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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마는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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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 : 2026-01-02 14:53

김유훈 (사)한국문협 밴쿠버지부 회원
세월은 강물처럼 흘러 어느덧 내 삶을 저만치 데려가 버렸다. 어린 시절에는 시간이 왜 그리 더디게 가는가 의아했었고, 군대 시절에는 하루가 한 해처럼 길게 느껴졌다. 그러나 결혼의 기쁨은 찰나였고, 신혼의 행복조차 누려보지 못한 채 공부와 생계의 전선에서 몸부림치며 열 네번의 이사를 거듭했다. 목사가 되면 모든 것이 순탄하게 잘 될 줄 알았으나, 이해할 수 없는 교회 정치는 나를 희생양으로 만들었다. 그 후 나는 이를 반전의 기회로 삼고 평소 꿈꾸어 왔던 유학을 준비하여 가족과 함께 카나다 행 비행기에 올랐다.

나는 Regent College에서 학업에 매진 중 동료 목사의 권유로 “우리의 목표는 결국 교회가 아닌가?”라는 말에 이끌려 그의 교회를 맡게 되었다. 그러나 당시 교회 살림조차 안되는 목회와 삶의 무게는 나를 지치게 하였다. 그때 대학원에서 만난 폴 스티븐슨 교수의 말이 내 마음 깊은 곳에 큰 울림을 주었다. “삶의 현장이 곧 목회 입니다.” 그의 말은 10년 동안 공부한 신학의 결론이 되었고, 낯선 이민의 땅에서 성실히 살아가는 것이 곧 실천 목회라는 사실을 비로소 깨달았다.

그 후 나는 가족을 책임지기 위해 누구의 도움 없이 미국과 카나다의 하늘 아래 떠돌며 트럭을 운전하였다. 나는 현대판 김삿갓 처럼 구름 따라, 그리고 별과 달을 보며, 노숙자가 되어 떠돌았던 지난 20 여년, 길 위에서 보낸 그 많았던 계절의 변화와 내가 경험한 사연들은 나에게 새로운 이야기의 씨앗이 되어 수필로 태어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나의 트럭커의 이야기는 교민 사회에 알려지고 이민자 봉사회와 한인 신협에서 트럭을 운전하고 싶은 100여 명의 교민들에게 “트럭커가 되는 길”을 통해 “도전과 용기 그리고 끈기”가 필요한 직업이라고 강의와 상담을 하였다. 그동안 나의 트럭커 생활은 힘들고 어려웠어도 미국과 카나다 구석 구석을 보고 달리는 동안 아름다운 자연은 물론 미국과 카나다 사람들의 삶을 보게 되었으며, 세월이 강물처럼 빠르게 흐른 것을 비로소 깨달았다.

나만 이렇게 달린 것이 아니라 나와 함께 했던 애마도 그동안 숨차게 달렸다. 지난 세월 동안 네 대의 트럭이 내 곁을 떠나갔고, 지금의 트럭은 어느덧 10년 째 나와 함께 하고 있다. 나는 그에게 심장 같은 엔진을 교환하였고, 다리 같은 트랜스 밋션을 재생해 주었다. 해마다 건강 검진처럼 트럭 검진을 할 때마다 수 많은 부품을 교환해 가며 애마가 아픈 데 없이 잘 달리게 하고 있다. 특히 신발과 같은 타이어를 주기마다 새 신으로 갈아주어야 정기 검진에서 통과 할 수 있다.

트럭의 정기 검진은 매우 엄격하다. 6개월 마다 정기 검진, 그리고 도로에서 하는 불시 점검, 그리고 미국과 카나다의 각 주를 통과 하며 점검을 해야 한다. 정비상태는 물론이며, 화물의 무게, 운행 일지까지 검사한다. 지금은 모두 전산화 되어 속일 수 없지만 과거에는 운행일지에 손으로 그림을 그려가며 시간을 조정할 수 있었다.

오래 전, 내가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서 물건을 내린 후, 오레곤 주 클라마스에서 목재를 싣고 오게 되었다. 주 경계가 있는 곳이라 물건을 실은 후 스케일을 통과 할 때였다. 내 트럭이 무게 초과로 걸려 1100불 벌금 통지서를 받았다.

나는 그곳에서 트럭을 자세히 보니 에어가 갑자기 샌 것을 알게 되었다. 그 후 나는 카나다로 돌아와서 벌금 통지서에 적혀있는 법정으로 편지를 써서 보냈다.

“나는 카나다 밴쿠버에서 살고 있기에 이틀이나 걸리는 그곳 법정에 출두가 어렵습니다. 나는 은퇴 목사로 트럭을 운전하고 있으며, 지난 3일 동안 워싱턴, 오레곤 주와 캘리포니아 주를 다니며 여러 곳의 스케일을 무사 통과 하였으나 그 곳에서 갑자기 에어가 새었기에 방금 수리하고 올 수 있었습니다.” 라는 내용이었다. 그 얼마 후 법정에서 편지가 왔다. “당신의 편지 잘 받았고 그 사정을 이해합니다. 그러나 전액은 어렵지만 1000불은 감면해 주니 100불만 보내십시오.”라는 답장과 함께 판사의 이름과 서명이 있었다. 내가 본 그 판사는 마음씨처럼 아름다운 이름을 가진 여성이었다.

이렇게 가끔은 예상치 못한 일들이 생기고 은혜롭고 인간미가 넘쳐 나는 사연들이 있는 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이다. 나는 그동안 운전 중에 수 많은 어려운 일들을 겪었다. 택사스에서 만난 비바람 폭풍우는 실로 어마 무시하였다. 트럭조차 빗물 위에서 미끄러질 정도였다. 오클라호마 주에서는 시커먼 토네이도가 50키로 옆으로 지나가는 모습에 가슴을 조리며 운전을 하였으며, 마니토바에서 만난 한 겨울 폭설은 앞이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길 위를 달려야만 했다. 결국 알버타 주, 메디슨 헷 근처의 고속도로에서 빙판과 눈 길에 트럭이 미끄러져 재크 나이프가 되어 눈 속으로 굴러 떨어진 나와 트럭.... 그럼에도 불구하고 먹구름과 눈 폭탄 폭풍우가 몰아친 뒤에는 파아란 하늘이 수줍은 듯이 고개를 내밀고 그 옆에는 눈이 부시게 빛나는 태양이 대지를 비추이고 있다. 더욱이 봄에는 온갖 과일 나무들이 저마다 자랑하듯이 아름다운 꽃들을 피우는 모습을 볼 때마다 자연의 신비로움을 보며 나는 모든 시름을 잊고 운전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었던 것은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한 감탄과 감사를 마음에 담아 글로서 표현하는 일 이였다. 그리고 이제 지난 날들의 그 많은 사건과 사연 들은 시간이라는 특효약을 만나 아름다운 추억의 필름으로 내 기억 속에서 생생하게 살아있다.

또다시 새해가 밝아왔다. 내가 원하지 않아도 찾아 온 나이, 일흔 여섯. 믿을 수 없는 내 생애에 처음으로 만나야 하는 숫자이다. 이제는 은퇴를 꿈꾸지만 그동안 나와 함께 한 애마가 나를 떠나지 말라며 조용히 부르고 있다. 나와 함께 늙어온 애마, 그동안 정기 건강 검진으로 정비를 잘 해 놓은 덕분에 건강하게 나와 함께하고 있다.

나는 오늘 애마와 함께 강변의 고속도를 따라 달리고 있었다. 흐르는 강물을 보며 지난날들의 추억을 잠시 떠 올리며 감상에 젖고 있을 때 아내로 부터 전화가 왔다.

“여보, 병원에서 연락이 왔어, 당신 치매 검사 받으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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