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최종수정 : 2024-04-22 09:09

김한나 / (사)한국문협 밴쿠버지부 회원
첫 인터뷰를 했다. 

캐나다로 돌아와서 쓸 수 있는 글과 써야 하는 글 사이에서 고민했다. 묵묵하게 자신의 길을  걷고 있는 한인 이민자를 찾아다니며 그들의 인생을 기록하고 싶었다. 평범한 이민자인 부모님의 낡은 시간을 기억하고 싶어 시작한 글쓰기의 반경을 넓히는 작업이다. 이민자는 모국에서 만큼 인정받을 기회가 없지만 그렇다고 우리의 이야기가 가벼운 것은 아니다. 알아주는 이 없는 한인 이민자의 이야기를, 휘발되기 전에 쓰고 싶다는 열정만 가득했다. 하지만 주위를 둘러봐도 기회가 쉽게 생기지 않았다. 나의 반경은 좁고 무명하나, 내 안에 기준도 뚜렷 했다.

긴 기다림 끝에 최 이스라엘 목사님을 만났다. 목사님은 24년째 ‘거리의 친구들’과 예배하며 식사를 나누는 사역을 하고 있다. 요즘은 중국인 노숙자와 저소득층이 예배하러 모인다는 Surrey에 위치한 ‘회복의 집’을 찾았다. 함께 예배하고 인터뷰를 진행하면 좋겠다는 목사님의 메세지를 받았다. 봄이라 부르고 싶지만 바람이 제법 차가웠던 날 ‘회복의 집’ 앞마당에 들어서자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외투에 달린 모자를 덮어쓰고 자리를 잡고 앉았다. 십여년전 일이 떠올랐다. 

소외 계층 곁에 있고자 했던 나는 홈리스 사역을 하는 단체에 들어갔다. 활동 전 교육이 있었는데, 위생 문제로 홈리스와 신체 접촉은 하지 말라는 내용이었다. 마약에 찌들어 눈이 풀린 사람들과 땀과 오물이 범벅되어 냄새를 풍기는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관념이 실제와 균형을 이루려면 얼마나 많은 내공이 필요한걸까. 마음을 단단히 먹고 갔는데도 코를 찌르는 악취에 멈칫 했다. 한 사람이 다가와 내게 악수를 청했고, 배운대로 그의 손을 잡지 않았다. 그날 돌아와 한참을 생각했다. 그들의 손을 잡지도 못할 거면서 나는 왜 그곳에 간걸까. 거리의 친구들 손을 쉽게 잡지 못했던 나는 패배감과 부채감으로 끙끙 앓았다. 어린날의 호기를 돌아보며 마음이 울렁 거릴 때 최목사님의 찬양으로 예배가 시작되었다. 

최목사님은 한국에서 유망한 건축가로 사모님은 디자이너로 활동했는데 어떻게 Surrey의 거리까지 오게 되었을까. 목사님은 24년전 찬양목사로 청빙받아 밴쿠버로 이민했다가 홈리스 사역을 시작하라는 부르심에 응답했다. “‘Restoration House’ 로 간판을 걸고 시작했는데 이곳을  ‘수리’하는 곳으로 오해한 사람들이 중고 장비를 팔러 들어왔어요.” 그들은 딸기잼 바른 식빵과 인스턴트 커피를 내미는 최목사님 부부를 만났다. “우리가 준비한 초라한 음식을 보고 오히려 거리의 친구들이 음식을 가져와 우리 부부를 챙겨주며 사역이 이어졌어요.” 지금은 자원봉사자들이 토요일마다 음식을 준비해 오고 사모님은 전체 음식 관리와 봉사자들의 식사를 맡는다. 홈리스 예배와 식사는 통상 외부에서 이뤄진다. 위생문제나 따뜻한 실내에서는 잠이 들고마는 홈리스의 특성 때문이다. 목사님은 거리의 친구들을 위해 나은 환경을 꿈꾼다. 

오랜시간 지역을 섬긴 최목사님과 ‘회복의 집’이 잘 알려지지 않은 이유가 궁금했다. “사역을 알릴 인력도 없었지만 광고하지 않아도 사역이 계속 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조용히 사역하고 있습니다.”는 목사님의 고백은 묵직했다. 십여년 전 내가 참여했던 홈리스 사역을 하는 단체와 이 지역의 다른 단체도 모두 ’회복의 집‘을 거쳐 분립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늘의 공급을 온전히 신뢰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당연한 믿음이지만 우리는 매번 불안하고 조급하다. 내 힘으로 하겠다는 욕심을 꺾고 오랜 세월 한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것이 목사님의 단단한 실력일 것이다. 최목사님은 지난 2021년에는 토론토에 있는 ‘한인상 위원회’가 개최한 캐나다 한인상 시상식에서 ‘공로상’을 받았다. 밴쿠버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목사님을 토론토 한인들이 발견했다. 

우리는 고난 속에 나를 구해낼 능력을 가진 신을 부르고 원하지만 침묵하는 신을 더 자주 마주한다. 말없이 우리와 함께 고통 받으며 곁에 머물기만 하는 무능해 보이는 신, 아무 힘 없는 듯 쓰러져 우리와 함께 울고 있는 신. 하지만 그의 고요한 동행이 결국 우리를 살리고 인도한다. 능력을 뽐내며 기적을 부리는 것은 어쩌면 하늘의 방법이 아닐지도 모른다. 곁에서 존재로 함께하는 것이야 말로 그의 성품이고 사랑법일테다. 거리의 친구들을 떠나지 않고 곁을 지키는 최목사님 부부의 삶을 한참동안 바라보았다. 사랑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일조차 높고 낮음으로 평가되고, 구제하는 일 또한 규모와 비용이 자랑이 될 때, 낮은 자리를 고요히 자처하는 삶의 의미가 더욱 반짝인다.

회복의집 후원: 
House of Restoration: newcreationyouth@gmail.com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잠시 홀로 된 공간은 휴식이었고무방비 상태였고 다시 돌아온 현재는 의지로 돌아왔지만 그 순간 이전에 기다림은 없었다.살아가는 그 마디마디에 여러 방법과 선택은 존재했고놀란 가슴에 앞뒤좌우 돌아볼 겨를 없이내일은 미래가 아닌 현재로 빠르게 이동한다.누구나 무의식 속에서 행동할 때가 많지만 기계는 항상 의식이 있는 상태로 신호를 기다리고 있다.노크 없이 문을 열어줄 시간을 마련하지 않아도 쉼의 공간에 갑자기...
송요상
오늘도 사랑 편지가 들어왔다. 가끔 이런 연서를 받지만 오늘은 유난히 기분을 들뜨게 한다. 그냥 사랑만 담은 편지가 아닌 잉태의 출발이기 때문이다.눈이 엄청 내린 한 겨울 캐나다. 나는 우여곡절 끝에 눈 폭풍을 헤치고 동쪽 소도시에 출장을 가게 되었다. 일주일에 삼일씩 그 도시에 머물며 비상 상황을 메꾸어 주고 있었다. 양로원 앞으로는 속이 시원해 지도록 맑은 물이 힘차게 흐르고 우거진 나무숲은 마치 공원 안에 있는 듯 초록초록한...
김난호
공평한 세상의 꿈 2024.05.07 (화)
 머리 희끗하고 멋지게 수염 기른 캐네디언에게 연령 구분을 못해 실수를 할까 방책으로 "Sir !" 를 붙이면 기겁을 하며 노인이 젊은 자기들을 놀린다고 한다.그 바람에 곧 70살이나 되는 내 자신에 놀라게 된다. 홍역으로 학교를 못 가 아버님이 양띠로 한 살을 줄여 놓으셨다. 덕분에 훗날 다시 큰 병 고를 치르고 나선 첫해 생일 무렵 나이 제한을 턱걸이로 넘어 방송에 입사를 할 수 있었다. 그 후 늘 머리 속으로는 새로 사는 나이를 헤아리게 되었다....
이은세
숲 길에서 2024.05.07 (화)
숲 속의 작은 반란 여기저기 분주하다영롱한 이슬방울 구르다 꿈 되는 곳햇살은 어찌 맑은지 가슴속이 환하다계절이 지나가며 쌓여서 부엽이 된윤회의 큰 섭리 누구든 삶을 키우는한 줌의 거름이 되어 봉헌의 삶 살아보라온 산을 마비 시킨 산야초 들꽃 향기우통수 찾아 나선 산 새와 들 짐승들못생겨 등 굽은 나무 산 자락을 지킨다지척을 알 수 없는 이 세상 자욱한 안개오열하고 숨 죽이던 소 우주 나의 안뜰회심의 한 줄기 빛이 골짜기를...
이상목
위잉잉!“뭐야! 기분 나쁘게.”나는 이어폰 볼륨을 좀 더 높였다.‘바보야, 그래가지고 들려? 더 높여야지!’뒤돌아보았다. 아무도 없었다.‘이상하네? 녹음할 때 잡음이 들어갔나? 내 귀가 잘못됐나?’나는 이어폰을 뽑고 면봉을 찾아 귀를 후볐다.‘아악! 하지 마! 아파!’“엄마야!”나는 놀라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집안은 고요했다. 무서운 생각이 들어 음악을 더 크게 틀었다.‘히히, 볼륨을 더, 더 크게 올려야지!”“누, 누구야?”소름이 오소소...
이정순
절친 2024.04.30 (화)
   자연 속에는 서로 반겨주는 친한 친구들이 있습니다. 울긋 불긋 물든 단풍과 그와 잘 어울리는 단짝 낙엽, 따스한 봄 볕과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개나리, 흐르는 강 줄기와 강물에 치덕 치덕 내리는 빗줄기. 며칠 전 강변에서 비 님과 호젓한 시간을 보내었어요. 우산에 떨어지는 사근 사근 빗방울 소리 들으니 공연히 실룩 거리는 입에서 맥없는 웃음이 나왔어요.저에게는 시도 때도 없이 아무 때나 만날 수 있는 꼭꼭 숨겨둔 절친이 있어요....
박혜경
송금 전표 2024.04.30 (화)
낡은 지갑 속에서낡은 쪽지 한 장을 발견 한다아버지 이름으로 입금된 송금 전표싸늘한 시체처럼 싸느랗게 떠오르는 이름 석 자이제 그 이름으로 입금 시킬 아버지가 없다적은 금액 속에 묻어 나는 까만 눈물풍수지탄風樹之嘆, 풍수지탄風樹之嘆내 얄팍했던 지갑이 원망스럽다아니다, 아니다 얇은 지갑이 죄가 아니다지갑 속에 숨어 있던 내 양심이 죄다아버지께 송금된 마지막 교신이 세상 큰 바다를 건너가신 마지막 흔적이제는 입금 시킬 곳 없는...
이영춘
봄밤 2024.04.22 (월)
언제 와 닿았을까벚꽃잎 살랑이는 듯한 손짓어리여린 초록빛 말 한마디깡깡 얼었던 맘을 동그랗게 녹여내고눈 녹아 흐르는 개울물처럼속살대는 소리에 귀 기울인다마음이 간질거린다사랑이 왔구나
이인숙
지난 주에 이어 계속 집도의는 캐나다에서도 이름 있는 Doctor라 했다. 수술실에 들어가니 남자가 7사람 여자 두 사람이 있다. 수술은 집도의와 보조의가 하겠지만 의대생들이 견학하는 걸 허락했던 것이다.수술은 성공적으로 잘 마무리 된듯하다. 수술을 하고 정신을 차려보니 방광에 호스를 꽂아 소변을 받아내고 양팔 혈관에 주사바늘을 고정시켜 줄이 달려있다코로 호수를 따라 식사대용 영양제가 들어간다. 또 수술한 부위에도 호스를 넣어...
박병준
 ▶지난 주에 이어 계속 암이 자리 잡은 곳, 그 위치가 어디인가. 그게 중요하다.폐라면 힘 든다. 췌장이라면 수술이 어렵다. 급성으로 여러 군데 전이가 되었다면 걷잡을 수 없이 위험하다.내게 온 곳은 목이다. 후두암이라고도 한다. 그 자리는 어떤 곳인가?매우 정교하고 복잡한 부분이다. 거기는 기도(Air way)와 식도가 만나는 곳인데 코와 입을 통해서 공기가 들어오고 또 입에서 식도로 넘어오는 음식이 지난다.또 허파에서 나오는 공기가...
늘산 박병준
늘산 본인이 암 판정을 받고 수술을 하고 퇴원을 하면서 그간에 있었던 일들을 정리하고 싶습니다. 이는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 암에서 예방될 수 있는 일에 다소나마 길잡이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면서 이 글을 시작합니다.암의 발견은 우연적일 수도 있고 필연적일 수도 있다.나는 우연적이라 생각하며 그나마 일찍 발견하였다는데 다행이라 생각한다.산에서 사람을...
늘산 박병준
다음페이지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