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서기 한지 어느새 오 개월이다. Burnaby Hospice Society로부터 연락받고 몇 주 전부터 Grief Coffee(위로 모임)에 참석하게 되었다. 가족이나 친지를 잃은 사람들의 상한 마음을 달래기 위한 모임이다. 8주에 걸쳐 매주 한 번씩 만나서 인도자 따라 이야기를 나눈다.
15명 정도 둘러앉아 자신을 소개하고 떠나간 사람에 대하여 회상하며 마음에 쌓인 이야기를 풀어내는 시간이다. 어떻게 이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느냐는 인도자의 물음에, 어떤 이는 지금이 봄에서 여름으로 가는 계절이므로 정원에서 화초를 가꾸며 꽃들과 이야기하면서 고인을 생각한다고 한다. 부인을 잃은 한 남자는 평소에 즐기던 낚시질 다니며 슬픔을 달래고, 어떤 이는 교회 음악 활동으로 위로의 시간을 갖기도 하고, 규칙적인 걷기와 운동으로 정신적, 육체적 건강을 챙기며, 친구와의 대화를 통해서 위로받기도 하며, 전에는 늘 다투던 딸과 오히려 친밀하게 되어 고인 된 아들을 추모하며 그가 즐기던 여행을 계획하기도 하고, 한동안 우울증으로 캄캄한 방에서 나오지 않고 지내다가 이런 모임을 통해 마음을 추스르고 나온다는 이도 있고, 애완동물이 출산을 해서 그 새 생명을 돌보느라 바삐 지내는 이도 있다. 다양한 각자의 경험을 나눔으로써 위로를 주고받으며 예외 없이 눈물을 감추지 못한다.
지난 반년 동안 놀람, 슬픔, 후회되는 일들이 겹겹이 쌓였다. 작년 팔월 중순, 한 더위에 애들 아빠의 상황이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어서 가정의 사무실을 통해 의견을 종합해서 911을 돌리게 되었다. 아주 급한 상황이 아니니 사이렌 소리를 내지 말고 오라고 말했는데도 금방 밖에서 사이렌 소리가 들리고 소방차가 도착하여 응급 요원 세 명이 들어섰다. 검진 끝에, 응급실로 옮겨야겠다며 구급차에 연락하여, 한 시간쯤 후에 도착한 앰뷸런스에 실려 가는 경험을 했다. 바로 내 생일이었다. 응급실 정규 검진을 통해 병실로 입원하게 되었고, 한 달 동안 필요한 치료와 재활 훈련을 받은 뒤에 보건소의 가정간호 도움을 받기로 하고 퇴원했다.
아빠의 입원 중에 자주 방문한 작은아들이 퇴원 후에도 바로 찾아와서 위로하며 곧 다시 오겠다고 했는데 며칠간 연락이 없기에 밴쿠버섬에 있는 큰아들에게 알렸더니 얼마 후 전해온 대답은 청천벽력이었다. 지금 곧 떠나서 올 텐데 놀라지 말라며 동생이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되어 부검실로 옮겨졌다는 것이다. 앞이 캄캄하고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후에 알려진 사인은 심장마비로서 독신이므로 즉시 발견되지 못했던 것이다.
집으로 돌아온 아빠의 돌봄을 위해서 보건소에서 보내는 도우미들이 드나들기 시작했다. 혼란스러운 생활이 4개월 이상 계속되는 중에 하루아침 다시 응급실로 입원하게 됐고, 상태가 매우 안 좋다며 48시간을 못 넘길 거라고 보고 싶은 사람들 부르라는 의사의 말은 또 한 번의 충격이었다. 그러나 치료를 계속 받으며, 하나님께서 삼 주 이상 생명을 연장해 주셔서 보고 싶은 가족과 친지, 교우들의 끊임없는 기도와 방문 속에 평안히 하나님 품에 안겼다.
58년 전, 나 홀로 객지에 와서 가정을 이루고, 양친 부모 모셔다가 손주들 자라는 것 보시며 노후를 편히 보내시도록 살펴드리고, 연수를 다 하신 후 교회 묘지에 모셨다. 그곳에 큰아들과 작은손자까지 묻고, 하늘나라에서의 3대의 재상봉을 상상하며 위로받는다. 어려움으로 헤맬 때 주님의 따듯한 사랑의 손길들이 지친 나에게 힘이 돼 주어 그 고마움을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 받은 은혜 그 이상으로 사회에 환원하면서 도움이 필요한 이웃을 돌보며 여생을 보내고 싶다. 호스피스 자원봉사자들에게 감사하고 하나님의 축복이 모든 이에게 함께하시기를 기도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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