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안타까움

반숙자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26-03-05 16:40

반숙자/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사진집이든 화집이든 무심히 넘겨보는 버릇이 있다.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고 어떤 문제의식도 가지지 않고 편하게 보는 내 감상법은 중요한 것을 놓쳐 버리는 일도 있겠지만 우선 마음의 공간이 넉넉해지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이번 사진집도 그렇게 페이지를 넘기고 있었다.

  지방 소도시에서 사진 동호인들이 모여 찍은 사진을 전시하느라 만든 사진집이다. 기성작가보다 아마추어가 많은데 새벽의 대청호반의 풍경이 고스란히 재현되고 석양이 물드는 한적한 마을 풍경도 정겹게 펼쳐진다. 그런데 화면 전체가 쓰러진 풀들로 꽉 채운 사진 한 장에 눈길이 꽂혔다.

  쓰러진 것들은 푸른 벼 포기 같기도 하고 청보리 같기도 하고 어찌 보면 무성한 풀 무리 같기도 하다. 아마도 태풍이 쓸고 지나간 흔적이 아닐까 싶다. 작가는 이 사진에 '안타까움'이라는 제목을 붙여 놓았다. 안타까움의 사전적 의미는 "남이 애를 쓰고 고민하는 것을 보고 매우 딱한 생각이 나다"와 "뜻대로 안 되어 마음이 답답하고 죄이다"등 두 가지다. 아마도 작가는 전자의 뜻으로 이런 제목을 붙였으리라.

안타까운 것은 쓰러진 풀들 만이 아니다. 요즘 이곳 시골길을 가다 보면 김장 배추가 그대로 있는 밭들이 많다. 김장철은 한참 지났는데도 배추가 그냥 있다는 것은 폐기 처분의 또 다른 의미이다. 배추를 기를 때는 절임 배추를 해서 도시민에게 팔면 적어도 얼마간의 이익은 남으리라는 기대가 있었을 것이다. 노고도 마다 않고 4개월을 애지중지 키웠을 배추, 바라보는 마음이 아려 오는 것은 그들이 바로 내 친척이고 이웃이라는 데서 동질감을 느껴서다.

  사진을 들여다보노라니 어떤 분의 글이 겹쳐진다. 그는 요즘 수확을 하고 난 벼 논에 동그랗고 하얀 덩어리들을 보고 공룡 알이라 했다. 볏짚을 둥글게 말아 하얀 비닐로 꽁꽁 동여맨 것으로 정식 이름은 곤포사일리지다. 그는 공룡 알 속에 피폐해져 가는 우리 농촌의 현실을 직시했다. 벼를 수확하고 남은 볏짚은 논에 뿌려 주어야 양분이 되어 내년 농사의 밑거름이 되는데 그것마저 돈으로 환산해야 하는 농가의 비애를 아파했다. 그 비애가 바라만 보는 풍경이 아니라 피부로 느끼는 현실이라는 데서 공감이 컸다. 각처의 농민들이 수확한 쌀을 크레인에 걸어 군청 앞뜰에 산더미처럼 쌓아 놓고 수매가를 올리라고 데모를 하고 있다. 추운 날씨에 비닐 천막 안에서 손을 호호 불어가며 외쳐 보아야 뾰족한 수가 없는 현실이 답답하다. 그 수필작가는 자신은 공복으로 월급을 받아먹고 살지만 농민들의 암담한 현실을 보고 안타까워서 글을 썼노라 했다.

  다시 사진으로 돌아간다. 사진은 빛과 순간의 창조물이다. 그러나 그 피사체를 바라보는 작가의 심상이 우선이다. 남들은 아름다운 자연의 신비에 마음이 움직이고 사라져 가는 계절의 아쉬움에 초점을 맞췄는데 이 작가는 쓰러져 가는 사물에 심상이 멈췄다. 그것이 청보리거나 벼 포기거나 풀이거나 상관없다. 다만 서 있어야 할 것들이 타의에 의해 쓰러진 광경이 이 작가의 심금을 두드렸다는 자체가 놀라운 것이다. 놀랍기보다는 든든한 것이다.

  남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남들이 듣지 못하는 것을 듣는 것이 창작의 중요한 부분이라고 하지만 그것이 어디 쉬운가. 일부러 그렇게 하려고 노력해도 자연스럽게 유로 되는 것만큼 오래 가지는 못한다. 그런데 이 아마추어 작가는 유독 쓰러진 것들을 보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 셔터를 눌렀을 것이다.

  내 4,5십대는 마음이 열 두 폭 치마보다 넓었다. 새끼를 많이 낳아 뼈만 앙상한 개를 보고도 어미라는 숙명이 안쓰러워 눈물이 그렁하고, 모로 누워 잠든 남편의 흰머리를 보고도 울컥했다. 드라마를 보다가, 이웃들 푸념을 들어주다 가도 자주 눈시울을 붉혔는데 지금은 바위 가슴이 되어 간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날까. 어느 학자는 그것을 공감 능력이 고장 났기 때문이라고 했다. 공감 능력은 연민, 곧 측은지심이라고 하는데 다른 말로 표현하면 '어질 仁'이다. 인은 상대방의 느낌을 내 것으로 느끼는 것, 즉 상대와 내가 통하는 것인데 한마디로 어질지 못하기 때문에 통하지 않는 것이라면 내 마음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겁이 난다. 인자한 할머니가 꿈이었는데 자꾸만 덤덤해지는 이 무심이 도대체 무어란 말인가.

  그럼에도 사람들 가슴에는 안타까움이라는 연민이 있어 세상의 설명할 수 없는 아픔들을 치유시킨다. 이것이 창작과 만날 때 상승효과를 가져와 공감대를 확대하며 사람들 마음에 사랑의 피가 돌게 하지 않을까, 나도 거기 덤이 되어 새롭게 변화되기를 기대해 본다.

  세상 만물에 어머니 같은 연민의 정을 느끼지 않으면 글을 쓸 수 없다고 한 어느 분의 말씀을 안타까움이라는 사진을 찍은 작가에게 헌사로 주고 싶은 이 아침, 햇살이 밝다.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곰의 겨울잠 파티 2026.08.07 (금)
단풍잎이 하나둘 떨어지기 시작하던 날, 실버우드 농장 친구들에게 곰이 보낸 초대장이 도착했다.숲속 겨울잠 파티에 초대해!맛있는 음식과 잠옷을 챙겨 친구들과 함께 와!언제: 첫서리가 내리는 날부터 첫꽃이 필 때까지어디서: 실버우드 숲속 큰바위 동굴보름달이 뜨기 전까지 꼭 알려줘!개는 초대장을 보자 꼬리를 힘차게 흔들며 외쳤다.“우와! 친구들과 맛있는 것도 먹고 실컷 자는 파티라고? 우리 함께 가자!” 돼지는 제자리에서 폴짝 뛰었다....
윤경란
이동호/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지인의 집에 초대받아 아내와 함께 갔다. 테라스에는 늦은 오후의 햇살이 조용히 내려앉아 있었고, 준비된 음식과 술은 대화를 느슨하게 풀어놓았다. 우리는 웃음을 나누며 시간을 흘려보냈다. 오랜만에 마음이 가벼워지는 순간이다.   사람은 가볍게 스쳤고, 공기는 따뜻했다. 잔 위의 술은 천천히 비워졌다.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어도 괜찮다. 함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하다. 나는 그 평혼 속에서 잠시...
이동호
조순배/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비 오는 오솔길 웅덩이에문득 바다가 들어와작은 파도를 안았다가 놓아준다 둥글게 번지는 물주름마다한때 내 안에 머물던 날들이젖은 하늘빛으로 되살아난다 맑은 웃음소리 하나따뜻한 손끝의 떨림 하나말없이 바라보던 눈빛...
조순배
건너간 것 2026.07.31 (금)
점심 무렵아들에게서문자 하나 도착했다엄마 김밥오늘도 내 몫은 없었어점심시간이면김밥은 이미 동난다나는오이와 비트머위대와 참비름깻잎, 적상추, 당근을흙의 시간을 접듯김 위에 올렸다계란 하나 말아 넣을 때마다바람 한 줄햇살 한 줄이슬 한 줄말려 들어갔다아들은다른 사람의 도시락을 먹고다른 사람들은내 텃밭의 계절을 먹는다말은 통하지 않아도한입 베어 문 사람들의 표정이먼저 번역된다나는 오늘도흙을 만지며내일을 만다
김회자
로히드몰 도서관에서 나오는 길이었다. 주변 가게들이 모두 문을 닫은 모습을 바라보는 순간, 문득 생을 마친 내 주변의 이웃들이 하나둘 삶의 문을 닫고 어둠 속으로 사라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몰 밖으로 나오니 넓은 주차장에는 몇 대의 차만 남아 있었다. 그 가운데 내 차를 향해 걸어가는데, 오래전 어느 후배가 들려준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 후배는 삭발하고 절에서 수행하던 친구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지금 이 절벽에서 뛰어내리면...
이종구
이봉희/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요즘은 남녀노소 누구나가 스마트 폰을 매개체로 하여 SNS 활동, 동영상 특히 짧은 동영상에 너무나 익숙해져 있으며, 오죽하면 아이가 태어나면 유튜브를 안고 태어난다는 말까지 생겨났을까! 인쇄된 책을 오프라인에서 읽는 모습은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나는 일처럼 참으로 보기가 어려운 시절이 되었다.   마셜 맥루한이 “미디어가 메시지” 라고 전자 미디어를 통한 하나의 지구를 정확하게 설계한 이...
이봉희
7월 27일. 6·25 한국전쟁이 정전(停戰) 또는 휴전(休戰)한 지 벌써 73주년이 된다. 1960년 발표된 최인훈의 소설 ‘광장(廣場)’에선 주인공인 북한 인민군 반공포로(反共捕虜) 이명준이 남한이나 북한을 택하지 않고 제3국, 중립국을 택해 인도(印度)로 배를 타고 가다가 바닷속에 빠져 사라진다.   인도로 해항(海航) 중에 세상을 떠나는 이명준과는 달리 휴전협정 다음 해인...
김정남
세월은 쉼 없이 강물처럼 흘러간다. 그러나 내가 살아온 지난 76년의 시간은 단순한 흐름이 아니라, 문명이 거대한 물결처럼 밀려와 세상을 바꾸어 놓은 시대였다. 때로는 그 변화가 너무 빨라 숨을 고를 틈조차 없었다. 문득 뒤돌아보면, 지난 반세기 남짓한 시간의 변화는 수천 년의 역사보다 더 놀랍고 극적이었는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 동네 한가운데 놓인 라디오 한대는 마을 사람들의 귀였다. 한 집에서 뻗어 나온 전선이 집집마다 연결되어...
김유훈
지난 주에 이어 계속 집도의는 캐나다에서도 이름 있는 Doctor라 했다. 수술실에 들어가니 남자가 7사람 여자 두 사람이 있다. 수술은 집도의와 보조의가 하겠지만 의대생들이 견학하는 걸 허락했던 것이다.수술은 성공적으로 잘 마무리 된듯하다. 수술을 하고 정신을 차려보니 방광에 호스를 꽂아 소변을 받아내고 양팔 혈관에 주사바늘을 고정시켜 줄이 달려있다코로 호수를 따라 식사대용 영양제가 들어간다. 또 수술한 부위에도 호스를 넣어...
박병준
 ▶지난 주에 이어 계속 암이 자리 잡은 곳, 그 위치가 어디인가. 그게 중요하다.폐라면 힘 든다. 췌장이라면 수술이 어렵다. 급성으로 여러 군데 전이가 되었다면 걷잡을 수 없이 위험하다.내게 온 곳은 목이다. 후두암이라고도 한다. 그 자리는 어떤 곳인가?매우 정교하고 복잡한 부분이다. 거기는 기도(Air way)와 식도가 만나는 곳인데 코와 입을 통해서 공기가 들어오고 또 입에서 식도로 넘어오는 음식이 지난다.또 허파에서 나오는 공기가...
늘산 박병준
늘산 본인이 암 판정을 받고 수술을 하고 퇴원을 하면서 그간에 있었던 일들을 정리하고 싶습니다. 이는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 암에서 예방될 수 있는 일에 다소나마 길잡이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면서 이 글을 시작합니다.암의 발견은 우연적일 수도 있고 필연적일 수도 있다.나는 우연적이라 생각하며 그나마 일찍 발견하였다는데 다행이라 생각한다.산에서 사람을...
늘산 박병준
다음페이지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