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시간과 타이밍

이형만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25-05-02 16:36

이형만 (사)한국문협 밴쿠버지부 회원
  우리는 가끔 지난날을 돌이키고 싶을 때가 있다. ‘그때 그랬으면’ 하는 생각에 사로잡혀 과거의 어느 순간으로 되돌아가는 상상을 하곤 한다. ‘시간은 금이다.’라는 말과 같이 돈보다 더 중요한 게 시간일 것이다. 때론 시간이 길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과학자들이 측정하는 나노 세칸처럼 짧은 순간이 인생의 방향을 바꾸는 결정적인 순간이 되기도 한다. 이런 찰나의 기회를 우리는 타이밍이라 일컫는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전설적인 권투선수 조지 포먼의 자서전을 읽으며 시간과 타이밍의 의미에 대하여 되새기게 되었다. 1949년, 텍사스에서 태어난 조지 포먼은 7형제를 키우는 가난한 흑인 어머니의 영향 속에서 성장했다. 햄버거는 부자들만 먹을 수 있는 음식인 줄 알았고, 우유가 모자라 물 탄 우유에 콘프레이크를 넣어 형제들과 나눠 먹었다. 어릴 적 그의 꿈은 햄버거를 형제들과 나눠 먹지 않고 혼자 먹는 것이었다. 체격이 유달리 컸던 탓에 동네 골목대장을 하다 불량청소년으로 성장한 그가 권투를 하게 된 동기는 가난을 벗어나기 위함이었다. 
  1964년, 그의 나이 19세에 올림픽 헤비급 금메달을 따면서 가난을 벗어나게 된다. 그 후 1973년 1968년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이자 당시 최고 강자이던 조 프리이져를 2회 KO로 누르고 WBA WBC 통합 세계 챔피언이 되면서 일약 스타덤에 오른다. 조 프레이져는 무하마드 알리를 수차례 다운 시키며 챔피언이 된 29승 무패의 복서였으나, 포먼에게는 상대가 안 될 정도로 수세에 몰리다 6차례의 다운 끝에 포먼에게 벨트를 내준다. 이후 포먼은 같은 해, 호세로만과 1차 방어를 1회 KO로 방어했고 1974년엔 알리를 이겼던 켄 노턴과 2차 방어에선 2회 KO로 눌러 막강한 챔피언이 된다. 3차방어전을 같은 해 알리와 가졌으나 8회 KO로 챔피언을 놓치게 되며 이후 알리의 전성기가 한동안 계속된다. 
  여기서 이해가 쉽지 않은 부분이 있다. 알리에게 너무 무기력하게 무너진 점이다. 포먼은 나중에 그 경기의 충격적인 진실을 알게 된다. 포먼은 시합 전 스탭이 준 물을 마시다 이상한 맛이 느껴져 바로 뱉었다. 그러나 일부는 이미 목으로 넘어갔고 순간 약물임을 직감한다. 링에 올라갔는데 1회전인데도 12회전을 뛴 느낌이었고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8회 카운터를 맞고 쓰러졌으나, 심판의 카운트 8까지 회복을 위해 기다렸다 일어났는데, 심판은 즉시 중단을 하고 알리 손을 들어줬다. 경기전 심판은 알리 스탭진으로부터 3만불을 받았고 포먼측 역시 2만 불을 건넸으나, 많이 준 쪽 손을 들어준 것이다. 
  조지 포먼은 그 후 알리에게 도전하기 위해 많은 경기를 치렀지만, 또 다른 타이밍의 덫에 걸리게 된다. 알리가 지미영을 누르면 도전을 받아주겠다고 하여 지미영과 경기를 갖는다. 그런데 경기 전날, 당시 유명 프로모터 돈 킹으로부터 TV 광고 때문이니 경기를 가능한 10회까지 또는 최소 후반부까지 끌어 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초반에 서서히 진행하다 3회 다운을 시켰으나 시간 끌기 경기로 12회까지 갔다가 도리어 역전패를 당한다. 경기 후 포먼은 락커 룸에서 잠시 정신을 잃는데, 그 순간에 고통스러운 지옥을 경험한다. 그 이후 그는 은퇴를 선언하고 목회자가 된다. 청소년 선도센터를 건립하는 등 봉사활동을 하던 그에게 또 한 번의 시련이 닥치게 된다.

  전 재무 담당자의 사기로 전 재산을 잃게 되고, 심지어 조 프레이져를 누르고 챔피언이 되었을 때 끼였던 자신의 글러브마저 몰래 경매로 팔아먹은 걸 알게 된다. 그는 결국 돈이 필요해 1987년 38세의 나이에 10년 만에 다시 링에 오른다. 그리고 1994년 45세에 WBA. IBF 통합 챔피언 마이클 무어를 10회 KO로 누르고 다시 세계 챔피언이 된다. 

  1997년 은퇴 후, 사업가이자 목회자로 살고 있는 그는 타이밍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알리에게 챔프를 넘겨준 일, 돈 킹의 부탁대로 져주는 척하는 게임을 하다 진짜 졌던 시합, 다시 40대에 역대 최고 연장자 챔피언이 되고, 이후 방송인으로, 목회자로, 사업가로서의 변화에는 순간마다 적절한 타이밍이 있었다고 한다. 조 프레이저를 2회 KO로 눌렀을 때 본인의 모습은 야수와 같았다고 고백한다. 당시엔 전승 가도에 초반 KO가 대부분이었는데 상대 선수를 다운시킬 때 쓰러지는 순간 또 때려 회복 불능으로 만들곤 했다고 회상한다. 그렇게 야수와 같이 쓰러지고 있는 상대방을 또 때리던 조지 포먼이 거듭난 후의 모습은 너무도 대조적이다. 1988년 해르난데스와의 경기를 TV 로 본 기억이 있다. 그의 턱을 강타 마우스피스가 떨어져 나왔다. 포먼은 더이상 공격을 하지 않았고 주심에게 두번 세번 반복해서 상대선수가 마우스를 끼고 경기를 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을 하였다. 결국 4회 Ko로 승리했고 이 경기후 선수 보호 차원에서 경기중 마우스피스를 놓치게 되면 경기를 중단하고 마우스피스를 세척 후 다시 끼울 때까지 시합을 중단하는 선수 보호제도가 생겼다. 

  "내가 계획했던 시간은 맞지 않았다. 그러나 나를 이용하신 하나님의 타이밍은 적시에 맞았다. 내가 알리와의 경기에서 승리했거나, 돈 킹의 제안을 거절하고 지미영을 이기고 다시 알리에게 도전하여 챔프가 되었다면 난 야수 조지 포먼으로 남았을 것이다. 난 패배로 다시 태어난 조지 포먼이 되었고, 지금의 조지 포먼이 더 행복하다."라고 그는 말했다. 그가 경험한 시간 속의 적절한 타이밍은 선한 일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에게는 노력한 결과가 본인이 느끼지 못하는 순간에 온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우리의 삶도 때론 좌절과 실망으로 어려움이 이어지기도 하고, 뜻밖에 전화위복의 기회가 찾아오기도 한다. 막히는 도로를 달리다 갑자기 속도 무제한 고속도로를 달릴 수 있게 되는 것처럼. 타이밍은 우리가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준비된 자에게 주어지는 선물일지도 모른다. 시간도 기회도 스쳐 지나갈 수 있다. 그러나 포먼은 자신의 삶을 통해 말한다. 인생의 승리는 패배 후 다시 일어나는데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순간은 우리가 기다리는 것보다 늦게 올 수도 있다는 것을. 그러나 그런 기회가 온다 해도 준비가 되어 있어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집으로 데려다줘> 윤경란                                                                                “방게야! 빨리 나와! 멋진 웅덩이를 찾았어. 같이 가자!”모래 굴 속에서 자고 있던 방게는 농게의 들뜬 목소리에 깨어났다.‘또야?’방게는 몸에 붙은 모래를 툭툭 털며 중얼거렸다. 며칠 전에도 농게는...
윤경란·황정현
 <베링기아의 밤>  김미선 곧 착륙한다는 안내방송이 나오자 보고 있던 잡지를 덮고 창문 덮개를 올렸다. 구름 아래로 만년설 덮인 산맥이 길게 이어져 있었다. 이윽고 고도가 낮아지자 뭉뚱그려져 보이던 실체가 하나둘 드러났다. 언뜻언뜻 보이는 에메랄드색은 호수 아니면 바다일 것이다. 비행기는 위로 자라지 못한 침엽수 군락에 둘러싸인 물 위를 선회한 뒤 착륙했다. 사람의 흔적이라곤 공항 건물 두어 채가 고작이었다....
김미선·이재헌
안타까움 2026.03.05 (목)
  사진집이든 화집이든 무심히 넘겨보는 버릇이 있다.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고 어떤 문제의식도 가지지 않고 편하게 보는 내 감상법은 중요한 것을 놓쳐 버리는 일도 있겠지만 우선 마음의 공간이 넉넉해지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이번 사진집도 그렇게 페이지를 넘기고 있었다.  지방 소도시에서 사진 동호인들이 모여 찍은 사진을 전시하느라 만든 사진집이다. 기성작가보다 아마추어가 많은데 새벽의 대청호반의 풍경이 고스란히 재현되고...
반숙자
젊은 날 폭주하는 열차처럼 내달리며 살아오다 모두 떠나고 나만 혼자 남아 생활 박물관의 축음기처럼 세상이란 정원의 외톨이가 되어 고독을 수양인 듯 감춘 외로움은 웃음기 없는 무뚝뚝한 굵은 주름만 깊어 갑니다 외로움과 과거의 추억이 끓어 넘 칠 듯할 때  고독한 수양을 끝내고 입을 꾹 다문 채 손을 움켜쥐고 군중이 붐비는 길거리로 나아갑니다 모두가 밝게 세상을 호령하는...
김철훈
차상: 그리움의 온도 – 이주령그리움은 서늘하다.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사람을 그리워하는 일은 가슴에 얼음덩어리를 안고 있는 것처럼 서늘하다. 세월의 흐름에도 그리움은 겨울의 온도에 머물렀다.   아버지의 마지막 겨울이었다. 겨우내 입고 다니던 겉옷이 무겁고 거추장스럽게 느껴질 무렵이었다.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고 다음 날 아침 출발하는 한국행 비행기표를 예매했다. 패혈증 쇼크로 사경을 헤매고 있던 아버지를 만나러...
이주령 외 3명
  지난 20여 년간 이곳 밴쿠버에 살면서 겨울에 스노우 타이어로 갈아 본 적이 없이 살았다. 사계절용 래디얼 타이어가 있으면 눈, 비와 관계없이 4계절 사용할 수 있다고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눈이 내리면 산비탈에 있는 우리 집은 카포트 (Carport)까지 오르고 내리는데 여러 번 고생하곤 했다. 손주들이 태어난 후 아들의 강력한 권고로, 해마다 11월 말이 되면 연례행사처럼 스노우 타이어를 갈아 끼운다. 노년에 무거운 타이어를 차에 싣는...
김의원
나와 나의 대립 2026.02.27 (금)
몸뚱이는 그만 자라 하는데점 하나에서 파생된 상념들시간에 비례하여 거리도 그리하여일그러진 선                마디마디 바람만 웅성거리고늪 속으로 빠져든 몸부림이풀썩풀썩 방망이질하고천 갈래 바닥으로 나동그라진사색의 파편들인제 그만 고즈넉이 여유를 타서뭉뚱그려 간단한 주먹밥으로 빚으라고몸뚱어리 나긋나긋 달래는데일그러진 선 고집스레온 밤을 누비며 펼 줄을 모르네하얗게 질린 새벽달이 하품...
한부연
1센치 2026.02.20 (금)
흔들리는 촛불 아래허물어진 꽃잎 달빛이 비수처럼 파고들던 밤먹먹함이 숨통을 짓눌렀다 오래 가두었던 피를 흘려보냈다잘 익은 노을 냄새를 맡았다 마른 침을 삼켰고오한이 엄습해 왔다 푸르스름한 시골 응급실네온 빛 멀리 어머니가 울고 있었다 1센치라고 했다1센치만 빗나갔으면.... 다 끝내고 돌아오는 길성근 빗방울에명치가 촉촉해졌다 다 끝내고 돌아가는 길그래도 헝클어진 발자국끌어안을 수만 있다면 스무...
백철현
지난 주에 이어 계속 집도의는 캐나다에서도 이름 있는 Doctor라 했다. 수술실에 들어가니 남자가 7사람 여자 두 사람이 있다. 수술은 집도의와 보조의가 하겠지만 의대생들이 견학하는 걸 허락했던 것이다.수술은 성공적으로 잘 마무리 된듯하다. 수술을 하고 정신을 차려보니 방광에 호스를 꽂아 소변을 받아내고 양팔 혈관에 주사바늘을 고정시켜 줄이 달려있다코로 호수를 따라 식사대용 영양제가 들어간다. 또 수술한 부위에도 호스를 넣어...
박병준
 ▶지난 주에 이어 계속 암이 자리 잡은 곳, 그 위치가 어디인가. 그게 중요하다.폐라면 힘 든다. 췌장이라면 수술이 어렵다. 급성으로 여러 군데 전이가 되었다면 걷잡을 수 없이 위험하다.내게 온 곳은 목이다. 후두암이라고도 한다. 그 자리는 어떤 곳인가?매우 정교하고 복잡한 부분이다. 거기는 기도(Air way)와 식도가 만나는 곳인데 코와 입을 통해서 공기가 들어오고 또 입에서 식도로 넘어오는 음식이 지난다.또 허파에서 나오는 공기가...
늘산 박병준
늘산 본인이 암 판정을 받고 수술을 하고 퇴원을 하면서 그간에 있었던 일들을 정리하고 싶습니다. 이는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 암에서 예방될 수 있는 일에 다소나마 길잡이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면서 이 글을 시작합니다.암의 발견은 우연적일 수도 있고 필연적일 수도 있다.나는 우연적이라 생각하며 그나마 일찍 발견하였다는데 다행이라 생각한다.산에서 사람을...
늘산 박병준
다음페이지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