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벌새에 반하다 - 김베로니카

김베로니카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6-07-29 09:22

한국문협밴쿠버지부 회원기고/수필
보라색 라벤더가 향기로 나를 유혹한다. 바람이 불면 이리저리 흔들리면서 꽃들이 춤을 춘다.
가끔 테라스에 나가 앉아 바람도 맞고 빗소리에 마음을 뺏기기도 하고 또 햇볕을 쬐면서 멍하니 푸른 하늘에 떠있는 구름도 바라본다.

어느 날 우연히 내려다본 라벤더 꽃 무리에서 황홀한 장면을 보았다. 처음으로 발견한 이상한 몸짓의 새였다.
한 자리에 정지한 것 같은데 날개를 계속 빠른 속도로 움직여서 그 모양을 가늠할 수가없었다. 
잠자리 날개 같기도 하고 거미줄 같기도 한 얇디얇은 날개를 회전하면서 앞뒤로 왔다 갔다 쉬지 않고 움직인다. 
아! 벌새구나 하고 가슴이 콩닥거렸다. 그것은 경이 그 자체였다. 말 만 듣던 그 벌새였다.
몸집은 날갯짓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고 가늘고 긴 주둥이를 꽃 속에 깊이 박고 있었다. 
나는 그 아름다운 몸짓을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에 카메라에 담을 욕심으로 정말 숨소리도 없이 몸을 움직였다.
하지만 벌새는 날아 가버리고 말았다. 그냥 조금 더 볼 걸 하고 후회했지만, 그 후론 한 번도 그 자태를 나타내지 않았다.

남편이 동네 호숫가에서 벌새를 봤다고 했다.
호숫가에 있는 앙상한 나무가지 위에 벌새 한 마리가 매일 그 자리에 있다고 한다.
정말 벌새는 거기 있었다. 가지 맨 위에 시야가 확 트인 자리에 벌새는 외로이 있었다.
이 무성한 나무 위에 있었다면 아마도 나뭇잎인 줄 알고 그냥 지나쳤을 것이다.
고개를 쳐들고 유심히 살펴보지 않으면 결코 볼 수 없는 작은 몸집의 벌새는 잎이 없는 죽은 나뭇가지 위에 앉아 있었다.
혹시 인기척에 놀라 날아갈까 노심초사하면서 벌새를 지켜보는 게 하루의 일상이 되었다.
날씨가 흐려도 피곤한 날도 벌새를 보고픈 마음에 우리는 거기에 갔다. 
벌새도 우리 마음을 아는지 가끔은 이 가지에서 저 가지로 폴짝거리면서 아름다운 자태를 조금씩 보여준다.
햇빛 사이로 반짝이는 몸은 깃털이 청록색으로 빛나고 목덜미와 눈은 빨간색으로 너무나 아름다운 새였다.
몸은 집게손가락 정도이고 주둥이는 몸길이만큼 길어 보였다.
순간적으로 날아오르면 얼마나 빠른지 어디로 갔는지 방향도 가늠하기 어렵다.

어느 날 벌새가 사라졌다.
너무 섭섭해서 멍하니 서 있다 돌아오곤 했는데 그 옆 나무에 조금 통통한 벌새가 있었다. 
남편은 같은 벌새가 그사이 살이 쪘다고 했지만, 암놈임이 틀림없었다. 몸도 조금 통통했지만 그렇게 아름다운 색을 지니고 있지 않았다.
혹시 잘못됐나? 어디 먼 데로 이사를 했나 걱정을 했는데 아마 암놈을 만나서 새끼를 품으러 갔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벌새는 1분에 심장이 1200번 뛴다고 한다.
1초에 80번의 날갯짓을 하고 공중에서 정지상태에서 꿀을 빨아 먹는데 날개를 못 움직이면 10초도 안돼서 죽는다고 한다.
몸은 아주 작은 것은 5cm에 체중은 1.8g이라고 하니 가히 상상이 안 된다. 큰 것은 21.5cm 몸무게가 24g이라고 한다.
남북 아메리카에서 알래스카까지 분포되어있지만 주로 열대지방에 많다.
전 세계 320종이 있고 가지 위에 솜털 이끼 따위를 거미 줄로 얽어 작은 호두만 한 집을 만들고 알은 1, 2개를 품는다고 한다. 

내가 벌새에게 더 반한 건 남아메리카 원주민에게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서다.
어느 날 숲에 불이 나고 숲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단다.
모든 동물은 다 도망가고 크로킨 디 라는 작은 벌새만 남아서 그 작은 부리에 물을 담아 와서 한 방울씩 떨어뜨리고 불을 끄려고 애썼다고 한다.
모두가 비웃고 한심해 했지만 크로킨 디는 당당히 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내가 하는것뿐 이라고 열심히 물을 날랐다.
살면서 어려운 일이나 죽을 만큼 힘들 때가 닥친다면 작은 벌새 크로킨 디처럼 조그만 일에도 온 마음을 다하는 그런 마음을 갖었으면생각해본다.
한 방울의 물이라도 모이면 큰 바다가 되듯이 우리도 크로킨 디처럼 자기가 해야 할 일만 열심히 해도 얼마나 아름답고 좋은 세상이 될까? 

여름은 이제 시작이다. 언제 다시 벌새가 다시 내 눈앞에 나타나서그 아름다운 몸짓을 보여줄지 모른다.
호숫가 그 자릴 지나갈 때면 앙상한 그 가지 위에 다시 날아올 벌새를 그려본다.
한 번에 800킬로까지 날 수 있고 3200까지 비행할 수 있다는 조그만 벌새는 그리운 고향 그리운 사람의 마음속을 향해서 지금 날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풍경 속 평온 2024.04.15 (월)
햇빛 가리개 구름은머리에 하이얀 솜털을뒤집어 쓴 산봉우리를살포시 허공을 헤엄친다하늘의 풍경을 그대로 담은바다의 모습은 그지없이 평온하다바다와 산은 저마다의 사연이 있지만그냥 묵묵부답으로 본연의 자태를 취할뿐아무런 댓가를바라지 않는다하늘과 산과 바다를멀리서 지켜보는저 학동은 그지없이유유자적한데저 멀리서 뜬금없이먹구름 하나가비를 몰고오네 
구대호
영원한 이민 2024.04.15 (월)
  “권장로님, 아버지께서 오늘 아침 천국으로 아민을 떠나셨기에 환송 예배를 드립니다.” 친구 딸아이의 멧시지 였다.      하나님의 선하신 뜻과 주권 가운데 나의 사랑하는 친구 문장로가 지난주 4월 1일 새벽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주님이 계시는 천국으로 금의환향(錦衣還鄕)했다. 그와 나는 오랫동안 신앙의 친구요 교회의 동료로 함께 해 왔다. 그는 과묵하면서도 유머가 많아 주변 사람들을 즐겁게 했다. 말이 별로...
권순욱
밟아라 2024.04.15 (월)
 서울에 사는 영적 동반자가 문자를 보내왔습니다. 영화 <사일런스>를 꼭 보라며 청주 상영관까지 알려줍니다. 그때부터 제 머릿속은 영화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찼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오래전에 그 영화의 원전인 『침묵』이라는 소설을 감명 깊게 읽고 가끔씩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더니 충북 내 영화관이 똑같이 종영하는 날, 가까스로 진천에 가서 영화를 보았습니다.실화를 바탕으로 한 엔도 슈사쿠의 소설...
반숙자
셀카 증명 시대 2024.04.15 (월)
세상은 변했어기우뚱 거리다 기울어 지다 엎어졌어마음을 나타내려 해도 이제는환적의 경유지를 밝혀야 하고무게의 중량을 홀수선에 남겨야 하는"마음 속으로" 는 사라지고"보시다시피"로 증명 해야 하는 세상마음을 찍을 수 없는 셀카에 의존하는증명사진 유행의 시대, 증명사진 요구의 시대여보시게나자네들과 나 사이에는이심전심의 토양에서우정 이라는 길을 돋우고 다지며믿음을 넓히고 오해를 메우는, 마침내무엇이든 실어 나르는 큰 길모여...
조규남
1.23세. 대학을 마치고 지도교수의 추천으로 들어간 나의 첫 직장은 강북구 미아동 소재 S여중이었다. 첫 출근 날 아직 군대도 미필인 시절, 솜털이 뽀얀 홍안의 청년이 여중생의 수업을 들어간다는 사실이 못내 마음에 걸리셨는지 교감선생님은 나를 따로 불러 세워 다짐을 하신다.“민 선생, 오늘 수업을 들어가게 되면 무조건 민 선생은 딸이 하나 있는 애 아빠라고 자기 소개를 하시고, 학생들이 딸 이름을 혹시 묻거든 ‘들레’라고 하세요.”라며...
민완기
삼겹살 2024.04.08 (월)
아들이 군대 간다고 둥지를 떠나고문 선생은 중첩된 설움을 곰 삭이며외롭다는 말 대신삼겹살 한 절음 불판에 그슬렸다사방에 튀는 기름 파편을 손등이 접수하며그렇게, 모르는 듯 타들어가고 있다 나무젓가락 사이 낑긴 고기가숨이 붙어 더 살아갈 날을 깨우고 있다참기름장에 발라 입에 넣고떠난 가족을 씹어 그렇게 삼켜 버렸다외로움은 콧날에 상큼하다는 말겨자 한입 넣지 못한 사람은 모른다혼미한 푸념을 담배 연기처럼 뱉어버리고앉았던...
김경래
팔자를 생각하다 2024.04.08 (월)
 가져가야 할 짐들을 거실 가득히 늘어놓은 채, 남편은 가방에짐을 챙겨 넣고 있다. 그가 짐 싸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그가 다시 떠난다는 게 실감 난다. 가방의 지퍼가 고장 났는지 닫히지 않는다고 남편이 말한다. 그를 붙잡고 싶은 내 마음이 염력을부린 듯하다.남편은 파도 치는 바다로 고생하러 가면서도 아내의 눈치를 본다. 뭘 사다 주면 좋겠느냐고 자꾸 묻는다. 대답 대신 고개를 흔드는데 눈물이 또 주책을 부린다. 냉장고 문을 열고...
정성화
봄밤 2024.04.08 (월)
부활절 날 밤겸손히 무릎을 꿇고사람의 발보다개미의 발을 씻긴다연탄재가 버려진달빛 아래저 골목길개미가 걸어간 길이사람이 걸어간 길보다더 아름답다
정호승
지난 주에 이어 계속 집도의는 캐나다에서도 이름 있는 Doctor라 했다. 수술실에 들어가니 남자가 7사람 여자 두 사람이 있다. 수술은 집도의와 보조의가 하겠지만 의대생들이 견학하는 걸 허락했던 것이다.수술은 성공적으로 잘 마무리 된듯하다. 수술을 하고 정신을 차려보니 방광에 호스를 꽂아 소변을 받아내고 양팔 혈관에 주사바늘을 고정시켜 줄이 달려있다코로 호수를 따라 식사대용 영양제가 들어간다. 또 수술한 부위에도 호스를 넣어...
박병준
 ▶지난 주에 이어 계속 암이 자리 잡은 곳, 그 위치가 어디인가. 그게 중요하다.폐라면 힘 든다. 췌장이라면 수술이 어렵다. 급성으로 여러 군데 전이가 되었다면 걷잡을 수 없이 위험하다.내게 온 곳은 목이다. 후두암이라고도 한다. 그 자리는 어떤 곳인가?매우 정교하고 복잡한 부분이다. 거기는 기도(Air way)와 식도가 만나는 곳인데 코와 입을 통해서 공기가 들어오고 또 입에서 식도로 넘어오는 음식이 지난다.또 허파에서 나오는 공기가...
늘산 박병준
늘산 본인이 암 판정을 받고 수술을 하고 퇴원을 하면서 그간에 있었던 일들을 정리하고 싶습니다. 이는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 암에서 예방될 수 있는 일에 다소나마 길잡이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면서 이 글을 시작합니다.암의 발견은 우연적일 수도 있고 필연적일 수도 있다.나는 우연적이라 생각하며 그나마 일찍 발견하였다는데 다행이라 생각한다.산에서 사람을...
늘산 박병준
다음페이지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