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은하수 공원

박병호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25-12-12 15:50

박병호 (사)한국문협 밴쿠버지부 회원
사람은 한 공간에서 다른 공간으로 이동하는 존재인가요?

그 곳은 영원한 현재인가.

나는 지금 움직이고 있다. 출발은 세상 어느 한 귀퉁이 작은 공간이었다. 그날은 오뉴월에 눈이 내렸다. 이팝나무가 하얗게 눈꽃을 피웠다. 내가 떠나는 날, 5월의 녹색이 뚜렷한 보색으로 빛났다. 화장장 공원에도 불살라진 내 몸을 배경으로 흰 융단이 깔렸다. 이 깨끗한 눈에 봄바람이 일고 간 은 빛 윤슬을 슬픔이 아닌, 새 희망의 동력으로 받아들였다.
슬픔은 가슴 가득한 희망을 이기지 못한다. 사람은 누구나 한 번은 공간 전환의 기회를 얻게 된다. 화에서 복이냐, 아니면 복에서 화이냐라는 이동 후 모습은 각자의 마음 밭에 달렸다. 나는 자식들에게 소위 '전화위복'의 마음을 유산으로 남겼다. 그들 마음에 어미를 보내는 슬픔이 자리할 틈을 주지 않았다.
불행이 행운으로, 절망이 기대로 변하는 것은 순식간이다. 자식들은 화장장에서 어미가 뜨거운 불꽃으로 타올라도, 잔디장에서 뼛가루가 차디찬 땅속에 묻혀도 울지 않았다. 게다가 황금빛과 흰색으로 짜인 밝은 수의를 만들어 입고 슬픔이 움틀 공간을 덮어버린 나의 노력이 별처럼 빛을 발했다. 삶이 행복에서 불행으로 이동할 전환의 틈새가 날아들지 않았다.
나는 약관 환갑의 나이에 황금빛 노란 천연 삼베와 찹쌀 풀 먹인 하얀 모시로 수의를 만들어 놓았다. 공간 전환 시 마지막 입는 이 옷은 37년간이나 한 장롱 위에서 색깔 한 줄 바래지 않고 기다려 주었다. 옷고름 끝에 수놓은 연분홍 장미는 강렬한 향기로 길고 긴 길을 채웠다. 향기에 취한 상태의 나에게 커다란 코만 달린 얼굴의 누군가가 물었다.  
“너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가?”
이동이 죽음이라면 그것은 타인의 슬픔을 이해하고 나의 행복에 찔린 타인의 심장을 어루만지는 기회가 된다는 뭉게구름 천사의 말이 떠올랐다.
나는 몸과 우주가 어떻게 창조되었는지 관심조차 없었으면서도 걷다가 숨이 차올라 가슴이 답답해지면 걷기를 중단하는 대신,
“내가 지구를 만들 때 너는 어디에 있었느냐?”
창조주의 질문을 떠올리며 호흡을 조절했다. 그리고,
 “돌아가셨습니다.”
이 말을 자연으로, 하늘나라로 갔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삶은 끝이 없는 수용이니까.
그러다 육체는 한 귀퉁이 공간에 사는 동안 영혼의 임시 거처라는 날개를 접은 천사의 대답을 듣고 나서야 걸음을 멈추었다.
나그네들은 누구나 고향이 있다. 그러나 북두칠성처럼 고정된 상태에서는 고향의 모습을 쉽게 잊어버린다. 기억을 잊어버린 채 향수를 빼앗기고 두려움에 떤다. 고향이라는 무의식, 스스로를 이끌게 하는 막강한 힘이 그리움을 낳고 나아가 하늘 공간을 영원한 고향으로 그린다.
드디어, 나는 영혼의 강을 건너고 있다. 육체에서 분리된 영혼이 천상에 오른지 지구 나이로 23년 만이다. 지상 23년은 천상 시간 기준으로는 1.5일에 불과하다. 수정처럼 빛을 발하며 흐르는 생명수의 강, 천상의 은하수를 건너면 내 소식을 직접 전할 수 없게 된다. 강을 건너면 천국 일기는 상승기류를 탄 적운판에 가시광선으로 새겨지고, 추상 쐐기문자 같은 구름판은 팔만대장경 목판처럼 한판 한판씩 쿠아카로 불리는 검은꼬리도요새의 부리에 끼워진 링에 매달려 지상으로 배송될 것이다.
여기 소식을 서둘러 전하려고 하는 것은 죄악에서 벗어나려는 나의 필사적인 노력이라기보다는 참 소식을 전하고 싶어서다. 입을 다물고 살았었던 삶이 죄악이었다는 것을 천상에 와서야 알았다. 참 소식을 전하지 않는다면 진실이 날개 접은 천사의 날개 밑으로 묻히게 된다. 게다가 공간 이동이 마무리된 이후의 소식을 전할 쐐기 문자를 이 나이에 습득할 자신도 없다.
다리보다 부리가 긴 쿠아카는 부리의 뿌리에 은하수 건너편 소식을 달고 날기 위해 길고 높은 비행선단을 이룰 것이다. 쿠아카를 닮은 붉은 어깨 도요새는 그들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지상에 알리기 위해 정강이뼈와 발가락 사이에 노란색 가락지를 달고 남, 북 회귀선을 넘을 것이다. 이 붉은 새보다 더 높은 창의성의 뿌리, 무의식의 시공간을 채우기 위해 태어난 부리 긴 새는 죽어가는 갯벌로 소멸 위기에 처한 붉은 도요새와 달리 멸종 위기에 몰리지 않을 것이다. 필사적인 창의는 날아가지 않기 때문이다.
은하수의 강에서 내려다보는 지상의 지금 모습은 작은 개미들의 이동행렬이다. 이어 만개한 흡혈 식물에 짓눌려 꽃망울도 맺지 못하는 선한 꽃의 모습이다.  한 손에 쥐면 부서질 것 같은 창백한 푸른 공에 악의 꽃이 절정에 이르면, 죽음을 각오하고 선한 꽃망울이 방울방울 솟아 나온다. 급기야 선의 꽃이 피어나 강렬한 향기를 내뿜고,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사명으로 태어난 꽃은 절정의 순간에 스스로 떨어져 내릴 것이다.
검정 바탕에 흰색 꽃무늬의 블라우스를 입은 셋째 딸과 흰색 바탕에 검은 백합 꽃무늬 셔츠를 입은 아들이 나무 사이에서 대화하고 있다.
“누나야, 쿠아카는 남섬 원주민들이 부르는 이름, 큰 뒷부리 도요새야. 15년 전, 세상에서 가장 긴 방조제가 만들어진 그해 가을, 기상봉 꼭대기에 올라 함께 관찰했던 그 부리 긴 철새 말이야. 그들은 자기네 조상이 쿠아카를 타고 북극 바로 아래서 왔다고 여기지. 그런데 실제로 이 새는 세상에서 가장 멀리 날으며, 가장 높이 오르지. 남북으로 17,000여 km 거리를 딱 한 번만 쉬고 날지. 그 중간 경유지가 바로 새만금이야. 나는 매년 가을 강과 강을 넘나들며 관찰했지. 물길이 막혀 갯벌이 갈색과 적황색 황무지로 변해가는 것도 보았고, 철새들이 강 하구 대죽도로 중간 급식지를 옮기는 것도 보았지.”
“동생아, 신비스러운 검정 백합꽃의 강한 향기는 엄마가 사는 하늘나라까지 닿겠지?” 딸이 쿠아카보다 꽃나무에 더 관심이 있다는 듯이 소재를 바꾸며 끼어들었다.
“누나야, 나 초등학교 때 교감선생님이 좋은 선생은 착한 학생을 만들고, 착한 학생은 좋은 선생님을 만들면 작은 교실에 진, 선, 미의 꽃이 피고 내면은 달콤한 꿀 향기로 채워진다고 했어.” 아들이 어려서 다녔던 학교를 떠올리며 말했다.
“동생아, 나 6학년 때 교장선생님은 작지만 강렬한 풍란 향기는 누구의 힘에 의존하지 않고도 천상 코앞에까지 다다른다고 하셨어.” 초등학교 6년간 올 수로 마친 딸이 내면의 향기를 뿜어대며 말에 훈김을 실었다.
새에 소식을 의존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나는 ‘내가 누구인가’에 대한 관심에 더 깊이 빠져들었다. 내면의 강물에 깊이 빠질수록 은하의 물은 거꾸로 흘렀다. 타인이 소중한 만큼 나도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자기를 버린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절대 미각의 혀로 타인의 입맛을 먼저 헤아리는 다섯째 딸에게 전했다. 쿠아카는 갯벌에서 작은 조개가 사라지자 더 큰 조개를 삼키기 위해 모래주머니를 키웠으나 큰 조개마저 사라지자 중간 경유지를 옮겨버렸다. 이렇게 이동하면 죽지 않을 것을, 본래 삶은 진리처럼 단순한 것을...
역사는 서서히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세계 최고 문맹국에서 최고 문화국이 되기까지는 88세 한국인 평균 수명 기간 절반만큼의 햇수도 걸리지 않았다. 지구 시간 기준 2020년 71세의 나이에 왕관 쓴 신종 플루에 걸려 천상에 오른 루이스가 지금 은하수 징검다리에서 내 손을 잡아 나를 이끌고 있다. 처음에는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던 그가 여기 시간 1년 반 동안 열 번을 찍어댄 나에게 결국 넘어왔다.
그를 유혹할 때, 나는 검은머리물떼새 수컷처럼 그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지는 않았다. 부리를 갯벌에 입 맞추듯 내밀고 좌우로 흔들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구스타프 클림트처럼 꽃이 핀 벼랑 끝에서 그를 껴안고 키스하는 그림을 그리지도 않았다. 굳이 진실을 밝히자면 그와 나의 동질성을 찾아내었다는 것이다. 지상에서는 이질적인 짝들이 만나 자신이 아닌 타인을 알아가는 경험을 쌓았으니, 천상에서는 지극히 동질적인 사람끼리 만나 타인을 통해서 나를 알아내자며 끈질기게 구애했던 것이 비법이었다. 물론 여기서도 외모를 따지지 않는 것은 아니나 동질적이라면 굳이 그것까지 탐구할 필요가 없으니.
나의 짝 맺기 전쟁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 뒤 결국 나의 승리로 끝나고, 그가 지금 내 천국 가이드가 되어 나를 마중 나와 있는 것이다. 지금 은하수 징검다리에서 내 손을 잡은 그를 보니 멍석 깔린 마당에서 행해진 내 결혼식 첫날밤이 떠오른다. 신혼여행 문화가 생겨나기 전이라 신방이 작은방이나 사랑방이었던 열여덟 꽃시절, 일본제국이 만든 신식학교를 나온 나는 로미오와 줄리엣이 첫날밤에 부른 ‘신혼의 밤, 사랑의 밤’을 남편과 함께 부르고 싶었다. 그러나 남편이 조상이 세운 구식 학교, 서당을 나왔다는 것을 떠올리고는 그냥 포기하고 말았었다. 포기는 쉽게 하지 말았어야 했다. 해보기는 했어야 후회하지 않는다.
“루이스는 영원히 떨어지지 않을 것을 맹세하며 부르는 그 노래를 알고 있을까? 아냐, 아마존에서 나고 자란 그가 신식 노래를 알리 없지.” 내가 또 하나의 나에게 중얼거렸다. 두 번째 포기는 더 빠르게 이루어진다. 습관이 중요하다.
지상에서는 아직도 아들과 딸의 대화가 끝나지 않았다. 포기라는 단어가 사전에 없는 내 아들은 큰 뒷부리도요새가 방조제로 바닷물 길이 막혀 사막으로 변해가는 새만금을 떠나 금강 하구 무인도로 중간 기착지를 옮겨가고 있는 모습을 두 팔 들어 설명하고 있었다.
돌아보니 루이스가 나의 프러포즈를 받아들였다는 소식을 천사로부터 받은 그날 지상을 내려다보니 ’우린 멈추지 않아, 어떤 벽도 뛰어넘지’라는 가사가 지구 성층권을 에워싸고 있었다. 얼음 먼지가 토성을 둥글게 감싼 띠처럼 도파민 분비를 촉진하는 선율이 향연의 띠를 둥글게 두르고 있었다.
문화가 떠오르니 나의 뇌파는 더 오랜 과거로 거슬러 오른다. 어린 소녀에게 '다양', '융합'이라는 처음 듣는 단어를 조선어와 한자로 매일 3번씩 쓰게 하신 백제 후손 선생님, 80년 넘게 일본 말을 안 쓰다 보니 이름도 생각나지 않은 그 선생님, 다른 문화를 이해하기 전에 내 문화를 이해해야 하고 나와 타인의 문화를 이해했다면 또 다른 문화를 창조해야 한다고 가르치신 그분, 국어(일본어) 공부 시간만큼 조선어 공부 시간을 갖도록 몰래 국어 숙제 면해주고 조선어 숙제를 대신 내주시던 선생님, 그때는 몰랐으나 식민지 학생에게 일본제국 선생으로서 큰 위험을 품에 안은 용기있는 배려였던 것이다.
나에게만 털어놓은 핏줄의 비밀 또한 누구에게 말하지 말라는 요청을 받지 않았지만 어린 나이에도 나는 그 사실을 절대 누구에게도 말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또한 선생님의 비밀을 나만 간직하고 싶기도 했다. 선생님과 나를 위해서 발설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게다가 천성적으로 내 입은 어렸어도 중후한 어른들의 그것만큼 무거웠고, 그 무거움이 그분을 지켜냈다. 이젠 나보다 먼저 천상에 올랐을 선생님, 그런데 하늘의 별이 되면 뵐 것 같았던 선생님을 뵙기 위해 다른 별들을 찾아 나설 필요는 지금 사라지고 있다. 이 순간 내 입이 무거움을 내려놓았기 때문이다. 화는 입에서 나와 몸과 마음을 망치고 복은 마음에서 나와 정신과 몸을 빛나게 한다는 말을 끝까지 지켜야 했다.
삶과 죽음은 동시에 하나의 길을 걷게 한다. 살기 위해서 걷고 죽기 위해서도 걷는다. 큰 뒷부리도요새도 살기 위해 중간 급유지를 바꾸고 죽기를 각오하고 큰 조개를 처음으로 삼키고 다시 날아오른다. 선조들의 고향으로 돌아가 4개의 알을 낳기 위해 용을 쓴다. 생명 탄생에 관여된 선택들은 자기가 하고 싶어서 하고, 하고 싶지 않다고 해서 안 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여전히 꿈을 꾼다. 파스텔톤 하늘색과 아이보리색 실타래를 풀어 처녀들의 옷을 짜고, 연두색 앉은뱅이 재봉틀을 돌려 신혼부부 이불보를 만들고, 흰 고리 다섯 개 달린 하늘색 모기장을 만들고, 홑이불보에 설형문자 같은 수를 놓고, 초록색 바탕의 빨간 베갯잇에 하늘색과 흰색의 무명실로 원앙새 한 쌍을 앉힌다.
그런데, 소중한 인연, 루이스를 만나 함께 천상의 징검다리를 건너고 있는데 다른 인연이 찾아오고 있음을 알리는 배롱나무의 꿈은 또 무엇인가. 그냥 무시했다. 단순함을 위해 지상이나 천상이나 별 하나에 한 남자면 족하다. 차이가 있다면 이질적이냐, 동질적이냐의 차이뿐이다. 문화의 기본은 단순하지만 다양한 경험에서 온다. 어떤 꿈은 단순히 개꿈에 불과하다. 뇌가 아무런 의미 없이 만들어낸 얽혀진 허상이다.
은하수 앞에선 현인은 누구나 장황한 염려 때문에 훈수를 많이 둔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나를 이해해 주기 바란다. 붉은 별이 수도 없이 많다 해도 옮겨 다닐 때마다 애써 짜온 붉은 실 천을 버릴 수 없다. 지상이나 천상이나 인생은 성장이다. 변화 없이 성장할 수 없으니 나날이 낯설어야 한다.
“이제 두세 징검다리만 건너면 강을 다 건너게 됩니다.”
루이스가 불만 있는 것처럼 큰 코를 들썩이며 알아듣지 못할 언어로 투덜거린다.
“잠깐만이요” 과거에 빠져있던 내가 쌀쌀맞게 대답했다.
“은하수를 건너기 전에 긴히 할 이야기가 있는데…” 루이스가 아랑곳하지 않고 고뇌의 냄새를 맡듯이 내 손에 코를 대며 연신 서둘러댄다.
“중요한 이야기는 미래 지향적이고 구체적이어야 해요” 엉겁결에 내가 내면을 탐구하듯 말하면서도 그것이 명령으로 들릴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나는 점점 더 안절부절못하는 루이스로 인해 빠르게 과거에서 현재로 돌아왔다. 천상의 문 앞으로 되돌아왔다. 생각 하나의 차이에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졌다. 은하수의 푸른빛은 여전히 숨을 멎게 했다. 눈을 감고 루이스를 바라보았다. 눈은 루이스의 얼굴을 향하고 자세는 창조자에게 순종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는데 루이스가 다시 다그 친다.
“내 말 들어야 해요. 은하수는 뒤돌아볼 수 없는 강인데 당신이 강물에 빠지지 않도록 어렵게 뒤돌아보고 다시 앞을 보며 건너고 있는 겁니다. 뒤돌아보다 들키면 천상의 벌칙이 가해지는데 기둥일지 폭포일지 몰라요. 나는 둘 다 싫습니다. 이제 더는 뒤돌아보거나 앞을 보지 않겠습니다. 현재 앞에 충실한 것이 상책입니다.
목적지 앞 여울목 다리 앞에 서니 은하수 윤슬이 별빛 아래 살랑살랑 출렁이며 신성한 빛과 천상의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강물처럼 흐르는 별빛 은하수 저편, 그윽이 깊은 데서 맑은 가락이 흘러나와 영혼을 고이 싸고, 사랑의 물결이 영원토록 영혼을 덮으리 ~~”
음악이 그칠 즈음 루이스가 내 손을 잡고 마지막 징검다리에 섰다. 그런데, 루이스가 한 발을 내딛고 다른 발을 떼어내면서 그만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그러고는 순식간에 커다란 납작코만 달린 기둥으로 변해 버렸다. 롯의 아내처럼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눈 깜짝할 새였다.
“루이스, 루이스!”
나의 외마디 절박한 외침은 “풍덩” 물에 빠지는 소리가 덮어버렸다.
그의 손길을 잃은 나는 마지막 징검다리와 목적지 사이, 크레바스 같은 틈새로 빠지고 말았다. 그리 깊지 않아서 혼자서 빠져나올 수 있었으나 한동안 멍하니 별빛 강물 속에 주저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강물에서 나와 돌기둥으로 변한 루이스의 코를 눈물로 어루만지면 덩어리가 녹아내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지상의 후손들에게 내 마지막 소식을 전해야 한다는 절절함이 더 간절했다. 은하수에서 나가면 직접 배송은 영영 이별이기 때문이다.
얼어붙은 루이스를 녹이기 위해 내 마지막 소식은 여기서 끝내야 한다. 간곡한 정성은 찬 기둥도 녹여버릴 것이라고 믿는다. 기둥이 종유석만큼 크다 할지라도 상관없다. 나는 고개 들어 부르짖을 것이다. 범 우주에 하나뿐인 그분은 내가 측은해서, 아니 루이스를 위해서라도 내 기도를 나 몰라 하지 않을 것이다.
여기 천상에서마저 나는 혼자될 수 없다. 지상에서 47년을 견디었지만 티 한 번 내지 않고 이겨냈었다.
‘나는 어느 별에서 와서 어느 별로 가는 존재인가?’
이 본질적인 물음은 현실 앞에 사라지고 있다. 오직 루이스만 살려내면 그만이다. 그 어디에도 그이만큼 나와 질적 친밀함이 비슷한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그와 함께 갯벌도, 아마존 숲도 회복시켜야 한다. 백제 핏줄 선생님도, 자연 회복을 위해 묘지의 공원화에 헌신했던 선경그룹 회장님도 그와 같지는 않다. 기릴만한 분들이지만 나와의 동질성은 루이스만큼 처절하지 않기 때문이다. 목적지에 다 와서 마음이 느슨해진 나를 뒤돌아 보다 기둥이 된 그이가 풀려나지 않는다면 나는 계속 이동해야 하는지를 생각했다.
아니다, 나는 은하수의 폭포가 될 것이다. 은하수 공원의 하늘 끝에서 정지하여 기둥과 물로 서로 마주 보며 우린 영원할 것이다.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은하수 공원 2025.12.12 (금)
사람은 한 공간에서 다른 공간으로 이동하는 존재인가요?그 곳은 영원한 현재인가.나는 지금 움직이고 있다. 출발은 세상 어느 한 귀퉁이 작은 공간이었다. 그날은 오뉴월에 눈이 내렸다. 이팝나무가 하얗게 눈꽃을 피웠다. 내가 떠나는 날, 5월의 녹색이 뚜렷한 보색으로 빛났다. 화장장 공원에도 불살라진 내 몸을 배경으로 흰 융단이 깔렸다. 이 깨끗한 눈에 봄바람이 일고 간 은 빛 윤슬을 슬픔이 아닌, 새 희망의 동력으로 받아들였다.슬픔은 가슴...
박병호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소설가 ( 브리태니커 대 백과사전) 로 칭송을 받는 톨스토이는 1828년 러시아에서 태어났다. 그는 그의 대작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리나, 부활, 참회록 그리고 많은 주옥 같은 중 단편을 수 십 편을 남겼다.  그는 34세에 18세 였던 소피아라는 16세 연하의 여인과 결혼하였으나 그의 결혼생활은 그렇게 행복하지는 않았던 듯하다.     그와 시베리아와의 인연은 그가 "전쟁과 평화" 를 집필하려고 하던...
정관일
12월에 2025.12.12 (금)
물속에 비친 달을 잡으려힘껏 움켜 쥐었지만 손엔 물기만 남았어 꽃이 예뻐서손으로 꽉 쥐었더니뭉개진 꽃물만 주르르 흘렀지 보이지 않는 세월달력에 가두어 두고한 달 한 달 달력을 넘기다 보니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간 세월 또 다시 보내야 하는 송년시간은 가지도 오지도 않는데우리만 호들갑처럼 들떠 있는지도 몰라지워진 기억처럼 지워진 날들다시 만날 수는 있을까꿈에서 본 오래전 동료처럼만나지 못할 인연같이
전재민
그 거룩한 성 2025.12.05 (금)
청소년 시절인 77년도에 살던 동네 교회 목사님 가정이 미국으로 이민을 가시게 되어 사용하시던 전축을 우리 집에 레코드 판도 같이 갖고 오게 되어 음악을 들었는데 가장 많이 듣던 LP는 테너 고이동범 교수님의 노래 거룩한 성이란 찬송가였다. 이 노래는 19세기 후반 영국의 유명한 작곡가가 지은 음악에 법률을 공부한 변호사가 작사하여 만든 곡이라고 한다. 노래의 톤이 감미롭기도 하지만 가사가 그 거룩한 성은~ 호산나~ 부분은 매우 감동이 온다....
이형만
황금률 2025.12.05 (금)
겨드랑이에 품은 그 소리는별똥별의 사랑을밤새 들려주던 풀벌레의 협주곡이다청년 시절그를 향한 마음은봄날 아침이었다주어진 환경은젖은 휴지처럼 스며드는 것이라고타이르는 나의 반석푸른 더듬이가방향키를 찾을 때사막에 풍향을 읽게 하고힘없이 부서지는 낙엽을자연의 질서에 순응하는생애 기쁨이라고황금률을 내주는 사랑의 품이다수많은 별만큼 신비한 그의 소리가삶의 대지에 너울처럼 펼쳐지니창조물의 숨결이 그의 사랑에서...
반현향
  외국에 살면서 이방인이라고 느끼는 순간들은 복잡한 감정을 동반해 찾아온다. 현지 사람들이 특정 TV 프로그램에 대해 말할 때 함께 웃지 못하고, 문화 차이에서 오는 감정 표현의 방식이 서툴러 무감각할 때, 은행이나 병원, 행정 기관 등의 시스템을 이용하면서 복잡한 절차나 서류에 압도당할 때, 직장 동료와 철학, 정치 또는 깊은 감정에 대해 진지한 대화를 할 수 없을 때,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마다 어디서 왔고 왜 이곳에 살고 있는지를...
권은경
길목 2025.12.05 (금)
날렵한 초겨울 바람송두리째 가을을 삼켜 버리고온 몸부림으로 서둘러 왔네 어느새하얗게 채색된 눈부신 이 아침 앙상한 사과나무 위모여 앉은 새들 눈꽃 잔치가바로 천국 이어라 향기 실은 꽃 바람 기다림은풍성한 내일로 불어 오려나 삶의 뒤안길옷깃 속으로 드는 찬바람이바로 봄인 것을 뺨 위로 넘나드는 춤추는찬 물결 꽃봉투는너울 되어 먼 여행길을 나서네
김정임
맨 아래 칸 서랍 2025.12.01 (월)
맨 아래 칸 서랍이즈음 옷장의 맨 아래 칸 서랍을 정리하는 날이 부쩍 늘었다놓지 못해 떠나지 못한 내 어제의 그림자들이 매미 허물같이 모여 사는 곳돌쩌귀도 녹스는 늙은 세월에 대부분은 떠나고몇은 아직 남아서 민속촌처럼 함께 저무는 그곳엔늦가을 저녁의 체온 닮은 바람이 분다내가 거쳐온 삶의 간이역들이 펼쳐진다순진한 젊은 별바라기의 풋꿈도자갈길에 땀 흘리던 이민(移民)의 한여름날도오래전에 잃어버린 시(詩)를...
안봉자
지난 주에 이어 계속 집도의는 캐나다에서도 이름 있는 Doctor라 했다. 수술실에 들어가니 남자가 7사람 여자 두 사람이 있다. 수술은 집도의와 보조의가 하겠지만 의대생들이 견학하는 걸 허락했던 것이다.수술은 성공적으로 잘 마무리 된듯하다. 수술을 하고 정신을 차려보니 방광에 호스를 꽂아 소변을 받아내고 양팔 혈관에 주사바늘을 고정시켜 줄이 달려있다코로 호수를 따라 식사대용 영양제가 들어간다. 또 수술한 부위에도 호스를 넣어...
박병준
 ▶지난 주에 이어 계속 암이 자리 잡은 곳, 그 위치가 어디인가. 그게 중요하다.폐라면 힘 든다. 췌장이라면 수술이 어렵다. 급성으로 여러 군데 전이가 되었다면 걷잡을 수 없이 위험하다.내게 온 곳은 목이다. 후두암이라고도 한다. 그 자리는 어떤 곳인가?매우 정교하고 복잡한 부분이다. 거기는 기도(Air way)와 식도가 만나는 곳인데 코와 입을 통해서 공기가 들어오고 또 입에서 식도로 넘어오는 음식이 지난다.또 허파에서 나오는 공기가...
늘산 박병준
늘산 본인이 암 판정을 받고 수술을 하고 퇴원을 하면서 그간에 있었던 일들을 정리하고 싶습니다. 이는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 암에서 예방될 수 있는 일에 다소나마 길잡이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면서 이 글을 시작합니다.암의 발견은 우연적일 수도 있고 필연적일 수도 있다.나는 우연적이라 생각하며 그나마 일찍 발견하였다는데 다행이라 생각한다.산에서 사람을...
늘산 박병준
다음페이지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