 몸을 재활하려고 헬스장(gym)이나 피트니스 센터에 가기 위해서이다. 운전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 버스를 이용한다.
“Please lower the lift." 나는 버스를 타고 내릴 때마다 입버릇처럼 운전기사에게 큰 소리로 말한다. 어느 때는 내가 말하기도 전에 도와주겠다며 장애인 좌석으로 다가와 서 있는 승객도 있다. 버스가 정차하면 그 사람은 내 워커를 들고 먼저 하차한다. 그리고 자기 옆으로 워커를 내려놓는 다음, 한 쪽 팔을 접어 내 앞으로 쭉 내민다. 마치 영화에서나 봄 직한 장면이다. 자기의 팔을 잡고 내려오라는 것이다. 처음에는 당황했다. 모르는 남자의 팔을 잡고 버스에서 내리려니 발이 떼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상대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이다. 나는 진심으로 고마워서 "Thank you very much."라고 인사를 했다. 그는 불편한 사람을 돕는 일이 당연하다는 듯 "You're welcome."하고서 앞장서서 뚜벅뚜벅 걸어간다. 그는 희끄무레한 청바지에 운동화, 그리고 허름한 베이지색의 봄 잠바 차림이다. 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주 평범한 캐내디언이다. 남의 도움을 받아야 했던 자신이 서글프기보다는 왠지 가슴이 훈훈해졌다.
몇 달이 지난 후 같은 도움을 또 받게 되었다. 그는 하얀 터번을 쓴 아들 또래의 아주 잘 생기고 키 큰 젊은이였다. 버스를 탔는데 엘리베이터처럼 오르내리는 램프가 차 뒤쪽에 붙어 있었다. 내가 차에서 내리기 위해서는 운전기사가 차 밖으로 내려와야 했다. 번거로울뿐더러 시간도 지체된다. 망설이다가 용기를 내어 옆자리 승객에게 부탁했다. 그는 흔쾌히 도와주겠다며 워커를 들고 일어섰다. 그의 하얀 옷에 뭐라도 묻을까 봐 신경이 좀 쓰이긴 했다. 그 역시 미소 띤 밝은 얼굴로 내게 팔을 내밀었다. 고맙다고 인사를 하자”Good luck"하며 등을 가볍게 다독여 주었다. 나는 한참 동안 사람들 속에 섞여 걸어가는 그의 뒷모습을 쳐다보고 있었다. ‘오늘 하루 잘 보내라’고 말하지 못했던 걸 후회했다.
7년 전 공원에서 남을 돕다가 무릎을 다친 적은 있어도 내가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도움을 받을 줄은 생각 못했다. 버스를 기다리고 있던 고등학생들까지도 비실비실 리프트를 내려오는 내게 손을 내민다.
지난여름, 뇌출혈 이후 앰뷸런스를 탈 뻔한 사고가 있었다. 집 밖으로 나가기 위해 버스 타는 연습을 할 때이다. 처음에는 작업 치료사(Occupational Therapist)와 함께 워커를 짚고 코키트람 센터에 가는 훈련이었다. 그날은 세 번째 시간, 집에서 혼자 출발하여 센터 안의 지정 장소까지 가야 한다. 그곳에서 작업 치료사를 만나 두뇌 운동에 도움이 되는 게임을 한 후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수업이다. 나는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횡단보도를 건너려고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신호등에 11이란 숫자가 뜨자마자 워커를 차도로 내렸다. 그 순간 바퀴가 턱에 걸렸다. 신호가 끊기기 전 빨리 건너가야 한다는 급한 마음에 발이 먼저 나간 것이다. 워커와 나는 차도에 내동댕이쳐졌다. 얼마나 세게 엎어졌는지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목에 건 라이프 라인(생명줄)에서는 “미세스 정, 미세스 정, 무슨 일 있으세요?” 하며 앰뷸런스가 출동해야 하는지 묻는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답할 수도, 버튼을 눌러 취소할 수도 없었다. 길바닥에 온몸이 일자로 뻗어 정신을 잃기 직전이었다. 그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당신을 돕고 싶은데 당신 몸을 잡아도 되나요?” “예” 아마 내 대답은 그분에게 들릴락 말락 했을 것이다. 그분은 나를 겨우 일으켜 세워 워커에 앉혔다. 90세가 가까워 보이는 백인 할아버지는 조금 전 나와 다른 쪽 횡단보도를 건너기 위해 신호를 기다리고 계신 분이었다. 내가 정신을 차릴 때까지 기다렸다가 버스를 태워주면서도 안심이 안 되는지 지켜보고 서 있었다. “It's okay. You can do it." 내 눈을 들여다보며 마치 할아버지처럼 인자한 표정으로 위로해 주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하루는 지인과 라파지 레이크를 산책하는 도중, 앞서가는 한 청년이 있었다. 가족들과 걷고 있는 그는 한쪽 다리를 끌면서 뒤뚱거렸지만 뒤쳐지지 않았다. 전 같으면 측은히 보였을 그가 왠지 당당하게 보였다.
“다리가 불편해 보이는데도 워커도 안 짚고 워킹 스틱도 안 짚고 대단하네요.” 정말 장하다는 생각이 들어 지인에게 말했다. ‘괜찮아. 다리를 끌면 어때, 너는 해낼 수 있을 거야.’ 나는 마음속으로 다른 사람들이 내게 해줬던 말을 되뇌고 있었다.
또 한 번은 긴 횡단보도를 건너려고 서 있는데, 뒤를 돌아보니 10학년 정도 되어 보이는 남학생이 휠체어에 앉아 있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 워커를 옆으로 밀고 길을 내줬다. 그리고 차도 쪽에서 그 학생을 보호하며 걸어가고 있었다. 케어기버들이 내게 보였던 것을 나도 하고 있었다. 약자를 보호하려는 건 인간의 본능인 것 같다.
얼마 전, 버스를 탔는데 20세 정도 보이는 청년이 버스에 올랐다. “나 돈 없어요.” 하자 운전기사는 내리라고 했다. 그러자 “Call the police"하고서 획 뒷좌석으로 가 앉아버렸다. 지갑에서 2불짜리 동전 두 개가 잡혔다. 뒷자리를 돌아보며 들어 보였더니 고맙다며 괜찮다고 했다. 전 같으면 무심코 지나쳤을 일들이 내 일처럼 눈에 들어오곤 한다.
막상 몸이 불편하고 보니 예상하지 못한 타인의 도움으로 위기를 모면하기도 한다. 또한 정상인일 때 보지 못했던 세상을 보게 되는 이점도 있다. ‘세상은 아름답고 살만한 곳이다’는 걸 예전엔 깊이 생각 못 했다.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은 하나같이 내게 “괜찮아" 또는 "행운을 빌어요"라고 말한다. 이 두 마디는 정말 나를 위로해 주고 눈물 나게 한다.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긍정의 말, 용기와 격려의 말이다. ‘별거 아닌 이 말들이 사람을 살릴 수 있겠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이 사람들을 통하여 사랑을 배우고, 나아가서는 인류애를 배운다. 그들은 내 삶의 스승이고 조력자이다. 그리고 이웃이 되었다.
신은 내게 어려움을 통하여 인간의 진실된 사랑을 알게 하시고, 더 큰 산을 넘을 힘을 주신다. 모든 것이 감사하고 충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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