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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 물리는 세상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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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 : 2022-08-08 11:40

최민자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모기란 놈은 왜 어리석게 사이렌 소리를 내며 공격을 하는 것일까. 경계경보 없이 단번에 공습하면 성공률이 훨씬 높을텐데 말이다. 앵앵거리는 비행물체 때문에 기어이 한밤중에 불을 켜고 앉는다.
모깃소리는 모기만 하지 않다. 엔진을 가속시킬 때 발생하는 소음을 제어할 만큼은 기술력이 진보되지 않아서인가. 발사되는 로켓이 내는 굉음이 요란스레 어둠을 진동시킨다. 어쩌면 저들은 인간에게 경고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제 안의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스스로 전투의지를 불태우기 위해 더 크게 소리 지르며 달려드는지 모른다. 어쨌거나 가상하다. 한 끼 식사를 위해 매번 그렇게 목숨 건 모험을 감행하다니.
실체를 알 수 없는 대상에 막무가내로 도전해 보는 용기는 사물을 분간하지 못할 만큼 퇴화되어 버린 시력 덕택일 수도 있겠다. 실물 크기를 조망할 수 있다면 언감생심 인간을 공격해 끼니를 해결하려는 엄두 따위를 낼 수는 없을 테니까. 저들에게 인간은 혹 먹잇감이 아닌 거대한 추상에 가까운 존재 아닐까. 미지의 대기에 에워싸인 매혹적인 행성 같은 거 말이다. 그렇다 해도 가느다란 빨대로 잽싸게, 한 방울의 시료를 채취해 가서 무엇에 쓰려 하는 것일까. 달에 발을 디딘 인간을 보며 같은 생각을 한 존재가 우주 어디엔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신문 뭉치를 거머쥐고 눈빛을 희번덕거리며 벽이며 천장을 두루 훑는다. 반쯤 열린 욕실 문을 닫고 커튼 주름 사이도 들썩거려 본다. 새벽 두 시, 며칠 전에도 이때쯤 깨어 아침까지 잠을 설친 적이 있다. 진작 전기모기채라도 장만해 둘 걸. 경보는 요란해도 작전은 은밀한 녀석들과는 달리 인간이 개발한 그 신무기는 짜릿한 섬광과 통쾌한 파열음으로 각개격파의 성과를 즉각적으로 확인시킨다. 으깨진 몸뚱이나 낭자한 선혈로 승리의 쾌감을 격감시키지 않는 것도 재래식 무기보다 탁월한 장점이다.
나와 봐, 이것들아. 비겁하게 숨지만 말고…. 반라 차림으로 방 안을 돌며 종이 몽둥이를 휘둘러 대는 꼴이 내가 봐도 가관이다. 어둠속에선 그리 존재감을 과시하던 녀석들이 어디로 숨었는지 기척이 없다. 적이 지치길 기다려 시간차 공격을 감행하는, 이일대로以逸待勞의 승전계를 쓰려는가? 그렇다면 나도 전략상 후퇴다. 불을 끄고 자는 척 누워 있으면 얼마 안 있어 다시 공격해 올 테니.
그렇지만 제아무리 간 큰 장수라 해도 침소에 적을 두고 눈을 붙일 순 없는 일, 죽은 척 숨을 죽이고 적의 반격을 기다리고 있자니 불청객이 뜻밖에 청객으로 바뀌어 버린 이 기묘한 상황에 슬금슬금 더 열이 받친다. 밀림의 왕 사자가 새끼사슴을 공략할 때에도 발소리를 죽여 접근하거늘 하찮은 미물 주제에 인간의 침소를 허락 없이 드나드는 것도 모자라 맹렬한 전투의지로 결투 신청을 해? 하극상도 유분수지 괘씸하고 가소롭다.
위장 에너지로 연명해야 하는 생명체들은 좋든 싫든 다른 생명을 축내거나 해코지하며 살아야 한다. 먹고 먹히는 약육강식의 구조 안에서 대부분의 동물들은 잡아먹혀 죽는다. 천신만고 끝에 먹이피라미드의 최상위 포식자로 군림하게 된 인간만이 비교적 제 수명을 누리다 간다. 자기보다 힘센 동물들은 휘귀 동물로 만들어 모조리 우리 안에 가두어 버리거나 영역 밖으로 추방해 버린 결과다.
그러다 보니 오늘날 인류의 생명을 위협하는 주적은 맹수나 UFO, 궤도에서 떨어져 나온 소행성들이아니다. 인간의 시력 한계를 벗어남으로써 물리적인 위협을 덜 받게 된 존재들, 해충이나 박테리아, 바이러스 같은 미물들이 인류에겐 훨씬 더 치명적이다. 지구 역사상 먹이사슬의 최상류 포식자는 반드시 멸종하였다는데 언젠가 인류가 멸종하게 된다면 이런 미시적 존재들에 의해서 아닐까. 모기에 대한 내 분노의 밑바닥에는 약육강식의 순차적 구조가 아닌 강육약식의 반역적 도발에 대한 영장류의 자존감과 위기의식이 작동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이렌 소리가 다시 가까워 온다. 약육강식이건 강육약식이건 내 알 바 아니라고, 세상은 다 그렇게 물고 물리며 돌고 도는 거라고, 어둠 속의 첩자가 왱왱거리며 돌격해 온다. 무엇을 위해서건 목숨을 건다는 건 위대한 일이라고, 어떤 일에도 목숨을 걸어 본 적 없는 겁쟁이에게 따끔하게 한 방 먹이고 싶어 일진일퇴하는 전사의 몸말을 화다닥 일어나 귀를 세우고 경청한다.
"산다는 건 일단 찔러 보는 거야. 되든 안 되든 원투 스트레이트로 눈 딱 감고 잽 한번 먹여 보는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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