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아 헤븐 김 / (사)한국문인협회 밴쿠버지부 회원
인문학을 대표하는 학문에는 철학과 문학이 있는데, 평범한 일상 안에서 출발했다는 공통점이 매우 흥미롭다. 무겁고 고리타분하게 느껴지는 철학이 알고 보면 정말 단순하게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반복적인 일상 속에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의문, 왜? 가 독자적인 장르의 학문으로 발전한 것이다. 자신의 존재가치와 삶에 대한 본질은 인생관 세계관으로 좀 더 깊이 있는 질의를 끌어내며 논쟁과 토론의 쟁점으로 사고의 영역을 넓혀 학문으로 자리를 잡아 나갔다. 문학 또한 소소한 일상 속에 배인 생활습관이나 성향이 바탕이 되어 보고 듣고 경험하고 체험하며 때론 공상과 상상력이 촉진제가 되었으니 철학이나 문학의 시발점은 같다고 생각한다. 같은 사물을 바라보거나 똑같은 음식을 먹어도 느끼는 마음과 생각이 천차만별이듯 아무 생각 없이 지나칠 것에 감성을 자극하면 의미가 되고 글자로 남기면 문학이 된다. 이처럼 무심히 흘려보내기만 하던 일상의 한 부분도 글을 쓰고자 하는 열정과 노력이 배가되면 문학이라는 카테고리가 어렵지 않게 생겨난다.
나는 글을 쓸 때 가급적 단어 선택이나 문장을 평소에 친구에게 말하듯 쉽게 쓰려고 한다. 내 주변에는 숙제의 일부로 제출하던 일기나 의무적으로 참가하던 교내 백일장 이후로 글 쓰는 것과는 무관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내 글을 읽고 난 후의 그들의 반응이나 피드백은 매우 중요하다. 글을 써나가는 데 있어 도움뿐 아니라, 때에 따라 단어나 문장의 선택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내가 글 쓰는 이유는 단순하다. 추구하는 글 역시 간단하다. 잘 쓴 글이 아니라 좋은 글이 되길 원한다. 잘 쓴 글과 좋은 글의 차이는 뭘까? 좋은 글은 숨겨 있던 감성을 가볍게 툭 건드렸을 뿐인데 잔잔한 여운이 메아리처럼 자신에게 돌아온다. 딱히 뭘 묻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누군가의 마음을 터치하며 위로와 위안을 격려와 용기를 자연스럽게 끌어내는 글은 포장하지 않아도 된다. 있는 그대로 솔직하고 담백하게 진솔한 이야기로 들려주면 된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나는 한때 글 쓰는 겉멋에 빠졌던 시절이 있었다. 근사해 보이려는 목적에 집착하고 의식하다 처음 의도했던 중점에서 벗어나 엉뚱한 궤변으로 이어지기도 했고, 글의 흐름이 완전히 다른 맥락을 잡고 흘러간 예도 있었다. 잘못된 걸 시정하지 않고 끌고 나가다 보면, 시작은 거창하나 끝이 초라한 용두사미(龍頭蛇尾)로 전락하고 만다. 보편화하지 않고 일상화되지 않은 어려운 사자성어나 한자를 사용하면 왠지 그럴듯하게 포장되는 듯한 나만의 착각을 하고 옥편을 끼고 산 적도 있다. 스스로 엉뚱한 도취에 빠져들었던 위험한 시기였다. 그럴 때마다 친구들에게 해석을 요구받는 웃지 못할 일을 겪기도 했는데, 그 반응이 내심 싫지 않았다. 마치 이솝 우화에 나오는 까마귀가 공작의 고운 털을 몸에 붙이고 스스로 공작인 양 우쭐대던 모습과 다를 바 없는 우매하기 짝이 없는 사람이 그 당시 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글을 써나갈수록 점점 글 쓰는 것에 대한 흥미가 사라지기 시작하고, 써나가는 횟수도 줄어들기 시작했다. 계속 좀 더 멋지게 좀 더 근사하게 겉치레에 그려질 문장과 단어만 생각하다 보니 어느 날인가 멋지고 좋은 말은 다 갖다 썼지만, 감동이 없다. 장소에 걸맞지 않은 옷을 입고 있는 어색함과 불편함… . 어느 날 불현듯 그 상황의 나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겉에 달린 장신구를 하나씩 떼어내고 나풀거리는 레이스도 뜯어내고 보니 그제야 내 옷을 입은 듯이 단순하고 보기 좋았다. 보여주는 일기를 써 내려가듯 주변의 신변잡화를 소재로 내 이야기를 들려주니 그때부터 글 쓰는 재미가 다시 붙기 시작한다. 일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내 글을 읽은 죽마고우들은 그랬구나! 그런 일이 맞아 어머 어쩌니 나도 그랬어… … 마치 자기 일인 양 동조를 하기도 하고, 위로와 격려는 물론 응원과 성원을 아낌없이 베풀어 내게 꿈을 준다. 친구들과의 소통의 장이 되어 활동사진을 들여다보듯 눈앞에 그려지는 이야기에 함께 웃고 눈물도 흘리는, 최고의 평과 찬사를 받는 거다. 나 혼자만의 만족감이던 글이 어느새 가까이 지지하는 동료들이 생기고 일면식도 없는 독자로부터 신문사를 통해 전화가 오기도 한다. 잘 쓴 글이 아니어도 좋은 피드백을 받아 들 수 있다는 것은 작가에게 있어서 가장 큰 행운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꿈 같은 기적을 주시는 분의 사랑에 눈을 뜨고 은혜를 깨달아가는 그 이야기를 흘려보낼 수가 없다. 화려한 미사여구는 없지만, 잔잔한 일상의 내 이야기가 당신의 이야기가 되어 함께 우리가 되는 글, 솔직하고 담백하게 마음에 정직한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 글 속에 성경 한 구절이나 감사하는 마음을 적어 나가는 것, 이 또한 작은 복음이라 생각하기에 즐거운 마음으로 감사하며 글을 쓴다. 내 글을 한 줄로 정의를 한다면, ‘보여주는 일기’이다. 자신의 일기를 만천하에 드러내놓고도 히쭉거리는 내가 바보라고 놀림을 받으면 어떻고 모자라다 비웃어도 좋기만 하다. 한 사람의 누군가를 위해서라도 글쓰기는 멈추지 말아야 한다고, 쉼 없이 불을 지펴 나가는 진솔한 불씨가 되길 시편 71장 8절의 말씀으로 글 쓰는 이유에 다짐한다.
“내 마음이 주를 향한 찬송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내가 종일토록 주의 위대하심을 찬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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