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벽 3시, 알람보다 먼저 통증이 잠을 깨운다. 오래전 다친 등과 허리, 2년 전 다친 양쪽 무릎의 반월상 연골판 통증은 진통제로도 완전히 다스려지지 않는다. 볼리비아에서는 난방 없는 호텔과 고산증에 시달렸고, 항공사의 실수로 가방마저 이틀 늦게 도착해 감기까지 걸렸다. 가져간 비상약을 먹어도 증세는 오히려 심해져 결국 응급실 신세를 졌다. 그래도 나는 토레스 델 파이네의 정상을 향해 출발한다. 헤드랜턴을 켜고 어둠을 헤치며 가파른 산길을 한 걸음 한 걸음 옮긴다. 숨은 턱까지 차오르고, 바람은 살을 에는 듯 차가운데 몸에서는 땀이 흐른다. 저 멀리 봉우리의 윤곽이 어렴풋이 드러나고, 하늘에는 별이 총총히 박혀 있다. 세 시간 가까이 올랐지만, 목적지의 일출까지는 아직 한 시간이 남았다. 이 육체적 고통 속에서, 나는 왜 여기 있는가?
평소의 나라면 지금쯤 알람 소리에 떠밀려 일어나 서둘러 옷을 입고, 도로의 혼잡을 뚫고 회사로 향했을 시간이다. 별다른 즐거움 없이 퇴근만을 기다리며 주어진 일을 처리하는, 어제와 오늘과 내일이 다르지 않은 하루. 그런 반복 속에서 은퇴는 늘 해방구처럼 그려졌다. 그러나 정작 은퇴한 이들 중에는 무엇으로 시간을 채워야 할지 몰라 무미건조하게 나날을 보내는 이들도 있었다. 나도 그렇게 되지 않을까 하는 불안이 들었다. 삶을 채울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은퇴는 자유가 아니라 황량한 공백이 되어 사회로부터, 가족으로부터 나를 소외시킬지도 모른다.
문득 십여 년 전 읽었던 김정운 교수의 《남자의 물건》이 떠올랐다. 한국 사회에서 남자에게 직장은 생계 수단을 넘어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는 무대다. '가장'이라는 무거운 짐을 지고 치열하게 살아가지만, 정작 자신의 이야기는 갖고 있지 않은 남자들. 김 교수는 그런 이들에게 자신만의 이야기를, 그리고 그 이야기를 담아낼 물건을 가지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나에게는 무엇이 그런 물건일까. 산길 위에서, 등과 무릎의 통증을 견디며 나는 그 답을 이미 붙들고 있었다. 내게는 카메라가 있었다.
시작은 초라했다. 특별한 취미랄 것이 없던 내게, 몸을 다쳐 삶이 버거웠던 시절 아내가 취미를 하나 가져보라 권했다. 몇 해 전 사두고 잊고 있던 카메라가 눈에 들어왔고, 그렇게 사진 동호회의 문을 두드렸다. 오랜 경력의 사진가들 틈에서 세상의 작은 조각들을 담는 법을 배웠고, 대학의 평생교육원 시간제 과정까지 다니며 점점 사진에 빠져들었다. 하루라도 셔터를 누르지 않으면 죄책감이 들 정도였다. 처음엔 카메라를 메고 집을 나서는 것조차 쑥스러웠던 내가, 어느새 혼자서도 주변을 걸으며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또렷이 남은 것은 로키산맥의 가을이다. 웨이더를 신고 개울 속으로 걸어 들어가면, 얼음처럼 차가운 물이 발목을 타고 무릎까지 밀려든다. 물속에 잠긴 자작나무 줄기 사이로 단풍잎들이 천천히 소용돌이치며 흘러간다. 물소리 말고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그 침묵 속에서, 나는 흔들리는 셔터로 그 흐름을 붙잡으려 한다. 흘러가 버리면 그만인 한 장의 단풍잎이, 셔터가 열려 있는 그 순간만큼은 영원처럼 붙들린다. 그럴 때면 나는 무작정 셔터를 눌러대던 손을 멈추고 자연에 묻는다. '세상 사람들이 좋아하도록, 내가 너의 무엇을 어떻게 담으면 좋을까.' 사진을 찍는 시간은 내게 명상의 시간이자, 나 자신과 마주하는 대화의 시간이다.
토레스 델 파이네의 산길도, 로키의 차가운 물살도, 도착 당일 해발 5,200미터까지 오르며 숨도 제대로 쉬어지지 않던 고산에서도, 결국은 같은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손이 5초만 공기에 닿아도 떨어져 나갈 듯 아픈 체감온도 영하 38도, 삼각대가 바람에 날아갈 만큼 세찬 추위 속에서 일출을 맞으려 세 시간을 서 있을 사람이 몇이 될까? 좋아서 미치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누가 시킨다고 될 일도 아니다. 이 시간들이 국제 사진전에서 조금씩 인정을 받으면서, 나는 스스로에게 더 큰 채찍을 가하게 되었다. 내가 찍는 것은 한순간에 멈춰버린 기록이 아니라, 그 순간 속에서 영원을 읽어내는 이야기다.
그러니 카메라를 든 나에게 은퇴란 그리 두려운 일이 아니다. 오히려 회사라는 무대에서 내려온 뒤에야, 나는 더 자주 물속으로, 더 먼 산길로 걸어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김정운 교수의 말처럼, 자신의 물건을 가진 사람에게는 은퇴가 없다. 나에게는 카메라가 있고, 앞으로도 계속 써 내려갈 이야기가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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