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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눈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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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 : 2020-01-16 16:59

이정순 / 한국문인협회 밴쿠버 지부

하나야, 오늘 저녁에 잠을 자면 되는 아나?”

잠을 자면 되는데요? 할아버지.”

우리 가족과 사촌 아이작 가족은 년에 할머니 할아버지 댁에서 만나요. 우리 집은 밴쿠버고, 사촌 아이작은 온타리오 킹스턴에 살아요. 할머니 할아버지 댁은 에드몬톤 주변에 에이커리지 집에 사시고요. 할아버지 댁은 빨간 지붕이 예뻐요. 할머니 할아버지 댁이 너무 멀어 자주 오지 못해 아쉽긴 해요. 할아버지를 뵈러 온다는 것은 항상 기대가 크거든요, 올해도 어김없이 할머니 할아버지 댁에서 새해를 맞이하기 위해 왔어요.

어서 오너라. 우리 강아지들!”

아이작 가족도 도착했어요. 우리는 반가워 서로 얼싸안고 폴짝폴짝 뛰었어요. 할아버지 할머니 엄마 아빠 모두 하회탈 같이 환하게 웃었어요.

오랜만에 사람 사는 같구나.”

할머니 할아버지 댁에 영어를 쓰면 되어요. 할아버지는 영어를 잘하시지만 모르는 척해요. 왜냐하면 우리가 한글을 알아야 하기 때문이래요. 할아버지는 언제나 손주들을 앉혀놓고 재미나는 한국 역사 이야기며, 귀신 이야기, 호랑이보다 무서운 곶감 이야기도 주었어요. 이번에는 어떤 이야기를 주실지 궁금해요. 재미난 이야기를 이해하려면 우리는 한국말을 잘하려고 노력해야 해요.

할아버지가 우리들을 위해서 눈썰매장도 만들어 두었어요. 전나무 가지를 엮어 만든 눈썰매는 정말 미끄러졌어요. 나와 동생들은 짐을 풀자마자 눈썰매를 탔어요.

야홋! 비켜라, 비켜!”

넘어지고, 위에 뒹굴고 너무나 신났어요. 썰매를 타는데 아이작이 걸리적거렸어요.

! 비켜라. 때문에 제대로 눈썰매를 수가 없잖아.”

나도 모르게 동생을 밀쳐내고 말았어요.

하나야! 동생들을 데리고 놀아야 하지 않겠니?”

작은엄마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어요. 큰소리보다 무서웠어요.

, 죄송해요. 작은 엄마.”

나는 사과를 했지만 속상했어요.

우리 경주하자.”

좋아.”

내가 제안하고 아이작이 좋다고 했어요.

윈윈! 언니!”

윈윈! 오빠!”

다섯 리나와 이본이 소리치며 응원을 했어요.

아이작이 나를 밀쳤어요.

요게! Don’t be right?”

나도 모르게 주먹이 아이작 머리를 때렸어요. 헬멧을 쓰고 있어 손만 아팠어요.

하나! 동생을 그러면 써요! 영어 반칙이다.”

할머니 할아버지 여기 계시는데 한국말 해야 해요? 아까 리나 이본도 영어 했는데……”

걔들은 아직 어려요. 언니가 모범을 보여야지.”

작은엄마가 주의를 주었어요. 나는 그만 눈물이 나려고 했어요. 이이작은 모든 것을 자기가 먼저 해야 한대요. 처음에는 동생이라고 봐줬거든요. 경주에서 내가 그만 지고 말았어요.

에잇 억울해! 자꾸 니가 앞에서 알장거리니 내가 제대로 속력을 있어야 말이지.”

! I won, won!”

아이작은 위에서 방방 뛰었어요. 나는 속상했어요.

학교 운동장보다 정원의 눈밭에서 눈사람도 만들고 눈싸움도 했어요. 밴쿠버는 눈이 거의 오지 않아 그런 놀이는 하잖아요. 나는 눈을 뭉쳐 아이작을 맞혔어요.

!”

아야! 앙앙!”

나는 달려가서 아이작 입을 막았어요.

쏘리, 아이작!”

엄마한테 이를 거야.”

, 미안해. 누나가 데리고 놀게.”

, 알았어. 약속했다.”

나는 억지로 동생과 손가락을 걸었어요.

내일이면 새해예요. 그런데 낮에 썰매를 많이 타서 그런지 졸음이 쏟아졌어요. 아이작은 피곤하지도 않은지 할아버지가 선물해 주신 베이블레이드로 팽이치기를 하며 놀고 있고, 리나와 이본은 프로즌 레고로 성을 쌓고 있었어요. 지난번에 갔던 디즈니 월드 궁전 같아요. 나는 상상을 해봤어요. 내가 잠을 자서 머리가 하얗게 세고 눈썹도 하얗다면요.

! !”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고 말았어요.

, 하나! 그러니?”

엄마 아빠 할머니 삼촌 동생들이 놀라 모두 달려왔어요. 엄마는 이마에 손을 올려 보았어요.

, . 잠들면 !”

얘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졸음 오면 자면 되지.”

엄마가 말했어요.

하하! 오늘밤 잠을 자면 눈썹이 하얗게 센다고 했더니 그러는 같은데.”

, 아버님……”

어른들은 모두 아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폭소를 터트렸어요.

? 누나, 뭐야?”

언니, 뭔데 말해 !”

오늘 잠을 자면 눈썹이 하얗게 센데.”

정말?”

리나와 이본은 할아버지 무릎에 올라앉았어요. 할아버지가 하얀 눈썹 이야기를 주신다고 가까이 오라고 했어요. 동생들이 궁금한 눈이 빛났어요. 나는 무릎을 끌고 할아버지 곁으로 바짝 다가앉았어요.

섣달그믐은 해의 마지막 날인 줄은 알지?”

!”

우리는 합장으로 대답했어요.

해를 보내면서 새벽닭이 때까지 잠을 자지 않고 식구가 모여 새해를 맞이해야 한단다. 이러한 풍습은 새해를 거룩하게 맞는다는 뜻이 담겨 있지. 지나간 한해를 반성하고 새해의 계획을 가족과 함께 세우는 거란다. 옛날에는 농사일을 어떻게 하면 지을 있는지가 의논 거리였어. 의논 중에 밤이 깊어 지자 졸음을 이겨 잠이 사람들이 있었지. 그중에 장난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단다.”

눈썹이 하얗게 세는게 아니라 누군가가 장난을 거였죠?”

하하, 그런 셈이지. 똑똑한 우리 하나 금세 알아들었네.”

장난으로 잠이 사람 눈썹에다 밀가루를 발라 놓은 것이 유래가 되었다고 했어요. 동생들은 할아버지 무릎에서 벌써 잠이 들었어요.

히히! 아이작, 두고 봐라. 누나를 괴롭혔겠다!’

나는 장난 생각을 하니 웃음이 나왔어요. 밀가루를 가지기 위해 할머니와 엄마 작은 엄마가 만두를 빚는 다이닝 룸으로 갔어요.

하나, 아직 자누?”

! 할머니, 잠자기 전에 일이 있어요. 하나 만두 빚을래요.”

하나 만들기 잘하니까 만두도 빚을 거야.”

엄마가 말했어요. 나는 2학년 클레이 교실에서 만들기 최우수상을 받았거든요. 할머니가 만두피랑 속을 앞으로 밀어주었어요. 나는 만두를 예쁘게 만들려고 요리조리 주물렀어요.

! 터졌잖아.”

만두 껍질이 터져 속이 밖으로 튀어나왔어요.

엄마, 찰흙으로 만드는 것보다 훨씬 어려워요.”

쉬운 없지. 찰흙도 많은 연습을 해야 하잖니. 만두도 많은 연습을 해야 할머니처럼 예쁘게 만들 있단다.”

할머니는 정말 빨리 만드시고, 예쁘게 빚었어요. 나는 밀가루를 집어 까치발을 하고 다이닝 룸을 나왔어요.

하나, 만두 빚고 어딜 ?”

! 깜짝이야!”

나는 잘못을 하다 들킨 사람처럼 놀랐어요.

얘가 놀라긴. 오면 .”

엄마가 말하자 작은엄마가 놀렸어요.

하나, 눈썹 하얗게 되는데?”

나는 들은 척하고 동생들 방으로 갔어요.

히히, 요것들 코까지 골면서 자네. 아침이면 놀라 까무러치겠지.’

나는 아이작 눈썹에 밀가루를 발랐어요.

히히, 전설에 나오는 도사 할아버지 같네.‘

머리에도 온통 하얗게 밀가루를 뿌렸어요. 나는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어두었어요.

아침 동생들보다 일찍 일어나려면 이제 자야지.’

나는 침대에 눕자마자 잠이 들고 말았어요.

햇빛이 눈이 부셔 잠이 깼어요. 벌써 동생들은 일어나 있었어요.

잠꾸러기 누나 이제 일어났어? , 누나 눈썹이 하얘. 거울 !”

킥킥! 언니 눈썹이 하얗대요.”

나는 거울을 들여다보았어요.

! 이게 뭐야?”

머리와 눈썹이 온통 하얬어요. 하얀 콧수염까지 그려져 있었어요.

! 너희들 가만 둔다.”

나는 아이작과 리나, 이본을 잡으러 쫓아갔어요. 아이작이 할아버지 뒤에 숨어 혀를 내밀었어요.

누나가 먼저 그랬잖아. 메롱!”

하하, 우리하나 할배보다 할매네.”

할아버지가 놀렸어요.

하나 꼬꼬 할머니 되어도 예쁘겠는데.”

삼촌도 한마디 했어요. 식구가 나를 놀려 눈물이 나왔지만 즐거웠어요. 새해 아침 집안에 웃음꽃이 활짝 피었어요.

할머니가 차려 주신 만두 국을 먹고 한복으로 갈아입었어요. 거실이 꽃밭 같았어요.

할머니 할아버지 건강하세요!”

리나와 이본이가 엉덩이를 치켜들고 세배하는 모습에 모두 한바탕 웃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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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쏘았을까독침 날아와심장에 박힌다벌떼는 귓속에까치는 머리에 살아서내 안에 서러운 항아리괜찮다 괜찮다고 말해본다아니다 아직은 아프다불면의 따가운 눈잿빛 거리를 서성인다보라눈보라 치는 날의 쥐똥나무를각 세워 몸통 잘린 채로홀로 푸르르다시렁 위 등불 켜고천 길 아래로 무릎 꿇고옹이진 마음 비워내던 날길모퉁이 키 작은 그 나무나를 보고 말한다산다는 것은 견디는 것이라고꾸욱하얀 그 꽃향기 가슴에 찍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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