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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청객 2023.05.08 (월)
  그날 아침, 나 여사는 뭔가 잘못된 것 같은 느낌과 함께 잠에서 깨어났다. 문득 시계를 보니, 아뿔싸, 새벽 5시였다. 약속시간에 맞추려면 30분 전에 깼어야 했다. 나 여사는 불에 덴 듯 벌떡 일어나서, 어젯밤 챙겨두었던 등산복으로 환복을 했다. 발라클라바 덕분에 엉망으로 눌린 머리와 쌩얼을 가릴 수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발소리를 죽여가며 현관으로 향하는데, 거실에서 드르렁, 컥, 퓨! 하는 소리가 리드미컬하게 들려왔다. 남편은...
곽선영
특별한 봄 2023.05.08 (월)
  해마다 봄은 온다. 들판을 수놓는 갖가지 꽃들과 포근히 내리는 봄비도 변함이 없다. 나이 들어 몸에 적신호가 오고부터 봄이 특별해지고 감사하다.젊을 땐 신경 쓰지 않았던 건강을 지금은 영양제를 챙겨 먹고, 하루 칠천 보 이상 걷는 걸 자구책으로 삼는다. 해빙기로 땅이 질퍽해도 불평하지 않고 피어날 꽃망울을 사랑스럽게 바라보며 자연에 밀착한다. 너그러워지고, 느긋해져야 한다며 십계명을 외우듯 독백한다.갈수록 장수하는 노인들이...
이명희
봄 날의 호사 2023.05.08 (월)
북서풍이 떠나며 남긴 눈 녹은 물빗방울 되어 부서지는 소리동남풍에 실려 여기 왔네얼음 속 건져 낸 꽃망울 터지는 소리깨어지는 겨울 자리 틈 사이로적셔지듯 스며드는 봄의 속삭임시퍼렇게 겨루었던 동남 북서풍서로 끌어 안고 빗물 되어 흐르네온 세상 고즈녘히 가랑비에 젖는데매실 차 하나 찻잔에 채우고빗방울 소리로 휘저어 주는반가사유눈물이 핑 돈다 이 봄 날의 호사
조규남
노랗게 송홧가루 날리며수려한 사월이 진다고슬퍼하지 않겠습니다분홍 꽃눈 나리는 나무 아래서내 안에 있는 이름나직이 불러보며보고 싶다 말하지 않겠습니다이슬비가 눈처럼 내려살 떨리도록 추워도외롭다고 눈물 흘리지 않겠습니다바람 부는 날이면그리움의 깃발 나부끼며오롯이 내생의 봄날을기다리고 또 기다릴 뿐입니다.
임현숙
  코로나 팬데믹이 3년째 세계를 괴롭히고 있다. 옛날에는 전염병이 지방에서 그쳤는데 요즘은 전염병이 비행기를 타고 다니기 때문에 온 세계가 몸살을 앓고 있다. 그런 와중에 2022년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략했다. 2022년 5월 16일 ‘로이터통신’ 발 뉴스가 전 세계로 타전되었다. 모스크바를 비롯한 러시아 전역에서 영업 중인 847개 맥도널드 매장 모두 영업을 중단하고 철수한다는 것이다. 맥도널드가 모스크바에 첫 영업점을 개설한...
권순욱
골목 2023.05.02 (화)
   골목은 눈부시지 않아서 좋다. 휘황한 네온 사인도, 대형마트도, 요란한 차량의 행렬도 없다. ‘열려라 참깨!’를 외치지 않아도 스르륵 열리는 자동 문이나, 제복 입은 경비원이 탐색하는 눈빛으로 위아래를 훑어 내리는 고층 빌딩도 눈에 띄지 않는다. 길목 어름에 구멍 가게 하나, 모퉁이 뒤에 허름한 맛집 하나 은밀하게 숨겨두고, 오가는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를 일상의 맥박  삼아 두근거리는, 웅숭깊고 되바라지지 않은 샛길이어서...
최민자
백로 2023.05.02 (화)
얼어붙은 호수 위굶주린 흰 새발 시려 외 발로 서서각시 붕어, 비단 잉어발 아래 노니는 꼴망연히 보다가큰 날개 하야니 펼쳐두세 번 날갯짓으로소나무 꼭지에 앉으니굶주린 걸 객 신세가한순간 신선이 되어겨울 그림 그린다
김철훈
호수가 위 돌다리 2023.04.24 (월)
호수가 위 돌다리 가만히 호수 위를 바라본다일렁이는 잔물결이 흔들흔들 끊임없지만하나씩 눈치챌 때물살을 헤치는 방해꾼오리 두 마리호수 위의 잔영이 부서져 간다때마침 어디선가 불어오는 큰바람많이 부드러워진 것이 내 마음의 돛대를 펄럭이고호수에는 하늘이 파랗고 그 안에 점점이 하얀 구름 일렁인다그 옆의 물결들은 신이 난 노란색 개구쟁이들 무얼까아 하 버드나무 어린 새잎이 피었구나봄이 이렇게 와 있었구나!
박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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