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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 : 2015-09-18 09:14

한국문협밴쿠버지부 회원기고/수필
늦여름의 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마을 어귀 당나무에서는 가는 여름을 아쉬워 하는 매미들의 마지막 목청이 들린다.
 

 
신작로를 따라 한참을 걸으면 산그늘이 비치는 앞산의 초잎에 도달한다. 구릉을 따라 걷고 오르길 몇번, 가파른 고개가 얼굴을 내민다. 지친 몸을 이끌고
거의 다 왔을 것이라 여기면 또다른 고개가 나타난다. 넘는 산마루가 거의 다 비슷해 착시가 생긴걸까. 마지막 숨을 몰아 쉴 즈음, 짙은 녹음을 뒤로하고

편평한 묘터가 나타난다. 앞에는 탁 트였고, 뒤로는 우뚝 솟은 산을 두고 있다. 산아래를 내려다 보면 까마득한 곳에 사람사는 동네 같은게 가물거린다.

그 어디쯤 우리 마을이 있을것이다.



400여 년 전 마을을 일군 초기 조상들이 묻힌 공동묘지다. 10여기가 층층이 놓여있다. 아마 대를 이은 것으로 보인다. 일부 봉분은 세월의 흔적이 군데

군데 묻혀있다. 오랜 비 바람에 겨우 명맥만 유지한 채 납작한 모습이다. 묘 터의 반은 빈 터로 고스란히 남아 았다. 무슨 용도인지 헤아릴 수가 없다.

그곳엔 잡풀이 더 무성하다.



아마 황무지나 다름 없었을 곳에 마을 터를 잡고 밤잠을 설쳐가며 농지를 일궜을 것이다. 잠자리나 먹을것도 변변찮았음을 쉬 짐작 할수 있다. 오직

당대의 희생이 후손의 전도를 밝게 해준다는 생각 뿐이었을 것이다. 그 땀의 댓가로 후손들은 배불리 먹고 커 나갔다. 그 고담함이 묘지에 그대로

얹혀있다. 잡풀이 제멋대로다. 매년 오는데도 생전 사람손덕을 보지 못한 황량함이 있다. 간혹 잡목도 잡힌다. 손끝을 베는 은색 갈대도 제자리 인양

고개를 빳빳이 들고 칼날을 기다린다.



10여명의 마을 장정들이 일렬로 선다. 집성촌이니 모두 일가 친척들이다. 직계 후손을 가릴수 없어서 각 소종의 대표격인 젊은이들이 모인다. 멀고

험한길이니 자연히 노인들은  빠진다. 힘센 조카뻘들은 봉분을 중심으로, 나머지는 봉분이 없는곳을 시작한다. 낫질이 빠른 사람은 주변을 넓게 가진다.

간혹 벌초꾼에 합류한 조무래기들은 베 논 잡목과 풀들을 한 곳에 모으는 뒤처리를 한다.



웬 묘 터를 그렇게 넓게 잡았을까. 오전에 시작한 낫질은 해가 중천을 한참 지나서야 끝을 본다. 허리가 뻐끈하고 머리가 어지럽다. 땡볕에서 장시간

일한 탓이다. 벌초를 마친 묘 터는 목욕을 마친 새색시 같다. 골짜기로 부는 바람도 거침이 없다.



성묘에 올린 막걸리로 목을 축인다. 가는눈으로 멀리 가물거리는 동네를 쳐다 본다.저승에서도 마을을 지킨다는 뜻이었을까. 처음엔 안보이던 동네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한해 농사가 잘됐는지, 가뭄은 들지 않았는지, 태풍 오기전에 추수를 마쳤는지 세심히 살폈을 것이다.



몇 년 전 이곳이 사라졌다. 인근 도시의 쓰레기 매립장이 된 것이다. 이 소식이 들렸을때 동네 누구도 이의를 걸지 않았다. 아마 속으로 기뻐했을지도 모른다.

몇 푼의 보상금이 문중에 떨어졌을때 누군가가 나섰다. 단지 돈이 적다는 이유였다. 15프로정도 더 받았다. 사람의 접근이 어렵고 개발의 여지가 도저히

없었던 탓에 정말 형편없는 보상금이었다. 그 뒤 동네사람들은 그 힘든 연례행사는 건너 뛰었다. 대신 마을 가까운곳에 비석을 세웠더. 바닥엔 시멘트로 발랐다.

더 이상 풀베는일은 없어졌다. 벌초의 고단함은 덜었지만 뭔가 큰 걸 잃어버렸다는 느낌은 지울수가 없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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