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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천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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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 : 2026-03-13 14:56

김춘희 / (사) 한국문인협회 밴쿠버지부 회원
 3년이면 탈상을 한다는 말이 실감 나던 어느날, 나는 아들이 사는 밴쿠버로 이사 왔다. 살던 집을 정리하고 처분하고  미국 각지에 흩어져 사는 형제들과 한국, 그리고 유럽으로 성지 순례를 다니며 40여 년 함께 살았던 남편과의 삶을 조금씩 정리하게 되었다.
  임종이 가까워 오면서 그는 아이들 걱정은 한 마디도 없었고 다만 나에게, ‘어떻게 살래?’ 를 혼잣말처럼 되뇌이곤 했다. 그리고 마지막에 ’글이나 쓰며 살아라’ 고 유언 같은 말을 남겼다. 3년간의 긴 터널같은 상을 벗으며 그가 당부했던 말이 생각났고 늘 조금씩 써 왔던 글을 정리해 자서전을 펴 내게 되었다. 남편의 말을 액면 그대로 믿고 살았던 나는 글쓰기는 자서전을 쓰는 일이라 믿었다.  지나고 보니 참으로 순진하고도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나는  40여 년을 퀘백에서만 살았다. 그곳은 어느덧 나의 제2의 고향이 되었다. 아들이 이미 밴쿠버에 자리 잡고 살고 있었지만, 나에게 밴쿠버는  또 다른 낯선 땅이었고 나의 노후를 보내야 하는 새로운 터전이었다. 아무 인맥도 없는 막막한 이곳에서 우연히 대학 후배의 안내로 문인 협회에 가담하게 되었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었다. 그 우연은 하늘이 주신 필연이 되었고 수필을 쓰면서 뒤늦게 깨닫게 되었다. 남편의 유언은  자서전만이 아니라 노후에 할 일이  글을  쓰는 일이었던 것을. 그 후배가 나의 노후의 소중한 일터를 마련해 준 첫번째 천사였다.  
 두 번째 인연은 시간을 거술러 올라가 자서전을 펴 낼 무렵이었다.  내가 문협 회원이 되기  전에 알게 된 고교 후배이다. 시인이자  출판계에 몸담았던 유능한  그와, 그의  아내 또한  내  대학 후배이기도 해서 우리는 남다른 친근감을 갖게 되었다.  그들이 나의 두 번째 천사들이다.
 후배는 자서전 원고의 전체적 흐름도 바로잡아 주고 세심한 조언과 함께 자서전의 전체의 기틀을   마련해 주었다. 출판 경험도 없고 글 쓰기도 미흡한 나에게  큰 도움이 되어주었다. 글 도움뿐만이 아니었다.
  아들 집 아래층에 살림을 차리면서 이것저것 필요한 물건도 있었지만  나는  남편을 뒤 따라 곧 떠날 사람이라 생각하고 일체 물질적인 것에 마음을 두지 않았다. 잠시 살다 갈 것인데 비싼  가재도구가 덧없게 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것이  아이들이 가재도구를 새것으로 사자할 때  반대한 이유였다.  내게는 잠시 살다 갈 생각에 필요이상의 투자는 낭비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 내게 후배는 내가 필요한 물건들을 중고품으로 채워 주었다. 지금도 그때 받았던 중고품 전자 레인지를 아직도 잘 쓰고 있다.
 그가 암 판정을 받고 4개월 남았다는 의사의 말에 우리 부부는 뒤통수를 망치로 얻어맞은 듯 처음 며칠간 머리가 멍멍 했다. 그리고 그는 내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혼자 어떻게 살래?’ 내가 얼마나 그에게 의지하고 살았는지를 그는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한 말이 ‘글이나 쓰고 살아라’였다.
  후배들과의 인연은 마치 남편이 나에게  맺어준 도움의 손길인 듯, 늙은 선배를 알뜰히 챙겨준다. 때로는 주변 관광팀에 끼어주거나 식사에 초대 해 주기도 하고 ...  하늘에 있는 남편이 더 이상 내 걱정을 안 해도 될 것 같다. 갑자기 남편이 세상을 떠난 친구에게 나는 이렇게 위로해 주었다. 시간이 약이다, 다 살게 마련이라고. 첫해의 상실감은 거의 정신 착란증까지 올 정도였다.   그래서 나는 미친 듯 떠돌아다녔다. 2년 째가 되어도 깊은 상실감의 늪에서 빠져 나오지 못했다.   3년이라는 긴 터널의 세월이 흐른 뒤에야 비로서 시간이 약이란 말의 의미를 실감하게 되었다.  그동안 부르지 못했던 노래도 소리 내어 부르게 되었다.
  후배들은 내가 어려울 때 손을 내밀어 주는 고마운 사람들이다. 현재 내가 운전하는 차는 아들의 소유로 나는 그의 차를 빌려 타는 제2의 운전자 격이다. 나이 탓도 있어서 집으로부터 3- 40분간의 운행만 한다. 그 반경을 넘는  모임이 있을 때는 아예 운전을 포기한다. 그런 내게 후배의 집은 마치 사거리 간이역 같아서 모임 장소가 나의 운전 반경을 넘거나 주차장 문제가 있을  때면  차를 후배의 집 앞에 세워 놓고 후배 차에 신세를 진다. 이런 신세는 아무에게나 질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만큼 후배는 내게 편한 사람이다.
  오가며 들를 수 있고 쉬어 갈 수 있는 편한 집, 이 사거리 간이역 같은  집을 나는 사랑한다. 이번 모임 역시 주차장이 편치 않은 곳이라 후배 사거리 집에 차를 놓고 간다.
   나의 고마운 인연들은 하늘에서 보내 준 나의 천사들이다. 천국에 있는 남편도 이제는 내 노후가 외롭지 않음을 안심하고 기쁘게 지켜보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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