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완기 (사)한국문협 밴쿠버지부 회원
작은아들이 자기를 쏙 빼 닮은 아들 노아를 낳았다.
핏줄이라는 말이 이토록 또렷하게 다가온 순간이 있었을까. 갓난아기의 얼굴에 스미는 눈매와 입가의 곡선에서, 시간을 건너온 아들의 어린 날을 만난다. 세월은 직선이 아니라, 이렇게 원을 그리며 우리 앞에 다시 서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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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애는 어릴 때부터 인사를 참 잘했다. 누가 가르쳐서라기보다, 사람을 향해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고 목소리에 온기가 실리는 아이였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길, 집 앞 3거리 모퉁이에서 트럭을 놓고 과일과 야채를 팔던 총각네 야채가게는 늘 작은 정거장처럼 아들의 하교길 발걸음을 잠시 붙잡아 두었다. “안녕하세요!” 하고 밝게 인사하면, 총각 사장님들은 초등학교 1학년 꼬마 아이의 인사성이 귀엽고 신통하여 환한 미소로 답하며 참외 하나, 슬라이스 해놓은 수박 몇 조각을 건네 주곤 하였다. 인사를 잘하는 아이에게 세상이 내어주는 작은 보상 같은 것이었다.
과일을 들고 집에 들어와 엄마에게 씩 웃으며 자랑하던 모습을 아내는 지금도 또렷이 기억을 한다. 한 알의 참외나 몇 조각 수박이었지만, 그보다 더 귀한 것은 세상과 맺는 아들의 태도였다. 먼저 인사하고, 먼저 웃고, 먼저 마음을 여는 일. 그 소박한 습관은 시간이 지나며 아들의 성품이 되었고, 가정을 이루어 드디어 한 생명을 품게 된 것이다.
그 아들이 자라 이제 아빠가 되었다. 그리고 아이의 이름을 ‘노아’라 지어도 괜찮겠는지를 내게 물어보았다. 노아라는 이름과 만나는 순간, 방주를 짓고, 홍수속에서도 생명을 품어 다음 세상으로 건너게 했던 사람. 절망의 물결 위에서 희망을 띄웠던 이름의 무게를 그대로 아이에게 얹고 싶지는 않았다. 다만 그 이름이 품은 의미와 방향, 곧 생명을 존중하고 약자를 끌어안으며, 무너지는 시대 속에서도 희망의 자리를 비워 두지 않는 태도만은 꼭 간직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노아야,
너는 세상을 구하라는 사명을 지고 태어난 아이는 아니란다. 다만 네 앞에 놓인 하루 하루를 성실히 건너며, 누군가의 오늘을 조금 덜 무겁게 해줄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단다. 인사를 잘하던 네 아빠처럼, 사람들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고 마음으로 말을 건네는 아이가 되기를 바란다. 그 한마디 인사가 어떤 날에는 참외나 수박 한 조각이 되고, 어떤 날에는 메마른 마음을 적시는 시원한 생수가 된다는 사실을, 삶을 통해 자연스레 알게 되기를 바라는구나.
너의 아빠는 그렇게 자랐단다. 형과 우애하며, 형을 닮아서 누구에게도 과시하지 않았고, 어딜 가든 인정받는 믿음직한 사람으로 성실하게 살아왔단다. 교회 청년부에서 너희 엄마를 만나 함께 유치부 교사로 동생들을 가르쳤고, 졸업을 하고는 직장인으로서 이민 1.5세라는 정체성이 핸디캡이 아닌 어드밴티지가 될 수 있도록 더 엄격하게 자신을 절제하고 주위와도 소통하며 직장과 자신의 가정을 꾸려왔단다.
두 아들을 키우며 절실히 깨닫는다. 아이는 말보다는 눈으로 배우고, 훈계보다는 격려로 자란다는 것을... 이제 그 귀한 양육의 시간은 아들들에게로 건너갔다. 아들의 손과 등이 첫 쌍둥이 손주와 노아의 산 교과서가 되고, 엄마의 품은 아가들이 세상과 마주하는 거울과 창이 될 것임을 안다.
세상은 편리하고 좋아지는 만큼이나 여전히 불안하고 또 거칠기만 하구나. 하지만 노아야, 너의 이름이 가지고 있는 의미와 힘이 혹여 부모의 시선밖에 있는 순간일지라도 너를 붙잡아 주기를 바란단다. 떠내려가지 말고, 필요한 것을 품는 사람이 되기를, 높아지기보다 넓어지고, 앞서기보다 함께 가는 길을 택하기를. 그렇게 크지 않더라도 너만의 작은 방주를 꼭 짓는 사람이 되기를...
노아야,
네가 우리 곁에 찾아와 준것만으로도 마음은 이토록 따뜻하구나. 희망이 필요한 자리에 조용히 놓이는 사람이 되기를, 굽이굽이 펼쳐질 삶의 여정과 인생의 수 많은 선택지와 길 앞에서 늘 건강하고, 웃음 잃지 않기를, 사랑과 축복을 가득 담아 기도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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