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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초록 그린란드(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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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 : 2018-06-11 10:16

박병호/한국문인협회 밴쿠버지부
(전 호에서 계속)

이윽고 두 남자는 서로 다른 색깔의 미소를 지으며 일어났다. “아침, 어서 먹고 출발합시다. 안 먹으면 갈 수 없어요. 든든히 드세요. 배 고프지 않아도 먹어야 해요.” 이사벨이 상기된 입가에 웃음을 띤채 말했다. 그들은 어느 한가한 편의점에서 세월을 마시듯 천천히 커피를 마셨다. 마지막이 될지모를 통나무집에서의 시간을 빨리 흘러보내기 싫었다. 누크에 도착하기까지 배를 울렁거리게 만들 배 안에서 커피를 마실 수 있기나 할까 몰랐다. 청마가 커피꽃 활짝핀 카페에서처럼 커피 건배를 제안했다. “수빈, 이사벨, 캔, 행운을 빌어요.” “당신도!” 그들은 다가올 것 같은 행복을 미리 주고 받았다.

 

럭비공 모양처럼 육지로 파고든 선착장에 정박해 있는 흰 보트들이 밝은 아침 햇살아래 유난히 하얀 빛을 발하고 있었다. 밧줄을 풀기위해 청마가 몸을 구부렸다. 잠시후 배는 기어가듯 천천히 물안개 핀 아침 바다를 헤치며 항구 밖으로 나아갔다. 다른 몇몇 작은 배들도 슬슬 채비를 하고 있었다. 기어가 매끈하게 만들어져 소음이 적은 일부 고깃배의 모터 소리 외에는 아무 소리도 전달되어 오지 않았다. 항구 밖으로 나간 배들은 각자 가야할 곳을 찾아 뱃머리를 돌렸다. 한 배에 타서 같은 방향이라고 생각되는 사람들도 아마 각자 서로 다른 갈 곳에 대한 꿈을 그리고 있었을 것이다. 그들의 수륙양용 카라반, 4인용 보트밴은 드디어 항구의 물 냄새와 끼륵끼룩 지저기는 갈매기들의 불연속적인 합창을 뒤로 하고 대양의 진한 바다 냄새를 쫓아 속도를 높여 나아갔다.

 

자율주행차 스크린처럼 선명하진 않지만 바다 밑을 비추는 운전석 화면에 짙은 청색과 주황색이 지나갈 즈음 물속에 진푸른 해초의 인광이 스쳐갔다. 물속 낭떠러지가 보이지는 않아도 동그란 공간안에 모여있는 진한 군청색만으로도 그곳이 몇 백미터 낭떠러지임이 분명했다. 그곳에 여러 색깔의 물고기들이 그들의 휴양지 펜션에 온듯이 한가로이 헤엄치고 있었다. 청마는 그곳에 그물을 한 번 던져보고 싶었으나 곧 그것은 아니다 싶었다. 바람은 잔잔했고 배는 희고 푸를 섬을 향해 순순히 미끄러지듯 나아갔다. 해가 지고 밤이 돌아올 무렵 눈에 불을 켠 물고기들이 지나가고 캔과 이사벨은 잠이 들었다.

 

앞으로도 두세 시간이 더 지나야 잠이 다가올 수빈이 졸음과의 전쟁을 벌이고 있는 청마에게 다가가서 물었다. “속이 울렁거려 더 이상 갈 수가 없어.” 가벼운 멀미 때문이었다. “쉴 수 있지만 목적지에 도달하기 전에 날씨가 마술을 부릴까봐 진행을 지체할 수 없을 거야.” 청마가 수빈의 어깨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말했다. 캔을 깨워 키 잡이를 맡기고 우린 선실 안으로 들어가 함께 좀 쉬어야겠어.” “아니야 나 때문에 일정이 어긋나면 안되, 원래대로 해.” 수빈이 막아섰다. “저 남자는 200%야. 내가 욕심을 버리고 오길 잘했지. 그의 나머지 100%마저 나 혼자 다 가지려고 했던 지난날이 후회스러워. 나를 향한 100%중에 1%라도 절대 소홀히 할 남편이 아닌데. 내가 내 것이 될 수 없는 나머지100%를 타인에게 쓰도록 허락하지 않으면 내 100%마저 위태로워 질지도 몰라.”

 

잠 못 이루는 그들에게 밤 바다의 색은 짙게 다가왔다. 수면을 어슬렁거리는 고기들이 갑자기 위로 뛰어오르는 작은 고기들을 잡아먹었다. 정어리떼 뒤에는 백상아리, 혹등고래, 범고래들이 몰려들었다. 검은 바다 위 하얀 하늘에는 더 크고 힘센 새들이 바다제비 같은 약하고 작은 새를 뒤쫓으며 무리지음을 방해했다. 크고 힘센 새들이나 물고기가 아니라면 어떤 생물도 인간보다 더 안전하게 살기가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다는 넓고 평화롭다가도 갑자기 사납게 변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 거룩한 가치를 추구하는 생명들은 콘크리트를 뚫고 뿌리내리는 잡초처럼 강인해 보이지만 너나 할 것 없이 매우 연약한 존재였다.

 

동이 트기 시작했을 때는 날이 훤히 밝기 전에 배를 추진하는 선외기를 떼고 조류에 배를 맡기고 싶었다. 해가 떠오르자 다른 고깃배들이 보였다. 대부분 멀리 해안 쪽에서 조류를 가로질러 포복하듯 낮게 흩어져 있었다. 눈부신 빛이 물 위로 쏟아지고 해가 선명하게 드러났다. 잔잔한 수면이 반사시킨 광선이 눈을 찔렀다. 캔이 여전히 키를 잡고 있는 배는 잔 물결들의 춤추는 은빛을 동력삼아 천천히 평안의 바다를 항해했다. “날씨가 좋은 것이 행운이야.” 수빈이 혼자 말했다. 수빈에게는 더욱 그랬다. 큰 멀미도 하지 않았다. 배가 크게 흔들리지 않고 항해했기 때문이다. 멀리서 갈매기들이 날고 있었다. 그린란드에 다 와가고 있었다. 해 뜬 후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자 시야에 들어오는 배는 세척밖에 없었고 그 배들도 역시 해안 쪽에서 기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때 캐빈이 소리쳤다. “그린란드다!”

 

배 내부 왼편 소파에서 몸을 뒤척이던 청마와 오른편 소파에서 막 잠이 깬 수빈과 이사벨이 후면 데크로 몰려갔다. 아랫부분은 보트같고 윗부분은 카라반 같은 모양의 작은 모트밴에 세 사람의 하중이 쏠려 침몰위험에 처했다. 그러나 캔이 순식간에 반대편으로 보통사람 두 배의 체구를 날려 배의 균형을 잡고 소리질렀다. “한테 몰려가지마요!” 잠시 후 노랗게 겁먹은 수빈의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이사벨의 오른쪽 쳐진 어깨가 왼쪽어깨와 평평해졌다. 셋은 함께 부둥켜 안았다. 서로를 공유하며 새 왕국을 꾸밀 수 있을 것 같았다. 폭풍우를 견디고 신천지에 닿은 느낌이었다. “좋은 날씨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수빈이 어린아이처럼 기도했다.

 

이사벨이 청마의 뺨에 진한 키스를 퍼붓고는 키를 잡고 있는 캔에게 달려가 가볍게 입술에 입맞추었다. 청마는 창백한 수빈의 얼굴이 빨간 핏빛을 띠도록 두 손으로 수빈의 얼굴을 감싸 쓸어 올리며 미풍에 나부끼는 머리카락에 콧방울을 비벼댔다. “캔, 이제 키를 넘기고 잠깐이라도 눈을 부치고 두 팔 벌려 새 세상을 품어봐.” 청마가 캔에게 저음으로 소리쳤다. 캔이 아래층에 내려가 망원경을 가져왔다. 데크로 가서 누크 항구를 살피더니,“나무 한 그루가 없네. 그린은 무슨!” 망원경을 바다에 던지며 성을 냈다. “아니, 캔! 넌 그린란드가 초록 그란란드가 아니라는 것을 이제 안 거야?”

 

그린란드가 이미 초록으로 덮인 그린란드였다면 우리가 왜 여기까지 왔지?” 청마 역시 조금 고음으로 대꾸했다. “무슨 일이야. 숙녀들 앞에서 고성 지를 일이라도 있어?” 이사벨이 후미에서 누크쪽을 바라보고 있다가 두 남자 사이에 끼어들었다. 수빈은 더 멀찍이 서있다 앉았다. “이사벨, 너는 그린란드에 초록 나무숲이 있다고 믿었니?” 청마가 아니라는 대답을 기대하듯이 물었다. 배는 미끄러지듯 누크항 가까이 왔고 안전하게 정박할 곳으로 안내할 예인선이 다가왔다. 캔은 여전히 화를 누그러뜨리지 않고 있었다. “캔, 그린란드가 앞으로 새로운 자전주기를 맞아 초록이 무성했던 1천년 전의 환경으로 되돌아갈 것을 기대하고 온 것 아니야?” 이사벨이 따지듯 물었다.

 

“기후변화로 무성한 숲은 아니어도 제법 초록들이 자라난 줄 알았다고.” 캔이 여전히 씩씩댔다. “맞아, 우린 변화를 기대하고 있었어. 동토가 농토가 되고 헐벗은 광야가 나무가 빽백이 들어찬 숲으로 변할 기대감으로 왔다고. 벌써 남서부 일부에는 초록으로 덮여 있기도 해. 함께 한 그루 한 그루 심어가면 조만간 우리가 그리던 초록 숲을 볼 수 있을 거야.” 이사벨이 학생을 가르치듯 훈계했다. “나무들을 학생들로 아는구나. 우리 나이가 몇 살인데, 지금 심어봤자 우리 죽기 전에는 절대 우거진 숲이 될 수 없어. 그리고 난 당장 숲이 없는 곳에서는 살수가 없어. 우리 할아버지가 유틀란트 반도의 자갈밭을 감자밭으로 일구며 써놓은 일기와 똑 같은 일기장을 남기고 싶지 않거든.” 여전히 기세 등등하게 말하는 캔이었다.

 

이사벨은 한숨만 쉬고 대꾸하지 않았다. 청마가 끼어들었다. “캔, 설령 우리가 심은 나무가 우리 죽기 전에 초록을 이루지 못할지라도 후손들은 그 숲 속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 캔의 어깨를 감싸며 청마가 조용히 말을 이었다. “이사벨이 말한 것처럼 우리 넷이서 함께 한 그루 한 그루 초록 나무 심어 숲을 가꾸고 일루리사트 빙하를 보며 천년수로 만든 맥주를 마시는 날이 올거야. 묵묵히 살다보면 숲이 생기겠지. 숲다운 숲이 생기기 전이라도 우리 땅에 예쁜 집을 짓고 유리온실 속에 초록들이 자라게 하면 숲의 역할을 할거야. 해지는 일루리사트 해변에 앉아 큰 채를 휘저어 통통하게 뱃살 오른 새를 잡아 항아리에 발효시키면 우리가 직접 만든 빙하표 맥주 안주가 될거야.” 전혀 태도가 변할 기미조차 없는 캔을 향해 청마가 약장수처럼 매달렸다.

 

“나는 선조들처럼 땅을 창조하고 싶지 않아. 척박한 땅을 개간한 역사는 우리 할아버지 대에 이미 끝난거야. 나는 그런 덴마크의 역사가 실어서 캐나다에 빠졌고 밴쿠버에서 코펜하겐으로 유학온 이사벨을 붙들고 늘어졌어. 결국 그녀와 함께 덴마크를 떠날 수 있었고 난 내 인생 목표를 이룬거야. 다시 과거의 토지 개척자 덴마크 인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나를 설득하려 하지마. 역사는 반복하는 거야. 나는 갈색 땅을 초록 땅으로 가꿀 DNA가 남아 있지 않아. 잘 살아 친구들! 나는 저 황량한 땅에 발도 들여 놓고 싶지 않으니까. 곧장 왔던 길로 돌아 갈거야!” 캔이 조용히 속사포를 쏘아대듯 말했다. 모두가 그를 포기했다.

 

“말도 안돼 돌아갈 때까지 날씨가 좋다는 보장도 없어. 혼자서 키를 붙들고 가다가 조타수도 없이 무슨 일이라도 생기거나 작은 보트밴이 악천후라도 만나면 어쩌려고…” 청마가 말렸지만 소용없었다. 바이킹의 고집이 사라지지 않고 DNA로 남아있었는지 결국 아무도 캔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곧 이어 그는 혼자서 되돌아 가는 항해를 시작했다. 동시에 수빈이 혼자 남은 이사벨로 인해 불편해할 청마를 위해 매우 조용히 속삭였다. “여보, 나는 여전히 그린란드가 푸른 초목으로 뒤덮인 땅이라는 생각이 펄펄 살아있어요. 그 마음이 영원히 간직될 것이라는 것을 믿어요. 그리고 나와 이사벨은 이제 둘도 없는 친구에요. 당신의 부인인 나를 대하듯이 스스럼없이 이사벨을 대해줘요. 불쌍하지 않아요? 나는 그녀와 함께 당신을 공유한다 해도 행복할 거예요. 깊고 넓고 푸른 대양의 가슴을 가진 남자가 여전히 100%로 남편으로서 나를 대할 테니까요.” 한 남자는 말없이 생각에 빠졌고 다른 한 남자는 돌아갔다.

 

결국 한 남자와 두 여자만 새 땅에 오르고 누크 시내 한 B&B에 여장을 푼지 이틀만에 켠 TV에 뉴스 속보 하나가 떴다. ‘누크항에서 배핀섬 이콰루이트로 출발한 카라반과 보트를 합친 모양의 하얗고 푸른 배 한척이 442년전 영국 탐험가 마틴 프로비셔처럼 항해하다 데이비스해협 레절루션섬 북동측 1마일 해상에서 풍랑을 만나 좌초되었고, 헬기를 동원해 수색에 나선 캐나다 해군이 온 종일 수색했으나 배와 함께 탐험가 캔이라는 사람을 찾지 못하고 있다고...’ 덧붙여 ‘그는 첫 탐험에 나선 아마추어 프론티어지만 25년을 컴퓨터 프로그램 기술자로 일하고 현재는 가보지 못한 곳으로 인류를 연결해주는 가상현실, 맨눈으로 보지 못하는 정보로 인류를 연결해주는 증강현실을 인류에게 적용시키기 위해 탐구하고 있는 미래산업사회의 사회시스템설계 베테랑 엔지니어라고…’

 

그 순간 “오, 캔!” 이사벨이 남편의 이름을 부르짖었다. “당신은 100조개의 세포를 죽인거야. 당신은 나를 위해 일부러 풍랑의 바다로 돌아 갔어. 캐~엔! 그러나 나는 우리 함께 새 땅에서 새 삶의 방식을 창조하고 싶었다고, 이 바보야! 당신은 늘 입버릇처럼 생명은 끊임없이 자기 분열을 해야 한다고 했어. 생명은 누군가에게 독점되는 것보다 서로 필요한 두 세사람에게 공유되는 것이 거룩하게 만들어진 본래 모습과 더 닮은 삶일지 모른다면서.., 멍청이 캔!” 이사벨의 해협의 바다를 가로지르는 탄식은 그치질 않았다. 끝.

(coreits1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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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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