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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ging in the r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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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 : 2022-04-04 09:31

심현숙 / (사)한국문협 밴쿠버지부 회원
밴쿠버에 사는 사람들만큼 비와 친한 사람들이 또 있을까? 나 역시 이민 온 지 34년이 가까워지다 보니 비와 동고동락한 셈이다.
그때는 비가 지금처럼 쏟아지지 않고 부슬부슬 마치 봄비처럼 내렸다. 그래서 남자들은 우산을 쓰지 않고 비를 맞으며 다니기도 했다. 마치 비를 즐기는 듯 이색적인 풍경이었다. 근데 언제부턴가 겨울 우기만 되면 유리창 청소가 필요 없을 정도로 굵은 빗줄기로 변했다. 강한 폭풍으로 절전이 되어 내가 사는 산자락이 어둠에 싸이고 하늘이 뚫린 듯 세찬 비가 창문을 내리칠 때는 여고 시절 읽었던 에밀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이 떠올라 으스스하기까지 하다.
 사람이 살다보면 예고 없이 폭풍을 만날 때가 있다. 나 역시 내 인생에서 예상 못 했던 쓰나미가 폭풍과 함께 우리 가정을 덮쳤다. 순식간에 우리는 물속에 잠겨 죽을 둥 살 둥 허우적거렸다. 벌써 17년 반 전의 일이다.
 당시 비씨(BC) 주 북쪽에서 사업을 했던 우리 부부는 휴가차 밴쿠버로 내려오는 길에 블랙 아이스에 미끄러지는 교통사고를 당했다. 단 몇 초 만에 남편은 운명이 바뀌었다. 그때부터 남편은 척수 환자가 되어 전신 마비로 15년 반을 살다 코로나 상황에 가족과 격리된 지 2주 만에 우리 곁을 떠났다. 참으로 억울하고 기가 막혔다.
 사고 당시 에드먼턴 대학병원에 헬기로 후송되었던 그는 현대의학으로도 포기했던 생명을 건졌고 우리 가족은 환자를 돌보며 살아야 하는 삶이 시작되었다.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딸이 밴쿠버로 돌아왔고 핵가족으로 조용히 살아왔던 우리 가정은 캐어기버와 간호사들로 북적거렸다. 남편이 사용할 방 천장에는 리프트를 달아 환자를 쉽게 침대나 휠체어로 옮길 수 있게 시설을 했고 카펫이 깔린 바닥은 래미네이트로 바꾸어 휠체어나 샤워 의자가 잘 움직일 수 있게 했다. 이 외에도 많은 부분을 환자가 생활하는데 조금이라도 편리하게 고쳤다. 우리 집은 마치 작은 요양병원을 연상시켰다.
 남편은 결혼 후 자기의 꿈이 무엇인지도 잊은 채 두 어깨에 가족을 얹고 묵묵히 살아왔다. 이제 은퇴를 하여 몸과 마음이 좀 쉴 수 있겠다 싶었는데 불의의 사고로 그 소박한 바람조차 산산조각이 되어버렸다. 이걸 청천벽력이라 하는가.
 
 처음 적막함과 고단함만이 가득하던 집에는 몇 년에 걸쳐서 서서히 웃음과 기쁨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남편이, 아버지가 우리와 한 공간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이 어떤 때는 믿어지지 않았다. 남편이 숨을 쉬고 살아있다는 그 자체가 얼마나 감사하고 감격스러운지, 잠이 부족하여 피곤이 엄습해도 내 건강 따위는 염두에도 없었다.
 우리는 간호 미숙으로 수 없는 시행착오를 했고 남편은 병원을 드나들며 위기를 넘기곤 했다. 건장한 장애인 남자를 돌본다는 건 체력과 경험이 있어야 하는데 재활원(GF Strong Rehabilitation)에서 5개월 어깨너머로 본 것과 몇 번 교육받은 것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웠다. 딸은 인터넷에서 척수(spinal cord) 환자에 관해 공부하면서 정보를 수집했다, 한해 두 해가 지나면서 우리는 캐어기버들을 가르칠 수 있을 정도로 모든 면에 익숙해졌다.
 생활도 점점 정신적으로 여유가 생기며 움츠러들었던 마음이 열리기 시작했다. 외부를 향하여 굳게 닫혀있던 마음의 빗장을 열고 우리 집을 개방해버렸다. 조용히 지내고 싶다던 남편도 방문 오신 분들과 밝은 표정으로 대화도 하고 잘 웃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집안 분위기도 화기애애해졌다. 조촐한 밥상을 앞에 놓고 우리는 행복했다. 편안했던 고국 생활도, 고생스러웠던 이민생활도 남의 일인 양 기억에서 아스라이 멀어져갔다. 어떤 명예나 권력, 재력까지도 우리와는 무관했다. 그렇게 집착했던 사업장과 일 중독에서도 자유로워졌다. 소박한 일상 속에서 무욕의 삶을 산다는 게 이리도 가볍고 편할 줄은 몰랐다.
 우리 가족은 그 당시 인간의 어떤 한계에 와 있었을 것이다. 그럴지라도 현실에서 도피하지 않고 끝까지 투쟁하며 그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았기에 우리는 인생의 승리자가 된 셈이 아닐까. 이렇게 되기까지 분명한 것은 그 모든 시간 속에 주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고 우리 가족을 인도해주신다는 믿음과 감사함이었다.
 역경의 길목에서 만난 행복, 이 행복이야말로 세상의 무엇과도 가치를 비교할 수 없다. 대장간의 칼처럼 고통 속에서 연단 된 아주 단단한 행복이기 때문이다. 행복과 불행은 가치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있지 환경이나 조건이 아님을 실감했다.
 남편의 아내라는 게 좋았다. 나는 허물어져 가고 쓰러져가는 남편 육신의 버팀목으로, 그리고 남편은 내 정신의 버팀목으로 우리는 서로를 받쳐주고 기대주며 살았다.
 ‘인생은 폭풍우가 지나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빗속에서 어떻게 노래를 부르는가를, 어떻게 춤을 추는지를 배우는 것이다.’
 
 'Life isn't about waiting for the storm to pass. It's about learning how to dance in the rain.' (Vivian Gree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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