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브레넌의 죽음

김춘희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25-04-11 16:23

김춘희 / 사) 한국문협 밴쿠버지부 회원
“아이고 우리 딸이 너무 바빠서 먼지도 못 닦고 다니는구나!” 
  딸의 차 운전대 위에 하얀 눈처럼 먼지가 쌓여 있었다. 
  "엄마! 그거 건드리지  마! 아직 브레넌 털이 남아 있어, 그냥 놔둬. 엄마, 플리스."  딸의 목소리는 울음을 삼킨 듯 떨렸다.  브레넌이 떠난 지 벌써 반년도 넘었는데 ... 
 "아직은 아냐. 좀 더 있다가 닦을게. 지금은 그냥 놔둬."
  나는 더 이상 할 말을 잃었다.  
  지난 여름 방학을 며칠 남겨 두고  브레넌(핏벌과 라브라도르 혼혈)은 하루가 다르게 다리 힘이 빠져갔다. 학교 교사인 딸은 퇴근 시간이 늦어지는 날은 브레넌을 나한테 데려다 놓고 출근했다. 15살이 넘은 녀석은 사랑스러운 견공이였다. 나를 보면 반갑다고 제 몸을 내 다리 쪽에 대고 서서 오래동안 꼬리를 흔들어 대곤 했다.
  딸에게 브레넌은 자식과 같았다.  뉴욕에 살았던 딸은 팬데믹이  시작된 그 전 해에 브레넌과 함께 이사와 나와 함께 살았다. 후에  콘도를 사서 나갔지만, 일주일에 한두 번은 우리 집에 놓고 다녀서  나와도 정이 들었던 녀석이었다. 저녁에 개를 찾으러 딸이 집에 오면 제일 먼저 브레넌 산책을 시켰다. 이층에 사는 아들네도 강아지  두 마리를 데리고 함께 공원으로 나간다. 한 마리는 이효리네 집에서 입양한 캠퍼이고 다른 꼬마 푸들 잡종은 밴쿠버가 고향인 테디다. 공원에서 녀석들은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달리고, 쫓아가고, 가히 구경거리다. 여름엔 풀 밭에 뒹굴고, 겨울에 눈이라도 오면 아이들이 던지는 눈덩이를 쫒아가 발로 차고, 강아지들뿐 아니라 우리 집 아이들도 덩달아 행복한 시간이었다. 특히 브레넌은 제 목줄을 입에 물고 뛰기를 좋아했다.   
  아직 여름방학은 2주 남아있었다. 녀석의 상태가 나빠지면서 딸은 매일 우리 집에 브레넌을 데려왔다. 내 방은 문만 열면 뒷마당이라 비교적 브레넌이 쉽게  밖으로 나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날이 갈수록  녀석은 움직이는 것조차 힘들어했다. 불안이 찾아왔다. 나는 기도하기 시작했다. 브레넌이 제 주인이 방학하면 떠나게 해 달라는 간곡한 기도를 했다. 브레넌에게도 말했다. 
 “네 주인이 집에 편히 있을 때 가야 해. 지금은 아니다. 며칠만 참아라!”  
  그렇게  며칠을  버티다가 드디어  방학이 되었다. 일단 브레넌이 제 주인과 함께 있게 되어서 안심은 되었지만 문제는 더 심각했다. 콘도 4층에 사는 딸이 황소 새끼만 한 브레넌을 더 이상 건사하기 힘들어졌다. 브레넌은 일이 다금해지면 누워있다가 문 쪽으로 겨우 가서 선다. 밖에 나가고 싶다는 표시다. 그리고 문을 열자마자 참지 못한다. 딸은 얼른 용기를 받쳐주고, 사고를 미연에 방지했다. 보다 못한 내가 한마디 했다. 브레넌을 보내 주어야 할 때가 왔다고.  
   그때는 주말이었다.  브레넌을 받아 줄 동물병원들은 모두 문을 닫았다. 딸은 다급해져서 여기저기 문의했다. 한 곳에서 수의가 직접 방문해 준다는 정보를 받았다. 집에서  처리 한 후 데리고 가는 조건이다. 녀석과 마지막 작별 인사도 하고 무엇보다도 딸을 지켜주어야  할 것 같아서 나는 딸네로 갔다. 저녁 7시쯤 수의사가  보조원과 함께  방문 왔다. 수의사는 브레넌이 거부하지 않도록 세심하게  쿠키도 주고, 쓰다듬어 주기도 하며 친숙해지는 시간을 가졌다.  나도 브레넌이 이제 마지막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무척 언짢았다. 내가 머리를 쓰다듬어 주니까 일어나지는 못해도 평소에 하던대로 꼬리를 흔들었다. 브레넌은  밥 주는 할머니를 좋아했다. 수의사는 드디어 브레넌의 다리에 주사를 놓기 시작했다. 주사 놓을 때마다 쿠키를 건네면서. 그렇게 서너 번 주사를 놓고 나서 마지막으로 잠자는 약을 투여했다. 안락사 시키는 순서 같았다.   
브레넌이 점점 깊은 잠에 빠져들어 갔다. 딸은 드디어 브레넌을 끌어 안고 울기 시작했다. 시간이 흘렀다. 언제까지 저러고 있을 것인가 나는 속이 탔다. 수의사 팀은 말없이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개 주인에게 넉넉한 맘으로 시간을 주고 있었다. 그것이 그들이 할 수 있는 최대의 호의였다. 9시가 거의 가까워 오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딸에게, "이제 보내주자. 다 끝났어. 저 사람들도 너무 오래 서서 기다리고 있고...”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딸은 나에게 항의하듯  “엄마,  좀 기다려도 돼. 브레넌 데리고 가는데 내가 천 불이나 지불했어." 그리고 또 얼굴을 브레넌 목에 묻고 울었다. 가족처럼 지냈던 브레넌과의 이별의 시간은 괴로움 그 자체였다.
 동물의 안락사는 절대적으로 동물 주인의 선택에 달렸다. 아직도 의식이 분명하고 먹는 것도 그런대로 잘 먹었는데, 다만 다리 힘이 없어지고 용변을 가리지 못하는 이유로 개들은 안락사를 당한다.  임종을 끝까지 지켜보며 보내는 개 주인은 거의 없다고 한다. 대부분은 다 쓴 물건을 버리듯 수의 병원에 개를 버리고 간다. 그러면 개는 병원 냄새가 나는 병실에서 낯설은 사람들에 둘러싸여 원치않는 죽음을 맞게 된다. 평생을 주인에게 충성하고 기쁨을 안겨 주었건만 얼마나 비정한 인간들인가!   
 그리고 몇일 후,  딸은 브레넌의 넋을 기리는 파티를 열었다.  며느리는 꽃다발을 샀고, 손녀들은 브레넌 그림을 그려 카드를 만들어 갔다. 착한 이웃들이 보내온 조문 카드, 꽃다발들.. 그리고 호리병처럼 생긴 사기 항아리가 그 가운데 있었다. 재로 변해 항아리에 들어 간 브레넌의 잔해다. 벽에는 옆집 화가 아주머니가 그려  주었다는 브레넌의 초상화 그림이 걸려 있었다.  
  또 며칠이 지났다.  딸은  예쁜 손  글씨로 ‘브레넌을 사랑해 주셔서 고마웠습니다.’ 라고 쓴 카드를 붙인 쿠키 봉지를 수북히 담은  큰 바구니를 들고 왔다.  그걸  다 어쩌려고? 브레넌이 산책 다니던 길가에 놓겠다고 하였다. 먼저 우리에게 보여 주려고갖고 온 것이다. 아들은 ‘누나는 너무 감정적이야!” 하고 혼잣말로 내 등 뒤에서 중얼거렸다.
  브레넌의 일생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사람은 고통을 견딜 수 없어서 안락사를 선택한다. 그리나 동물은 주인의 선택으로 안락사를 당한다. 일생을 주인에게 충성하고 사랑했던 강아지들의 생명은  주인의 선택으로 마감한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생명은 소중하고, 모든 생명은 스스로 세상에 오지 않듯이 가는 것도 생명의 주인에게 달렸는데도 인간은 생명의 주인으로 행세한다.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무채색의 여인 2026.05.29 (금)
옷장 문을 열자, 색색의 스카프들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알록달록한 꽃무늬부터 원색이 섞인 대담한 무늬가 대부분이다. 예전의 나였다면 결코 선택하지 않았을 색상이다. 스카프는 물론 옷조차도 무늬 없는 단색이나 어두운 계열만 즐겨 입었다. 매일 옷을 바꿔 입어도 남들은 알아채지 못할 만큼 늘 비슷한 색과 스타일이었다. 그런 모습을 일부러 연출하거나 의식한 것은 아니었다.   어느 날 미술 동아리에서 한 동료가 “오늘도 무채색의...
민정희
국수 먹는 날 2026.05.29 (금)
마을 사람들 모여 대 솥 걸고 삶아내는 국수 기뻐서 슬퍼서 지쳐서 맺은 깐부를 평생을 찾아다닌다 이 손 다음 손들이 밀어낸 칼국수 가마솥에 풍덩 담가 빨간 고추가 어른거리는 가을 하늘에 양념장을 한다 구름에 세월 가도 낯설은 이름 칼국수를 시장 골목 끝에서 찾는다 양철 대문에 쓴 이름 ‘칼국숫 집’ 큰 소리로 고향 친구를 부른다 식당 아주머니 항아리 앞치마에 하얀...
반현향
가야금 2026.05.28 (목)
불러야 할 곡이 있어그대 태어났는가 쪽 찐 머리 빗질하듯 줄 고르고떨쳐 앉은 무릎에 기대어현침에 오르내리는 바빠진 손길 들려줄 울음 있어그대 태어났는가 어깨 타고 줄 위에 흐르는 애달픔꺾이는 가락마다 뛰노는 가슴마지막 떨림마저 어느덧 잦아들고  울어야 할 슬픔이 남아 그대 태어났나속 울음 속 울음에 껍데기만 남아버린저어할 노래가 있어 몸으로 울 가얏고
김민관
죽음을 통한 회복 2026.05.28 (목)
                                                                         이명희/캐나다 한국문협 회원서론-한동안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의 죽음에 눌려 있다가 이유리의 연작소설을 읽고 나니 뭉쳤던 근육이 풀렸다. 죽음은 산 사람이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수긍해야 하나라는 책임이 따른다. 죽음의 의미는 경건이지만...
이명희
구피 클럽 2026.05.22 (금)
구피는 물이 담긴 투명한 비닐봉지 안에서 헤엄치고 있었다. 나는 아버지에게 비닐봉지를 건네받아 구피들을 조심스레 어항 속으로 쏟아 부었다. 구피의 형형색색을 따라 빛을 내던 비닐봉지가 이내 쪼그라들었다. 손에 묻은 물을 추리닝 바지에 대충 닦고 있는데 아버지가 먹이통을 들고 와 나를 옆으로 밀쳤다. 아버지가 먹이를 뿌리자 구피들은 작은 입으로 먹이를 받아먹었다. 구피가 입을 벌렸다 오므릴 때마다 물방울이 피어올랐다. 이 순간,...
고현진
꽃은 아직 2026.05.21 (목)
함박꽃이 피면 바람결에낯익은 그림자 올 것만 같아아침마다 마당을 서성인다 밤새 비라도 내리면꽃봉오리 빗물에 무거워질까창문을 열었다 닫는다 햇살 깊은 날이면오늘은 끝내 환한 속살 보일까그림자 길어질 때까지골목 끝에 걸린 눈길 하나 꽃은 아직꽃잎을 여미고 있다  함박꽃 봉오리 앞에서심장 소리 먼저 봄을 건너고 마른 입술 사이 침을 삼키듯아껴둔 이름 베어 문다 마중 나간 발소리는 더뎌서몇 번의 봄비를 더...
강은소
불효자의 곡(哭) 2026.05.21 (목)
생명체인 인간은 생로병사(生老病死)의 굴레 속에서 살아간다고 볼 수 있다. 당연한이치이겠지만 태어남은 죽음을 약속하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자연스럽게 세월이흐르면 생명체의 세포는 노화(老化)되고 유한(有限)한 것이기에 영원한 것이란 없다. 진리(眞理)는 불변(不變)인가 하는 것도 요즈음 세상에서는 장담할 수가 없는 것 같다. 어쩌면 이세상에 불변이란 것이 있는가 하는 의문도 해보기도 한다. 보름 전 어머니의 부고를 접하고는...
노동근
낡은 이불 2026.05.15 (금)
열 살 남짓한여름 이불을 꺼낸다 몸이 오가던 길이손금처럼 갈라져 있고보라 꽃잎마다누에가 실을 잣는다  몸이 찌푸리면길도 따라 구부러졌고설레어 잠 못 들 때신작로가 등 뒤로 뻗어갔다 밤마다오랜 일기장을 뒤적이듯갈라진 길을 더듬으면 그날들이 올올이 손을 흔든다 어머니가구멍 난 스웨터를버리지 못했던 까닭이 해진 꽃잎에서줄줄 풀려나온다.
임현숙
지난 주에 이어 계속 집도의는 캐나다에서도 이름 있는 Doctor라 했다. 수술실에 들어가니 남자가 7사람 여자 두 사람이 있다. 수술은 집도의와 보조의가 하겠지만 의대생들이 견학하는 걸 허락했던 것이다.수술은 성공적으로 잘 마무리 된듯하다. 수술을 하고 정신을 차려보니 방광에 호스를 꽂아 소변을 받아내고 양팔 혈관에 주사바늘을 고정시켜 줄이 달려있다코로 호수를 따라 식사대용 영양제가 들어간다. 또 수술한 부위에도 호스를 넣어...
박병준
 ▶지난 주에 이어 계속 암이 자리 잡은 곳, 그 위치가 어디인가. 그게 중요하다.폐라면 힘 든다. 췌장이라면 수술이 어렵다. 급성으로 여러 군데 전이가 되었다면 걷잡을 수 없이 위험하다.내게 온 곳은 목이다. 후두암이라고도 한다. 그 자리는 어떤 곳인가?매우 정교하고 복잡한 부분이다. 거기는 기도(Air way)와 식도가 만나는 곳인데 코와 입을 통해서 공기가 들어오고 또 입에서 식도로 넘어오는 음식이 지난다.또 허파에서 나오는 공기가...
늘산 박병준
늘산 본인이 암 판정을 받고 수술을 하고 퇴원을 하면서 그간에 있었던 일들을 정리하고 싶습니다. 이는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 암에서 예방될 수 있는 일에 다소나마 길잡이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면서 이 글을 시작합니다.암의 발견은 우연적일 수도 있고 필연적일 수도 있다.나는 우연적이라 생각하며 그나마 일찍 발견하였다는데 다행이라 생각한다.산에서 사람을...
늘산 박병준
다음페이지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