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욱 / (사)한국문협 밴쿠버지부 회원
요즘은 며칠째 비가 내린다. 오늘도 우리의 주위를 파고드는 나쁜 놈(코로나 19) 때문에
바깥 출입의 제한 속에서 집안에서 시간을 보내는 일이 늘고 있다.
얼마 전에 L.A에 있는 오랜 연배 친구로부터 카톡 영상을 통해 한동안 우울증과 공황 장애
진단을 받는 과정을 거쳤다는 고민과 사연을 받으면서 참으로 마음이 수수로 왔었다.
모름지기 내게 주어진 생의 산수(傘壽)를 넘기고 보니 시나브로 떠나보냈던 친구와의
정감 어린 추억들이 더욱 그리워진다.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는 순간부터 조건 없이 품어주고 진심 어린 사랑을 주는 존재가
필요하다. 내가 원하는 순간에 반드시 도와줄 거라는 믿음을 주는 존재, 누군가가 나를
절대적으로 사랑해 준다는 확신이 있을 때, 우리는 낯선 세상에서 한발 더 나아가 성장할
수 있다. 이는 우정 사이에도 마찬가지다.
두 존재 사이의 친밀한 정서적 유대를 우리는 ’애착’이라고 부른다. 생애 초 부모
관계에서 형성된 애착 관계는 성인이 된 이후 대인관계의 질을 결정하는 변수로
작용하기도 한다.
서로를 향한 리얼리티 한 친구와의 카톡 영상을 통해 팬대믹 역병에 대처하는 방안의 팁을
이야기하는 중에 도움이 될 거라며 지난 세월을 반추하는 “유나의 거리”를 추천하였다.
불량한 세상과 한판 대결을 결심한 이 시대의 한 착한 청년이 극도로 양심 불량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다세대 주택에 뛰어들어 그들의 잃어버린 양심을 찾아주고 사랑하는
여인을 범죄의 늪에서 구해주는 것이 이 작품의 줄거리이기도 하다.
그중에서도 인상에 남는 것은 수상한 부부의 비밀이 알려지면서 주위의 따가운 눈초리로
어려움을 겪고 있던 칠복이가 요행히 일자리를 구하게 되고 이를 격려하기 위해 주위에서
마련한 술자리에서 부탁을 받고 부르는 노래가 바로 ‘내가 전에 말했잖아요. 당신을
사랑한다고…’ 로 시작하는 “터질 거예요”라는 곡이었다.
내가 특별히 이 노래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어서이다. 이민 와서
38년이 넘도록 이곳에 머물면서 즐겨보는 음악 프로그램이 고작 “가요무대”가 전부였다.
그래도 이 프로그램은 내가 거의 기억하는 노래들로 구성되어 있어 때로는 함께 따라 부를
수가 있어서 좋았다.
“터질 거예요”는 7080의 범주에 속하는 노래로 자주 들어본 곡은 아니었다. 1982년
이곳으로 파견 발령을 받고 떠나올 무렵 송별회 자리에서 당시 신입 사원으로 우리
부서에서 근무하게 된 이 군과 김양이 합작으로 내게 선물한 귀한 노래였다.
그때만 해도 내겐 이 노래가 익숙지가 않았지만 그래도 “터질 거예요”라는 후렴 구절만은
어렴풋이나마 기억에 남아있는 터였다.
그런데 극 중에서 칠복이 부부가 함께 부르는 이 노래를 듣는 중에 갑자기 내가 떠나오던
그 날밤의 송별회가 생생하게 떠오르면서 함께 자리했던 그 친구들이 그리워지는
것이었다. 지금쯤은 그들도 벌써 이순을 넘긴 나이로 정년퇴직 후 어디에선가 가끔은
그날을 기억하며 잘살고 있을 거라 생각된다.
요즘은 외출보다는 아무래도 집에서 머무는 시간이 많게 되었다. 오늘도 홀로 보내는
시간이 걱정되는지 늘 나의 곁에서 나를 지켜보는 고마운 친구들이 있어 여간 다행한 일이
아니다. 그들은 내가 사랑하는 기타들이다. 내게는 세종류의 기타가 있다.
어쿠스틱(Acoustic) 기타, 일렉트릭(Electric) 기타, 고리고 도브로(Dobro) 기타가 바로
그들이다.
내가 처음으로 기타를 접하게 된 것은 1957년 고 1 때였다. 집안에서 특별히 내게 관심이
많던 형이 입대하면서 자기가 아끼던 기타를 나에게 물려 주었기 때문이다. 장교로 5년
동안 군 복무를 하게 된 그 형은 휴가 때마다 함께 머물면서 나의 기타 솜씨를 지켜보며
해를 거듭할수록 조금씩 발전해 가는 나의 기타실력을 격려해 주기도 했다.
그 후 나는 학교 졸업과 군 복무를 마치고 1967년 국영기업체인 한국전력에 입사하게
되었으며 바쁜 업무 때문에 한동안 기타와는 거리를 두게 되었다. 그러다가 1975년
울산화력발전소 계약 건으로 파트너인 미시비시중공업 초청으로 잠시 일본에 머물면서
수제품인 다이온기타(DAION GUITAR)를 접하게 되면서 어언 45년이라는 세월을 함께
달려온 참으로 오래된 나의 친구이기도 하다.
나는 얼른 인터넷을 뒤지면서 오늘 들은“터질 거예요”의 악보를 다운받아 이 노래를
부르게 되었다.
원곡은 F장조로 되어있어 노인들이 부르기엔 다소 음정이 높을 것 같아 C장조로 편곡을
하기로 했다.
나는 LA에 있는 친구에게 카톡으로 메시지를 보냈다. “유나의 거리”를 소개해 줘서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터질 거예요” 도 꼭 한번 불러보라는 부탁도 물론 잊지 않았다.
많은 사람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을 거대한 재앙으로 보지만, 적어도
이 “터질 거예요”를 부르는 순간만은 나는 위대한 교정자로 보고 싶다.
지금까지 잊고 살아온 지난날의 중요한 우정을 일깨워주기 위해 그것이 주어졌고,
어디까지나 스스로가 감당해야 할 몫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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