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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빵 군번의 수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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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 : 2023-02-24 08:40

심정석 / (사)한국문협 밴쿠버지부 회원
      사람이 늙어 가면서 살림을 줄이는 것이 좋다. 그래서 오랫동안 모아 놓은 서류함을 정리하던 중 파일 틈에 끼어 잘 보이지 않아 휴지통으로 버려질 뻔했던 까만 수첩을 발견했다. 대한민국 국민으로 국방의 의무를 필 했음을 증명해 주는 "예비군인 수첩" 이다. 60년 전 한국을 떠날 때 여권과 함께 꼭 소지해야만 했던 귀중한 물건이다. 하마터면 영원히 잃어버릴 뻔 했던 이 수첩을 대하니 그 때 내가 만난 인연의 얼굴들이 영상처럼 눈에 선하다.
      나는 1961년 대학2학년을 마치고 학보 병(學保兵)으로 군에 입대를 했다. 학보 병이란 일반 병의 절반인 18개월의 군 복무를 마치고 복학하는 제도다. 군번은 00으로 시작하여 일반병과와 구분시켜 놓았다. 그래서 빵빵 군번이라 불렀다. 짧은 군복무 특혜를 받는다는 이유 때문에 일반병들의 눈살이 그리 곱지 않았다. 학보들은 남다른 고행의 군 생활을 겪어야만 했다.
     나의 군번은 0027590. 강원도 제 00연대 2중대2소대 2분대에 배속을 받았다. 모두가 나에겐 선임자들이다. 훈련소와 보충대를 거처 오면서 고난 "야, 이 새끼야, 저 새끼야" 의 욕설 섞인 호칭에 익숙해져 있었다. 그런데 이곳에 오니 "심 병사"라는 호칭으로 변한다. 좀 황송도 하고 한편 의아해 진다. 시간이 좀 지난 후에 터득한 일이지만, 분대장님들도 중졸이고 고졸 출신도 흔치 않았다. 중 대원의 60%이상이 문맹이다. 이것이 60년대 대한민국의 교육수준이었다. 이들 대부분은 농촌출신이었다. 그들이 빵빵 군번인 나를 "이 새끼" 대신 "심 병사"로 불러준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한 식구 같이 정이 들어갔다. 그들과 함께 라면 병영생활도 할 만했다.
      "심 병사, 우리 집에 보낼 편지 한 장 써 줄 수 있을까?" 누가 들을세라 수줍게 속삭이던 장상병님의 얼굴이 선하게 떠오른다. 지금 생각해도 마음이 짠 해온다. 그 힘든 농사일을 부인에게 맡기고 30개월째 군복무를 감당하고 있는 무학의 장 상병님이다. 제대 날짜를 손꼽아 하루하루 세며 기다리던 우리 분대에 최 고참 장 상병님. 우리 분대장님보다도 고참이다. 서툰 나의 관물정돈, 총기청소 그리고 배낭 꾸리기까지 늘 장 상병님의 도움이 필요했다. 이런 선임 상사가 있어서 나의
소대 생활은 더 바랄 것 없는 행운이었다.
      어느 날, 중대본부 인사 계의 호출을 받는다. 중대병력 계 행정병으로 차출됐다는 소식이다. 병력 계가 하는 일은 중대 병력동향을 점검, 계수하여 아침 일찍 연대본부 담당관에게 보고하는 것이 주 업무다. 매일 아침 연대본부 인사과에 출두하는 일이다. 연대본부 행정요원들은 모두 고졸 이상의 교육 수준을 자랑하는 엘리트 행정 집단이다. 거기에는 빵빵 군번은 없다. 그들은 빵빵 군번을 몹시 싫어한다. 나는 갈 때마다 기압을 받고 온다. 사사건건 시비이다. 명찰에 달린 빵빵 군번이 문제였다. 숨길 수도 없다. "빵빵이면 다-야?" 하고 군화 발로 조인트를 깐다. 그냥 당해야만 한다. 연대본부로 향해 갈 때는 두려움에 떨고, 기압 받고 돌아올 때는 분하고 서글퍼 엉엉 울며 온다. 이렇게 앞으로 14개월을 견뎌야 하니 두렵고 서글프다.
      어느 날 중 대원 모두가 야전교육장에 출동 중이라 나 홀로 중대 행정 실을 지키고 있었다. 중대 주번 사관이신 3소대 소대장님이 행정 실에 점검 차 들렸다. 나는 벌떡 일어나 목청 높여 "멸공" 관등성명을 복창하고 거수경례로 맞이했다. 별반 반응 없이 책상 위에 펼쳐진 내가 읽고 있던 철 지난 영어잡지(Time Magazine)에 눈을 맞춘다. 그리고 뒤적여 본다. 까맣게 줄을 그어 가며 적어 놓은 단어들을 유심히 들여다본다. 아무 일 없다는 듯 "수고해" 하고 문을 향해 걸어 나가다 갑자기 멈춰 선다. "심 병사, 내 숙소에 한번 찾아와 줄 수 있겠나?" 명령조가 아닌 부드럽게 조용히 말한다. "네, 알겠습니다." 거수경례로 답했다. 두려움 반 기대감 반으로 그날을 기다렸다.
      영내에서 한 500 미터쯤 떨어진 농가에 한 문간방이 소대장 영외 숙소이다. 텅 빈방에 군용담요 (모포)를 펴 놓은 방바닥에 몇 권의 책들이 헝클어져 있다. 기초 영어책들이다. 계급장 없는 평복차림의 소대장과 대좌해 앉아 있다. 그 때 나의 계급은 이등병이다. 다시 말해 계급이 아직 주어지지 않은 군에서 최하 졸병 무등 병이다. 군에서 제일 무섭다는 육군 소위와 1:1 로 대담하는 자리다.
      "영어공부 같이 할 수 있을까?" 명령이 아닌 부탁하는 어조다. 자기는 육군 비행 조종사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비행학교 입대원서를 접수해놓고 곧 영어 시험을 치러야 한다고 했다. 또 담담히 이야기를 이어간다. 자기는 시골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집안 사정으로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육군 보병학교를 거처 소위로 임관 소대장이 됐단다. "심 병사" 하며 손을 잡는다. 자기 좀 도와 달란다. 그리고는 또 심병사의 꿈은 무엇이냐고 묻는다. 나는 군복무를 마치고 미국으로 유학 가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소대장의 눈이 둥그렇게 커진다. 육군소위 대 이등병 사이에 높은 벽이 사르르 가라앉는다. 장교와 이등병의 사이가 친구를 넘어 동지가 된 듯하다. 다음 번에 올 때 그 Time 잡지를 가지고 와서 함께 공부하자고 한다.
      그때가 바로 1961년 가을쯤 이다. 43세의 젊은 존 케네디가 미국 35대 대통령으로 취임하는 기사가 Time 잡지에 실렸다. 미국 의회 Capitol Hill 앞에서 행한 케네디 대통령의 취임연설이 하도 멋있어서 영어공부도 할 겸 까맣게 단어를 찾아 가며 읽고 또 읽고 하던 참이다. "내 것처럼 읽고 외워 내 것으로 만들어 보고 싶었다." 고 전했다. 소대장과 나는 의기투합하여 함께 케네디가 돼 보자고 했다. "당신의 나라가 당신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묻지 말고 당신이 당신의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물어보십시오. 세계 시민 여러분, 인류의 자유를 위해 함께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물어 보십시오." 얼마나 신선한 연설인가! 둘이서 달달 외었다. 서로 마주 서서 케네디 대통령 행세도 해 보았다. 그때 우리는 서로를 케네디라 부르곤 했다.
      그 후 시간이 지나 소대장님은 중위로 진급을 하더니 얼마 안 있어 우리 중대를 떠나갔다. 그리고 서로 보지 못하게 됐다. 나는 여전히 매일 아침 연대본부에 가는 두려움의 임무를 감수해야만했다. 아직도 제대하기에는 9개월이나 남았다. 오늘도 이유를 모르는 기합을 당할 각오를 하고 연대본부 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들어선다. 막 신고를 하려는 찰나였다. 누군가가 "아, 케네디" 하고 큰소리를 지른다. 김중위님이다. 연대본부 인사장교로 보직을 받아 인사과 좌장으로 나를 반겨준다. 어안이 벙벙하다. 나를 괴롭히던 하사관들의 시선이 일제히 내게 집중하는 순간이다. 그 날 그 순간부터 나의 빵빵 군번의 수난은 끝이 났다.
      그 후로 더는 나를 괴롭히던 하사관은 없었다. 그렇게 나는 케네디란 별명 덕에 빵빵 군번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됐다. 내가 제대할 무렵에 소대장님은 그 어렵다는 육군비행학교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3군단 비행대소속 Pilot 가 됐다. 꿈을 이루었다. 군단장을 모시고 Cessna 172 로 동부전선 창공을 날아다닌다. 군 생활에서 만난 천사 같은 무학의 정 상병님. 그리고 Pilot 김 중위님은 지금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계실까? 내 나이보다 연배이니, 아직 살아 계실까? 오늘도 그 낡은 예비군 수첩을 만지작거린다. 그들이 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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