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양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미국 동부에 한 노인 아파트에서 홀로 지내시는, 나와 띠가 같은 숙모님께서 작년 말에 90세를 맞으셨다. 미국 생활을 감사해하시며 매일 노인정에 다니는 것을 낙으로 살아오시다가 지난해 봄부터는 코비드-19로 인해 나들이를 못 하신다. 자녀 가족들은 생신에 모여서 축하해 드리려던 계획을 미루어야 했다. 나는 특별한 생신이므로 축하 메시지를 보내 드리려고 미리 카드를 준비해 놓고 아주 작은 소포 꾸러미를 만들기 시작했다. 필요하신 물건이 있을 것 같지는 않지만, 카드 속에 현금 두 장을 살짝 넣기 위해서였다. 수표로 드리면 요즘 은행에 가시는 일이 힘드실 것 같아서 나름대로 그런 묘안을 낸 것이다. 우편물을 부치고 며칠 뒤에 안부 전화하면서 카드를 보냈다고 말씀드리고 기다렸는데 얼마 동안 소식이 없었다. 한 주간쯤 더 지나서 아직 못 받으셨다는 것을 알았다. 캐나다 포스트에 문의해 보니 그 주소로 배달됐다는 것을 확인해 주었다. 그렇다면 다른 이의 손을 탔음이 분명하다. 작은 크기라서 굳이 소포라고 말씀드리지 않고 그냥 카드라고 했기 때문에 본인의 우편함만 보셨을 것이다. 배달부는 아마도 아파트 사무실 탁자 위에 그런 우편물들을 놓고 간 모양이다. 그러니까 거기까지 둘러보지 않으신 것이 당연하다. 나는 배달부가 으레 각자의 우편함에 넣거나 아니면 본인에게 통지하리라 생각했다.
처음 경험하는 일로서 우체국에 다시 연락해 보았다. 알아보겠다고 해서 기다렸더니 며칠 뒤에 이 메일로 자기네의 잘못이라고 보상 수표를 보내주겠다고 답신이 왔다. 성실히 알아봐 준 데 대해 고마웠다. 없어진 물건에 대한 미련은 없지만 그 카드에 공들여 담았던 말씀들과 동봉한 스크랩이 사라진 것이 매우 아까웠다. 다시 카드를 보내 드렸지만 처음에 담은 마음과는 차이가 있음이 아쉬웠다. 선물은 어머니 날에 다시 보내 드리기로 마음먹고, 결국 소포 표면에 쓴 액수에 항공료를 포함한 금액의 수표를 받았고, 캐나다 포스트에 고맙다는 인사 메시지를 보냈다. 이 일로 우편물에 추적 번호(Tracking Number)의 필요성을 알게 되었고 새로운 경험을 했다.
지난달 중순께, 차로 3시간 이상 거리에 사는 사촌 동생(숙모님의 장남)이 어머님 뵈러 간다기에 시간을 기다렸다가 카카오톡으로 함께 목소리 들으며 반갑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열흘쯤 지난 뒤에 사촌이 우리 ‘78 사랑방’(가족 채팅 방)에서 나가 있음을 발견하고 혹시 전화기에 문제가 있을지도 몰라서 재초청을 했는데 잠시 만에 다시 나갔다. 무언가 심상치 않은 느낌이 번쩍 들면서 기다려 볼 수밖에 없었다. 그 뒤에 전달된 소식으로, 숙모님께서 몸이 불편하시다고 연락을 하셔서 그 저녁에 바로 운전해 올라가서 이튿날 병원에 모시고 갔는데 뜻밖의 코로나 양성 판정이 나왔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함께 통화한 지 일주일 만에 일어난 일이다. 입원하신 뒤, 한 주간의 상황은 연세가 있으셔서 회복하기 어려우시다고, 산소호흡을 하신다고 한다. 태평양 건너에 사는 다른 자녀들은 지금 상황에 어머님 뵈러 갈 수도 없고, 단체대화방을 통해서 어머니께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차례대로 하고 기도해 드렸다고 한다. 그리고 시간이 조금 더 흐르고 있는 지금은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해야 할지 절절한 하루하루가 아닐 수 없다.
매우 보수적인 가정에서 나에게 해외로의 탈출에 대한 꿈에 힘을 보태 주신 숙모님, 강한 의지로 한세상을 살아오신 숙모님, 이렇게 허망하게 누워 계시면 안 되는데 부디 회복되신다는 기쁜 소식이 오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한다.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김진양의 다른 기사
(더보기.)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