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그대 뒷모습

반숙자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25-04-11 16:22

반숙자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서녘 하늘에 별이 돋는다. 마음이 잔잔해야 보이는 초저녁별, 실눈을 뜨고 별 속에 아는 얼굴이
있나 찾아본다.
지난겨울에는 눈이 자주 많이 내렸다. 눈이 내릴 때마다 우리나라 문화계의 큰 별들이 떨어졌다.
미당 선생이 떠나시고 얼마 후, 온종일 눈이 내리던 날 정채봉 선생이 눈 나라로 가셨다. 이어 운보
선생도 떠나셨다. 그 뒤로는 겨우내 하늘이 낮게 내려앉으면 또 누가 떠나실라 겁이 났다.
 이윽고 건너다본 커다란 눈, 그 웃음 뒤에 끝 모를 서러움이 배어나는 것 같아서 가슴이 서늘했다.
어찌 보면 늘 배고픈 아이 같고 또 달리는 지구에 내려온 어린 왕자 같던 사람.
선생의 글을 처음 대한 것은 현대문학지에 연재했던 《초승달과 밤》이다. 성장소설이라 하고
성인동화 라고도 한 글은 신선한 표현과 등장인물들의 착함에 다음 호가 기다려질 정도로
흡인력이 있었다. 그 후로는 선생의 작품집을 구하는 대로 읽으면서 감동적인 글 뒤에 감동적인
삶이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오늘 저녁을 농막에서 보내며 별들을 만나려고 한다. 선생께서는 별이 되셨는지도 모르니까.
왜냐하면 해질녘을 좋아하는 스님을 찾아갔다가 찬물이나 한 바가지 떠 마시라는 말씀에 찬물을
받쳐 든 바가지에 별 하나가 돋았더라나.
그래서 천천히 버들잎인 양 별을 불면서 물을 마셨다는 것이다. 별을 불면서 물을 마시는 사람이
세상에 또 있을까. 그 뒤로 간혹 마음이 허할 때면 가슴에 별 하나가 떠오른다는 것이다.
선생께서 민방위 야간 훈련을 나간 날, “불을 끄시오, 불을 끄시오.”외치고 다니다 보니 순식간에
하늘의 별들이 또록 또록 해졌다. 그때 “별님 들도 불을 끄시오.”하고서 혼자 웃었다는 분, 하늘
마음이 아니고는 볼 수도 느낄 수도 없는 글을 읽으며 내가 선생을 두고 어린 왕자를 생각하는
연유가 이런 데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짧은 만남이지만 글에서 만난 사람과 현실에서 만난 사람이 한결같은 느낌을 주어서 더 인상
깊었던 것 같다. 만남 뒤에는 행복했고 용기가 솟았으며 여운이 오래 갔다.
사람들이 자신의 뒷모습을 볼 수 없기에 신이 타인이라는 거울을 우리에게 주고 서로 비춰보며
좋게 살라 하신지도 모른다.
선생의 글 속에 자신을 두고 “비겁자, 나태한, 이중성, 가련한.”이라고 표현한 구절이 나온다.
이러한 쓰라린 어둔 밤을 거쳐 하늘 마음을 찾은 것은 아닐지. 누가 나에게 당신의 뒷모습은
어떠하냐고 묻는다면 가만히 고개를 숙일 것이다. 그러나 아름다운 뒷모습은 아름다운 앞모습이
만들어낸다는 것에 희망을 걸고 기죽지는 않을 것이다.
이쪽의 죽음 순간은 저쪽에 막 태어나는 순간이라고 한 선생은 하얀 세상에 다시 태어나 그토록
그리워한 엄마랑 함께 오늘 밤 내가 보는 별을 바라보고 계실지도 모를 일.
하늘 마음으로 동화를 쓰고 동화 속으로 사라져간 뒷모습의 향기에 젖어 캄캄한 세상을 향해 나도
“별님 들도 불을 켜세요.” 하고 웃어본다.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다시 만나는 길 2026.05.01 (금)
길을 가다 길이 나누어지는 곳에 꽃을 심는다쩍쩍 소리를 내며 갈라졌던 길가다 보면 곧은 길은 휘어지고가는 이도 길 따라 굽어지고저버렸던 것들이 휘돌아 다시 올지 모를 기로에하얀 물망초 잠잠히 피어 서성인다
자명
뉴욕 일기 2026.05.01 (금)
금발의 미녀가 귀여운 개를 이끌고 허드슨 강변을 거닐고, 노부부가 산책하는 센트럴 파크의 한가로움, 월스트리트를 숨 가쁘게 오가는 화이트칼라들의 모습은 절묘한 풍경을 그려내고 있다. TV 화면을 통해 비추어지는 이곳 맨해튼은 누구나 한 번쯤 동경하게 되는 도시다. 그러나 처음 발을 내디딘 이들은 한결같이 실망과 당혹감을 경험하곤 한다. 지독한 교통체증, 좁고 불결한 거리, 곳곳에 늘어선 부랑자들과 끊이지 않는 사이렌 소리. 비라도...
자명
다시 피어나는 꽃 2026.05.01 (금)
나는밴쿠버의 봄 한가운데다시 선다고요히 숨을 고른다흐드러진 꽃들 사이아직 피지 않은 하나보이지 않는 곳에서뿌리를 더 깊이 내린다긴 겨울은나를 꺾지 못하고도리어 나를 묻어더 단단히 길러냈다이제는 안다피어남이란우연이 아닌의지의 시간임을한 번 더스스로를 일으켜나의 자리에서새벽 머금은 불빛으로            A Flower Blooming...
로터스 정
AI와 망설임 2026.04.30 (목)
“와! 이걸 정말 직접 작곡을 하고, 노래도 하신 거예요?” 노래를 듣고 놀라서 물어본 질문에,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직접 쓴 노랫말에 곡을 붙이고, 보컬(음성)까지 넣어 노래를 만들었다고 했다. 인공지능의 발전이 예전 ‘시리’와 ‘알렉사’처럼 단순히 사람이 시키는 명령을 그대로 전달하는 수준을 넘어서 이처럼 예술 창작분야에도 널리 사용되고 있다.나도 AI를 전문적으로 사용하는 수준은 아니지만 일상에서 궁금한 점이 있거나, 문제가...
정재욱
미움보다 외로움이 낫지 않겠는가아픔보다는 그리움이 낫겠지마주하여 괴로움이 끓는다면돌아서서 우는 것이 나을지도 몰라내 혀에서 독이 날름거리고눈에서 불똥 갈퀴가 할퀴기 전 그래길게 바람 한 번 들이켜고뜨거운 서러움 꿀꺽 삼키고돌아서서 홀로 걷는 거야 가는 길에 품은 악은 날려 버리고가득 찬 혀의 독을 묻어 버리면아린 마음 그나마 챙길 수 있지 않을까 그래!믿음을 저버린 배신의 어둠 앞에서까짓 것 눈 한 번 질끈...
한부연
헉, 헉, 심장이 터질 듯 다리가 마비될 것 같은 통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나의 뇌는 달리고 있는 다리, 정확히 말하면 허벅지 뒤쪽 근육, 햄스트링에 계속 더 힘을 내 달리라는 명령을 내리고 있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십여 분간 뇌와 다리가 사투를 벌인 끝에 나는 마침내 목표선을 통과 했다. 완주했다는 안도감과 함께 만족스러운 기록에 나 자신을 조용히 칭찬했다.   나는 사십 년 넘게 달리기와 함께 살아왔다. 처음에는 체력...
정효봉
Hole 2026.04.24 (금)
전혀 다른 우리의 시작에시간과 공간은 우리를 감싸안았다 지금도 사진처럼반짝이는 특별했던 순간들서서히 희미하게 사라지겠지존재한 적도 없는 것처럼 모든 살아있는 것은 죽는다모든 별들의 죽음이 이미 예고되었듯이 안으로 침잠하며 검게 타오른 불길은끝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지평선을 그려내었다 남은 마음이라고는후 불어 날릴 재뿐이라도아주 잃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어디에든어떻게든무엇으로든 존재할...
이인숙
프레이밍 효과 2026.04.23 (목)
“프레이밍 효과 ( Framing Effect )” 라는 이론이 있다. 이 프레이밍 효과란 “어떤 사실을 전달할 때 그 사실을 어떤 틀 안에 넣어 전달하느냐에 따라 전달받은 사람의 생각과 행동이 달라진다”라는 것이다. 우리말로는 “액자 효과” 또는 “틀 짜기 효과” 라고도 부른다.  예를 들면 물이 절반가량 들어 있는 컵을 보고 A는 “물이 절반 밖에 없네. 다 없어지기 전에 빨리 마셔야지” 라고 생각하고 행동한다. 반면 B는 “물이 아직 절반이나...
정관일
지난 주에 이어 계속 집도의는 캐나다에서도 이름 있는 Doctor라 했다. 수술실에 들어가니 남자가 7사람 여자 두 사람이 있다. 수술은 집도의와 보조의가 하겠지만 의대생들이 견학하는 걸 허락했던 것이다.수술은 성공적으로 잘 마무리 된듯하다. 수술을 하고 정신을 차려보니 방광에 호스를 꽂아 소변을 받아내고 양팔 혈관에 주사바늘을 고정시켜 줄이 달려있다코로 호수를 따라 식사대용 영양제가 들어간다. 또 수술한 부위에도 호스를 넣어...
박병준
 ▶지난 주에 이어 계속 암이 자리 잡은 곳, 그 위치가 어디인가. 그게 중요하다.폐라면 힘 든다. 췌장이라면 수술이 어렵다. 급성으로 여러 군데 전이가 되었다면 걷잡을 수 없이 위험하다.내게 온 곳은 목이다. 후두암이라고도 한다. 그 자리는 어떤 곳인가?매우 정교하고 복잡한 부분이다. 거기는 기도(Air way)와 식도가 만나는 곳인데 코와 입을 통해서 공기가 들어오고 또 입에서 식도로 넘어오는 음식이 지난다.또 허파에서 나오는 공기가...
늘산 박병준
늘산 본인이 암 판정을 받고 수술을 하고 퇴원을 하면서 그간에 있었던 일들을 정리하고 싶습니다. 이는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 암에서 예방될 수 있는 일에 다소나마 길잡이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면서 이 글을 시작합니다.암의 발견은 우연적일 수도 있고 필연적일 수도 있다.나는 우연적이라 생각하며 그나마 일찍 발견하였다는데 다행이라 생각한다.산에서 사람을...
늘산 박병준
다음페이지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