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행복해야 하는 이유

김춘희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24-01-08 09:12

김춘희 / (사)한국문협 밴쿠버지부 회원
  2024년은 나에게는 특별한 해다. 정확히 말하자면  1994년 11월 23일  우리가  독립 이민자로 캐나다 퀘벡주에 있는 몬트리올 공항에 발을 디딘 지  50년을 맞는 해다. 반세기를 캐나다에서 살고 있다.    

 1974년 육군본부에서 공병 장교로 일 잘하던 남편을 설득하여 아직  두 살이 채 안 되는 딸아기를 안고 아무도 우리를 반겨주지 않았던 낯선 캐나다 땅에 랜딩 했다. 남편의 본적은 함경북도, 하얼빈 출생이다. 러시아계와 일본인과 조선인들의 아이들이 섞여 있는 유치원에 다녔다. 소학교는 장춘에서 다녔고 해방 후에 평양 보통 고등학교(평고)에 재학했다. 평고를 졸업하던 그해 여름, 강제 징집되어 한국 전쟁에 인민군으로 참전한 인민군 출신이었다. 장춘에서 조선물산이라는 큰 회사를 운영했던 재벌가 아버지의 외아들이었던 그는 포로수용소를 거쳐 대한민국 군인으로 21년간 군 복무를 했다.  그는 죽는 날까지 북한에 남은 부모와의 재회는 물론 생사도 모르고 살았던 사람이다.  한편 나는 대학 졸업 후 고등학교 교사를 하다가 프랑스 유학을 하고 모교에서 후배를 양성했던 전직 교수였다.  결혼 후 이런저런 이유로 우리는 머리도 식힐겸  달리 편한 방법이 없었던 그 시절에 이민이라는 수단을 매력적으로 생각했고 불어가 전공이었던 나에게 퀘백은 위로의 땅처럼 여겨져 무작정 이민했다.   

  남편은 눈 덮인 몬트리올이 마치 하얼빈과 흡사하다고 오자마자 몬트리올과 사랑에 빠졌다. 우린 마치 잠시 놀러 온 관광객처럼 겁 없이 이민 생활을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해외 이민자들이 해외로 출국하면서 갖고 나가는 돈이 제한되었던 시절이기도 했지만, 정부로부터 일시불로 받은 남편의 연금과 그의 특별한 엔지니어링 기술만을 믿고 용감하게 낯선 땅에 오게 되었다. 남편은 예상한 대로 몬트리올 도착 후 곧 직장을 구했다. 나는 처음부터 영 불어를 구사할 수 있었지만, 특별한 기술이 없는 관계로 마땅한 직장을 구하기가 힘들었고, 막상 일자리가 생겨도 이상하게 두 아이가 번갈아 가며 심하게 앓았다. 그러자 남편은 나에게 몬트리올에서 가장 행복한 여자로 만들어 줄 테니 직장 생활을 단념하고 집에서 아이들만 잘 키우라 했다. 그러나 빠듯한 월급으로 생활을 꾸려가기가 얼마나 답답했는지 모른다. 그래서 내가 무슨 행복한 여자냐 하며 신세 한탄도 많이 했다. 살림하고 아이들을 키우고 은둔 생활을 꽤 오래 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여기저기서 번역 청탁이 들어오며 자연스레 정부 통번역 일을 보게 되었다. 남편이 암에 걸려 4개월 판정을 받을 때까지 거의 30년간 몬트리올에 없어서는 안 될 통·번역가로 일했다. 내가 불어로 일하면서 안 되는 일이 없을 정도로 퀘벡 사람들은 나의 불어를 사랑해 주었다. 돌이켜 보면 그때 나는 행복이 이미 내 안에  들어와 있었지만 그것을  깨닫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저 맡겨진 임무를 충실히 해 나가는 데에 초점을 맞추고 살았을 뿐이었다. 

  나는 7남매 가운데 셋째로 태어났다. 우리 형제 중에서 나는 가장 못생긴 사람인걸 누구나 다 알고 있다. 어려서 손님들이 집에 오면 어떤 분들은 나를 가리켜 "이 아이는 뉘 집 애입니까?"라고 물을 정도로 우리 형제들과 다르게 생겼을 뿐 아니라 예쁘게 태어나지 못했다. 그런 나에게 예쁘다고 말해 준 사람이 있었다. 결혼했더니, 제 눈에 안경이라고 남편은 나를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라 했다. 처음엔 농담 좀 하지 말라고 웃어 넘겼다. 그러나 남편은 정색하며 예쁘다고 했다. 못생긴 얼굴이야 변하지 않지만 적어도 외모에 대한 나의 열등감이 언제부터인가 내 머리에서 사라졌다. 그는 가끔 어쩌다 나를 끔찍이 사랑하고 싶을 때, 내 이름 석 자를 나직이 불러 주곤 했다. 나는 외모뿐 아니라 내 이름 석 자도 끔찍이 싫어했었다. 캐나다에 이민 와서 사람들이 내 이름 대신 부인미세스 최 혹은 나의 세례명으로 불러 줄 때 내가 싫어하는 이름이 빠지게 되어 좋았다. 그런 내 이름을 남편은 이따금 불러 주곤 했다. 내 이름으로 부르지 말라 했을 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이름도 예쁘다고 다정하게 불러 주었다. 그가 떠난 지도 오래되었지만 나는 지금도 누가 내 이름 석 자만을 부르면 온통 옛날 사랑받았던 시간이 떠 오르며 행복에 젖는다. 나의 이름을 다정하게 불러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모른다. 그래서 나는 친한 친구나 동생들에게 전화할 때 그들의 이름을 점잖게 부른다. 늘 아무개 엄마 혹은 부인미세스 누구하고 불림을 받다가 자기 이름을 불러 주면 대개는 깜짝 놀라면서 좋아한다. 짧은 순간이나마 행복하게 만들어 주고 싶은 마음에서 장난을 친다.

  우리는 일 년에 한두 번은 가족 여행을 한다. 작년 봄에는 처음으로 온 가족이 한국 여행을 하고 왔다. 경기도 파주에 이북 5도민들이 세웠다는 북한 실향민 경모공원에 모신 아이들 외조부모님의 묘소를 찾았다. 경모 공원 위쪽으로 북한 땅이 멀리 보이는 임진강 통일전망대에서 우리 가족이 왜 어떻게 저 강을 건너 넘어왔는지, 또한 아이들의 아버지가 인민군으로 징집되면서 영원히 헤어진 부모와의 생이별 등.. 한국전쟁의 슬픈 역사가 바로 자기들 아버지의 역사 속에 있음을 인식하는 현장 역사를 답사했다. 

  한국전쟁이 낳은 가슴 아픈 역사를 살았던 남편은 한 번도 자신의 운명을 비관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낙천가로 살았다.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긍정적 사고를 한 사람이었다. 나를 행복한 여자로 만들어 주겠다고 했던 그 배경에는 자신의 불행을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긍정적 사고에서 나온 그 사람다운 말이었을 것이다. 사람은 태어날 때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하여 태어난다. 불행한 삶을 살려고 태어나는 사람은 없다. 하느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 인간이 에덴 낙원에서 행복하게 살게 하려고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우리가 행복해야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나를 창조해 주신 분에 대한 예의를 지키는 것이다.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겠다던 그 사람은 떠난 지 오래되었지만, 그의  말은 유언처럼 내 곁을 지켜주고 있다. 올 한해도 행복하기 위한 작업으로 2024년 11월 23일 캐나다 이민 50주년 기념 휴가를 벌써 설계해 본다.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들꽃 2026.03.19 (목)
이름은 알아 무엇하랴 그저 좋은걸 나이는 물어 무엇하랴 그냥 예쁜걸 고향은 또 물어 무엇하랴 아마도 남촌일걸오직 하나 그 예쁜 얼굴로 그 여린 몸으로 왜 나왔는지 이 거친 들판에
늘샘 임윤빈
살면, 살아진다 2026.03.19 (목)
2025년 정기연주회 때의 일이다. 그 해는 갑자기 어머님이 돌아가셔서 한국을 다녀오자마자 “유엔젤 보이스”라는 한국팀의 초청 공연이 있어 슬퍼할 틈도 없이 매우 바쁘고 힘들었다. 한국에서 공연 팀을 초청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왜냐하면 한국의 인프라가 높은 수준이어서 웬만해서는 초청 팀을 만족시키기 어렵다. 나도 오케스트라 단원들과 이탈리아로 연주하러 갔을 때 초청된 입장에서 보면 이탈리아가 선진국이라는 기대치가...
아청 박혜정
봄에 기대어 2026.03.19 (목)
살면서 줄일 것이 늘어만 간다.많이 가지려고 한 것도 아닌데 꼭 필요한 걸까 생각해보면 추려낼 것 투성이다. 책과 LP를 사 모으는 건 때마다의 즐거움이고행복한 취미 생활이었다. 그렇게 쌓인 책더미를 보면 뿌듯했는데 그것도 지금은짐스럽게 느껴져서 정리대상이 되고 있다.전공어로 된 소설책을 이민오면서왕창 처분했다.남긴 책들도 한번씩 더 읽게 된 것 이외는중고서점에 팔고 나눔도 했다. 그렇게 남은 책은 나름 내게 인생...
고희경
봄을 기다리다 2026.03.19 (목)
얼레에 감긴 실처럼길고 긴 겨울더러 추운 몇 날은시린 손 비비며온기를 만들고그래도 몸이 녹지 않으면따뜻한 기억을 불러가만히 껴안고 잤다올 듯 오는 듯하면서도더디기만 한 봄남녘 여기저기에 매화꽃 피워 놓았다는데그 바람 얼른 올라와섬강 뒤덮은 얼음 녹이고언 내 몸에도 온기 나눠 줬으면
정금자
고독한 그녀 2026.03.13 (금)
고독한 그녀 오늘 그녀가 생각나네 언제가 되어야 나는 그녀의 고독을 이해할 수 있을까 사람들 틈에서 아무 일 없다는 듯 웃고 얘기하는 그녀 잘 익은 과일 속의 아주 작은 씨앗 모양 사람들 홍수 속 태풍의 눈 중앙에서 빈짝반짝 거리는 그녀 도심 한가운데서 너무나도 태연히 존재하는 병원 부속 화장터 마냥 당연한 하지만 동시에 짧은 수수께끼 같은 그녀의 모습 화장터 연기 모양 슬프게 자신의...
박락준
나의 천사들 2026.03.13 (금)
 3년이면 탈상을 한다는 말이 실감 나던 어느날, 나는 아들이 사는 밴쿠버로 이사 왔다. 살던 집을 정리하고 처분하고  미국 각지에 흩어져 사는 형제들과 한국, 그리고 유럽으로 성지 순례를 다니며 40여 년 함께 살았던 남편과의 삶을 조금씩 정리하게 되었다.  임종이 가까워 오면서 그는 아이들 걱정은 한 마디도 없었고 다만 나에게, ‘어떻게 살래?’ 를 혼잣말처럼 되뇌이곤 했다. 그리고 마지막에 ’글이나 쓰며 살아라’ 고 유언 같은...
김춘희
   누군가의 철없는 행동에 자꾸 눈살이 찌푸려진다. '이 정도는 눈치껏 해야 하는 거 아니냐', '불평을 멈추고 행동해라', '예의를 갖추고 어른스럽게 굴라'며 나는 주위 사람들을 끊임없이 판단하고 못마땅해 한다. 십 대가 된 아이들에게, 혹은 서툰 신입 교사들을 향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무언의 비난과 질책을 쏟아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작 나도 완벽한 어른이 되지 못한, 여전히 서툴고 모순된 존재라는 사실에 종종 가슴이...
권은경
암모나스 2026.03.13 (금)
군용 담요로 막아둔 겨울 창숲 사이로 스며든 별빛이내 몸에 점자처럼 박혔다 그 빛을 따라 떠오른 언덕에서흰 여우 털의 왕자가 산토리를 켰다흩어지는 음표마다내 눈 속에서 작은 우주가 흔들렸다 여섯 다리의 암모나스가평평한 등에 나를 올려외할머니의 숨결 같은낮은 자장가를 흘렸다 소나무 잎 위에서 터진박하 냄새의 별 열매가내 몸을 가볍게 들어 올렸다 보이지 않는 무지개 길들이시간의 틈을 열었다 머물 수 없다는 걸...
강애나
지난 주에 이어 계속 집도의는 캐나다에서도 이름 있는 Doctor라 했다. 수술실에 들어가니 남자가 7사람 여자 두 사람이 있다. 수술은 집도의와 보조의가 하겠지만 의대생들이 견학하는 걸 허락했던 것이다.수술은 성공적으로 잘 마무리 된듯하다. 수술을 하고 정신을 차려보니 방광에 호스를 꽂아 소변을 받아내고 양팔 혈관에 주사바늘을 고정시켜 줄이 달려있다코로 호수를 따라 식사대용 영양제가 들어간다. 또 수술한 부위에도 호스를 넣어...
박병준
 ▶지난 주에 이어 계속 암이 자리 잡은 곳, 그 위치가 어디인가. 그게 중요하다.폐라면 힘 든다. 췌장이라면 수술이 어렵다. 급성으로 여러 군데 전이가 되었다면 걷잡을 수 없이 위험하다.내게 온 곳은 목이다. 후두암이라고도 한다. 그 자리는 어떤 곳인가?매우 정교하고 복잡한 부분이다. 거기는 기도(Air way)와 식도가 만나는 곳인데 코와 입을 통해서 공기가 들어오고 또 입에서 식도로 넘어오는 음식이 지난다.또 허파에서 나오는 공기가...
늘산 박병준
늘산 본인이 암 판정을 받고 수술을 하고 퇴원을 하면서 그간에 있었던 일들을 정리하고 싶습니다. 이는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 암에서 예방될 수 있는 일에 다소나마 길잡이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면서 이 글을 시작합니다.암의 발견은 우연적일 수도 있고 필연적일 수도 있다.나는 우연적이라 생각하며 그나마 일찍 발견하였다는데 다행이라 생각한다.산에서 사람을...
늘산 박병준
다음페이지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