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희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따따따 따따닥 따닥 딱딱딱.
무슨 소릴까. 아들 방문에 귀를 댄다. 한쪽에선 방송소리, 아이의 중얼거림 들리고, 또 다시 따따따 따따닥 따닥 딱딱딱. 이때는 온 집안 식구가 쥐 죽은 듯해준다. 숨 막히지만 1년에 10번 이상 시험을 보니 어쩔 수 없다.
“엄마, 나 중학교 졸업 후 독립한 거 알지?”
한창 부모 간섭이 필요한 데, 지가 다 알아서 살겠다며 아무 상관도 어떤 걱정도 하지 말란다.
만 15세, 고 1. 하숙생 같다. 중학교 때까지 봉사와 등산, 여행을 즐기더니, 이젠 도서관이나 방에 틀어박혀 공부만 한다. 대학 입시가 저 만치서 딱 버티고 있다. 1분 1초가 아까워 굶기도 하며 날밤을 새기도 한다. 친구들이 무섭게 공부하고 등급경쟁 때문이다. 입시 전쟁에서 죽어라 공부해 살아야 한다. 확고한 꿈을 이루기 위해 전력질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아이가 내 뱃속에 있을 때 염원했던 자립자생. 아이가 태어나자 마음으로 말로 세뇌를 시켰다. 빨리 말하고, 익히고, 스스로 서기를 바랐다. 때문인지 어린 아기는 말귀를 알아듣고 6개월 때 정확하게 ‘엄마’를 부르며 젖 달라, 기저기 갈아 달라, “엄마 엄마” 하며 놀고, 30개월 때 구구단 9단까지 완벽하게 외우고, 33개월 때 한글을 깨치고 책을 읽었다. 그러곤 5살 때 처음 어린이집을 보냈는데 영어이야기책을 통째로 외우고, 홀로 비디오와 컴퓨터로 파닉스를 뗐다.
누구나 어릴 때는 남들보다 조금만 잘해도 천재라고 생각하듯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어느 날, 아이는 모든 걸 포기한 듯 별 열의가 없어 보였다. 독방을 고수하며 친구들과 담을 쌓고, 그동안 한 번도 결석을 안 하던 애가 자주 지각과 결석을 하기시작 했다.
“엄마, 나 왜 낳았어?” “나, 왜 태어 났어?” “뭣 땜에 나 낳았어?”
아무리 생각해도 지 존재이유를 묻다 답이 없었는지, 허구한 날 같은 말만 묻고 또 물었다. 태어났으니 그냥 막연히 살아가는 듯했다. 무슨 말을 하면 서로 가치 없는 분쟁과 상처만 남았다.
애를 힘들게 낳아 키우다 이렇게 무너지기도 하는구나. 말이 안 통해 멀어지기도 하는구나. 아이를 키운다는 건 산 너머 산이다. 이 애와 나는 얼마나 많은 상반된 시각과 대립으로 한 고비 한 고비를 넘어갈까.
“우리 여행 가자.”
옥신각신 힘들게 살 바엔 여행이나 하자. 아이에게 가고 싶은 여행지와 비행기표, 묵을 장소를 예약하게 하고, 스케줄을 짜게 했다. 세계에서 험하기로 유명한 곳, 부유하거나 가난한 곳, 아름답거나 누추한 곳들을 찾아다녔다. 구글 지도와 인터넷을 뒤져 어디든 아이가 리더하는대로 따라다녔다. 지하철, 버스, 택시, 배를 타기도 했다. 새로운 걸 경험하고 낯선 환경을 접할 때마다 애가 뭔가 깨닫기를 바랐다. 일종의 성취감, 흥미로움, 성찰, 세상 보는 견문, 생각이 달라지기를 고대하며.
그러곤 인도 온지 4년째 되던 해 시험성적은 모두 A+과 A로 채워졌다.
“어떻게 해서 시험을 잘 봤니?”
미국 드라마를 봤는데 엄마가 갑자기 소중하게 느껴졌 다나. 우리는 남편 일로 따라갔던 4년간의 인도 살이를 끝내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아이는 곧바로 중학교 시험도 따라잡았다. 인도에서 영어를 인터넷으로만 배웠듯, 4년간 못 배운 한국 교과도 같은 방식으로 독하게 자습 자학했던 거였다.
아이 방청소를 하다 보니 상장 몇 개가 책장 귀퉁이에 버젓이 있다. 교과우수상, 모범 표창장, 영어북토크대회 우수상들이다. 아이는 늘 바쁘다. 새벽 5시에 기상 학교를 가장 먼저 도착해 자습하고 쉬는 시간엔 영어와 과학 멘토로서 친구들 가르치랴, 수 십대 1의 경쟁을 뚫고 합격한 학교 임원으로 교내 봉사 하랴, 학원을 안 다니니 혼자 도서관이나 집에서 연구하고 깨우쳐야 하니 친구들 보다 많이 힘들다.
따따따 따따닥 따닥 딱딱딱... . 커다란 칠판에 분필이 써지는 소리다. 시험 날짜가 닥치지 않더라도 이 소리가 아이 방에서 튀어나오면 온 집안에 긴장감이 감돈다. 시험이 끝나면 아이는 부리나케 서울 가서 봉사할 차례다.
그래, 인생은 그렇게 혼자서 만들어 가는 거란다. 누구에게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전진하는 거지. 울다 웃다 오뚜기처럼 일어서서 인생이란 미로를 꿋꿋이 헤쳐 나가!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박성희의 다른 기사
(더보기.)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