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오은 / 캐나다 한국문협 자문위원
잔디가 제 색을 잃고 맥을 놓아 버렸다.
언제나 비가 오려나. 투명한 하늘이 오늘따라 흐릿하게 보인다. 2년 전에 다중 렌즈를 바꾸었는데 또 다시 바꾸어야 하나. 안 봐도 될 것을 너무 많이 봐서 그런가. 속절없는 세월에 눈이 먼저 신호를 보낸다. 카페를 운영한 지 열 네 해 째이고, 컴 작업을 좀 많이 하는 편이다. 간단한 건 아이패드와 아이폰으로 해결하는데 수시로 신호가 오고 깜빡이고 부르르 떨고… 어디 눈을 가만두는가.
앞 못 보는 헬렌 켈러 여사는 사흘만이라도 앞을 볼 수 있다면, '동이 터서 낮으로 바뀌는 장대한 자연 현상과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 삶의 현장'을 직접 보고 싶다고 했다. 이러한 것들은 자연과 인간의 영혼 깊숙한 곳을 들여다보는 게 아닌가. 상상력은 자신이 겪은 기억의 그림자이고 간절히 바라는 희망이기도 하다. 느껴 보고 싶은 게 그녀의 소망이었다. 하지만 어느 영화에선 눈을 뜨게 된 소녀가 자신이 상상했던 세상과 너무나 다르고 두렵기조차 해 앞을 보지 못했던 그때를 그리워 했다던가. 4년 전에 타계하신, 우리 문협 고문으로 계셨던, 탄천 선생님은 시력이 약해져 4번이나 눈 수술을 받으셨다. 안경으로 교정하는 게 3번은 가능했지만, 4번째는 불가능했다며 부디 눈을 잘 보호하라고 당부하셨다.
삶이란 얼마나 깊은 것인가. 몸과 마음으로 느낄 수 있지만 변하는 그 모습을 눈으로 감지한다. 무변 장대한 우주공간의 아름다운 변화도 눈으로 볼 수 있다. 보아야 느낄 수 있고 보아야 마음에 새길 수 있다. 세상에 폼 나는 문장들도 시력이 나쁘면 읽기 어렵고 무슨 암호처럼 날아다닌다. 눈은 마음의 호수이고 마음의 창이고 마음의 거울이다. 모든 감각이 다 소중하지만 그 중에서 보는 것이야말로 가장 값진 것이다. 젖은 스펀지처럼 마음이 무거워도 명문 한줄기를 맑은 눈으로 읽고 나면 마음이 고요하고 가뿐하다.
중학교 때 종로 광안당으로 안경을 맞추러 갔다. 안경을 쓰기 싫어서 눈을 찡그리고 책을 읽다가, 어느 날 아버지에게 들켜 바로 안경원으로 끌려(?)갔다. 꾀부리지 말고 바로 안경을 쓸 것을, 아버지 손을 잡고 집으로 오는 데 세상이 달라 보였다. 기분까지 맑고 상쾌했다. 시력이 나빠도 안경으로 교정할 수 있으면 다행이다. 지금까지 안경을 쓰고 있지만 눈 관리는 철저히 하는 편이다. 안경 전문의 말이 나이에 비해선 눈 관리가 잘 되고 있다니 그나마 다행이다.
요즈음은 지면 신문보다는 e신문이, 책도 e북이, 심지어 다달이 나오는 문학잡지도 웹진을 이용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일간지는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예전의 책 읽는 맛이 추억으로나 남으려나. 책장을 넘기며 손가락에 감지되는 책갈피의 촉감을 아는 분은 다 아시리라.
젊음이 봄을 타듯 세월은 가을을 탄다. 머지않아 초록을 거두고 옹색한 햇볕이 그림자마저 떼어놓을 것이다. 삶은 흐름이고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모두가 한때일 뿐, 쇠(衰)하는 것에 너무 연연해 하지 말고 나름 최선을 다해 사는 것이 삶의 지혜이고 삶의 아름다움이다. 우리는 눈을 뜨고 있으면서도 대충 보거나 잘 못 보는 경우가 허다하다. 눈을 혹사하고 이미 전자기기의 노예가 되었다. 고맙고 소중한 시력을 아무렇 게나 사용하고 함부로 대하진 않는지 눈을 질끈 감고 한번 생각해 보시라. 평생 사용할 당신의 눈을 진정 아끼고 사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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