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최종수정 : 2023-06-12 09:13

박혜경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시원한 강 바람 불어오는 선창가 봄을 맞이하는 상춘객으로 들끓는다. 어느새 겨울옷 벗고 밝고 상쾌한 차림인 그들의 소곤거림과 웃음소리가 새어 나가고 있다. 난 아직도 거무튀튀한 겨울의 칙칙함을 몸에 칭칭 감고 있다. 그러나 햇살은 영락없이 봄을 쏟아내며 현란한 빛을 자랑한다. 냄새와 실 바람은 감미로운 아이스크림같이 영혼에 스며든다. 강 둑에 넘치는 자연의 유희는 찰랑이고 아득한 산 자락은 산봉우리 꼭대기 흰 눈을 마지막까지 고집한 채 열정으로 거머쥐고 있다. 똑같은 푸른 하늘이건만 다정함은 다른 것이어서 불어오는 봄바람에 애써 애꿎은 냉이, 달래, 쑥 내음 기억을 찾아 킁킁 댄다. 꽃비 흠뻑 맞은 나무 의자는 미동도 없이 자리를 지키며 누군가를 기다린다. 동물적 감각으로 뒤적이던 강 둑에서 고향을 건져 올려 보지만 태평양 간격만큼 아득하기만 하다. 이대로 그리움 숙명처럼 보듬어 안고 내내 살아가겠지.
  
  깃발을 들고 무언가를 선동하던 한 시대 속의 무리는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한 채 역사의 도도한 강물에 떠내려가 묘지의 한편이 되었다. 인간이 만들어 내는 문명은 계속 편을 가른다. 정치가 이념이 경제가 그리고 문화까지도. 어디서나 예외 없이 너와 나를 구분하며 대중을 선동하여 좁은 울타리 안에 줄을 세운다. 무디어진 감각과 이성의 마지막 노구를 만족하게 해 줄 대상을 찾아본다. 하지만 모국이란 어미의 품에서 떨어져 생경한 땅에서 영원한 이방인이 되어 속한 곳 없이 떠도는 유목민은 어디에서도 끼어들지 못한 채 훈수 들지 못한 채 삶 속에서 삐걱 인다. 일 년이면 반이 차가운 비에 장기까지 파고드는 냉한 기운은 타향살이에 뼈 마디 깊은 외로움과 을씨년이 탑을 쌓아 올린다. 차가운 겨울 강 줄기는 죽음을 연상시키며 희뿌연 자태로 흐른다. 사나운 태풍이 뿌연 강 위로 부유물을 퍼 날랐다. 강물은 차갑고 시리다.
  
  그러나 계절은 바뀌고 이내 봄이 찾아왔다. 어디선가 아련한 기억이 되살아난다. 어린 시절 개구리 잡으려 검정 고무신 벗어 들고 맨발로 디뎌보던 감각일까? 고무신에 담아 올린 송사리를 바라보며 어린 벗들과 우정을 쌓으며 까르르 터뜨린 웃음 속 인물들은 인적이 끊긴 지 오래다. 그래도 머리 위를 비추는 가녀린 오늘의 햇살은 다정하다. 화분에 심어 놓은 선인장이 어느새 쑥쑥 자라 밀도 높은 좁은 집이 되었다. 세상은 넓은데 공간에 가두어 둠이 미안하고 서로 몸을 비비고 있으니 얼마나 답답할까 하여 분 갈이를 해 주었다. 널찍하게 자리 잡은 모습에 그나마 숨통이 트인다.
  
  비좁은 나의 마음속에는 끝까지 포기하지 못하는 겸손으로 위장한 자기 사랑이 숨어있다. 아무리 감추려 해도 뼛속 깊이 흐르는 천성을 숨길 수 없나 보다. 자식이 묻는다. “인생은 무엇인가요?” “더 높은 곳에 오르렴” 나의 속내를 들키지 않으려 부단히 애쓰며 선으로 위장한 감춰진 욕망이 머리를 쳐 든다. 차마 내가 이루지 못한 꿈과 야망을 다음 세대에 은근히 전가하고 있다. 숨을 고르며 느린 걸음 걸어보라고 들려주어야 할 지혜는 머릿속에 지식으로만 남아있다. 숲 속을 기억해 본다. 그곳에서 주님이 오묘한 자연의 섭리를 가르치신다. 어지럽고 힘 부친 왜소한 삶에 오늘도 주님의 따스한 음성은 속삭임이다. 용기를 내어보라고. 삶을 인내하며 살아 보라고 그리고 감사를 잊지 말라고. 그래서 다시 삶을 향한 봇 짐을 꾸린다.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프랙탈 2024.06.07 (금)
“오늘의 헤드라인 뉴스입니다. 어제 오후, 속칭 <버뮤다 연쇄살인>의 여섯 번째 희생자가, 다섯 번째 희생자 이후 불과 7주만에 발견되면서 사회를 다시 충격에 빠뜨린 가운데, 오늘 경찰은…” 고준호 씨는 인상을 찡그렸다. 그는 양손으로 뼈채 들고서 발라 먹던 고기를 잠시 내려놓고, 왼손 약지와 새끼손가락으로 TV 리모컨을 집어올려 홈쇼핑으로 채널을 돌려 버렸다. 고기를 먹으면서 연쇄살인 어쩌구 하는 얘기를 듣기에 고준호 씨의...
곽선영
이민자의 특징 2024.06.07 (금)
  ‘동양의 도학은 약육강식을 부도덕이라고 하지만 서양의 철학은 이기는 자만이 생존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 글을 인용한 것은 과거엔 이민을 운명, 팔자, 역마라 치부했다면 현재는 용기 있고 강한 자의 결단과 도전이라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민의 방법은 초기엔 간호사나 재봉사 등의 기술이민이 주였다면 지금은 독립이민, 기술이민. 투자이민, 초대 이민 등 다양한 통로가 있다. 초기엔 전문직이 일반적이지 않았는데 이민의...
이명희
나물 캐는 아낙의 시선 피하여길섶 풀숲 속숨어 핀 샛노란 민들레해를 사랑하여환한 꽃 피우고임 온기 느끼며 길가에 서 있다가흰 나비 애무하고 떠나간 뒤날개 단 홀씨 한 다발 들고초원 지나갈 바람 기다린다오! 바람이여저 멀리 하늘 끝에 계신 내 임에게로Please! send seeds beyond the cloudsto the end of the sky
김철훈
강물을 보네깊어지며 흐르는 거역 없는 몸짓을 보네하루를 다 날아온 고단한 태양을 눕히고어느 산기슭 떠나온 나뭇등걸도 함께 눕히고강물은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가?나를 보네팔랑이는 잔물결들 사이로 얼핏 설핏 보네정(精) 때 묻은 부모 형제 다 두고태평양 큰물 건너오던 반세기 전 그날비단결 검은 머리 스물여섯 살 새아씨여!세월을 보네꿈, 좌절, 인내들이 들락거린 한 세월을 보네일곱 번 넘어지면 여덟 번째 일어서면서고향 떠나 멀리 또...
안봉자
세 번의 외과수술 2024.06.03 (월)
우리는 지금 100세 시대를 살고 있다. 과학이 발달하여 새롭게 나날이 달라지는 세상을 산다고 했더니 어느 날 주위를 살펴보니 100세 이상 사시는 노인들을 흔하게 만날 수 있게 되었다. 60세 환갑잔치를 요란하게 치르던 때도 있었는데 언제부터인가 슬그머니 환갑잔치가 사라졌다. 그렇다고 예전처럼 100세 잔치를 성대하게 치르는 것도 아니다. 수명이 늘어난 것은 의료과학이 눈부시게 발달한 덕분이다. 이런저런 수술로 죽을 사람이 죽지 않고...
심현섭
감자 꽃 향기 2024.06.03 (월)
“할무니, 왜 이쁜 감자 꽃을 다 따분당께라우?” “꽃을 따내 줘야 밑이 쑥쑥 든다고 안 그러냐?” 초등학교 4학년 때쯤이었을까. 할머니를 따라 밭에 나갔다. 할머니는 밭을 한 바퀴 휘 둘러보시더니 감자 밭으로 가 감자 꽃을 따기 시작했다. 꽃은 꽃이고 밑은 밑일 텐데 어린 나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니 어미가 감자 꽃을 참 이뻐했느니라.” 하시더니 눈물을 훔치셨다. 엄마가? 순간 흐린 기억으로 어머니가 감자 꽃을 바라보고...
최원현
오 월 찬가 2024.06.03 (월)
상큼한 산들바람 손등 스치고 지나가면나무를 건너뛰던 다람쥐 나도 보아 달라하고 작은 무도회를 연캐나다 구스 공연 햇살도 왜 나는 안 봐주냐며무릎에 앉았다 눈으로 보아도 들리는 님의 소리처럼
전재민
엄마의 빨랫줄 2024.05.27 (월)
그 시절 엄마는아침 설거지 마치고이불 홑청 빨래를 하곤 했다커다란 솥단지에 폭폭 삶아돌판 위에 얹어 놓고탕탕 방망이질을 해댔다고된 시집살이에마음의 얼룩 지워지라고부아난 심정 풀어보려고눈물 대신 그렇게 두드렸을까구정물 맑아진 빨래를마당 이편에서 저편으로말뚝 박은 빨랫줄에 널어놓으면철부지는 그 사이로 신나서 나풀댔다부끄러운 옷까지 대롱대롱 매달린울 엄마 늘어진 빨랫줄은 마음의 쉼터옹이 지고 구겨진 마음이훈풍에...
임현숙
지난 주에 이어 계속 집도의는 캐나다에서도 이름 있는 Doctor라 했다. 수술실에 들어가니 남자가 7사람 여자 두 사람이 있다. 수술은 집도의와 보조의가 하겠지만 의대생들이 견학하는 걸 허락했던 것이다.수술은 성공적으로 잘 마무리 된듯하다. 수술을 하고 정신을 차려보니 방광에 호스를 꽂아 소변을 받아내고 양팔 혈관에 주사바늘을 고정시켜 줄이 달려있다코로 호수를 따라 식사대용 영양제가 들어간다. 또 수술한 부위에도 호스를 넣어...
박병준
 ▶지난 주에 이어 계속 암이 자리 잡은 곳, 그 위치가 어디인가. 그게 중요하다.폐라면 힘 든다. 췌장이라면 수술이 어렵다. 급성으로 여러 군데 전이가 되었다면 걷잡을 수 없이 위험하다.내게 온 곳은 목이다. 후두암이라고도 한다. 그 자리는 어떤 곳인가?매우 정교하고 복잡한 부분이다. 거기는 기도(Air way)와 식도가 만나는 곳인데 코와 입을 통해서 공기가 들어오고 또 입에서 식도로 넘어오는 음식이 지난다.또 허파에서 나오는 공기가...
늘산 박병준
늘산 본인이 암 판정을 받고 수술을 하고 퇴원을 하면서 그간에 있었던 일들을 정리하고 싶습니다. 이는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 암에서 예방될 수 있는 일에 다소나마 길잡이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면서 이 글을 시작합니다.암의 발견은 우연적일 수도 있고 필연적일 수도 있다.나는 우연적이라 생각하며 그나마 일찍 발견하였다는데 다행이라 생각한다.산에서 사람을...
늘산 박병준
다음페이지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