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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 : 2014-12-12 13:27

한국문인협회 캐나다 밴쿠버 지부 회원작/수필
   오래전 직장에 다닐 때 한 직장동료로부터 애완견을 얻은 일이 있었다. 그러지 않아도 애완견을 하나 갖고 싶은 생각이 있었는데 뜻밖에 하나를 얻게되어 기뻤다. 그 당시에는 광역 밴쿠버 지역 아파트나 남의 집 셋방에 사는 사람들에게 애완동물을 허용치 않는 곳이 많았다. 이 직장동료가 자기가 갖고 있던 독일종 도벨만과 캐나다의 라브라돌의 혼혈견을 나에게 준 이유도 자기가 새로 입주할 아파트가 애완동물을 허용치 않아 부득이 처분해야 할 사정이 있었다.

    이 개는 수놈으로 도벨만과 랩의 모습을 적당히 섞어 가졌고 성격도 두 종류 개의 특성을 나누어 가진 녀석이었다. 그 당시 나이가 세 살이었으니 사람의 나이로는 21살의 청년기에 속했다. 그가 우리 집에 처음 오던 날의 기억이 새롭다. 그의 주인이 끌고 왔는데 처음 오는 낯선 집인데도 저벅저벅 걸어들어오는 태도가 조금도 주저함이 없이 태연했다. 그날 우리 가족은 문 앞에 나란히 서서 그를 반갑게 영접하는데 처음 보는 우리를 늘 함께 지내온 가족 대하듯 하는 그의 자연스러운 행동은 우리를 오히려 어리둥절하게 했다.

    옛 주인이 부르던 대로 우리도 그를 ‘고비’(Gorby: 이 개가 그의 이마에 작은 하얀 반점이 있는데 공산주의를 무너뜨린 구소련의 마지막 수상 고바쵸프의 이마에 붉은 작은 점과 닮았다고 해서 ‘고비’라 이름 지어 주었다고 함.)라고 불렀다. 보통 도벌만 같은 맹견들은 자기 가족이 아닌 타인을 보면 공격적인 자세를 취하는데 그날의 ‘고비’는 우리에게 전연 그러한 기색을 나타내지 않았다. 마치 자기에게 일어나고 있는 상황을 이미 감지하고 자기의 운명을 순순히 받아들이는 것 같은 태도였다.   

    시간이 가면서 그의 존재가 우리 가족의 일원으로 깊이 자리 잡았고, 그도 우리에게서 가족 대우를 받는 것을 느꼈는지 우리를 새 주인으로 잘 섬겼다. 그가 우리 집에 오기 전 한때 집에 도둑이 들어와 집안을 온통 뒤집어 놓고 간 적이 있었다. ‘고비’가 우리 집에 들어온 후 한 번 더 도둑이 부엌 창문을 뜯고 집안으로 들어오려다가 ‘고비’의 공격으로 도망간 흔적을 발견했다. 송아지만 한 우리 ‘고비’가 험악한 인상을 지으며 벼락이 치는 소리로 공격의 자세를 취하면 혼비백산 하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되었으며, 그렇게 하여 도둑을 쫓아버린 것이 틀림없을 것으로 짐작이 갔다. 그 후 우리 집에 맹견이 있다는 소문이 돌아서인지 다시는 집에 도적이 드는 일이 없어졌다.  

    ‘고비’가 우리 가족이 된 지도 어언간 8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을 때다. 개의 나이로 11살이고 인간의 연륜으로는 77살 희수가 된다. 어느 날 ‘고비’의 목 뒤에 달걀만 한 혹이 자라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수의사로부터 암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우리 생각엔 인간만 나이가 들면 여러 가지 병으로 고통을 받다가 일생을 마치는 줄 알았는데 인간과 같이 사는 개도  인간이 갖는 병 과 똑 같은 병에 걸리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곧 수의사의 집도로 암 제거 수술을 받았다. 이제는 건강을 회복하여 우리와 같이 오래 살것으로 기대하였지만 수술 후 일 년 조금 넘어 그의 나이 12살 되던 해에 불행하게도 다시 암이 재발 하여 치유의 가망이 보이지 않아 수의사의 권유로 안락사를 시켰다.  

    ‘고비’가 세상을 떠난 뒤 같은 해 그를 잊지 못해 상심한 아이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생후 5주 된 Yellow Labrador 순종 한 마리를 사왔다. 어느 강아지나 다 귀엽지만, 이 녀석은 어찌나 귀여운지 먼젓번 성견에서 경험하지 못한 또 다른 즐거움을 주었다. 이름은 우리 아이들이 ‘오스카(Oscar)’라고 지어주었다. 그가 한창 자랄 때는 집안의 카펫과 가족의 신발, 그리고 입으로 씹을 수 있는 것은 모두 물어뜯고 찢는 등, 물질적인 손해를 많이 끼쳐주었다. 그래도 그가 우리에게 주는 즐거움이 모든 것을 상쇄하여주었다.

    그가 커가면서 어릴 적 버릇이 점점 사라져 가고 성견이 되어서는 그의 독특한 모습이 여러 사람의 사랑을 받기 시작하였다. 시원하고 착하게 생긴 성클한 눈, 적당한 길이의 우윳빛 털, 위엄있게 뻗어나온 콧등과 입, 그리고 비할 수 없이 착한 성격, 너무나 착하여 누가 자기를 해치려고 하여도 전혀 반격할 줄 몰랐다. 이러한 그를 우리 식구는 물론 이웃 사람들도 무척 사랑했다. 산책하러 나가면 처음 만나는 사람들도 그냥 지나치지 않고 머리와 등을 툭툭쳐주며 귀여워했다. 우리는 그를 자랑스럽게 생각하였고, 그의 온순한 성격이 우리 가족의 마음마저 순화시켜 주는 것 같았다.

   우리 아이들도 성장하여 하나둘씩 우리의 둥지를 떠나고 텅 빈 집에서 그를 자식 같이 키우며 살아가던 어느 날 그가 눈에 띄게 물을 많이 마시기 시작하는 것이 수상하여 수의사의 진찰과 여러 가지 정밀 검사를 한 결과 당뇨병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이 충격적인 선고에 우리는 또다시 슬픔에 잠기게 되였다. 말 못하는 동물이 고통을 호소도 못 하고 마지막 날까지 참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니 자식 하나 병들어 눕는 것 같이 안타까웠다. 그래도 그는 내가 출근할 때나 퇴근하여 집에 돌아오면 괴로운 몸을 끌고 문까지 나와 얼굴에 괴로운 표정 하나 없이 꼬리를 흔들며 나를 반겨주었다.  

    가축병원에서 주는 주사약을 하루에 두 번씩 주고 음식도 당뇨를 위한 특별 다이어트식으로 먹이는 생활이 3년이나 계속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에게서 새로운 증상이 감지되어 검사해 보니 이번에는 그의 청각과 시력에 이상이 온 것을 발견하였다. 그는 청각과 시력을 급속히 잃고 있었다. 끝내는 식음을 거부하는 상태까지 도달하였다. 결국, 그도 ‘고비’와 같은 운명을 맞게 되었다.

    ‘오스카’가 수술대에 올라가던 시간에, 나는 차마 그의 마지막을 볼 수가 없어 아이들과 아내를 남겨두고 수술실을 나와 대기실에서 그의 명복을 빌어주며, 흐르는 눈물을 막지 못하고 있는데, 일을 마친 수의사가 나에게 다가와 어깨를 감싸며 그가 평화스럽게 떠났다고 위로하여준다. 병원 문을 열고 나오는데 그가 마지막 수술로 끌려가던 모습이 눈 앞을 가린다. 지금쯤 그는 자기가 오던 곳으로 다시 돌아가 있겠지. 그곳이 어디인지는 모르지만. 아마 인간들이 다시 돌아가는 곳도 결국 같은 곳이 아니겠는가 생각해 보았다.

    지난 25여 년간의 짧지 않은 세월을 그들과 같이한 생활을 돌이켜보면 그들과의 행복했던 세월과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에피소드들이 그들의 죽음을 더욱 안타깝게 하였다. 그들이야 말로 한 번도 주인을 배신하지 않고, 주인의 뜻에 어긋나는 일 없이 항상 즐거움을 주는 친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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