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자립자생自立自生

박성희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9-10-15 15:33

박성희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따따따 따따닥 따닥 딱딱딱.
   무슨 소릴까. 아들 방문에 귀를 댄다. 한쪽에선 방송소리, 아이의 중얼거림 들리고, 또 다시 따따따 따따닥 따닥 딱딱딱. 이때는 온 집안 식구가 쥐 죽은 듯해준다. 숨 막히지만 1년에 10번 이상 시험을 보니 어쩔 수 없다. 
   “엄마, 나 중학교 졸업 후 독립한 거 알지?”
   한창 부모 간섭이 필요한 데, 지가 다 알아서 살겠다며 아무 상관도 어떤 걱정도 하지 말란다. 
   만 15세, 고 1. 하숙생 같다. 중학교 때까지 봉사와 등산, 여행을 즐기더니, 이젠 도서관이나 방에 틀어박혀 공부만 한다. 대학 입시가 저 만치서 딱 버티고 있다. 1분 1초가 아까워 굶기도 하며 날밤을 새기도 한다. 친구들이 무섭게 공부하고 등급경쟁 때문이다. 입시 전쟁에서 죽어라 공부해 살아야 한다. 확고한 꿈을 이루기 위해 전력질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아이가 내 뱃속에 있을 때 염원했던 자립자생. 아이가 태어나자 마음으로 말로 세뇌를 시켰다. 빨리 말하고, 익히고, 스스로 서기를 바랐다. 때문인지 어린 아기는 말귀를 알아듣고 6개월 때 정확하게 ‘엄마’를 부르며 젖 달라, 기저기 갈아 달라, “엄마 엄마” 하며 놀고, 30개월 때 구구단 9단까지 완벽하게 외우고, 33개월 때 한글을 깨치고 책을 읽었다. 그러곤 5살 때 처음 어린이집을 보냈는데 영어이야기책을 통째로 외우고, 홀로 비디오와 컴퓨터로 파닉스를 뗐다.
   누구나 어릴 때는 남들보다 조금만 잘해도 천재라고 생각하듯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어느 날, 아이는 모든 걸 포기한 듯 별 열의가 없어 보였다. 독방을 고수하며 친구들과 담을 쌓고, 그동안 한 번도 결석을 안 하던 애가 자주 지각과 결석을 하기시작 했다.
   “엄마, 나 왜 낳았어?” “나, 왜 태어 났어?” “뭣 땜에 나 낳았어?”
   아무리 생각해도 지 존재이유를 묻다 답이 없었는지, 허구한 날 같은 말만 묻고 또 물었다. 태어났으니 그냥 막연히 살아가는 듯했다. 무슨 말을 하면 서로 가치 없는 분쟁과 상처만 남았다. 
애를 힘들게 낳아 키우다 이렇게 무너지기도 하는구나. 말이 안 통해 멀어지기도 하는구나. 아이를 키운다는 건 산 너머 산이다. 이 애와 나는 얼마나 많은 상반된 시각과 대립으로 한 고비 한 고비를 넘어갈까.
   “우리 여행 가자.” 
   옥신각신 힘들게 살 바엔 여행이나 하자. 아이에게 가고 싶은 여행지와 비행기표, 묵을 장소를 예약하게 하고, 스케줄을 짜게 했다. 세계에서 험하기로 유명한 곳, 부유하거나 가난한 곳, 아름답거나 누추한 곳들을 찾아다녔다. 구글 지도와 인터넷을 뒤져 어디든 아이가 리더하는대로 따라다녔다. 지하철, 버스, 택시, 배를 타기도 했다. 새로운 걸 경험하고 낯선 환경을 접할 때마다 애가 뭔가 깨닫기를 바랐다. 일종의 성취감, 흥미로움, 성찰, 세상 보는 견문, 생각이 달라지기를 고대하며.
   그러곤 인도 온지 4년째 되던 해 시험성적은 모두 A+과 A로 채워졌다. 
   “어떻게 해서 시험을 잘 봤니?”
   미국 드라마를 봤는데 엄마가 갑자기 소중하게 느껴졌 다나. 우리는 남편 일로 따라갔던 4년간의 인도 살이를 끝내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아이는 곧바로 중학교 시험도 따라잡았다. 인도에서 영어를 인터넷으로만 배웠듯, 4년간 못 배운 한국 교과도 같은 방식으로 독하게 자습 자학했던 거였다.
   아이 방청소를 하다 보니 상장 몇 개가 책장 귀퉁이에 버젓이 있다. 교과우수상, 모범 표창장, 영어북토크대회 우수상들이다. 아이는 늘 바쁘다. 새벽 5시에 기상 학교를 가장 먼저 도착해 자습하고 쉬는 시간엔 영어와 과학 멘토로서 친구들 가르치랴, 수 십대 1의 경쟁을 뚫고 합격한 학교 임원으로 교내 봉사 하랴, 학원을 안 다니니 혼자 도서관이나 집에서 연구하고 깨우쳐야 하니 친구들 보다 많이 힘들다.
   따따따 따따닥 따닥 딱딱딱... . 커다란 칠판에 분필이 써지는 소리다. 시험 날짜가 닥치지 않더라도 이 소리가 아이 방에서 튀어나오면 온 집안에 긴장감이 감돈다. 시험이 끝나면 아이는 부리나케 서울 가서 봉사할 차례다.
   그래, 인생은 그렇게 혼자서 만들어 가는 거란다. 누구에게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전진하는 거지. 울다 웃다 오뚜기처럼 일어서서 인생이란 미로를 꿋꿋이 헤쳐 나가!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침묵 2026.10.15 (목)
그가 침묵하면  통속적 영화 대사에 익숙한 나로써는  어색해진다  왜 이리 조용하지  이럴 때는 어떤 말을 해야 하지  어찌 됐든  그의 침묵에 젓어들면  미미한 수증기가 안개가 되듯 아무것도 아닌 작은 공백이 큰 의미를 띤다  내가 할 말이 없어지고 그도 할 말이 없어지면  그런 랑데뷰가 일어날 때  우리가 사랑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서로 재촉할 것이다  말좀해 하면서  아무 말이나...
박락준
열한 살이던 그해 6월 25일 전쟁이 터졌다는 끔찍한 소식과 함께 어머니는 밤새 미숫가루를 만들었다. 다음 날 새벽 우리는 피난 길에 올랐다. 전연 준비가 없었던 전쟁이라 우리는 허둥지둥 한강을 넘어가야 한다는 생각만으로 을지로 6가 집에서 장충단 공원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아버지는 쌀자루를 들고 어머니는 미숫가루와 몇 가지 실용품만 챙겨 올망졸망한 우리 5형제들을 이끌고 걸었다. 북한군이 내려오고 있는데 걸어서 한강 쪽으로 가서...
김춘희
손 편지를 쓰면서 정보를 전하고 마음을 전하고 하던 시절이 있었다. 예전에는 편지를 쓰는 일이 하나의 정보 전달을 위한 통신 수단이기도 했으며, 편지를 쓰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하나의 의식에 가까웠다. 책상 앞에 앉아 편지지를 고르고, 펜을 선택하고, 첫 문장을 몇 번이고 썼다가 다시 지웠다. 펜을 쥐고 편지지를 마주하던 시간에는 속도가 없었다. 생각은 천천히 문장이 되고, 그 문장은 손의 리듬에 따라 종이에 스며들었다. 잉크를 이용한...
이봉희
엄마가 가시고슬픔이 정박한 마음에 세상 문은 닫히고 청력마저 녹은 듯 칠흑 지도 위 암흑기가 펼치는가 했는데                      말도 안 돼 엄마가 없는데도 배는 왜 고파지고 산 사람은 살아야지 우적우적 돌을 씹고                 엄마가 없어도 바람은 불어오고 강물은 흘러가고                     지금도 가끔 로키 너머 저쪽...
한부연
홍익인간의 개념 2026.10.09 (금)
마음의 여유가 없거나 마음둘 곳이 없을 때는부모님을 생각하세요.  헤어짐과 만남이 서로 갈등을 쌓아 놓을 때는설렜던 기억만 생각하세요.  기분이 우울하거나 감정이 내려앉을 때는깊은 계곡 맑은 물을 찾아보세요.  우리가 지금 세계의 어느 곳에서터를 잡고 생활하고 있다면  또 그곳의 생활에 충실해하루의 일상이 바쁘게 회전하다가언뜻 어린 시절의 고귀하게 남아있는추억을 생각하고  더할 나위 없이...
송요상
에버그린 하우스는 내가 근무하는 병원의 오래된 요양 병동이다. 시간의 더께가 내려앉은 노란 벽돌과 콘크리트로 이루어진 오십 년이 넘은 낡은 건물은 새로 들어선 병동 맞은 편에 낮게 웅크리고 있다.    요양원이나 장기 요양시설에는 에버그린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곳이 많다. 상록수는 사철 내내 잎이 푸른 나무를 이르는 말이다. 맑은 공기와 생명력이 가득한 상록수 숲의 인상과 달리 요양 병동은 잿빛 하늘처럼 무겁게 가라앉아 있다....
이주령
아파트 9층인 우리 집 거실에서 베란다 쪽 소파에 앉으면 사거리가 보인다. 건너편 아파트와 시내로 나가는 길이 교차되는 길이다. 그 사거리를 바라보며 가끔 무료하게 시간을 보낸다. 신호에 따라 밀려왔다 밀려가고 달리다 멈추고 하는, 하등 신기할 것 없는 차량의 행렬을 신기하게 바라본다. 저렇게 많은 차들은 대관절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새벽부터 밤중까지 끊임없이 굴러가는 지친 바퀴들은 언제 어디쯤에서 쉬게 될 것인가. '나는 바퀴를...
최민자
호모 사피엔스 2026.10.08 (목)
우쭐대는 글 들과 퍼즐처럼 늘어놓은 낱말들로 인간이 지성이라 쌓아놓은 성벽 위에서 인간은 다른 생명을 뒤적이며 짐작으로 떠들고 떠들며 이름 부쳐놓고 이름 부쳐놓고 킬킬대는 호모 사피엔스  먼 길 돌고 돌아 여기 인공지능의 지성을 빌어 태초에 생명이 탄생하고 태초의 생명이 헤어진 길 그 헤어진 출발 선에서 다시 만나 모인다면 모든 생명들 한 동아리로 돌아가 그 최초의 언어로 말문의 장벽은 허물리고 그때 굶주린...
조규남
지난 주에 이어 계속 집도의는 캐나다에서도 이름 있는 Doctor라 했다. 수술실에 들어가니 남자가 7사람 여자 두 사람이 있다. 수술은 집도의와 보조의가 하겠지만 의대생들이 견학하는 걸 허락했던 것이다.수술은 성공적으로 잘 마무리 된듯하다. 수술을 하고 정신을 차려보니 방광에 호스를 꽂아 소변을 받아내고 양팔 혈관에 주사바늘을 고정시켜 줄이 달려있다코로 호수를 따라 식사대용 영양제가 들어간다. 또 수술한 부위에도 호스를 넣어...
박병준
 ▶지난 주에 이어 계속 암이 자리 잡은 곳, 그 위치가 어디인가. 그게 중요하다.폐라면 힘 든다. 췌장이라면 수술이 어렵다. 급성으로 여러 군데 전이가 되었다면 걷잡을 수 없이 위험하다.내게 온 곳은 목이다. 후두암이라고도 한다. 그 자리는 어떤 곳인가?매우 정교하고 복잡한 부분이다. 거기는 기도(Air way)와 식도가 만나는 곳인데 코와 입을 통해서 공기가 들어오고 또 입에서 식도로 넘어오는 음식이 지난다.또 허파에서 나오는 공기가...
늘산 박병준
늘산 본인이 암 판정을 받고 수술을 하고 퇴원을 하면서 그간에 있었던 일들을 정리하고 싶습니다. 이는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 암에서 예방될 수 있는 일에 다소나마 길잡이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면서 이 글을 시작합니다.암의 발견은 우연적일 수도 있고 필연적일 수도 있다.나는 우연적이라 생각하며 그나마 일찍 발견하였다는데 다행이라 생각한다.산에서 사람을...
늘산 박병준
다음페이지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