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깍두기 없는 술장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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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 : 2023-07-31 09:00

박정은 / (사) 한국문협 밴쿠버지부 회원
캐나다에서 처음 사업을 시작하려고 할 때 가장 많이 들었던 조언이 방 또는 물을 파는 장사를 하라는 것이었다. 즉, 술을 파는 바(bar)가 있는 호텔을 하든지, 아니면 또 다른 물인 기름을 파는 주유소를 하라는 말이었다. 그래서 시작한 사업이 술을 파는 바가 있는 호텔이었다. 이야기에 앞서 일단 여인숙부터 호텔까지, 그 명칭을 간단히 정리해 볼까 한다. 한국에서는 여인숙, 여관, 모텔, 호텔 등, 그 명칭에 따라 대충 시설 정도를 파악할 수 있었다. 그런데 캐나다에선 이 명칭이 크게 도움이 되질 않는다. 먼저 ‘Inn’ 굳이 해석하면 여인숙으로 한국에서는 골목길에 위치한 허름한 숙박소이다. 하지만 여기선 유명 프렌차이즈는 대부분 Inn이 붙는다. 홀리데이인, 노바인 등등. 모텔은 자기 차를 주차할 공간이 있는 곳이라는 말인데, 사실 요즘 주차장 없는 곳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니 motel, inn, hotel, lodge 거의 같은 말이다. 조금 다른 것은 B&B인데 이건 침대와 아침(bed and breakfast)으로 아침 주고 잠도 자는 곳이라는 뜻이다. 호텔은 건물 내에 방뿐만 아니라 레스토랑, 술집(bar), 술 가게(liquor store) 등 이런 부대시설이 있다는 뜻이지, 꼭 시설이 엄청 좋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는 호텔의 수준은 어떠한가? 그러니까 이게 1902년 처음 이 타운과 함께 시작된 제1호 상업빌딩이었으니, 100년도 넘는 역사를 지닌다. 오래되었다고 무슨 담쟁이덩굴이 벽을 덮고 있는 그런 호텔을 상상하면 안 된다. 굳이 설명하자면 옛날 서부 영화에서 총을 찬 건달들이 바에서 술을 마시다 맘에 드는 여자가 생기면 같이 끌어안고 위층 방으로 올라가는, 바로 그 장면에서 나오는 그런 수준의 호텔에 더 가깝다. 당장이라도 존웨인이 총 한 자루만 차고 나타나면, 서부영화를 찍을 수도 있을 듯한 그런 허름한 곳이다. 하지만 방과 바, 리퀄스토어가 있기에 이름은 버젓한 호텔이다. 이 비즈니스의 노른자이자, 동시에 가장 운영하기 어려운 곳은 바로 술을 파는 바(bar)이다. 아주 바쁜 날이면 남편도 바텐더로 일을 한다. 물론 난 한 번도 바텐더를 해보진 않았다. 왜냐하면 칵테일 이름을 못 알아들어 주문을 못 받는다. 옛날에 영어를 대충 50퍼센트나 알아듣던 시절, 리퀄스토어에서 캐쉬어로 일할 때였다. 한 20살 정도나 먹은 남자가 와서 술을 사더니 대뜸 나한테 저녁 데이트를 하자고 했다. 기가 막혔던 난 “인석아! 알고 보면 내가 네 엄마 나이거든.”이라고는 영어가 짧아 일단 속으로만 말하고, 겉으로는 정중하게 웃으며 “나 남편 있거든. 너도 내 남편 알지?”라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이 녀석이 “상관없어! 우리가 데이트하는데 굳이 네 남편에게 말할 필요는 없잖아?”라고 하는 것이었다. 순간 열이 확 오르는데, 다른 사람 같았으면 당장 ‘F’로 시작되는 욕설이 튀어나왔겠지만, 영어가 짧은 난 욕도 캐나다 욕은 해 봤자 속이 시원해지질 않는다. 아무래도 내겐 욕도 메이드 인 코리아 욕이 최고다. 나는 불끈 쥔 주먹을 허리에 걸치며, 눈에 힘을 주고 내가 제일 잘하는 욕으로 “미~친 놈! Get out of here! Get out!”이라고 소릴 질렀다. 난 엄청 화가 나 소리를 지르는데 이 녀석은 그냥 어깨만 으쓱하더니 피식 웃으며 나간다. 참말로 욕이라는 것이 그렇다. 난 한국 욕을 해야 속이 시원하고, 듣는 녀석은 영어로 욕을 먹어야 기분이 나쁘니.
그러고 나서 며칠이 지났을까? 이번엔 다른 젊은 녀석이 스토어에 오더니 술만 곱게 사 갈 것이지 도대체 가질 않고 오늘 자기가 뭐를 했고 뭐를 했고 하면서 자꾸 떠들어댄다. 난 무슨 말인지 다 알아 들을 수도 없었지만 그래도 웃으며 듣는 척을 해주는데, 가만히 듣다보니 “...sex on the beach”라고 하는 거였다. 또 화가 난 나는 얼굴을 확 굳히며, “아~! 또 열 받네. 네가 해변에서 섹스하건 말건 그게 나하고 무슨 상관인데? 왜 그런 얘길 내 얼굴을 빤히 보면서 하냐고?” 물론 이 말도 영어가 짧아 속으로만 하고, 이번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난 절도 있게 손가락으로 문을 가리키며 “Get out!”이라고 소릴 질렀다. 그렇게 녀석을 쫓아낸 후 남편이 왔기에 세상이 어찌 되려고 저러는지 어린 것들이 성희롱을 일삼는다고 한탄했더니 남편이 물었다.
“분명히 그렇게 말했어? 정확히 들었어?”
“그래. sex on the beach 하더라니까.”
“그니까 그것 마셨다고 안 해?”
“뭐?”
“칵테일 이름이잖아. 오늘 그것 마셨다고 하지 않아?”
“어머! 그러면 그게 했다는 게 아니고 마셨다는 거였어?
순간 손으로 입을 막으며 미안한 표정을 지어봤지만, 이미 손님을 쫓아낸 다음이었다. 칵테일 이름이 이처럼 섹스와 연관된 속어가 많다 보니, 영어가 짧은 내가 바텐더를 했다간 손님들을 다 쫓아낼 판이었다.
처음 바를 시작할 때 개인적으로 가장 궁금했던 건 깍두기 아저씨들 없이 이런 술장사를 할 수 있냐는 거였다. 한국에서는 조폭을 끼어야만 술장사를 할 수 있다고 들었기 때문이었다. 여기 손님들을 보면 다들 덩치가 좋고, 문신을 무슨 옷처럼 입고 다닌다. 손님들이 다 깍두기 아저씨들 같은데, 거기에 기도(bouncer)로 조폭을 쓰면 어찌 될까? 싸움만 더 커질 뿐이다. 한마디로 필요 없다. 꼭 기도가 필요하면 대부분 여자를 세운다. 여자가 덩치 큰 손님들 사이를 휙휙 빠져 다니며 일을 하기도 좋고, 무엇보다 여자를 때리면 바로 경찰이 와서 끌고 가 버린다. 남자들끼리는 주먹질을 해도 맨주먹으로만 싸우면 크게 문제 삼질 않는다. 보통 바에서 싸움이 나면 일단 바 밖으로 나가 하나가 항복할 때까지 싸운 다음에, 다시 들어와 서로 다른 자리에 앉아 술을 마시다가 간다. 덩치 큰 남자 바운서가 와서 문제 일으킨다고 나가라고 하면 남자들끼리라 더 큰 싸움으로 번질 가능성이 있지만, 작은 여자 바운서가 나가라 소리 지르면 곱게 나가야만 하는 게 여기 법이다.
또 하나 아주 특징적인 건 남편이나 바텐더가 바에서 물의를 일으키는 손님을 Bar out(바 출입금지)시킬 수 있다는 거다. 기간은 일주일, 한 달, 일 년, 삼 년, 영원히 등 문제의 심각성에 따라 달라진다. 처음 호텔을 인수하고 남편이 했던 일이 바로 바 청소였다. 즉, 문제 있는 손님들을 모두 바 아웃시키는 그런 청소를 시작했다. 전과가 엄청 많다는 무섭게 생긴 남자를 바 아웃시켰을 때 혹시나 앙심을 품고 우리 가족에게 해코지하지 않을지 걱정이 되어 난 남편에게 살살하라고 잔소리를 했다. 그런데 하루는 그 남자가 찾아오더니 남편을 졸졸 따라다니며 너무 미안하다 내가 잘못했다 하지만 상황이 나만 잘못했다고 하기엔 너무 억울하다. 그러니 정상을 참작해서 바 아웃 기간을 1년에서 6개월로 줄여 달라고 했다. 결국 그게 몇 시간을 따라다니며 그가 사과하는 요지였다. 이들과 같이 지내다 보면 보기와는 달리 속은 참 순하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그러면 바 아웃을 당한 사람이 기간이 끝나기 전에 바에 들어오면 어떻게 될까? 언젠가 추운 겨울밤에 바에 잠깐 들른 적이 있었다. 바에 막 들어가려는데 단골손님 중의 하나인 어떤 여자가 날 불러 세웠다.
“크리스틴! 나 좀 도와줄 수 있어?”
“뭘?”
“찾는 사람이 있는데, 바에 들어가서 그 사람 좀 찾아줘.”
“나 그 사람 모르는데. 네가 들어가서 찾지?”
“나 바 아웃 당했는데 아직 이틀 남았거든. 만약 내가 이 문 넘어가면 손님들이 막 욕하고 뭘 던지고 그럴 거야. 나 무서워서 이 문 못 넘어가.”
여기 사람들은 국가가 정한 법률이든 관습이든 비록 이 바가 정한 규칙이라도 의외로 잘 지킨다. 처음 금연법이 시행될 때도 서로 망봐주며 화장실 가서 막 피우진 않을까 걱정했었는데, 이들은 한번 법으로 정해지면 무조건 지키는 경향이 아주 강했다. 우리에겐 좀 나쁘게 인식되는 고자질을 이들은 아주 사명감을 가지고 해댄다. 고자질이 나쁘다는 의식보다는 공공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철저한 신고 정신이라고 해두는 것이 더 맞을 듯하다. 이렇듯 바 아웃만 시키면 그다음은 손님들끼리 고발하고 지키고 처벌하고 다 알아서 한다. 한국에서 펜대만 굴리다 온 남편이 이 덩치 큰 손님들을 상대로 술장사하며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한국과는 다른 여기 사람들의 의식이었다. 규범의 대소를 굳이 따지자면 법률이 작은 곳에서 정한 규칙이나 개인 간의 약속보다 훨씬 우선할 것이다. 하지만 선진문화가 정착될수록 개인 간의 약속이 가장 큰 규범이 되는 듯하다. 우리는 이런 일들을 하면서 이들의 삶의 방식, 문화, 영어 정말 많은 것들을 배웠다. 근데 살짝 문제인 건 영어가 늘긴 느는데, 영어를 배우는 학교가 바이다 보니 남편이 갈수록 영어로 욕만 느는 게, 아무래도 학교를 잘 못 고른 것 같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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