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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책임의 실종

권민수 기자 m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2-08-17 19:06

“로히드하이웨이 따라서 코퀴틀람 센터로 가다 보면 가끔 왼편에 촛불이 켜져 있던데, 그것이 뭡니까?”

기자는 최근 한 독자로부터 문의를 받았다. 전에 기자가 기자수첩으로 쓴 찰리의 나무를 잘 읽었다며, “비슷한 것이 있던데”하며 던진 질문이다.

행정구역상 포트 코퀴틀람, 로히드 하이웨이(Lougheed Hwy)와 피트리버 로드(Pitt River Rd.) 교차로에는 신호등이 하나 있다. 그 옆에 석축에는 꽃이며 초로 장식돼 있다. 앙증맞은 인형도 보인다.

교통사고를 당해 숨진 사람을 추모하는 유가족이 남긴 것이다.

2011년 2월 19일 자정이 25분 지난 무렵,  귀가 중이던 스코틀랜드계 이민자 셜린(당시 30세)과 댄 리블리 부부는 한 SUV가 교통사고를 내고 서 있는 것을 보고 차를 세웠다. 사고 난 차의 운전자를 도와주기 위해서였다. 부부가 차에서 내렸고, SUV를 운전했던 필리핀계 이민자 로레인 크루즈(Cruz 당시 26세)씨와 그녀의 남자친구도 차에서 내렸다. 셜린씨가 로레인씨를 위로하는 동안, 순식간에  비극이 닥쳤다. 고속으로 질주하던 한 차량이 셜린씨와 로레인씨, 로레인씨의 남자친구를 친 후 그대로 도주해버린 것이다. 두 여성은 현장에서 사망했다.

뺑소니 차량의 운전자는 코리 세이터(Sater 당시 37세)는 차를 버리고 도주했다가 다음 날 경찰에 체포됐다. 검찰은 세이터를 음주운전에 의한 살인 2건, 음주운전에 의한 대인 피해 1건 등 총 10건의 범법행위로 기소했다.

사건은 이후 피해자와 가해자 두 방면에서 극적인 모습을 보인다.

셜린씨의 남편 댄은 셜린 리블리 아동자선소사이어티(Charlene Reveley Children’s Charity Society)를 세워 네 아이의 부양 및 장례식 비용 등에 대해 도움을 지역사회에 요청했다. 어쩌면 개인에 한한 불행한 일이지만, 캐나다 사회의 장점 중 하나는 남의 호소에 매정하지 않다는 점이다. 소사이어티의 목표인 “가족을 잃어 어려운 아이들을 돕는다”는 호소에 이웃과 지역 상점들이 동참하기 시작했다. 골프장, 슈퍼마켓, 식당, 선행도 도장, 요가센터 등 크고 작은 기업이 이 소사이어티에 기부를 하고 있다. 이 재단의 활동은 자체 웹사이트(crccs.ca)를 통해 볼 수 있다.

가해자인 세이터는 지난해 11월 변호사를 통해 무죄를 주장해 유가족과 지역 주민의 공분을 산다.  더욱 문제가 된 일은 포트코퀴틀람 시내 BC주법원에서 시작된 세이터의 재판이 재판부 사정으로 계속 연기됐다는 점이다. 캐나다 헌법은 시민의 재판권을 보장하는데, 검찰 또는 법원의 업무 초과로 재판할 수 없을 때는 ‘비합리적인 지연(unreasonable delay)’으로 판정돼 기소 자체가 취하될 수 있다.

캐나다 공영방송 CBC가 올해 2월 보도한 내용으로는 실제로 지난 해 109건의 사건이 무효가 됐다. 재판이 진행되지 않고 18개월 이상된 사건이면 무효가 될 수 있는 위험지대에 들어선 것이라고 한다.

사건 발생 후 2년간 세이터는 보석으로 풀려나와 자유롭게 활동하고 있다. 올해 2월 진행될 예정이던 재판은 두 차례 연기돼 캐나다의 정의는, 혹은 사건에 대한 책임 묻기는 여전히 이뤄지지 않았다.

BC주 법원의 재판지연과 취소 문제는 한인들도 심각하게 봐야 할 부분이다. 피해자를 대신해 기자가 나설 수는 없는 일이지만, 한인 피해자 사건도 우려스러운 상태로, 현재 연기 중인 사건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연기 끝에 풀려나온 사람이 무죄를 주장하며 활개치는 사회라면 끔찍하지 않은가?

이웃의 애통해 하는 목소리에 함께해야 할 때가 있고, 억울한 일에는 시스템을 이용해, 목소리를 모아 내야 할 때도 있다.

권민수 기자 ms@va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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