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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와 회복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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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 : 2026-10-15 15:59

김춘희/(사)한국문인협회 밴쿠버지부 회원


열한 살이던 그해 6월 25일 전쟁이 터졌다는 끔찍한 소식과 함께 어머니는 밤새 미숫가루를 만들었다. 다음 날 새벽 우리는 피난 길에 올랐다.



전연 준비가 없었던 전쟁이라 우리는 허둥지둥 한강을 넘어가야 한다는 생각만으로 을지로 6가 집에서 장충단 공원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아버지는 쌀자루를 들고 어머니는 미숫가루와 몇 가지 실용품만 챙겨 올망졸망한 우리 5형제들을 이끌고 걸었다. 북한군이 내려오고 있는데 걸어서 한강 쪽으로 가서 도강한다는 그 행렬이 얼마나 그로테스크한 모습이었을까! 한 시간이나 갔을까 벌써 대포 소리가 나고 총알이 빗발쳤다.



우리는 몸을 숨기기 위하여 아무 집으로나 들어갔다. 그 집에는 인자한 할머니가 혼자 집을 지키고 있었다. 총성이 타타 땅 따타 땅콩 볶듯 들렸다. 할머니는 이불을 모두 꺼내며 몸을 가리라고 했다. 나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몸을 웅크리고 한참을 잤다. 어머니는 내가 겁에 질려 기절해 잤다고 했다. 한나절이 지난 후 총성이 멎자 우리는 더 이상 한강으로 가는 길을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몸을 피해 있었던 그 집은 나와서 보니 바로 옆이 파출소였고 파출소를 탈환하는 과정에서 총성이 그리도 심했다.



나는 그 이후로 식욕을 잃었고 잠만 자면 빨갱이 군인들이 총을 겨누고 나를 쫓아오는 악몽을 꾸기 시작했다. 악몽뿐이 아니었다. 자주 심한 가위에 눌리면 아버지 어머니 이불 속으로 들어가 자야만 했다. 악몽과 가위눌리는 고통은 그 이후 내가 결혼 생활을 할 때 가지도 지속되었다. 나이 삼십이 되어도 결혼을 하지 않으면 무슨 큰 변고라도 되는 양 온 집안이 걱정하던 시대에 살았다. 그런데 나는 만 33세에 결혼했다. 신랑은 38, 노처녀 노총각이 결혼한다고 주변에서 큰 화제가 되듯 떠들어 댔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웃기는 세상이었다. 내가 결혼한 사람은 아이러니하게도 북한 인민군 출신으로 이승만 대통령이 포로 석방을 선언하여 북한으로 가지 않고 남한으로 귀순했던 인민군 출신의 대한민국 공병장교였다. 나의 악몽과 가위눌리는 버릇은 결혼 후에도 가끔 있었지만 아이 둘을 낳아 기르며 언제부터인가 차츰 뜸해졌다. 낮에는 당당하게 잘 살았지만 밤만 되면 무서움을 많이 탔다. 아이들의 엄마가 된 후에도 밤이면 겁 많은 아내였다. 아무리 다투고 자더라도 잠자리만은 꼭 그의 곁을 지켰다. 옆에서 코를 골든 이불을 젖히고 자던 그의 곁에 붙어 자야만 안심하고 편히 잤다. 



남편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걱정한 단 한 가지는 내가 어떻게 살 것인가 그것뿐이였다. 폐암 말기라며 4개월 남았다는 의사의 말을 들었을 때 내 머리는 망치로 탁 얻어맞은 듯 그 충격이 엄청 컸다. 당시만 해도 디지털이 그리 발달되지 않았던 때였다. 인근의 쇼핑몰에서 인물 사진을 찍어주는 프로모션이 있었다. 마침 우리가 의사를 만나고 온 그다음 날이 우리들 사진 프로모션 약속이 잡혔던 날이었다. 병원에 다녀온 다음 날 아침 우리는 서로 얼굴을 바라보지도 못했다. 밤새 울지도 않았는데 다음 날 아침 우리 둘의 얼굴이 퉁퉁 부어 있었다. 도저히 그런 얼굴로 사진 찍기에는 거북하다고 나는 그만두자고 했으나 남편은 오후에 약속이 잡혀 있으니까 그냥 가보자고 했다. 부기가 조금 가라앉은 오후 늦은 시간에 우리 부부는 사진 찍으러 다녀왔다. 그리고 6개월 후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그 사진은 그의 영정 사진이 되었다.



마지막 6개월 동안 그는 여러 번 나에게 ‘혼자 어떻게 살래?’ 하고 물었다. 몇 번을 같은 질문을 하는 그에게 나는 딱히 답을 못했다. 그러나 여러 번 반복되는 질문에 짜증 섞인 어조로 ‘아무렇게나 살 거야!’ 하고 소리 질렀다. 그리고 그 후로는 같은 질문을 하지 않았다.  



그가 걱정한 것은 아마도 나의 잠자리 버릇이었을 것이다. 저녁에 말다툼을 하거나 기분이 안 좋으면 나는 거실에 나와 잠을 자다가도 밤이 깊어지면 문득 무서움이 덮쳐 혼자 자지 못했다. 베게를 들고 다시 살금살금 침대로 들어가 남편이 아무리 미워도 살짝 피부에 살을 대고 잤다. 그래서 그는 가끔 ‘너는 나 없이 못 산다’ 라고 했다. 자기가 없으면 내가 어떻게 살 것인지를 걱정했던 그 사람이 세상을 떠나면서 걱정해 준 것은 나의 약점, 나의 밤의 무서움증이었을 것이다.



살면 다 살아지는 것이 인생인 듯하다. 그가 떠난 후 낮에는 그가 즐겨 입었던 잠옷 가운을 걸쳐 입었고 잘 때는 그가 마지막으로 입었던 스웨터를 안고 자기를 몇달... 잠들기 전에 수호천사에게 이 밤도 동행해주시고 내 머리맡에서 지켜 돌봐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잠들었다. 몇 날인지 몇 달 인지부터 나는 자리에 눕자마자 잠이 쏟아졌다. 꿈은 꾸지만 무슨 꿈인지 기억도 못 할 정도로 깊은 잠을 잤다. 깊은 잠에 빠지면서 악몽도 무서움도 모두 달아났다. 남편의 죽음은 나에게 또 다른 치유를 안겨 주었다. 그가 떠난 이후로 평생 나를 괴롭혔던 악몽과 가위눌리는 버릇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35년간의 결혼 생활과 남편의 죽음 이후의 시간은 나에게 깨끗한 치유와 완전한 회복의 시간이었다. 굳이 나누자면 결혼 생활은 치유의 시간이었고 남편이 떠난 이후의 생활은 회복이 시간이다.



감수성이 강했던 열한 살 나이에 겪은 전쟁은 트라우마로 남아 평생을 악몽에 시달리게 했다. 오죽했으면 전쟁이 끝난 후 아직 사춘기였던 나는 다시 전쟁이 일어나면 자살하겠다는 결심을 할 정도로 전쟁에 대한 공포감이 컸다. 전쟁으로 파괴된 도시 건설은 몇 년에 걸쳐 이루어지겠지만 전쟁 트라우마를 겪은 한 아이의 치유와 회복은 평생이라는 시간 안에서 이루어진다. 전쟁은 물리적 피괴뿐 아니라 한 인간의 정서마저 피괴한다. 10월 1일 국군의 날에 인민군에서 한국군으로 전향했던 그를 기억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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