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최종수정 : 2020-02-24 13:13

신순호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스미하와 함께 마트에 은경이는 혹시나 엄마를 만나지는 않을까 조심스레 주변을 둘러보았습니다. 엄마는 식품부에서 반찬 만드는 일을 한다고 했으니 아마 매장에서는 부딪히지 않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래도 혹시 몰라 반찬코너는 멀찍이 돌아서 생활용품 쪽만 보고 있었습니다. BTS 팬이면서 한국물건이라면 사족을 못쓰는 스미하가 한국 마트에 가고 싶다며 몇 번을 졸라 하는 없이 같이 은경이었습니다.

 , 저거 맛있겠다. 한번 먹어보자.

은경이가 말릴 새도 없이 스미하는 불고기를 시식하는 식품코너로 달려갔습니다.

맛있는 불고기가 오늘 스페셜 세일합니다. 불고기 이즈 스페셜 디스카운트 세일

시식코너의 아줌마가 소리로 손님들의 관심을 끌면서 즉석에서 굽고 있는 불고기 냄새가 솔솔 콧구멍을 간지럽혔습니다. 은경이는 하는 없이 시식하는 곳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습니다. 그런데 그때 시식코너 아줌마가 몸을 돌리면서 은경이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맙소사, 몸을 완전히 덮을 같은 앞치마를 두르고 요리사 모자를 쓰고 입에 투명마스크를 시식코너 아줌마는 바로 은경이의 엄마였던 것입니다. 은경이는 순간 땅으로 꺼져 버리고 싶을 만큼 창피했습니다.  엄마에게 들킨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같기도 했지만 어쨌든 은경이는 슬며시 지나쳐 다른 코너로 일단 피한 식품코너를 슬쩍 훔쳐보았습니다.

아줌마, 이거 신선한 고기에요?

. 오늘 아침에 들어온 걸로 양념한 거예요. 오늘 특별 세일이니까 들여가세요.

손님은 정갈하게 정돈된 반찬 팩을 이리저리 헤집어 놓더니 아래에서 하나를 들었다가 다시 놓았습니다. 그런데 이것저것 만지는 사이 반찬 팩하나가 바닥으로 굴러 떨어지면서 그만 뚜껑이 열리고 말았습니다.

손님, 그렇게 헤집어 놓으시면… “

뭐라구요? 아줌마가. 여기 매니저 어딨어? 직원 교육을 어떻게 시켰길래 손님한테 눈을 똑바로 뜨고 짜증을 ?

손님 그게 아니구요.

은경이는 귀를 막고 심정으로 마침 곁으로 스미하를 데리고 빠르게 마트를 나왔습니다.  말도 안되는 행패를 부리는 아줌마가 너무 싫었고, 죄를 지은 것도 없이 쩔쩔매는 엄마도 싫었습니다. 또한 엄마를 모른 체자신에게 너무 실망스러웠습니다.

   집에 돌아온 은경이는 계속 마트에서 엄마의 모습이 머리에 떠나지 않아 심난했습니다.  그러다 시계를 보니 조금 있으면 엄마가 오실 시간인데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도 저녁준비를 해야하는 엄마를 위해 오늘은 대신 저녁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비교적 만들기 쉬운 카레덮밥을 하기로 하고 레시피와 엄마가 요리할 때 봤던 것들을 기억해 봤습니다. 먼저 냉장고에서 감자와 양파를 꺼내 먹기 좋은 크기로 깍둑썰기를 했습니다. 양파를 좋아하지 않는 은경이는 골라서 빼려는 심산도 있어서 양파를 크게 썰었습니다. 그리고 요리의 빛깔을 예쁘게 내주는 당근도 잘게 썰어 함께 담아 놓았습니다.  칼질할 때 칼에 베이지 않도록 왼손을 오그린 채 곧추 세우라는 엄마의 가르침을 기억하며서 은경이는 조심스럽게 칼을 다루었습니다. 돼지 고기는 냉동고에서 미리 꺼내어 살짝 해동을 다음 당근보다 약간 작게 썰어서 찬물에 담궈 핏물을 뺐습니다.  고기를 좋아하는 은경이는 큼직한 고기를 먹고 싶었지만 엄마가 요새 이빨이 아파서 씹지 못하기 때문에 잘게 썰었습니다.  이제 재료가 준비되자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먼저 고기와 양파를 볶은 다음 감자, 당근을 넣고 서로 섞으면서 볶아주었습니다. 그리고 자박자박 재료들이 잠길만큼 물을 붓고 익도록 끓여주었습니다. 엄마를 위해 정성 들여 카레덮밥을 준비하면서 은경이는 계속 아까의 일을 생각했습니다.

내가 모른 체 엄마가 알고 있으면 어떻게 하지  하지만 친구 앞에서 엄마가 그런 하는 건 보이기 싫어, 그래도 엄마가 돈을 벌기 위해 고생하는데 엄마를 창피하게 생각하는 건 정말 말도 안되는 짓이잖아. 아이 , 엄마는 의사나 변호사같은 전문직이 아니고 하필 마트에서 사람들에게 반찬사라고 외치는 일을 할까. 아니 그냥 사람들 눈에 안띠는 사무직도 많잖아.

냄비속에서 보글보글 끓고 있는 야채들이 마치 은경이를 비난하며 와글와글하는 것 같았습니다.  감자 하나를 꺼내서 씹어보니 익은 것이 이제 카레가루를 넣어주면 같았습니다.  은경이는 카레를 물에 풀어서 죽처럼 걸쭉하게 만들어 냄비안에 살살 저으면서 부어주었습니다. 금세 구수한 카레냄새가 부엌에 퍼지면서 냄비 속 재료들도 노랗게 물들어 갔습니다. 은경이는 수저를 정갈하게 놓고 김치, 장아찌 같은 기본 반찬에 오목한 접시를 식탁에 배열해 놓은 채 엄마를 기다렸습니다. 잠시 엄마가 돌아오셨습니다.

어머, 이게 무슨 냄새야? 카레했니?

, 카레가 먹고 싶어서.

에구, 힘들었을 텐데. 엄마한테 해달라고 하지.

아니야, 오늘은 숙제도 없어서 시간이 있었어.

그래, 수고했어. 어디 보자아휴 맛나게 보이네.

엄마와 은경이는 마주앉아 따뜻한 카레덮밥을 맛있게 먹었습니다. 엄마는 배가 많이 고프셨는지 밥을 덜어서 카레에 비벼 드셨습니다.  식사 설거지는 엄마가 하고 은경이는 후식으로 사과를 깎았습니다.

엄마, 사실은 오늘 엄마 일하는 마트에 갔었어.

그래? 나도 긴가 민가 했는데 맞구나. 그런데 엄마 안보고 그냥 갔어?

은경이는 갑자기 왈칵 눈물이 나왔습니다.  엄마가 창피해서 모른 한게 너무 미안하고 속상했습니다.  엄마는 짐작한 가만히 있다가 말씀하셨습니다.

엄마가 어릴 집이 어려워져서 외할머니가 시장 길바닥에서 옥수수 파는 행상일을 잠깐 하셨어. 하필 학교를 가려면 지나가야 하는 길이라서 학교 끝나고 친구들과 때면 다른 길로 돌아가거나 애들이 볼까 봐 못본척 후딱 지나가곤 했지. 그런데 어느 날 같이 걸어오던 친구가 옥수수를 먹겠다고 외할머니한테 가는 거야.  집에도 놀러 온 적이 있어서 외할머니 얼굴을 아는데 말야. 어쩔 줄 몰라서 우두커니 있었는데 나를 외할머니가 갑자기 일어나서 어디로 가버리시더라구.   좌판에서 나물 파는 아줌마가 대신 팔아주셨어.  그리고 저녁 외할머니는 내일부턴 시장길로 다니지 말고 다른 길로 다니라고 하시더라구. 친구들이 보고 골리면 어떻게 하냐구. 마음속을 들킨 같아서 그날 엄청 울었지.

엄마, 미안해나도 아까 그랬는지 모르겠어.

아냐, 엄마도 어릴 그랬었다니까. 하지만 엄마가 열심히 일을 해서 돈을 벌고 돈으로 우리가 생활하는 거니까 너는 엄마가 하는 일을 부끄러워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어. 엄만 영어도 못하고 학교도 여기서 나오지 않았잖아. 정말 아무것도 못할 알았는데 다행히 일자리를 가져서 너무 좋거든. 그리고 열심히 하면 6개월뒤 정규직도 있대. 그럼 지금보다 대우도 좋아질 거야.

그래도 모르는 사람들이 엄마한테 아줌마그러면서 함부로 부르는 건 싫어.

그래, 이해해. 처음엔 나도 낯설고 이상했어. 그런데 은경아, 엄마는 지금 일이 재미있어. 내가 만든 반찬을 손님들이 맛있게 먹고 다시 찾는 것도 기쁘고, 열심히 팔아서 매상이 많이 오르면 내가 뭔가 대단한 일을 한 것 같아서 좋아.  은경아 너가 불편하면 앞으로도 엄마 아는 말고 그냥 . 어차피 엄만 바쁘니까 괜찮아. 알았지?

내가 못되 먹었지?

, 엄마도 만할 땐 못된 딸이었어. 그러니까 너는 딸이 확실해.

울다가 엄마말에 한바탕 웃어 버린 은경이는 아까의 무례한 손님이야기는 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고, 엄마도 손님이 왔을 때 은경이가 없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엄마는 정말 일이 재미있고 보람 있어 하시는구나. 내가 정말 잘못 같아. 다음엔 스미하랑 같이 가서 맛있는 불고기 엄마가 만든 거라고 해야겠어.

그때 엄마가 먼저 피하지 않았으면 나도 은경이처럼 모른 체했겠지?  그날 엄마 마음이 지금 같을까…’

은경이와 엄마가 각자의 엄마 생각을 하는 사이 밤은 새록새록 깊어 갔습니다.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봄밤 2024.04.22 (월)
언제 와 닿았을까벚꽃잎 살랑이는 듯한 손짓어리여린 초록빛 말 한마디깡깡 얼었던 맘을 동그랗게 녹여내고눈 녹아 흐르는 개울물처럼속살대는 소리에 귀 기울인다마음이 간질거린다사랑이 왔구나
이인숙
곁에서 2024.04.22 (월)
첫 인터뷰를 했다. 캐나다로 돌아와서 쓸 수 있는 글과 써야 하는 글 사이에서 고민했다. 묵묵하게 자신의 길을  걷고 있는 한인 이민자를 찾아다니며 그들의 인생을 기록하고 싶었다. 평범한 이민자인 부모님의 낡은 시간을 기억하고 싶어 시작한 글쓰기의 반경을 넓히는 작업이다. 이민자는 모국에서 만큼 인정받을 기회가 없지만 그렇다고 우리의 이야기가 가벼운 것은 아니다. 알아주는 이 없는 한인 이민자의 이야기를, 휘발되기 전에 쓰고...
김한나
  머리가 허연 사내 하나가 털이 하얀 강아지 한 마리와 동네 골목을 산책 중이다.산책하고 싶어 한 게 개였는지 사내였는지 알 수는 없지만 강아지가 앞장서고 사내가 뒤를 따른다. 강아지가 길모퉁이에 멈춰 서 있다. 아랫도리를 낮추고 볼일을 보는 개를 사내가 조용히 기다려준다. 꽁초 한 개비 마음 놓고 못 버리는 인간의 거리에 천연덕스럽게 응가를? 무슨 상관이냐고, 갈 길이나 가시라고, 녀석이 흘끔 위 아래로 훑는다. 녀석이 일어선다....
최민자
시와 종교 2024.04.22 (월)
고통과 시련으로 가슴에 든 멍을 씻어주는시는 훌륭한 마음의 의사무언가 될 듯 안 될 듯할 때의 괴로움이無 자의 깊은 화두가 되어참회의 순간으로 깨달음을 구하네꽃잎이 지고 말라도 봄 날봄바람은 다시 찾아와꽃을 다시 피우고나비로 다가와 시의 향기를 풍기네때론, 울긋 불긋 가을 바람에귀뚜리 소리가 눈물 짓게 하고하얀 눈 발이 날리는 겨울에는외로움에 시를 쓴다네보고 읽고 듣는 시마다시구는 생겨났다 사라져도생의 길잡이로깨달음이...
강애나
풍경 속 평온 2024.04.15 (월)
햇빛 가리개 구름은머리에 하이얀 솜털을뒤집어 쓴 산봉우리를살포시 허공을 헤엄친다하늘의 풍경을 그대로 담은바다의 모습은 그지없이 평온하다바다와 산은 저마다의 사연이 있지만그냥 묵묵부답으로 본연의 자태를 취할뿐아무런 댓가를바라지 않는다하늘과 산과 바다를멀리서 지켜보는저 학동은 그지없이유유자적한데저 멀리서 뜬금없이먹구름 하나가비를 몰고오네 
구대호
영원한 이민 2024.04.15 (월)
  “권장로님, 아버지께서 오늘 아침 천국으로 아민을 떠나셨기에 환송 예배를 드립니다.” 친구 딸아이의 멧시지 였다.      하나님의 선하신 뜻과 주권 가운데 나의 사랑하는 친구 문장로가 지난주 4월 1일 새벽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주님이 계시는 천국으로 금의환향(錦衣還鄕)했다. 그와 나는 오랫동안 신앙의 친구요 교회의 동료로 함께 해 왔다. 그는 과묵하면서도 유머가 많아 주변 사람들을 즐겁게 했다. 말이 별로...
권순욱
밟아라 2024.04.15 (월)
 서울에 사는 영적 동반자가 문자를 보내왔습니다. 영화 <사일런스>를 꼭 보라며 청주 상영관까지 알려줍니다. 그때부터 제 머릿속은 영화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찼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오래전에 그 영화의 원전인 『침묵』이라는 소설을 감명 깊게 읽고 가끔씩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더니 충북 내 영화관이 똑같이 종영하는 날, 가까스로 진천에 가서 영화를 보았습니다.실화를 바탕으로 한 엔도 슈사쿠의 소설...
반숙자
셀카 증명 시대 2024.04.15 (월)
세상은 변했어기우뚱 거리다 기울어 지다 엎어졌어마음을 나타내려 해도 이제는환적의 경유지를 밝혀야 하고무게의 중량을 홀수선에 남겨야 하는"마음 속으로" 는 사라지고"보시다시피"로 증명 해야 하는 세상마음을 찍을 수 없는 셀카에 의존하는증명사진 유행의 시대, 증명사진 요구의 시대여보시게나자네들과 나 사이에는이심전심의 토양에서우정 이라는 길을 돋우고 다지며믿음을 넓히고 오해를 메우는, 마침내무엇이든 실어 나르는 큰 길모여...
조규남
지난 주에 이어 계속 집도의는 캐나다에서도 이름 있는 Doctor라 했다. 수술실에 들어가니 남자가 7사람 여자 두 사람이 있다. 수술은 집도의와 보조의가 하겠지만 의대생들이 견학하는 걸 허락했던 것이다.수술은 성공적으로 잘 마무리 된듯하다. 수술을 하고 정신을 차려보니 방광에 호스를 꽂아 소변을 받아내고 양팔 혈관에 주사바늘을 고정시켜 줄이 달려있다코로 호수를 따라 식사대용 영양제가 들어간다. 또 수술한 부위에도 호스를 넣어...
박병준
 ▶지난 주에 이어 계속 암이 자리 잡은 곳, 그 위치가 어디인가. 그게 중요하다.폐라면 힘 든다. 췌장이라면 수술이 어렵다. 급성으로 여러 군데 전이가 되었다면 걷잡을 수 없이 위험하다.내게 온 곳은 목이다. 후두암이라고도 한다. 그 자리는 어떤 곳인가?매우 정교하고 복잡한 부분이다. 거기는 기도(Air way)와 식도가 만나는 곳인데 코와 입을 통해서 공기가 들어오고 또 입에서 식도로 넘어오는 음식이 지난다.또 허파에서 나오는 공기가...
늘산 박병준
늘산 본인이 암 판정을 받고 수술을 하고 퇴원을 하면서 그간에 있었던 일들을 정리하고 싶습니다. 이는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 암에서 예방될 수 있는 일에 다소나마 길잡이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면서 이 글을 시작합니다.암의 발견은 우연적일 수도 있고 필연적일 수도 있다.나는 우연적이라 생각하며 그나마 일찍 발견하였다는데 다행이라 생각한다.산에서 사람을...
늘산 박병준
다음페이지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