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개와 고양이에 관한 진실

최민자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25-10-03 16:52

최민자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머리가 허연 사내 하나가 털이 하얀 강아지 한 마리와 동네 골목을 산책 중이다.
산책하고 싶어 한 게 개였는지 사내였는지 알 수는 없지만 강아지가 앞장서고 사내가 뒤를 따른다. 강아지가 길모퉁이에 멈춰 서 있다. 아랫도리를 낮추고 볼일을 보는 개를 사내가 조용히 기다려준다. 꽁초 한 개비 마음 놓고 못 버리는 인간의 거리에 천연덕스럽게 응가를? 무슨 상관이냐고, 갈 길이나 가시라고, 녀석이 흘끔 위 아래로 훑는다. 녀석이 일어선다. 사내의 손이 점퍼주머니 안에서 꼼지락거리더니 둘둘 말린 휴지와 꾸깃꾸깃한 비닐이 딸려 나온다. 바닥에 널린 똥 덩어리를 허리 굽혀 주워드는 중씰한 저 사내, 자기 아이들 기저귀 수발도 저리 극진하였을까.
 
아이 둘을 키워내는 동안 기저귀 한 번 봐준 적 없는 남자가 어느 날 저녁 코웃음을 치며 들어왔다. 고교동창 몇 이서 술 한 잔을 하는데 옆자리 친구에게 자꾸만 전화가 빗발치더라는 것이다. 눈치를 보니 빨리 들어오라 채근하는 전화 같아 신혼도 아닌데 다 늙어 무슨? 하니 난감한 표정의 그 친구 왈, 그날이 견공(犬公) 제삿날이라는 거였다. 13년 동안 한 식구로 살던 개가 지난 해 노환으로 돌아가셨는데 아이들과 추모행사를 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내 참 기가 막혀… 선산 벌초도 안 다니는 녀석이…”
개 영정 앞에 촛불 켜 놓고 추도예배를 드린다는 말에 나 또한 함께 웃어버리고 말았지만 애견유치원에 애견 카페, 애견 호텔까지 성업 중인 우리 동네 개들이 들으면 세상 변한 거 모르냐고 코웃음을 칠지 모른다. 화려한 액세서리에 다이어트 사료는 기본이고 때맞추어 스케일링을 하고 관절 영양제까지 복용한다는 아랫집 귀부인 말티즈 여사가 건너편 빌라에 사는 숏다리 노신사 닥스훈트 공(公)을 만나면 콧속말로 킁킁 속닥거릴 것이다. ‘케이블에 도그 TV 생긴 거 알아요? 혼자 있을 때 시간 죽이기 딱이더라고. 인간들이 이제야 좀 철이 드는 것 같아요.’
 
인간이 오늘날 이 행성의 패권을 장악하고 우두머리의 위상을 공고히 하게 된 데에는 초창기 개들의 혁혁한 공헌이 있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인간이 맹수를 앞지르기 시작한 것은 개와 편 먹은 다음부터 였으니까. 야생늑대에서 길들여진 개들이 인간의 편에 서서 사냥감을 쫓고 사나운 짐승들을 영역 밖으로 축출하는 데에 일조해주지 않았다면 지구촌의 권력구조는 지금과는 사뭇 달라졌을 것이다. 그런 사실을 까맣게 잊고 개새끼니 개떡이니 개망나니 같은 말로 시시 때때 자존감을 뭉개고, 복날마다 개장국으로 함포고복(含哺鼓腹)하는 인간들이야말로 개 쪽에서 보면 천하에 배은망덕한 파렴치한들 아닐까. 개가 그런 욕을 들어야 한다면 인간이 아닌 다른 동물들, 왕좌를 빼앗긴 호랑이나 사자, 질투심에 사로잡힌 여타 가축들에게서 일 텐데 말이다.
 
인간과 짐승 사이에서 캐스팅보트를 인간 쪽에 행사함으로써 뭇 짐승들에게 추악한 배신자로 낙인 찍힌 개들에게도 반역의 열매는 향기롭고 달았다. 인간과 함께 노루나 사슴을 쫓음으로써 사냥감이 아닌 사냥조교로 신변안전을 보장받았고 시시 때때 떨어지는 떡고물로 끼니걱정을 면하게 되었다. 타고난 명민함으로 사냥꾼이 아닌 사냥꾼의 마누라가 실세라는 사실을 일찌감치 간파해낸 그들은 안방마님 품 안에 쏘옥 안길 수 있게 체구를 줄이고 품종을 다변화함으로써 오늘날 야생늑대의 개체 수를 현격하게 뛰어넘을 만치 종족번식에도 성공하였다. 뿐인가. 금세 헤어졌다 다시 만나도 십년이나 못 본 듯 열광적으로 뛰어오르는 호들갑 매너 덕에 인간의 침소에서 껌을 씹고 유기농 간식을 깨작거리는 특권과 호사를 누리게 되었으니 선견(先犬))들의 밝은 선견(先見)이야말로 종족의 운명을 바꾼 건곤일척의 결단이었던 셈이다.
 
이쯤에서 이제 적인 듯 동지인 듯 아리송한 이웃사촌 고양이 이야기도 짚고 가야 할 것 같다. 고양이는 어떻게 우리 곁에 왔을까. 불공대천의 ‘개새끼’들 때문에 제왕의 자리를 잃어버린 맹수들, 당장 마을로 쳐 내려가 원수와 배신자를 요절내고 싶었으나 전세가 턱없이 기울어버렸다. 절치부심 복수만을 꿈꾸다가 졸개 몇을 내려 보내 염탐이라도 해보자 했던 바, 호기심 많고 예민한 동아시아 출신의 삵과 날렵하고 유연한 이집트 원산의 야생고양이가 최종 경합을 벌이게 되었다. 결국, 동그란 눈망울에 조신한 걸음걸이, 섹시한 목소리를 가진 고양이가 인간의 경계심을 늦추고 개와 맞장을 뜰 만 하다 하여 밀사로 발탁 되었다던가. 믿거나 말거나, 유치하거나 말거나다.
 
인간 세상에 잠입한 고양이는 주어진 소명을 잊지 않았다. 인간과 개에게 공히 반감을 품고 누구에게도 함부로 곁을 주지 않았다. 열길 물속은 알아도 반의 반 길 고양이 속은 알다 가도 모르는 일. 잃어버린 종족의 영화를 꿈꾸며 복수혈전을 획책하는 그들은 비굴하게 꼬리를 흔들어 먹이를 탐하지 않는다. 함부로 무릎을 낮춰 복종을 맹세하지도 않는다. 타고난 ‘밀땅’의 고수답게 새침한 듯 까칠한 듯 내숭을 떨며 길들지 않는 야성으로, 맹수의 품위로 어슬렁거린다. 고양이는 채권자처럼, 개는 채무자처럼 우리 곁을 맴돈다. 인간에 대한 개와 고양이의 입장 차이를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그의 책 <상상력사전>에서 이렇게 통찰한다.
- 개는 이렇게 생각한다. ‘인간은 나를 먹여줘. 그러니까 그는 나의 신이야.’ 고양이는 이렇게 생각한다. ‘인간은 나를 먹여줘. 그러니까 나는 그의 신이야.’
 
한결같은 충성심과 애교로, 요염하고 도도한 변덕으로, 인간의 마음을 훔치는 동물들. 애완을 넘어 반려로, 진즉 품계가 격상된 그들은 제각기 다른 매력과 전략으로 인간을 수하로 부리기에 이르렀다. 어쩌면 저들은 아득한 시절의 구원(舊怨)을 잊고 적의 적은 동지요 우방이라는 심정으로 무소 불위의 절대 권력에 엿 먹일 계책을 암암리에 주고받고 있는지도 모른다. 털도 없고 꼬리도 없는 저 수상한 반려 아닌 반려가 요즘엔 하나같이 애정결핍과 외로움 같은 치명적 질환에 시달리고 있다는 일급비밀마저 저들에겐 한물 간 정보일지도 모른다. 인간들은, 특히나 인간 남자들은, 이 시대적 패러다임을 뼈아프게 받아들여야 한다. 세상이 이미 바뀌었다는 사실을. 사람 사는 세상에도 개과와 고양이과, 두 부류의 여자가 존재하며 둘 다 공히, 은밀하거나 노골적인 갑(甲)질로 사내들을 부려먹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홍익인간의 개념 2026.10.09 (금)
마음의 여유가 없거나 마음둘 곳이 없을 때는부모님을 생각하세요.  헤어짐과 만남이 서로 갈등을 쌓아 놓을 때는설렜던 기억만 생각하세요.  기분이 우울하거나 감정이 내려앉을 때는깊은 계곡 맑은 물을 찾아보세요.  우리가 지금 세계의 어느 곳에서터를 잡고 생활하고 있다면  또 그곳의 생활에 충실해하루의 일상이 바쁘게 회전하다가언뜻 어린 시절의 고귀하게 남아있는추억을 생각하고  더할 나위 없이...
송요상
에버그린 하우스는 내가 근무하는 병원의 오래된 요양 병동이다. 시간의 더께가 내려앉은 노란 벽돌과 콘크리트로 이루어진 오십 년이 넘은 낡은 건물은 새로 들어선 병동 맞은 편에 낮게 웅크리고 있다.    요양원이나 장기 요양시설에는 에버그린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곳이 많다. 상록수는 사철 내내 잎이 푸른 나무를 이르는 말이다. 맑은 공기와 생명력이 가득한 상록수 숲의 인상과 달리 요양 병동은 잿빛 하늘처럼 무겁게 가라앉아 있다....
이주령
아파트 9층인 우리 집 거실에서 베란다 쪽 소파에 앉으면 사거리가 보인다. 건너편 아파트와 시내로 나가는 길이 교차되는 길이다. 그 사거리를 바라보며 가끔 무료하게 시간을 보낸다. 신호에 따라 밀려왔다 밀려가고 달리다 멈추고 하는, 하등 신기할 것 없는 차량의 행렬을 신기하게 바라본다. 저렇게 많은 차들은 대관절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새벽부터 밤중까지 끊임없이 굴러가는 지친 바퀴들은 언제 어디쯤에서 쉬게 될 것인가. '나는 바퀴를...
최민자
호모 사피엔스 2026.10.08 (목)
우쭐대는 글 들과 퍼즐처럼 늘어놓은 낱말들로 인간이 지성이라 쌓아놓은 성벽 위에서 인간은 다른 생명을 뒤적이며 짐작으로 떠들고 떠들며 이름 부쳐놓고 이름 부쳐놓고 킬킬대는 호모 사피엔스  먼 길 돌고 돌아 여기 인공지능의 지성을 빌어 태초에 생명이 탄생하고 태초의 생명이 헤어진 길 그 헤어진 출발 선에서 다시 만나 모인다면 모든 생명들 한 동아리로 돌아가 그 최초의 언어로 말문의 장벽은 허물리고 그때 굶주린...
조규남
해외에 살면서 부모님이 한국에 계시지 않게 되면, 한국에 갈 일이 점차 줄어든다. 전에는 이런 말을 들으면 그저 ‘그런가 보다’ 하고 그냥 넘겨들었는데, 작년에 어머님마저 돌아가시니 서글픈 현실의 문제가 되었다. 당장 한국에 가서 지낼 곳이 마땅치 않았다. 형제자매가 있어도 며칠은 괜찮겠지만 기간이 길어지면 서로 불편하다. 그래서 묵을 곳을 인터넷을 통해 구했다.    예전에 엄마 집에 머물 때는 모든 것이 익숙해서 몇 년 만에...
박혜정
탈피 2026.10.02 (금)
검은 물속 바위 아래 웅크린가재 한 마리가 몸을 비틀고 있다살아남으려 껴입은 갑옷은 어느새숨을 옥죄는 감옥이 되었다터져 버릴 것 같은 몸을좁은 문틈으로 밀어낸다죽음의 동굴을 빠져나온다무방비하고 말랑한 새 몸가재는 벗어낸 뿌연 몸뚱이와 마주한다나를 지키던 세계를조각조각 씹어 삼켜새로운 갑옷을 만든다다음 죽음까지 또 한 번의 영원을 준비한다유명한 그림 속 붉은 가재를 떠올리다고개를 내젓고는청록의 꼬리를 접었다 펴물살을...
이인숙
꽃의 체온 2026.10.01 (목)
     인사동에 가면 '볼가'라는 찻집이 있다. 클래식 음악이 잔잔히 흐르는 실내에 들어서면 창가에 풀꽃들이 도열해서 길손들을 반겨준다. 깜찍하게 예쁜 꽃들을 보는 것만으로는 부족해서 살며시 꽃잎을 만져본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꺾고 싶다고 느낀다. 사람들은 왜 아름다운 것을 보면 소유욕이 발동을 하는 것일까. 꽃 앞에서 해 보는 생각이지만 내가 꽃잎을 만져보는 더 큰 이유는 생화인가 조화인가 알아보기 위해서다....
반숙자
감 2026.10.01 (목)
          1. 감 꽃 샛결바람 따스히 감 꽃이 떨어져요 장독대 물들이고 담장아래 소복소복 눈처럼 쌓여가요   밭일 나간 엄마에게 막내소식 들려주려 바삐 바삐 떠나가다 가지 끝에 결린 바람   맴을 돌다 사분사분 감 꽃만 흩날려요   샛결바람 따스히 떨어진 감 꽃이 내 마음 물들이고 발치 아래 소복소복 눈처럼 쌓여가요   2. 목걸이 실에 꿰어 만든 목걸이 엄마 기다리다 길어진 모가지에 드리우고...
김호정
지난 주에 이어 계속 집도의는 캐나다에서도 이름 있는 Doctor라 했다. 수술실에 들어가니 남자가 7사람 여자 두 사람이 있다. 수술은 집도의와 보조의가 하겠지만 의대생들이 견학하는 걸 허락했던 것이다.수술은 성공적으로 잘 마무리 된듯하다. 수술을 하고 정신을 차려보니 방광에 호스를 꽂아 소변을 받아내고 양팔 혈관에 주사바늘을 고정시켜 줄이 달려있다코로 호수를 따라 식사대용 영양제가 들어간다. 또 수술한 부위에도 호스를 넣어...
박병준
 ▶지난 주에 이어 계속 암이 자리 잡은 곳, 그 위치가 어디인가. 그게 중요하다.폐라면 힘 든다. 췌장이라면 수술이 어렵다. 급성으로 여러 군데 전이가 되었다면 걷잡을 수 없이 위험하다.내게 온 곳은 목이다. 후두암이라고도 한다. 그 자리는 어떤 곳인가?매우 정교하고 복잡한 부분이다. 거기는 기도(Air way)와 식도가 만나는 곳인데 코와 입을 통해서 공기가 들어오고 또 입에서 식도로 넘어오는 음식이 지난다.또 허파에서 나오는 공기가...
늘산 박병준
늘산 본인이 암 판정을 받고 수술을 하고 퇴원을 하면서 그간에 있었던 일들을 정리하고 싶습니다. 이는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 암에서 예방될 수 있는 일에 다소나마 길잡이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면서 이 글을 시작합니다.암의 발견은 우연적일 수도 있고 필연적일 수도 있다.나는 우연적이라 생각하며 그나마 일찍 발견하였다는데 다행이라 생각한다.산에서 사람을...
늘산 박병준
다음페이지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