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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퀘렌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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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 : 2019-07-22 08:39

박정은 / 한국문인협회 밴쿠버지부
     요즘은 밤마다 뒷마당 데크 위에 쳐둔 텐트에서 시간을 보낸다. 텐트 안에 있는 살림이라곤 베개, 이불, 그리고 새우깡 한 봉이 전부다. 물론 텐트 안에 가득한 새소리, 바람소리, 꽃향기는 보이지 않는 인테리어다. 거기에 비까지 내리면 빗소리라는 음악이 더해져 텐트 안은 더 아늑해진다. 오늘밤은 비가 온다고 해서 일찌감치 텐트로 나왔다. 한국에 살 때 남편과 난 산을 참 좋아했었다. 우리가 정식으로 했던 첫 데이트가 아마 도봉산이었을 것이다. 그리곤 치악산, 지리산, 설악산 등 점점 큰 산으로 옮겨갔다. 지고 다니는 텐트가 너무 무거워 가벼운 텐트를 사는 게 꿈이었던 시절이었다. 둘이 돈을 모아 20만원을 주고 좋은 텐트를 샀을 때 우린 정말 기뻤었다. 아마 그 2인용 텐트가 우리가 처음 마련한 집이었을 것이다. 그 텐트 안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고 싶은지 서로의 미래를 이야기했고, 그러다 결혼을 했다.

   결혼 후 처음 신혼살림을 시작한 곳은 지대가 높은 달동네 전세방이었다. 집으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두 개의 길이 있었다. 한쪽은 빨리 갈 수 있지만 가파르고 좁아 산으로 치면 꼭 계곡 같았다. 다른 한쪽은 시간은 더 걸리지만 완만한 능선 같은 길이었다. 우리는 항상 양손에 든 짐의 정도에 따라 능선을 탈지, 계곡을 탈지 선택해 올랐다. 그렇게 오르다 지치면 잠시 멈춰 서 옆에 있는 집을 가리키며,“이 정도만 낮게 살아도 좋겠다. 그지?” 이 말을 몇 번 반복하며 오르다보면 깃발 꽂고 브이 자를 그려도 될 만한 곳에 우리 집이 있었다. 맞벌이를 하는 우리는 매일 그 길을 오르내렸다. 여름이 시작되는 어느 더운 날이었다. 그 길을 오르다 너무 땀이 나 라일락이 그늘을 내주는 어느 집 담장 아래 멈춰 섰다. 라일락 향기 가득한 그 아래서 난 남편에게 말했다. “나 꿈이 있는데 라일락 한 그루 심을 수 있는 땅이 있었으면 좋겠어.” 그러자 남편은, “산동네 전세 사는 형편에 땅까지 바라다니 참 욕심도 많다.”라며 흘리듯 대꾸했다. 그 다음날도 우린 그 아래 다시 섰고, 난 흐르는 땀을 훔치며 또 말했다. “언젠간 라일락을 심을 수 있는 땅이 있는 집을 살 거야.” 그 전날은 코웃음을 쳤던 남편이 그날은 아무 말 없이 그냥 걸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 남편이 내게 말했다. “처음엔 네가 바라는 꿈이 너무 욕심 사나워 보였어. 그런데 생각해보니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바람을 욕심이라 부른 것 같아. 현실이 너무 각박하다보니 그런 바람마저 잊고 사는 요즘 네 욕심이 되레 아름답게 느껴지더라. 내년에도 라일락 향기가 피어오를 때 네 욕심도 따라 피었으면 좋겠다.” 그 후로 라일락꽃이 세 번 더 피었고, 그때마다 내 욕심도 따라 피었다. 그리고 우린 비록 라일락을 심을 땅은 여전히 없었지만, 그래도 낮은 지대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그 아파트가 한국에서의 마지막 집이었다. 캐나다로 이민을 와 밴쿠버에 집을 샀을 때도,  앨버타로 이사를 했을 때도 첫 날 한 일이 라일락을 심는 일이었다. 세월이 더해감에 따라 라일락꽃도 풍성해졌고, 우리 살림도 늘어갔다. 열심히 일군 이 꿈의 집에서 우린 평안함을 느꼈다. 집은 세상의 위험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줬고, 지친 심신을 회복시켜주는 안식처가 되어줬다. 

     투우장 한 쪽에는  소가 안전하다고 느끼는 구역이 있다고 한다. 투우사와 싸우다 지친 소가 숨을 고르고 기운을 되찾는 장소이다. 소만 아는 그 자리를 스페인어로 퀘렌시아(Querencia)라 부른다고 한다. 어쩜 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이런 회복의 장소가 필요한 것 같다. 나에겐 우리 집이 바로 그  퀘렌시아였다.

     지난 일년은 내 삶에 힘든 순간들이 많았다. 아버님을 떠나 보냈고, 연이어 십년을 같이 한 반려견이 떠났고, 금전적인 손해와 사람들에게 받은 상처로 가슴이 찢어지듯 아팠다. 너무 힘들어서 그랬는지 언제부턴가 그렇게나 편하던 내 집에서마저 평안함을 찾을 수가 없었다. 되레 집이 떠나보낸 이들의 빈자리를 느끼게 했고, 내가 가진 것보다는 잃은 것에 대한 억울함만 떠오르게 했다. 이런 부정적인 감정들로 마음이 차오르니, 결국엔 몸에 덜컥 병이 찾아왔다. 병원에서도 원인을 찾지 못하는 병이었다. 그래서 일을 내려놓고 쉬면서 뒷마당에 텐트를 쳤다. 아무것도 없었지만 행복했던 나의 첫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서였다. 원하는 것을 많이도 얻었는데 왜 그때보다 더 안 행복할까? 텐트 안에 고요히 앉아 나 자신에게 묻기도 하고, 또 그 시절의 추억을 소환해가며 혼자만의 시간을 보냈다. 그랬더니 조금씩 답답했던 가슴이 트였고, 마음에 평화가 들기 시작했다. 

   난 오늘밤도 빗방울이 텐트를 두드리는 소리를 들으며 누워있다. 이 안에서 난 호흡을 고르고 마음을 추스리며 세상으로 다시 나갈 힘을 되찾는 중이다. 내가 찾은 나만을 위한 공간, 나의 퀘렌시아다. 이 작은 방이 없었다면 내 생각은 많이 거칠어지고 마음도 황폐해졌을 것이다. 거세진 빗소린데도 텐트 안으로 비 한 방울 들지 않는다. 그래서 더 아늑하다. 이런 천쪼가리 텐트 하나로도 이렇게 행복할 수 있는게 삶인데, 감사함이 마음에 차오르기 시작한다. 하늘에선 끝없는 축복이 비처럼 쏟아져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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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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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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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목에 기대다 2019.12.23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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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소
불씨 2019.12.16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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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벌판 2019.12.16 (월)
그렇구나!한때 우리 곁을 스쳐 간 시간들이거기 광야에 죄다 모여 있었구나 연둣빛 새잎 돋던 신열의 봄 아침과불볕 속에서 노동을 바치던 여름 한낮과서성대던 갈잎들의 손 시린 가을 저녁이거기 모두 한자리에 엎드려숨죽이고 온몸으로 흰 눈을 맞고 있었구나 이제 곧 허리 굽은 12월마저 등을 보이면날개 큰 바람들의 휘파람 소리평원을 가로지르는 세월의 바퀴 소리   동상 걸린 대지는 소록소록 그리움 하나로 겨울을 나겠구나한...
안봉자
모국어의 이끌림 2019.12.16 (월)
아침부터 짙은 먹구름이 낮게 깔렸다. 피로에 지친 몸은 금방이라도 비를 출산할구름만큼이나 무거웠다. 늘어진 몸을 마냥 침대에 묻고 싶으면서도 한편 누군가 로부터 이해받고 공감대를 헤집으며 교류하고 싶었다. 바쁘다는 핑계와 생활의 염려로 멀어진 문학과인간적 소통의 단절이 가져온 결핍감 때문이었으리라. 몸을 일으켜 헛헛한 마음을 채우기위해 집을 나섰다.타국에서 모국어를 등지고 살아가는 이의 고달픔을 달래기 위한 선택이었을까?...
권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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