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굴곡진 인생의 리듬 속으로, 올레!

박정은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24-08-20 11:26

박정은 / 사)한국문협 밴쿠버지부 회원
여행지로 스페인을 선택한 이유는 세계적인 건축가 가우디 때문이었다. 곡선의 미학과 자연주의를 담은 그의 건축물을 직접 본다는 설렘에, 바르셀로나에 발을 들인 순간부터 난 가슴이 떨려왔다. 카사밀라를 시작으로 카사바트요, 구엘 공원을 거쳐 마지막으로 향한 곳은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이었다. 어딜 가나 몰려드는 엄청난 관광객을 보면서, '가우디 혼자 바르셀로나를 다 먹여 살리네!' 싶었다. 가우디가 지은 성당 안으로 들어간 순간, 나는 그만 말을 잃고 말았다. 그곳은 마치 숲속과 같았다. 웅장한 성당 내부를 받치고 있는 기둥 모두가 꽃이 핀 큰 나무였다. 천정은 나뭇잎과 꽃, 그리고 그 사이로 스며드는 햇빛으로 표현되어 있었다. 성당 내부의 모든 벽면은 스테인드글라스로, 그 창을 통해 스며드는 다채로운 자연의 빛이 성당 안 내부를 신비롭게 만들었다. 묵묵히 내부를 둘러보던 남편이 내게 다가오더니, 나지막한 목소리로 "신은 있다!"라고 한마디 속삭였다. 무신론자인 남편의 입에서 그런 고백이 터질 정도로 가우디의 성당은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건축물이었다.
이미 스페인의 여러 도시를 거치면서 이백 년에 걸쳐 지었다는 엄청난 규모의 대성당을 많이 보았었다. 그런데 그 성당들은 위압감이 느껴질 정도로 웅장했고, 성당 내부는 값비싼 형상과 벽화로 즐비했다. 중앙제단을 몇십 톤의 금으로 장식한 성당도 있었고, 그곳에서 신은 인간이 닿을 수 없는 저 높은 곳에 앉아 있었다. 그나마 신에게 다가갈 수 있는 사람은 권력과 부를 가진 왕족만이 가능한 듯했다. 하나같이 그런 성당만을 짓던 때에 어떻게 가우디는 그 모든 걸 무시하고 성당 내부를 숲으로 지었을까? 평생을 신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살았다는 안토니오 가우디. 그가 만난 신은 자연의 숲과 닮아있었다. 숲은 어느 사람도 밀어내지 않는다. 그렇듯 그가 지은 성당엔 모든 인간을 포용하고 사랑하는 신이 있었다. 한참을 신의 품에 안겨 울컥울컥 올라오는 눈물을 훔치다가 난 성당을 나왔다. 나오는 통로에 가우디가 남긴 말이 쓰여있었다. 'To do things right, first you need love, then technique.' 뭔가를 제대로 하려면 먼저 사랑이 있어야 하고, 기술은 그다음이다. 그의 말을 본받아, '무엇을 하건, 사랑으로 하자!' 마음에 새기며 난 다음 여행지로 발길을 돌렸다.
“올레! 올레~!” 플라멩코 댄서들이 토해내는 격렬한 춤사위에 관객들이 환호성을 연발했다. 그러자 그 호응에 신이 난 댄서들이 더 격동적인 춤동작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무대 앞 제일 앞줄에 앉아 있던 나는 벌어지는 입을 어쩌지 못한 채 들고 있던 샹그리아 잔을 내려놨다. 그렇게 입을 벌리고 앉아 댄서들이 뛸 때마다 무대 바닥이 뿜어내는 뿌연 먼지를 샹그리아 대신 마셨다. 입 다무는 것도 까맣게 잊을 만큼 난 그들이 이끄는 정열의 리듬 속으로 흠뻑 빠져들고 있었다. 이글거리는 댄서들의 눈빛을 보며 눈으로도 춤을 출 수 있다는 사실에 감탄했다. 동작이 멈춘 순간에도 댄서들의 심장은 여전히 춤을 췄다. 미세하게 떨리는 손끝으로 그 심장의 출렁임을 가늠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압권인 건 소리로도 춤을 춘다는 사실이었다. 손에 들린 캐스터네츠와 구둣발 소리로 댄서들이 다이내믹한 리듬을 펼치며 관객들의 심장을 쪼이고 펴기를 반복했다. 그건 마치 사물놀이의 휘모리장단과도 같은 리듬으로 내게 다가왔다. 한국에서 풍물패를 하던 시절 난 북을 잡았었다. 잔가락이 많은 장구와 꽹과리를 피하느라 잡았던 북인데도 휘모리장단을 몰아가기가 여전히 힘들었었다. 그런데 그토록 빠른 휘모리장단의 리듬을 플라멩코 댄서 혼자서 몰아갔다. 수년을 탭댄스도 춰봤었기에 그렇게 빠른 탭스탭이 얼마나 밟기 어려운지 잘 알고 있었다. 그저 경이로울 따름이었다. 그 발소리를 내기 위해 몸이 떨리고 손끝이 떨리고 비 오듯 땀을 쏟았다. 그렇게 댄서들이 열정의 춤을 선보이는 동안 나의 심장은 그 빠른 스텝을 쫓아 미친듯 벌렁거렸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이, '병원 CPR 팀에 저 댄서들을 넣으면 멈췄던 심장도 다시 뛰게 만들겠는데!'하는 거였다.
공연이 끝난 후 뜨거운 울림을 안고 나와보니, 4월인데도 극장 밖은 35도에 육박하는 온도로 엄청 뜨거웠다. 내가 헉헉거리자, 현지인이 말하길 이 정도는 봄 기온일 뿐 여름엔 45도를 훨씬 웃돈다고 했다. 왜 스페인을 '태양의 나라'라고 부르는지 알 것 같았다. 플라멩코의 본 고장인 세비야로 올 때까지 벌써 스페인의 여러 도시를 거쳐서 오는 중이었다. 그렇게 여행하며 내심 놀랐던 건 스페인이 지닌 엄청난 문화적 유산과 예술적 역량이었다. 스페인은 전역이 다 문화유산 같았다. 그러면서 드는 의문이, '이렇게 뜨거운 나라가 어떻게 이런 문명을 이룰 수 있었지?'였다. 사실 더위는 사람을 게으르게 만든다. 이 정도 더위면 신체 상태가 셧다운됐을 텐데, 어떻게 스페인은 16, 17세기 세계 최강대국이 되었을까? 여행하며 품었던 그 의문의 답을 난 플라멩코에서 찾을 수 있었다. 그들의 춤은 하와이에서 봤던 알로하 춤과는 달랐다. 플라멩코는 더위와 싸우는 춤이었다. 활활 타는 태양을 삼켜버리는 뜨거운 열정이 그들에겐 있었다. 그런 열정이 있었기에 저런 퀄리티의 문화유산을 지어 남기지 않았겠나 싶었다. 과연 저런 열정으로 내가 삶을 살아본 적이 있었던가? 나도 뜨겁게 사랑하며 살아야겠다고 다짐하며 스페인을 떠나왔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내려다본 세상은, '직선은 인간의 선이고, 곡선은 신의 선이다.'라고 한 가우디의 말을 떠올리게 했다. 마치 직선에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처럼 가우디의 건물에선 전혀 직선을 찾아볼 수 없었다. 문고리 하나, 층계 난간까지도 다 곡선이었다. 쉬운 직선을 놔두고, 자연의 선인 곡선을 그는 끝까지 고집했다. 과연 그의 말처럼 비행기 아래로 펼쳐진 세상은 산도 강도 모두 구불구불하게 흐르고 있었다. 딱 하나 인간이 만든 도로만이 직선이었다. 직선이 가장 빠르고 효율적이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인간에겐 직선 본능이 있다. 하물며 인생마저 고속도로처럼 곧게 펼쳐지길 우린 기대하곤 한다. 하지만 신의 선은 곡선이다. 그런 신이 나를 위해 직선의 인생을 계획했을 리 만무했다. 그러니 살다가 굴곡을 만나더라도 너무 피하려고 애쓰지 말자 싶었다. 험한 길이든 구부러진 길이든 적응하고 우회하며 살다 보면 그 굽이 안에 신이 심어둔 아름다운 삶의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신이 만든 굴곡진 인생의 리듬 속으로, '올레~!'를 외치며 뛰어들 줄 알아야겠다 싶었다
유럽에 가면 소매치기가 많다고 해서 여행 전 유튜브로 소매치기당하지 않는 법을 배워갔다. 소매치기가 나타날 때마다 현지 가이드가 큰소리로 외치면, "Pick pocket!"를 따라 외치며 가방을 꽉 붙들고 경계했었다. 그 결과 가방은 지켰는데, 그만 마음을 스페인에게 소매치기당하고 돌아왔다.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아침 이슬이여, 너는 어둠의 울타리에 걸어 놓은  내밀(內密)의 창(窓) 지순한 그리움의 초상이구나    춥고 습한 긴밤들을 눈물로 견디며 모든 고통의 순간들은 결국 숭고한 환희로 통하는 길이라는 지혜를 터득한 너의 맑은 이마여!                                           ...
안봉자
작은 아씨 2025.06.27 (금)
  어머니는 젖이 풍부하신 분이셨다. 우리 형제들을 키우면서도 일부러 젖을 떼려고 애쓰지 않고 아이가 먹겠다면 언제까지고 먹이려고 하셨다. 나도 거의 세 네 살까지 젖을 먹었다고 들었다. 내 밑에 막내 동생은 여섯 살이 넘도록 젖을 먹었다. 친구들과 밖에서 놀다가도 들어와서는 어머니 품을 파고들어 젖을 먹었다. 주위 사람들이 젖을 떼지 다 큰 애를 무슨 젖을 먹이냐고 하면 어머니는 이제 더 먹일 아이도 없는데 나오는 젖을, 먹겠다는...
심현섭
그리움 2025.06.27 (금)
사그라져 가는 물안개 아침 햇살에 부서지고   파도가 뿜어낸 당신 닮은 은빛 숨결 물 비늘이 허공 위로 흩어지네   그대 향한 서성임이 아픔의 태산 되어 울고   요란한 살여울 지쳐 밀려온 그 자리 차디찬 빙산 이어라   볕 뉘 사이로 스며드는 따뜻한 당신 목소리에 오늘도 목이 메이네
김정임
바람이 전해준 말 2025.06.27 (금)
  캐나다 웨이에서 오클랜드 스트리트로 우회전 핸들을 틀자마자, 눈부신 초록의 나라가 시야에 확 펼쳐졌다. 눈이 맑아지고 머리가 시원해진다. 문득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이었다.’로 시작되는 설국(雪國)의 첫 페이지가 떠올랐다. 하얀 눈의 나라로 들어가는 대신, 나는 온 세상이 초록으로 물든 별세계로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이 길은 조금 지나면, 디어 레이크 파크 숲을 우측으로 끼고 돌면서 계속...
지연옥
The Rose of Sharon Blooms in Vancouver                                                   Poem by Lotus Chung Mother, brother, we’ve crossed the seaUnder Vancouver’s sky, the Rose of Sharon blooms in fullOn sunny days, let bursts of laughter bloomLet’s dress in hanbok and dance with grace In the immigrant’s suitcase, dreams and hopesAnd tucked inside, a single word in our mother tongueChildren, friends, be proud Embracing two cultures in our...
로터스 정병연
양상군자 시리즈 2025.06.20 (금)
30년 전 빅토리아에서 편의점을 운영할 때였다. 한 번은 내 가게에서 일하는 모하메드 (아프가니스탄인)가 어떤 아이가 물건을 훔치는 것을 보고 혼내 주었다고 한다. 그 아이 인상착의를 들으니 가끔 엄마 심부름으로 담배나 우유를 사러 오는 테미의 아들이었다. 그리고 잔돈 남은 것으로 사탕을 사 먹는 순해 보이는 4-5학년쯤 되는 남자아이였다. 며칠 뒤 저녁때쯤 그 아이와 친구가 사탕을 사러 들어왔다. 검은 큰 잠바를 입고 사탕과 초콜릿이 진열된...
이종구
   거센 물살을 이기며 본향으로 역류하는 연어의 몸짓을 본 적이 있는가? 영어의 바다에서 한글로 문학작품을 쓰는 이들이 연어의 몸짓을 닮고 있다. 금년 한카문학상 응모작품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캐나다에서 오래 살다 보면 언젠가부터 영어도 잘 늘지 않고, 한글은 잘 잊어버리는 경향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말을 살리고, 우리 글을 익히려는 한국문학 지망생들의 도전은 처연하게 아름답다. 이제 수상자들은 온갖 어려움을...
이원배(심사위원장)
은사시나무 2025.06.13 (금)
유월의 숲나풀거리던 녹두 빛은  어느새 농록한 푸름으로 가득하다해질녘 노을 꽃피면붉은 비로도 옷 두른 나무들 사이늙은 은사시나무흰 버짐 가득 핀 맨살 드러낸 체 고단한 시간의 허물을 벗겨내고 있다영겁의 세월 지나는 동안이웃한 바람, 꽃, 새들에게힘껏 다정하였다고 정성다해 사랑하였다고구름으로 하늘편지를 띄운다고요한 유월의 숲겹겹이 까만 커튼이 드리우면슴벅거리는 황혼의 노을 데리고은사시나무 레테의 강가*에...
김계옥
지난 주에 이어 계속 집도의는 캐나다에서도 이름 있는 Doctor라 했다. 수술실에 들어가니 남자가 7사람 여자 두 사람이 있다. 수술은 집도의와 보조의가 하겠지만 의대생들이 견학하는 걸 허락했던 것이다.수술은 성공적으로 잘 마무리 된듯하다. 수술을 하고 정신을 차려보니 방광에 호스를 꽂아 소변을 받아내고 양팔 혈관에 주사바늘을 고정시켜 줄이 달려있다코로 호수를 따라 식사대용 영양제가 들어간다. 또 수술한 부위에도 호스를 넣어...
박병준
 ▶지난 주에 이어 계속 암이 자리 잡은 곳, 그 위치가 어디인가. 그게 중요하다.폐라면 힘 든다. 췌장이라면 수술이 어렵다. 급성으로 여러 군데 전이가 되었다면 걷잡을 수 없이 위험하다.내게 온 곳은 목이다. 후두암이라고도 한다. 그 자리는 어떤 곳인가?매우 정교하고 복잡한 부분이다. 거기는 기도(Air way)와 식도가 만나는 곳인데 코와 입을 통해서 공기가 들어오고 또 입에서 식도로 넘어오는 음식이 지난다.또 허파에서 나오는 공기가...
늘산 박병준
늘산 본인이 암 판정을 받고 수술을 하고 퇴원을 하면서 그간에 있었던 일들을 정리하고 싶습니다. 이는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 암에서 예방될 수 있는 일에 다소나마 길잡이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면서 이 글을 시작합니다.암의 발견은 우연적일 수도 있고 필연적일 수도 있다.나는 우연적이라 생각하며 그나마 일찍 발견하였다는데 다행이라 생각한다.산에서 사람을...
늘산 박병준
다음페이지
 1  2  3  4  5  6  7  8  9  10   
광고문의
ad@vanchosun.com
Tel. 604-877-11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