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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반이 틀어진 여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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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 : 2018-10-22 16:46

박병호 / 한국문인협회 밴쿠버지부 회원
그해 3월 첫 장날은 찬 공기가 남아 있어도 추위를 느끼지 못할 만큼 화창했다. 따뜻한 희망을 품은 남풍이 부는 바다는 은빛 물결로 잔잔했다. 짙푸른 물이 물결치며 만든 새파랗고 신비로운 색상들이 고흐의 ‘몽마주르의 고귀한 석양 하늘’을 떠올렸다. 꿈을 안고 떠나는 사람들을 설레게 만드는 부두에는 남해 섬들과 통영을 오가는 30톤 여객선 하나가 출항을 기다리고 있었다. 빛바랜파랑과 때 묻은 흰색이지만 태평양 횡단에나 어울릴 이름을 가진작은 배였다.

예쁜 파랑새 호는 4시가 되자 “통통통” 심장 고동 소리 같은 발동기 소리로 바다를 울리며 떠남을 알렸다. 이어 퍼진 “부우~웅” 뱃고동 소리에 표를 살 시간이 없었거나 안 산 사람들이 일시에 몰려배에 올랐다. 한산도, 비진도, 욕지도 등에서 장 보러 왔던 사람들은 이 배를 타야만 돌아갈 수 있었다. 허리와 허벅지까지 통이 넓고 발목으로 내려갈수록 좁아지는 바지에 여러 잡색의 털실로 스웨터를 짜 입은 아낙들의 스타일과는 다르게 단조로운 옷의 한 여인과 남편과 그들의 아이도 천신만고 끝에 아수라장으로 변해가는 배에 올라탔다. 

귀티나게 굵은 옷감으로 밑단 둘레가 통바지처럼 크게 만든 검정 치마바지와 화려한 붉은 꽃 하나 박힌 흰색 원피스를 입고, 머리에는 한가득 봇짐을 이고 한쪽 팔로 짐을 붙잡은 여인과 국민학교 입학 직전 연령으로 자란 아이를 한 손으로 안은 채, 다른 한 손은 여인의 한쪽 팔을 감싸 잡은 남편도 바늘 하나 꽂일 데 없는 공간에서 다른 승객들과 몸이 일체가 되어갔다. 정원을 초과한 게 확실했지만, 누구도 표정으로도 질타하지 않았다. 마지막 배를 놓치지 않고 타는 데 성공했다는 안도감을 빼앗기고 싶지 않은 승객들을 가득 실은 배가 오리처럼 기우뚱거리며 항구를 떠나갔다. 

출발부터 승객들과 배 모두는 하나가 되었다. 조류에 떠밀려 표류하듯이 전후좌우로 군무를 추었다. 다들 의지대로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병에 걸린 환자 같았다. 배가 사람들의 쏠림 방향으로 기울었다가 평형을 회복하기를 반복했다. 그러나 나아갈수록 기울어진 배가 정상으로 돌아오는 탄력성이 떨어져 갔다. 그런데도 선원이나 승객이나 위험을 감지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마 감지했어도 표현해서는 안될 것 같은 상황에, 감각을 일부러 닫았는지도 몰랐다.  세상에 겁이 없다면 내 목숨 하나 건지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의 행복감을 앗아갈 위인은 그렇게 많지 않다. 

잠시 후 좌측으로 흔들리다 천천히 제자리로 돌아오던 배가 급격히 전후로 흔들리며 사람들이 배 앞쪽으로 쏠렸다. 아이를 안아 두 손을 쓸 수 없던 남편이 아들을 안은 채 앞으로 넘어졌다. 동시에배가 선착장에서 멀어지는 순간 맨 마지막으로 배에 “쾅” 소리로 달려들며 몸을 배 끝 바닥에 날려 겨우 타는 데 성공했던 덩치 큰 남자들이 뒤에서 남편을 덮쳤다.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한 남편은 재빨리 바닥 위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자신의 두 팔과 두 무릎을 지지대로 포복 자세를 취했다. 기어가는 자세로 엎드려 아들에게 든든한 지붕을 만들어 주었다. 그 순간 아이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높고 넓은 지붕은 파미르가 아니었다. 

엎어지면 덮친다. 순간적으로 평형을 잃고 몸을 가누지 못하는 승객들이 아이 아빠의 등 뒤를 포개고 엎어진 그 덩치 큰 남자들 등에 엎어졌고 같은 일이 또 다른 사람들에 의해 연속되었다. 순간적으로 겹겹 인간 탑이 만들어졌다. 어떤 탑 쌓기 대회에서도 이보다 빠르고 높은 탑이 만들어질 수는 없었다. 마치 흑사병에 죽은 사람들을 집단으로 묻기 전에 수십 겹으로 널브러지게 쌓아 둔 활동사진 같았다. 푸른 물결 일으키며 거센 바다로 나아가는 배 안은 37명의 사람과 화물로 범벅이 되었고 모두의 감각이 무너져 강제로 닫혔다. 

뇌는 느끼고 싶은 것만 느낀다. 그렇게 탑이 만들어지고도 한참이 지난 후에야 “아이고, 깨져 죽겠네~!” 참다못한 한 늙은 아낙의 신호탄과 함께 여기저기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동시에 “아빠~” 아빠의 어깨가 다칠까, 등이 무너질까, 팔이 꺾어질까 봐 눈을 크게 뜨고 부르는 아들의 작은 비명과 아빠가 이를 악물고 버티어 “딱딱”턱관절 디스크가 빠져나오는 소리만이 조용히 흘러나왔다. 사람이 치이고 밟히고 밀리고, 물건이 짓눌리고 찌그러지고 깨지고 지옥이 따로 없었다.

잠시 후 배가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옆으로 약간 기울었다. 평형을 회복할 균형추가 사라졌다. 그래도 어설프지만, 유유히 남서쪽 트인 바다로 나아갔다. 무슨 일이 있냐는 듯 멈추지 않고 태평하게 갈 길을 갔다. 선원들도 승객들도 누구도 앞날을 생각하지 않았다.배 안에서는 곧 닥쳐올 미래도 너무 먼 미래나 마찬가지의 미래였다. 사람들은 먼 미래는 생각하고 싶지 않다. 신의 영역으로 여긴다. 예기치 않은 불행이 왔을 때 행운도 곧 따라서 오리라 생각하면 결코 손해 보는 장사도 아니다. 

선장과 선원이 보기에 파랑새 호의 장래는 밝든지 어둡든지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기우뚱한 채 나아가도 조금만 가면 첫 목적지 한산도가 나오고 그곳에서 승객들이 많이 내리니 그저 순간만 참아내면 균형은 회복될 것이었다. 다년간 험한 폭풍우 속 항해에서도 무사했던 그들이었다. 태평양 횡단 정도는 되어야 염려할 가치있는 바닷길 이었다. 이 정도의 기울기에 멈춘다거나 되돌아간다는 것은 자존심이 허락하지도 않았다. 맹숭맹숭하게 항해하는 것보다 기울여 항해하는 것이 청룡 열차 운행하는 것보다는 못하지만 전율 있어 보이기까지 했다. 

배 안은 가창오리떼 하나 되어 군무를 추듯 중심을 잃었으나, 엎어지거나 벽에 기대 일체 대형으로 늘어졌다. 한 몸이 된 승객들이 좌로 우로 앞으로 뒤로 춤을 추며 배에 몸과 소유물과 보이지 않은 모든 것을 맡기고 있었다. 모두가 하나가 되었다. 무사히 오늘의 마지막 배에 올라탔다는 것만으로도 일심동체가 되어 있었다. 여전히 바닥에 깔려 팔과 무릎, 네 기둥으로 어금니를 악물고 버티고 있는 남편을 안타깝게 바라보는 여인도 승리자이긴 마찬가지였다. 자신도, 아들도, 남편도, 욕지도 처녀들에게 팔 수예품과 혼수품도 모두 무사히 탔으니 아이만 다치지 않는다면 죽어도 눈을 감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때 기도할 것이 있다면 가장 먼저 닿는 큰 섬에 어서 닿게 해달라는 것뿐이었다. 사람들이 많이 내리면 배가 똑바로 서고, 공간이넉넉 해지고 엎어진 사람들도 일어나고, 남편도 더 엎드려 기합 받을 필요가 없었다. 오직 아이만이 불안감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아가, 네 몸에는 혁거세 왕과 양녕대군의 피가 흐르고 있다. 두 왕족의 피를 받은 사내대장부는 울거나 약한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 언제 어디서든 호랑이가 물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것을 명심해라.”

여인은 사람들의 퀴퀴한 냄새와 앓는 소리가 귀를 때려도 어찌할방법이 없는 지금 상황에서는 무사히 목적지까지 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만을 떠올려야 할 것으로 생각했다. “아가, 곧 사람들이 내리게 될 거야.” 땀을 비 오듯 흘리는 아빠를 바라보고 누워서 열과 땀을 발산하기 시작한 아들을 바라보며 여인이 흔들리는 인간탑에 어깨를 기대어 인자하게 말했다. 욕지도에 내려서 혼수품을 팔고 고깃배를 얻어 타고 여수로 가려고 했던 여인은 실지로 한산도가 얼마 남지 않아 별 걱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못 견디겠다는 듯이 남편의 머리가 아들을 향해 떨어졌고두 팔이 부들부들 떨었다. 봇짐을 떨궈 팔 지지대로 심어주기를 시도하다 틈이 없어 실패하자 여인은 엎어진 사람들 등에 대고 크게 고함을 쳤다. “그대로 계속 있지 말고 몸을 일으켜 보세요, 아이가 깔려 죽겠어요. 애 아빠가 더 지탱할 수 없어요.” 그때야 여인은 후회가 몰려와 혼자 말했다. “장날 배 타지 말고 여관에서 하룻밤 자고 내일 아침 배를 타고 가자던 남편의 말을 들었어야 했는데…” 

여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천둥이 치듯 “쿵” 소리가 났다. 그리고 남편 등에 엎어진 사람들이 벽체로 튕겨 날았다. 일부는 바다에 빠지고 일부는 벽에 부딪히며 “으악, 아악” 비명을 질러댔다. 여인도 튕겼으나 사람들이 튕겨가며 비어있는 남편 등으로 엎어졌다. 행운이었다. 남편을 차지했다는 것 외에도 남편이 더 어금니를 악물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자신은 결코 무거운 돌덩이가 아니었다. 포복 자세는 그대로였지만 남편 두 팔이 이제 더는 흔들리지 않았다. 고개도 떨구지 않았다. 

충돌 순간 아들은 벽 쪽으로 밀렸으나 아빠의 오른팔과 무릎에 막혀 튕기지 않았다. 갑판 아래 선실에 있던 사람들이 “도대체 무슨일이야!” 겁먹은 소리를 내며 서로 올라오려고 하는 통에 배가 심하게 흔들렸다. 바다에 빠진 사람들의 갑판 빈자리를 선실에서 올라온 사람들이 채웠다. 그러나 곧 조금 전과는 반대 방향으로 배가 몰리며 다시 “쿵”하는 소리와 함께 벽과 선두 쪽에 있던 사람들이 바다로 튕겨 나갔다. 

통영항으로 들어가려고 하는 배들과 나오려고 하는 배들이 붐비는 곳에서 일어난 큰 배와의 충돌사고가 분명했다. 사람들이 정신을 잃을뻔 하게 큰 소리를 만들어낸 사고였으나 여인과 남편과 아들은 무사한 편이었다. 오히려 아이 아빠는 강하게 물 필요가 없으니 어금니와 턱뼈의 고통에서 해방이 되었다. 많은 사람이 바다에 빠져 넉넉해진 배 안은 갑자기 찾아온 천국이 분명했다. 아무도 없는 기둥을 등 지지대로 삼아 여인의 가족 셋이 함께 자리를 잡았다. 아이는   아빠를 등받이로 삼아 안전하게 안겼다. 

지옥이 따로 없는 혼란의 공간은 이제 배 밖에서 펼쳐졌다. 사람들의 살려달라는 비명과 허우적거리는 소리 등으로 난리가 아니었다. 배 안에 남은 사람이 겨우 다섯 명 정도 되는 것 보니 30명이 넘는 사람들이 바다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음이 분명했다. 배 안에 남게 된 다른 사람들은 갑판 아래 선실에 있던 사람들이었다. 한 사람은 머리가 깨지고 피를 흘리고 다른 한 사람은 팔이 부러져 있었다. 그러나 누가 누구를 간호할 시간도 여유도 없었다. 스스로 살길을 찾아야만 했다. 나부터 살고 봐야 남도 도울 수 있는 절체절명의 시간이었다. 

아이 아빠는 턱이 너덜거리고 어금니 모두가 흔들거렸다. 아이는 넘어질 때 바닥에 부딪혀 뒤통수가 많이 부었으나 뇌는 무사했다. 여인은 쿵 하며 배가 부딪치는 두 번의 순간 상하 몸체가 서로 다른 방향으로 흔들리며 틀어진 골반이 바로잡혔다. 아무런 예고도 없이 기분 나쁘게 변해버린 바다에 내던져져 사경을 헤매는 사람들에 비하면 부상은 새 발의 피에도 못 미쳤다. 시간이 흐를수록 생명이 죽어가는 바다에는 사람들의 아우성이 사라지고 결국은 폐허와 같은 정적만이 떠돌았다. 

그때야 배에 남겨진 사람들도 생명의 위협을 느끼기 시작했다. 빨리 올 것으로 기대했던 구조선이 오지 않는 바다 위 하늘은 무언가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들만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배가 서서히 가라앉고 있었다. 물이 차오르기 시작하면 순식간에 가라앉는 상황임에도 인간을 증오하는 괴물이 구조를 가로막고 있었다. 햇빛에 노출되면 죽는 괴물이 빠른 속도로 태양을 집어삼키며 거짓을 고했다. ‘주변 어선들에 의해 모두가 구조되어 한 사람의 사망자도 없다.’라는 희소식이 어업정보 통신국에 전해지고 있었다.

가장 듣고 싶어 했던 소식, 모두가 구조되었다는 소식은 너무도 명확히 그리고 빠르게 구조 당국에 받아들여졌다. 인간은 대부분 듣고 싶은 소식을 접하면 진위를 가리지 않는다. 굶주린 하이에나처럼 떼로 달려들어 뼈도 남기지 않게 뜯어 삼킨다. 구조선이 나타날 이유가 없게 된다. 태양이 마침내 수평선 아래로 사라지자 태양이 남긴 붉은 흔적과 함께 바다는 그림 같은 풍경을 펼쳐 놓았지만 죽어가는 생명을 밝히지는 못했다. (다음 호에 계속) coreits1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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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심이 2019.06.18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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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 폭탄을 심어 둔 그가 오고 있다순식간에 사라졌다가 나타난 그 겨울다리가 후들거리고 어지럽던 시국을 청산하고전신이 피투성이 회오리를 일으키면서 오고 있다숨바꼭질만 일삼던 그의 머리 위로후광이 빛나고 배꼽엔 별을 매단 채한 걸음 두 걸음 그가 오고 있다모래알같이 수많은 역풍에 빼앗긴 시간을 두고하얀 알약 같은 목숨 붙들고 사랑의 지쳐버린 그가 오고 있다꺽, 울음을 토하던 세월도 함께 오고 있다
김지현
선선한 바람이 가을 공기를 뱉아 내며 계절변화가 시작되던 지난해 9월 엄청난 일이 벌어졌다. 그 당시 나는 가까운 병원에서 조직검사를 받았는데, 일주일이 지나 갈 무렵 병원으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좀 더 정확한 검사가 필요하다며 밴쿠버 다운타운에 있는 종합병원으로 검사예약을 하라는 친절한 전화였다. 그 다음 날에는 암 3기에서도 볼 수 있는 세포를 지난번 조직검사에서 발견했다는 결과 지를 가정의로부터 전해 받았다. 병원건물...
섬별 줄리아 헤븐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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