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배아이 (사)한국문협 캐나다 밴쿠버지부 회원
내 얼굴에도 인생의 흔적을 품은 고랑이 패기 시작하고 부모의 마음을 조금씩 헤아리게 되었다. 너 같은 딸을 낳아보라 하시던 엄마의 울분도 어느덧 내 것이 되었다. 그래서일까 50살이 넘어서야 집어 들었던 책이 있는데, 제목이 [아버지를 찾아서]이다. 아버지 없이 어린시절을 살아온 나였다. 그랬던 내가 저자를 따라 아버지를 찾아 나선 여정에 동행하였다. 나의 아버지도 찾을 수 있기를 희망했다.
일곱 살 때 우리 엄마와 아빠는 헤어지셨다. 나는 엄마와 살았다. 아무에게나 존재하는 아빠의 존재는 내게는 비현실적이었다. 성장하면서는 애써 외면하고 살았던 아버지였다. 결혼하고 내 아이들을 키우면서 점점 더 나는 아버지를 그리워하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아버지를 찾아서'라는 책을 읽을 때 잃어버린 내 아버지를 찾을 마음에 설레었다.
저자는 어느 날 어머니로부터 낡은 상자 하나를 전해 받는다. 그 속엔 아버지의 사진 필름이 빼곡히 들어 있었고, 전직 기자였던 저자는 아버지의 모든 사진 필름을 인화한다. 아버지의 손때 묻은 수첩에 적힌 메모를 해석하며 아버지는 어떤 분이었는지를 하나씩 발견하게 된다. 아버지가 찍은 시위 사진을 보면서 사회현상에 대한 관심을 두고 살았던 한 시민으로서의 아버지를 발견하고, 평범한 일상을 사진으로 찍어 보물처럼 정리해 둔 아버지의 사진들을 통해 그 시절 아버지가 빚어간 소소한 행복에 미소 짓는다.
하지만 내게는 아버지와 찍은 어린 모습의 내 사진이 한 장조차 없다. 왜냐하면 내가 우리 집에 있던 아버지가 찍힌 사진 모두를 열 살도 되지 않던 어느 하루 옥상에서 태워 버렸기 때문이다. 한순간의 어리석음으로 내 평생에 더 이상 아버지와 함께 찍은 사진은 한 장도 남지 않게 되었다. 아버지를 원망하며 흘려보냈던 시간마저도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었다는 사실을 이제는 알게 된다.
한국을 떠날 때 소중하게 챙겨온 물건 가운데 아버지가 남겨준 메모지 한 장이 있었다. 철이 조금 들어서 미움보다는 그리운 마음이 커져 버린 아버지에게 가죽 장갑 한 켤레를 소포로 부친 적이 있었다. 그리고 아버지로부터 장갑 한 켤레를 선물 받았었다. 소포 상자 안에 작은 메모가 포함되어 있었다. “네 마음을 받은 것 같아 너무나 고맙구나." 생전 처음으로 본 아버지의 글씨였다. 저자도 태어난 날의 수첩 페이지에서 ‘저녁때’ 또는 ‘하오 11시 41분 혹은 42분경’이라는 메모에 주목한다. 단지, 몇 날 며칠 몇 분경이라는 메모만으로도 부모가 된 아버지의 부정이 충분히 느껴진다. 만일 이날의 내용이 빈칸이었다면, 또는 수첩 속의 기록을 저자가 발견하지 못했다면 어찌 아버지의 사랑을 가늠하였을지 만무하다. 내가 아버지의 글씨에 대단한 아버지의 정을 느낀 것은 아니었다. 단지 상상이 갔다. 한 줄 메모를 몇 시간에 걸쳐서 한참을 망설이는 모습이 눈에 선했다.
이 책의 클라이맥스는 저자가 아버지를 만나는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저자는 젊은 아버지의 수첩 안에 적혀있는 시간과 장소가 적힌 메모를 따라 똑같은 여정의 통영 여행을 떠난다. 강산도 여러 번 변한 세월이 흘렀기에 아버지가 머물렀던 기차역은 폐역이 되었다. 저자는 잠시 그곳에 앉아 쉬게 되는데, 뜻밖에도 아버지와 마주친다. 30대의 아버지가 50대의 아들 어깨에 손을 얹으며 "힘드네?"라고 말을 건넨 것이다. 나는 이 대목을 읽으면서 꺼이꺼이 목 놓아 울었다. 저자에게 빙의하여 내 아버지를 만나는 상상을 하였다. 나의 경우는 아버지가 앉아계시고 내가 다가갔다는 것이 달랐다. 나는 아버지에게 이렇게 말을 건넸다.
"아버지, 제가 아버지를 많이 그리워했어요. 단 한 번도 표현한 적은 없지만요."
내 나이가 이제 아버지의 나이가 되고, 삶이라는 짐이 힘에 부칠 때마다 내 곁에 아버지가 계셨더라면 좋았을 텐데 한스럽기 그지없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누군가에게도 아련한 아버지에 대한 추억이 있다면 공감이 갈 것이다. 책으로 인해 나도 아버지의 흔적을 찾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어쩌랴. 이제 아버지는 계시지 않으니…
책을 통해서 아버지를 찾아 나서는 여정에 참여했다. 놀랍게도 나는 아버지를 만나는 상상을 해보았다. 아버지를 원 없이 불러보았다. 오랫동안 참아왔던 눈물을 이번에는 참지 않고 울었다.
아버지의 손 글씨로 적은 한 줄 메모지를 참으로 한참동안 바라보았다. 나는 아버지의 미안함을 마음으로 볼 수 있었다. 참 아버지가 더 그리워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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