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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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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 : 2026-07-31 14:53

이종구/(사)한국문협 밴쿠버지부 회원

로히드몰 도서관에서 나오는 길이었다. 주변 가게들이 모두 문을 닫은 모습을 바라보는 순간, 문득 생을 마친 내 주변의 이웃들이 하나둘 삶의 문을 닫고 어둠 속으로 사라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몰 밖으로 나오니 넓은 주차장에는 몇 대의 차만 남아 있었다. 그 가운데 내 차를 향해 걸어가는데, 오래전 어느 후배가 들려준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 후배는 삭발하고 절에서 수행하던 친구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지금 이 절벽에서 뛰어내리면 저 계곡을 넘어 다른 세상으로 날아갈 수도 있겠구나’ 그 말을 들었을 때는 막연하게만, 느껴졌는데, 이제는 그 마음이 조금은 이해될 것 같았다.

 

불교의 반야심경에 나오는 “아제 아제 바라아제”라는 말이 있다. “가세, 가세, 저 언덕으로 가세”라는 말이 있다. 완전히 저 언덕에 이르러 깨달음을 이루세”라는 뜻이다. 이제는 그 말이 죽음을 두려워하라는 뜻이 아니라, 삶을 잘 마무리하라는 초대처럼 들린다.

 

방금 전까지 도서관 안에서는 저마다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책을 읽고 공부에 몰두하고 있었다. 나도 책장을 넘기고 있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책보다 사람들에게 더 눈길이 갔다. 저 젊은이들에게는 앞으로 펼쳐질 시간이 넉넉히 남아 있다. 실패할 기회도 있고, 다시 시작할 시간도 충분하다. 그들의 눈빛에는 희망이 있었다.

 

반면 나는 인생의 긴 길을 걸어 여기까지 왔다. 수많은 만남과 이별을 경험했고, 성공과 실패도 모두 지나왔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단순히 세월이 흐르는 것이 아니었다. 선택할 수 있는 시간은 조금씩 줄어들고, 앞으로 해야 할 일보다 돌아보아야 할 일이 많아지는 것이다. 처음에는 그 사실이 못내 섭섭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졌다. 이제는 남은 시간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무엇을 남기고 떠날 것인지를 더 많이 생각하게 된다.

 

젊은 시절에는 더 높은 곳을 향해 달리는 것이 나의 목표였다. 그러나 이민을 오면서 더 이상 나 자신의 성공만을 꿈꾸기보다, 두 딸이 이 사회의 무대에서 자신의 삶을 아름답게 펼쳐 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나의 역할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고희를 넘긴 지금은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 친구와 나누는 따뜻한 대화, 한 권의 좋은 책을 읽는 여유, 그리고 누군가에게 작은 도움이 되는 일이 오히려 삶을 풍성하게 만든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인생의 말년은 끝을 기다리는 시간이 아니라, 가장 아름답게 삶을 정리하는 시간인지도 모른다. 언젠가 나도 이 세상을 떠날 것이다. 그러나 떠나는 날까지 마음만은 젊음을 잃지 않고, 배우기를 멈추지 않으며, 오늘도 어제처럼, 내일도 오늘처럼 담담하게 살아가다가 세월이 조용히 나를 데려가기를 바란다. 삶의 여정은 어디까지 왔는가보다 오늘 어떤 마음으로 걷고 있는가가 더 중요하다. 비우는 만큼 마음은 넓어지고, 사랑하는 만큼 인생은 깊어진다. 남은 날들이 길지 않더라도 하루하루를 감사로 채우며, 누군가에게 작은 빛이 되는 삶이라면 그것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여정이 아닐까.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오늘 어디를 향해 걸어가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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