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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개와 고양이에 관한 진실 2024.04.22 (월)
최민자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머리가 허연 사내 하나가 털이 하얀 강아지 한 마리와 동네 골목을 산책 중이다.산책하고 싶어 한 게 개였는지 사내였는지 알 수는 없지만 강아지가 앞장서고 사내가 뒤를 따른다. 강아지가 길모퉁이에 멈춰 서 있다. 아랫도리를 낮추고 볼일을 보는 개를...
[기고] 그리움 2024.03.08 (금)
최민자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전지를 갈아 끼워도 가지 않는 손목시계처럼 그는 그렇게 그녀라는 길 위에 멈추어 있다. 그녀와 관련된 기억들이 그에게는 여전히 아프고 쓰리다. 이별의 모서리는 언제나 날카로워 돌아볼 때마다 마음이 베이지만 그녀라는...
[기고] 아침 안개 2023.10.11 (수)
최민자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그는 거물이야 하늘과 바다를 합방시키고 밤과 낮의 경계를 허물지 사람이 만든 구획을 지우고신의 업적조차 무화시켜 버려 논둑이며 밭고랑을 후루룩 삼키고 강물을 통째로 들이마시는 그는미처 씹지 못한 봉우리 하나 허공에 둥실 뱉어 놓기도 해그는...
[기고] 골목 2023.05.02 (화)
최민자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골목은 눈부시지 않아서 좋다. 휘황한 네온 사인도, 대형마트도, 요란한 차량의 행렬도 없다. ‘열려라 참깨!’를 외치지 않아도 스르륵 열리는 자동 문이나, 제복 입은 경비원이 탐색하는 눈빛으로 위아래를 훑어 내리는 고층 빌딩도 눈에 띄지 않는다....
[기고] 새와 실존 2023.02.02 (목)
최민자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산 비둘기 한 마리가 베란다 난간에서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다. 아침마다 화분에 물을 주면서 땅콩 몇 알을 접시에 놓아두었던 것인데 다른 놈들은 오지 않고 이 녀석만 온다. '새 대가리'가 사람 머리보다 기억력이 나은 건지 내가 깜박 준비를 못했을 때에도...
[기고] 빈 듯 찬 듯 2022.10.12 (수)
최민자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5년 넘게 땅속에서 묵었을 매미 소리를 모카커피에 타서 마신다. 오늘 아침 내 특제 메뉴다. 매미 소리는 먹기 좋게, 적당히 분절되어 커피 잔에 녹아 든다. 어떤 소리는 튜브에서 쥐어짜듯 찔끔찔끔 흘러나오고 어떤 소리는 톰방톰방 방울져 떨어진다....
[기고] 물고 물리는 세상 이야기 2022.08.08 (월)
최민자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모기란 놈은 왜 어리석게 사이렌 소리를 내며 공격을 하는 것일까. 경계경보 없이 단번에 공습하면 성공률이 훨씬 높을텐데 말이다. 앵앵거리는 비행물체 때문에 기어이 한밤중에 불을 켜고 앉는다.모깃소리는 모기만 하지 않다. 엔진을 가속시킬 때 발생하는...
[기고] 책장 앞에서 2022.03.14 (월)
최민자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도킨스와 하라리, 베르베르와 이정모가 사이좋게 어깨를 밀착하고 있다. 사이좋게?인지는 사실 모르겠다. 시비를 걸거나 영역다툼을 하지않고 시종 점잖게 어우러져 있으니 나쁜 사이는 아닌 것 같달 뿐.   책들은 과묵하다. 포개 있어도 붙어 서 있어도...
최민자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비닐하우스 위로 운석이 떨어졌다. 장갑을 낀 지질학자 몇이 수상한 돌덩이를 조심스레 거둬 갔다. 극지연구소의 분석 결과 그날 진주에 떨어진 두 개의 암석은 별에서 온 게 확실하다 했다. '별에서 온 그대'는 하늘의 로또라, 부르는 게 값일 만큼 귀하신 몸이어서...
[기고] 흔들리며 산다 2021.10.19 (화)
최민자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새가 날아간다노을 진 하늘가에 새들이 날아간다.마른 씨앗을 삼키고 뼈 속을 비우고, 새들은 그렇게 만리장천을 건너간다. 날아가는 새들이 쓸쓸해 보이는 건 가을이 어지간히 깊어졌다는 뜻이다. 둑이 일렁인다. 바람 부는 강둑에 억새 밭이 일렁인다. 몸...
[기고] 봄과 사랑과 청춘과 2021.04.19 (월)
최민자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사랑은 교통사고와 같다.'라고 누군가 말하였다. 예고도 없이, 마음의 준비도 없이 방심하고 있는 순간, 별안간 맞닥뜨리게 된다는 뜻이다. 우연을 가장한 필연처럼 느닷없이 찾아 드는 드라마틱한 사랑은 아닌 게 아니라 사고라...
[기고] 존재는 외로움을 탄다 2020.12.28 (월)
최민자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이른 새벽, 이슬이 맺힌 풀숲 사이로 나는 천천히 걸어 들어간다. 멀리서 들려오는 계곡물 소리가 간밤 불면으로 멍해진 머리 속을 차고 맑게 헹구며 지나간다. 밤새 열변을 토하던 벗들은 아직도 깊이 잠들어 있다. 세상과도,...
[기고] 흰 꽃 향기 2020.10.05 (월)
최민자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1. 숨어 피는 꽃꽃차를 마신다. 향긋한 기운이 입 안 가득 녹아 든다. 다시 한 모금 머금어 본다. '연꽃 만나고가는 바람'맛이 이러할까. 끓인 계곡 물에 꽃을 띄우고 한 소절 시구로만 가미하였으니 맛이야그저 밍밍할 밖에. 향기로 기분으로 마실 일이다...
[기고] 버섯 2020.06.22 (월)
최민자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기둥 하나 지붕 하나, 단촐한 실존이다. 한세상 건너는 데 무엇이 더 필요하랴.맨땅 솟구쳐 탑신 하나 세우고 제 각각의 화두를 붙들고 선 선승들은 어깨를 겯지도,등을 기대지도 않는다. 벌 나비를 불러 모으지도 않는다. 무채색 삿갓으로 얼굴을가리고 서서...
[기고] 어머니의 다섯 글자 2019.10.21 (월)
최민자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친정 엄마는 아흔 셋, 열 여덟 에 시집을 와 아흔 여덟 아버지와 목하 76년째 해로 중이시다. 지금도 삼시 끼닛거리를 장만하고 얼룩얼룩한 꽃무늬보다 베이지나 보라색 옷을 좋아하시는 어머니는 집 앞 느티나무 그늘에 앉아 오가는 사람들을...
[기고] 향기를 듣다 2019.09.30 (월)
최민자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딱새 한 마리가 동네의 아침을 깨우듯 유자 한 알이 온 방의 평온을 흔든다. 방문을 열 때마다 훅 덮치는 향기. 도발적이다. 아니, 전투적이다. 존재의 외피를 뚫고 나온 것들에게는 존재의 내벽을 뚫고 들어가는 힘도 있는 것일까. 절박한 목숨의 전언 같은...
[기고] 책장 앞에서 2019.02.27 (수)
최민자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도킨스와 하라리, 베르베르와 이정모가 사이 좋게 어깨를 밀착하고 있다. 사이 좋게? 인지는 사실모르겠다. 시비를 걸거나 영역다툼을 하지 않고 시종 점잖게 어우러져 있으니 나쁜 사이는 아닌 것같달 뿐.  책들은 과묵하다. 포개 있어도 붙어 서 있어도 일생...
[기고] 열매에 대하여 2018.10.22 (월)
최민자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익지 않은 열매는 왜 푸를까?  답은 익지 않아서이다. 말장난하냐고? 아니, 진언이다. 무림의 고수에게 칼날의 광휘를칼집 안에 감추고 내공을 다질 시간이 필요하듯, 열매들도 무르익기 전까지는 이파리와비슷한 보호색으로 위장하여 본색을 감출 필요가 있다....
[기고] 저물 녘의 독서 2018.09.10 (월)
최민자 / 캐나다 한국문협
스마트 폰이 부르르 떤다. 딸애의 호출이다. 외출할 일이 있으니 아기를 잠깐 맡아 달라한다. '기본임무 수행을 제한 받고 명령에 의해 지정된 지역으로 즉각 출동 행하는'비상사태, 이쯤 되면 내겐 '진돗개 하나'다. 읽던 책을 던져두고...
[기고] 2월이 간다 2018.02.26 (월)
최민자/캐나다 한국문협 자문위원
창이 밝아졌다. 안개에 갇힌 듯 어스름한 시야가 선명해지고 물러 있던 산이 다가앉아 보인다. 육안으로 느끼는 빛의 감도도 나날이 조금씩 달라져간다. 지금 내 창에는 하늘하늘한 시폰 커튼만 걸려있다. 그조차 거추장스러워 양 옆으로 젖혀둔다. 부드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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