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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 : 2025-04-04 16:34

김경래 (사)한국문협 밴쿠버지부 회원
꽃이 피려면
아직
4월에 머물러야 합니다
집채 만 한 겨울을
조금 더 이겨내야 합니다
등 시린 우리의 견뎌냄은
기대라는 버팀목으로
조금 더 꾹꾹 눌러야 합니다
 
누구는 성급한 입김으로
냉골에 봄을 불어대고
쇼윈도 실루엣을
짧은 차림으로 갈아 치웁니다 

꽃이 피려면
당신의 4월이 익어야 합니다
기다려 크는 열매가
차가운 기억을 쓸어낸 적 있잖아요
냉동실에 익숙한 가슴앓이라면
자꾸 꺼내 묵상하지 말아요
상처 입기 쉬운 곳에
숨쉬기 쉬울 만큼 공간을 준비해
물망초 유채꽃 목련에 기대어
임박한 햇살을 준비해야 합니다 

힘겨운 기다림의 출구에 
그래도 잘했다
꽃 같은 언어를 품겠습니다 
동박새는 때가 되어
음절로 꿀을 호리겠으니 
4월은 
그냥 머물러 있겠습니다.
 
*해설
약방문 (PRESCRIPTION)에는 '손님의 시간'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약국에선 이 진단서를 보고 자신의 면허증을 보여줍니다. 시간 어쩌고 하는 눈속임이 알고 보면 최고의 보약이라고, 그 분야 전문가라 적힌 면허증입니다. 아무리 잘 났어도 시간에 기대지 않고 치료를 꿈꾸기란 어불성설임에 모든 명의는 시간 전문가로 불리곤 합니다. 문제는 터무니없이 기다려야 만 한다면 제 아무리 그 분야 강자라도 말발이 먹히지 않을 때가 많죠. 
 
기다림에 이력난 희귀 존재들이 있는데, 이곳 캐나다 인들입니다. 조급하기 짝이 없는 미국과 비교되어, 편두통으로 무슨 뇌종양 인가 찾아가면 아스피린 진단, 끊어질 것 같은 허리 통증에 찾아오면, 며칠이고 온열 찜질, 매일매일 하는 대부분 해답은 기다리고 잠시 참을 것들이라 이젠 별 기대도 없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세 가지밖에 없습니다. 이 사회에서 도태되거나, 탈출하거나, 스스로 사라져야 하는. 
 
꽃구경 한번 제대로 해 보려고 기다리고 있는 찰나에 헌재는 그들 만의 권력도 권력이라고 국민들의 인내를 시험하고 있습니다. 중간자가 최고 짜릿한 순간은 좌와 우의 비등점입니다. 선고가 어떻든 반쪽으로 갈라진 조국이 이 깊은 상처에서 벗어나려면 오랜 기간이 필요할지도 모르지만 너도 즐기고 나도 즐기면서, 성급한 입놀림들이 정치인 기독교 인 목사 할 것 없이 냉골에 봄이랍시고 불어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너나없이 이 사랑스러운 존재들이 물고 물리는 일로 싸우는 것처럼 지나고 나서 후회할 일이 또 있을까요? 
 
우리는 다 기다림으로 살아가는 존재들입니다. 잘 기다려야 잘 된다는 증거가 주식 지표에 나타나 있듯한 실물 경제인입니다. 그런데, 이 딴 것쯤 못할 것 없습니다. 사랑스러운 꽃을 보기 위해 눈 내린 3월을 지나 4월이 오게 될 기다림의 출구에 "모두 다 잘했다"는 덕담을 할 날이 올 것입니다. 정치든, 외교든, 의료 대란이든 우리는 모두 4월에 아직 머물러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 기다림을 눈 빠지게 즐겨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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