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아 헤븐 김 (사)한국문협 밴쿠버지부 회원
“내가 변했다! 아니 내가 바뀌었다!!” 변한 것은 그동안 스스로 느낄 수 있을 만큼 적재적소에서 그 변화를 감지할 수 있었지만 내가 바뀌었다는 것은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어떤 희열과도 같은 기분을 끌고 왔다. 변한 것과 바뀐 것은 미묘한 차이라 하지만 나에게 있어서 그 둘의 차이는 극명하게 나눠진다. 이미 오래전에 내가 변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땐 당연한 것으로 여기었고, 되레 당연히 여기는 내 나름의 수긍이 놀라울 만큼 자연스러워서 큰 감흥은 없었다. 그런데 불과 두어 시간 전의 내 모습을 되돌아볼 때 변했다기보다 나도 모르게 “내가 바뀌었어! 내가!” 감탄인지 탄성인지 모를 혼잣말을 나지막이 반복적으로 뱉어 내기만 했다. 신선한 충격의 여운은 쏟아지는 비에도 전이되었는지 밴쿠버에 사는 동안 한 번도 본 적 없는 굵고 강한 빗줄기가 힘차게 유리창에 내리꽂히는 것이었다. 마치 엄청난 크기의 파편과 소리의 위력에 놀란 적이 있던 갈매기의 배변처럼 운전대 너머로 빗방울은 눈물과 섞여 옆으로 퍼지고 있었다. ‘감사할 조건이 더 필요한 것이 아니라 다만 더욱 감사하는 것이 필요하다’라는 말처럼 내가 바뀌었다는 자각은 새로운 감사로 이어졌고 불과 몇 시간도 채 되지 않은 조금 전의 일에서 비롯되었다.
지난밤부터 조용히 내리던 비는 아침 해의 낯을 가리면서 빗줄기는 더욱 굵어졌다. 한국의 장맛비처럼 거세게 달려드는 기세는 지난 며칠 동안 고개 들던 봄기운마저 숨죽이게 하고 자리 내준 겨울을 불러왔는지 허연 입김이 허공을 가르는 아침에 나는 서둘러 다운타운으로 향했다. 매주 토요일마다 이스트 헤이스팅 스트리트 (East Hastings St.)에서 노숙인들에게 점심 대접하는 갈렙 선교사님을 도와 나는 러브 밴쿠버의 일원으로 참석했다. 몇 년 전에 처음 그곳에 참여했을 때는 종이 접시에 음식을 담아 주는 일을 했다. 그런데 갈렙 선교사님의 권유로 노숙인들에게 주님의 사랑을 전하며 전단지와 중보기도를 원하는 노숙인들의 기도 제목을 적는, 역할 분담이 바뀌었다. 그러다 보니 음식이 놓인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노숙인이 들고 있는 접시에 음식을 담아 줄 때와 달리 이야기를 들으려면 내 귀를 그들의 얼굴에 가까이 대어야 했다. 약에 취해 흔들리며 굽어지는 등과 고개를 떨군 그들의 말소리를 듣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웠고 내가 마스크를 끼고 있긴 하지만, 무엇보다 그들이 내뿜는 독특한 체취는 마스크를 끼고 있다 한들 그 냄새를 도저히 막아내지 못했다. 그래서 마스크 안에 향수를 뿌리고 갈 때도 있었지만, 오히려 향수 냄새로 울렁거리고 어지러워서 이래저래 생각지 못한 냄새와 전쟁하게 되었다. 날이 춥거나 오늘처럼 비가 많이 오는 날은 콧물을 흘리는 노숙인이 많은데 맑고 투명한 콧물보다 누렇고 걸쭉한 콧물을 흘리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더욱이 구부러진 몸에 떨궈진 얼굴이 받아 든 음식 접시에 닿을 듯하고 때론 음식에 콧물이 떨어질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솔직히 더러워서 외면하면서도 내 목소리는 가식적으로 부드럽고 친절하게 맛있게 먹으라며 그들의 호주머니 안에 교회에서 받아온 전단지를 슬쩍 넣어주었다. 차마 낯을 찡그릴 수는 없으니까 가식적인 미소라도 지으며 “Jesus loves you!”라고 친절한 척 이야기를 나누며 웃음을 덤으로 지었다. 매주 참석하지는 않았지만, 김주영 장로님과 함께 러브 밴쿠버 행사 때마다 시간 되는 대로 참여하다 보니 나를 알아보는 단골도 생기고 인사를 나누기도 하며 이곳을 찾는 이들의 낯이 조금은 익숙해졌다. 그러는 사이 거짓으로 짓던 미소는 진심이 담겨 외면하던 몸짓에 반가움이 배어 나와 나의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오늘은 내가 바뀌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펼쳐 놓은 텐트 사이로 빗물이 조금씩 새어 들어 물기를 닦아내야 했고 바닥은 흐르는 빗물로 흥건해서 아수라장 같은 상황에 누런 콧물이 밥에 닿을 듯 흐르는 노숙인을 보고 나도 모르게 저절로 그를 붙잡아서 얼른 휴지로 콧물을 닦아 주었다. 마치 어린아이의 콧물을 닦아주는 것처럼 또 내게 코를 맡기고 있는 그를 보며 웃으며 “이제 됐다. 어서 맛있게 드세요. 예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라고 미소 지으며 이야기했다. 처음이 어렵지 한번 내민 손은 멈출 줄을 몰라서 누런 콧물 맑은 콧물 빗물인지 콧물인지 모를 콧물을 닦아 주며 환하게 인사하다 보니 점심 배급이 끝이 났다. 장로님과 몇몇 봉사자들과 허기를 달래고 헤어져서 차 안에 들어앉으니 그제야 처음으로 내뱉은 말이 “내가 바뀌었다. 할렐루야!” 처음에는 분명히 가식이었는데 그저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고자 하는 마음뿐이었는데…. 주님께서는 가식으로 지은 친절을 습관으로 배게 하시고 습관이 배니 진심으로 마음을 다하게 하셨다는 것을, 나를 바꿔 주신 주님의 사랑을 깨달으니, 감사는 눈물로 화답한다. 문득 마태복음 5장 7절이 떠올랐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이요”라는 말씀이다. 성경에서 팔복의 다섯 번째 복인 긍휼은 그냥 감정이 아니라 감정에서 나오는 행동을 의미한다고 한다. 긍휼은 인간의 이기적인 마음에서 나오는 성품이 아닌 하나님의 성품이며 예수님의 성품이고 또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는 성령 하나님, 즉 삼위일체 하나님의 성품이다. 유진 피터슨 목사의 메시지 성경에는 “남을 돌보는 너희는 복이 있다. 그렇게 정성 들여 돌보는 순간에 너희도 돌봄을 받는다”라고 쉬운 말로 번역되어 있다. 내가 바뀌고 변화되어 갈 때마다 나 또한 긍휼함이 풍성하신 하나님께서 나를 돌보시며 내가 좀 더 예수님의 성품을 닮은 사람으로 거듭나길 바라신다는 것을 새롭게 감사로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러자 다음에 갈 때는 물휴지를 준비해서 얼굴과 손도 닦아줘야겠다고 물휴지를 사러 갈 생각을 하니 이내 마음이 바빠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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