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춘 / 캐나다 한국문협 고문
오후 세 시의 그 꼭지점에서
햇살이 길게 모로 누우면
철길 저 너머에서 세 시를 알리는 기차는
푸우-푹-푸우-푹 흰 연기를 토하며 달려오고
열세 살 그 소녀는
누군가를 기다리듯, 혹 먼 이방의 한쪽 문을 그리워하듯
산비탈 조그만 쪽문을 향해 아슬히 눈 멈추곤 했는데
어느 날 도시락을 싸 들고 우리들 창자보다 긴 터널로 떠난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고
공복인 듯 탄가루 먹은 하늘은 검은 연기로 쏟아지는데
전설처럼 푹푹 쏟아져 내리는데
아버지 돌아올 길은 시공의 저 광막한 어둠 속에서
들리지 않는 노래로 날아오는구나
잠들지 못하는 흑黑더미로 우는구나
한때 돈줄의 광맥이었던 역사驛舍는 비튜겐슈타인의
침묵으로 졸고
열세 살 그 소녀의 그림자도 가을빛 저 쪽문에서
사라진 지 오래다
지금은 돌아갈 사람도 돌아올 사람도 없는
저 텅 빈 역사,
망명정부 같은 조국의 한 변방에서
긴 목 울음 울고 있는 검은 새 떼들
빙빙 원 그리며 적막이 내리는 하늘을 지키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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