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만 / (사)한국문협 밴쿠버지부 회원
청소년 시절인 77년도에 살던 동네 교회 목사님 가정이 미국으로 이민을 가시게 되어 사용하시던 전축을 우리 집에 레코드 판도 같이 갖고 오게 되어 음악을 들었는데 가장 많이 듣던 LP는 테너 고이동범 교수님의 노래 거룩한 성이란 찬송가였다. 이 노래는 19세기 후반 영국의 유명한 작곡가가 지은 음악에 법률을 공부한 변호사가 작사하여 만든 곡이라고 한다. 노래의 톤이 감미롭기도 하지만 가사가 그 거룩한 성은~ 호산나~ 부분은 매우 감동이 온다. 그렇게 노랫말 속에서만 듣던 예루살렘이 있는 이스라엘에서 성인이 된 후 회사 일로 거주하게 될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다. 생각해 보면 내가 캐나다 밴쿠버에서 살게 될 줄은 더더욱 예상치 못했던 일이다. 누구나 살다 보면 계획대로 되는 게 아니고 어떻게 든 계획과는 다른 인연이 만들어지는 것 같다.
다니던 회사에서 히브리어를 구사하는 인력이 필요해 자의 반 타의 반 히브리어를 배우게 되었는데 96년 3월~7월까지 3~4개월 간 네타냐(Netanya)에있는 울판 아끼바(Ulpan Akiva 울판은 언어를 배우는 학원이란 뜻 아끼바는 유명 랍비이름)라는 히브리어 교육기관이 있었는데 지중해 해변에 세워진 곳으로 그린 비취 호텔이란 경치 좋은 곳에서 숙식을 제공받으면서 강의실에서 15명 정도로 레벨 별로 그룹을 이루어 배우는 곳이었다.
주로 해외 거주하는 유태인들이 장기간 휴가로 그들의 모국어를 배우러 오거나 유태인이 아니어도 히브리어를 배우고 싶어 하는 기독교인들이 성지 순례 겸 히브리어 공부 겸 찾아오는 곳으로 이스라엘여행과 수업을 같이 하는 기관이었다. 좋은 호텔에서 숙식을 제공받으니 학비가 비싼 편 이어 일반인이 오기는 쉽지 않았는데 회사에서 보내주어 가능했다.
히브리어는 문법은 영어와 90% 이상 동일하다. 인쇄체, 필기체가 있고 주어, 동사 목적어 순이고 시제별 동사 변화, 부정사, 관계 대명사, 접속사, 전치사, 부정 관사, 정 관사까지 거의 사용법이 같다. 단 영어의 동명사와 현재 분사는 없다. 독일어도 좀 닮아 모든 단어에 남성, 여성이 있다. 단 독일어와달리 중성은 없다. 스페인어도 좀 닮아 형용사가 명사 위에서 꾸며준다. 즉 까사 미아 가 나의 집이 되듯이 예루살렘이 평화의 도시가 된다. 한국어와는 닮은 꼴이 한글 미음 받침의 발음이 히브리어 자음 발음과 생김새가 같고 니은 받침이 유사하고 사어가 된 아래 아 가 히브리어에 모음 기호로 쓰인다, 한국의 한 국어학자가 한글의 자음이 히브리어 자음의 영향을 받은 거라고 주장하는 논문이 2000년대 초에 있었다.
한문과 닮은 점은 붓으로 글씨를 쓰면 생김새가 멀리서 보면 비슷해 보일 수 있다. 아랍어랑은 쓰는 순서가 같아 즉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쓴다. 이곳에서 배우고 텔아비브 대학 랭귀지 스쿨 도 다니고 현지에서 생활하니 자연스럽게 구사가 가능할 수 있었었다. 당시엔 서울에서 출장자가 오면 공항을 나가야 되어서 공항을 자주 갔는데 한번은 영어를 잘 못하는 공항 여성 직원과 히브리어를 전혀 못 하는 미국인이 대화가 안 되는 걸 지나가다 보고 통역을 해주었는데 둘 다 백인이었다. 어느 동양인이 자기네 나라말로 통역을 해주니 신기했는지 말하면서 계속 서로 쳐다보면서 웃던 기억이 난다.
텔아비브에서 예루살렘 가는 고속 도로를 타고 거의 예루살렘 근처 다다르기 10~15분 전쯤에 오른쪽으로 Latrun(라트룬으로 발음)이란 표지판이 나온다. 마치 99번 도로를 타고 공항에서 white rock 방향으로 갈 때 Delta의 Lander 표지판이 보이듯 보인다. 이곳은 성경에는 안 나오는 지명인데 히브리대 교수로부터 듣기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 옆에 십자가에 있던 착한 강도의 이름이라고 한다. 그 착한 강도가 살던 동네가 거기여서 그곳 지명 이름이 되었다고 한다. 이 Latrun 근처에 신약 성경에 나오는 엠마오라는 곳이 있다. 그리고 엠마오가 있는 곳에 Canada Park이 있다. 1972년도 캐나다 유태인들이 펀딩을 하여 만든 곳으로 많은 국내외 관광객이 찾아오는 명소가 되었다. West Bank 쪽으로 달리다 보면 사마리아 그리심 산 도착 전에 마을 이름이 임마누엘이란 곳이 나온다. 마을 표지판 이름만 봐도 평화로워 보였다.
Ulpan Akiva에선 체험 학습식으로 회당에도 가서 예배에 참석해 보기도 하고 랍비를 초빙해 설교를 듣기도 했는데 회당(synagogue)과 성(temple)의 차이는 천장이 있느냐 없느냐 의 차이라고 한다. 랍비는 토요일 안식 일에는 창조와 관계되는 일은 절대 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회당에 들어갔는데 창문이 크지 않아 어둡거나 해가 졌거나 이른 아침이어서 어두우면 불을 켜야 하는데 본인이 절대 불을 켜지 않는다. 즉 나 같은 사람(gentile,이방인)이 보이면 눈을 마주친다, 그리고 말은 안 하고 고개를 두 번 빨리 끄덕인다. 그럼 알아서 불을 켜주어야 하며 절대 말을 하면 안 된다. 예를 들어 불 겨드릴까요? 하고 물어보면 절대 안 된다, 그들은 본인들이 시키는 건 당연히 안되고 말로도 부탁하면 절대 안 되고 알아서 켜 주어야 한다. 그냥 겸손히 가서 불을 켜고 모르는 척하고 앉아 있어야 했다.
보통 중동 국가 하면 전통적이고 보수적이라고 느낄 수 있는데 그런 면도 있으면서 정반대의 문화가 공존하는 곳이 이스라엘이다. 당시 예루살렘 포스트(The Jerusalem Post) 라는 일간지에 나온 기사인데 (1996년 12월 어느 날짜에 실린 기사다) 갤럽에서 한때 세계 10대 대학에도 들어간 적이 있는 명문 히브리대 여대생을 대상으로 일주일에 섹스를 몇 번 하는지를 물어보고 발표한 적이 있었다. 여학생의 70% 이상이 최소 일주일에 4번에서 5번이라고 나왔다. 그만큼 자유분방하고 텔아비브 중심가는 불야성을 이루고 해변에는 많은 유흥 문화를 볼 수 있었다.
지금은 예루살렘 성은 둘레 4km 정도로 제2 성전 대비 2/3로 축소된 성이고 2 성전 때는 이보다 컸었고 솔로몬이 완성한 1 성전은 설계도가 남아 있지 않아 정확한 크기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2 성전보다 컸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렇게 웅장한 성을 짓기 위해 많은 인력이 동원되었는데 성을 지은 후에 가장 큰 문제가 실업 문제였다고 한다. 예루살렘 성 문중 다마스커스 게이트라는 곳이 있는데 이름은 다마스커스로 가능 방향에 있어서 그렇게 부른다고 한다. 이 문을 통해 10여분 정도만 걸어 들어가면 19세기 중엽부터 순객이머무는 오스트리안 호스피스(Austrian Hospice)라는 숙소가 있다. 성안에서 며칠 지내면서 예루살렘 성 안팎을 보기에 좋다.
북쪽 갈릴리 호수는 예루살렘에서 1시간 20분 정도 걸리는데 이곳의 경치는 형용하기 어려울 정도로 아름답다. 호수엔 고기 배가 떠다니고 해변엔 어른 주먹만 한 큰 게가 기어 다니고 베드로 물고기라고 불리는 민물고기(Telapia의 일종)를 요리해 피쉬앤 췹으로 파는 레스토랑이 호숫가를 끼고 있다. 호수 한 바퀴 드라이빙 하는 데 1시간 걸리는데 달릴 때 펼쳐지는 파노라마는 정말 아름답다. 예루살렘은 해발 800m 고지에 있고 요단강 건너 도시 요르단의 암만은 이보다 조금 높은 850m의 고지인데 이 사이의 협곡을 따라 북쪽 갈릴리 호수는 -200m, 사해 바다는 -400m여서 짧은 거리를 두고 깊게 패인 계곡이 장관을 이룬다. 갈릴리 호수 북쪽 골란고원을 달리면 헤르몬산이 나온다. 겨울엔 스키장으로 유명하다.
남쪽으로 달려보자, 텔아비브에서 브엘세바까지는 도심과 전원의 모습을 반복한다, 그러다 브엘세바를 지나 홍해 바다까지 뻗어 있는 네게브 사막이 또한 장관이다. 홍해 바다엔 이스라엘 에일랏이란 도시와 접하여 이집트 시나이반도, 요르단, 사우디아라비아 3개국 국경과 검문소가 있다. 이집트와 요르단은 차를 갖고 국경을 넘어갈 수 있다.
이스라엘은 국토의 93%가 국유지이고 7%가 사유지인데 7%의 대부분을 로드차일드 재단이 갖고있다. 로스차일드가 갖고 있는 공원 중 지중해 해변 인접 도시 Hadera라는 곳에 Ramat HaNadiv라는 공원이 있다. 서쪽으로는 지중해가 보이고 동쪽으로는 사마리아 평원이 보여 많은 사람들이 찾는 명소이다. 사마리아 땅끝 까지라는 사도행전의 구절이 연상되는 곳이다. 끝없이 펼쳐진 사마리아 땅의 아름다운 풍경은 어느 화가도 흉내 낼 수 없는 장관이다.
요르단으로 차를 갖고 육로로 이동하면 느보산, 페트라 등 여러 곳을 볼 수 있고 사해 바다 요르단쪽도 가볼 수 있다. 세계에서 가장 낮은 지역이 사해 바다인데 요르단 쪽 사해가 가장 낮은 곳에 있다. 사해 바다가 바다로 불리는 것은 물이 더 이상 갈 데가 없어서 바다로 칭한다고 한다. 요르단에서 이스라엘로 차를 타고 국경을 넘으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말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다. 올리브 나무, 무화과나무, 오렌지 나무와 함께 많아 보이는 게 대추야자 나무(Date Tree)다. 성경에 나오는 젖은 양젖을 의미하나 꿀은 벌꿀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이 단맛을 내는 대추야자 나무라고 한다.
지금은 이스라엘이 전쟁 중 이어 언제 예전처럼 평화로운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모르나 언젠가 중동에 평화가 찾아오면 휴가를 내어 울판(Ulpan)같은 교육기관에서 머물며 언어를 배우고 그 거룩한 성을 여행하면서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은 추억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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