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만 (사)한국문협 밴쿠버지부 회원
우리는 가끔 지난날을 돌이키고 싶을 때가 있다. ‘그때 그랬으면’ 하는 생각에 사로잡혀 과거의 어느 순간으로 되돌아가는 상상을 하곤 한다. ‘시간은 금이다.’라는 말과 같이 돈보다 더 중요한 게 시간일 것이다. 때론 시간이 길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과학자들이 측정하는 나노 세칸처럼 짧은 순간이 인생의 방향을 바꾸는 결정적인 순간이 되기도 한다. 이런 찰나의 기회를 우리는 타이밍이라 일컫는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전설적인 권투선수 조지 포먼의 자서전을 읽으며 시간과 타이밍의 의미에 대하여 되새기게 되었다. 1949년, 텍사스에서 태어난 조지 포먼은 7형제를 키우는 가난한 흑인 어머니의 영향 속에서 성장했다. 햄버거는 부자들만 먹을 수 있는 음식인 줄 알았고, 우유가 모자라 물 탄 우유에 콘프레이크를 넣어 형제들과 나눠 먹었다. 어릴 적 그의 꿈은 햄버거를 형제들과 나눠 먹지 않고 혼자 먹는 것이었다. 체격이 유달리 컸던 탓에 동네 골목대장을 하다 불량청소년으로 성장한 그가 권투를 하게 된 동기는 가난을 벗어나기 위함이었다.
1964년, 그의 나이 19세에 올림픽 헤비급 금메달을 따면서 가난을 벗어나게 된다. 그 후 1973년 1968년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이자 당시 최고 강자이던 조 프리이져를 2회 KO로 누르고 WBA WBC 통합 세계 챔피언이 되면서 일약 스타덤에 오른다. 조 프레이져는 무하마드 알리를 수차례 다운 시키며 챔피언이 된 29승 무패의 복서였으나, 포먼에게는 상대가 안 될 정도로 수세에 몰리다 6차례의 다운 끝에 포먼에게 벨트를 내준다. 이후 포먼은 같은 해, 호세로만과 1차 방어를 1회 KO로 방어했고 1974년엔 알리를 이겼던 켄 노턴과 2차 방어에선 2회 KO로 눌러 막강한 챔피언이 된다. 3차방어전을 같은 해 알리와 가졌으나 8회 KO로 챔피언을 놓치게 되며 이후 알리의 전성기가 한동안 계속된다.
여기서 이해가 쉽지 않은 부분이 있다. 알리에게 너무 무기력하게 무너진 점이다. 포먼은 나중에 그 경기의 충격적인 진실을 알게 된다. 포먼은 시합 전 스탭이 준 물을 마시다 이상한 맛이 느껴져 바로 뱉었다. 그러나 일부는 이미 목으로 넘어갔고 순간 약물임을 직감한다. 링에 올라갔는데 1회전인데도 12회전을 뛴 느낌이었고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8회 카운터를 맞고 쓰러졌으나, 심판의 카운트 8까지 회복을 위해 기다렸다 일어났는데, 심판은 즉시 중단을 하고 알리 손을 들어줬다. 경기전 심판은 알리 스탭진으로부터 3만불을 받았고 포먼측 역시 2만 불을 건넸으나, 많이 준 쪽 손을 들어준 것이다.
조지 포먼은 그 후 알리에게 도전하기 위해 많은 경기를 치렀지만, 또 다른 타이밍의 덫에 걸리게 된다. 알리가 지미영을 누르면 도전을 받아주겠다고 하여 지미영과 경기를 갖는다. 그런데 경기 전날, 당시 유명 프로모터 돈 킹으로부터 TV 광고 때문이니 경기를 가능한 10회까지 또는 최소 후반부까지 끌어 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초반에 서서히 진행하다 3회 다운을 시켰으나 시간 끌기 경기로 12회까지 갔다가 도리어 역전패를 당한다. 경기 후 포먼은 락커 룸에서 잠시 정신을 잃는데, 그 순간에 고통스러운 지옥을 경험한다. 그 이후 그는 은퇴를 선언하고 목회자가 된다. 청소년 선도센터를 건립하는 등 봉사활동을 하던 그에게 또 한 번의 시련이 닥치게 된다.
전 재무 담당자의 사기로 전 재산을 잃게 되고, 심지어 조 프레이져를 누르고 챔피언이 되었을 때 끼였던 자신의 글러브마저 몰래 경매로 팔아먹은 걸 알게 된다. 그는 결국 돈이 필요해 1987년 38세의 나이에 10년 만에 다시 링에 오른다. 그리고 1994년 45세에 WBA. IBF 통합 챔피언 마이클 무어를 10회 KO로 누르고 다시 세계 챔피언이 된다.
1997년 은퇴 후, 사업가이자 목회자로 살고 있는 그는 타이밍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알리에게 챔프를 넘겨준 일, 돈 킹의 부탁대로 져주는 척하는 게임을 하다 진짜 졌던 시합, 다시 40대에 역대 최고 연장자 챔피언이 되고, 이후 방송인으로, 목회자로, 사업가로서의 변화에는 순간마다 적절한 타이밍이 있었다고 한다. 조 프레이저를 2회 KO로 눌렀을 때 본인의 모습은 야수와 같았다고 고백한다. 당시엔 전승 가도에 초반 KO가 대부분이었는데 상대 선수를 다운시킬 때 쓰러지는 순간 또 때려 회복 불능으로 만들곤 했다고 회상한다. 그렇게 야수와 같이 쓰러지고 있는 상대방을 또 때리던 조지 포먼이 거듭난 후의 모습은 너무도 대조적이다. 1988년 해르난데스와의 경기를 TV 로 본 기억이 있다. 그의 턱을 강타 마우스피스가 떨어져 나왔다. 포먼은 더이상 공격을 하지 않았고 주심에게 두번 세번 반복해서 상대선수가 마우스를 끼고 경기를 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을 하였다. 결국 4회 Ko로 승리했고 이 경기후 선수 보호 차원에서 경기중 마우스피스를 놓치게 되면 경기를 중단하고 마우스피스를 세척 후 다시 끼울 때까지 시합을 중단하는 선수 보호제도가 생겼다.
"내가 계획했던 시간은 맞지 않았다. 그러나 나를 이용하신 하나님의 타이밍은 적시에 맞았다. 내가 알리와의 경기에서 승리했거나, 돈 킹의 제안을 거절하고 지미영을 이기고 다시 알리에게 도전하여 챔프가 되었다면 난 야수 조지 포먼으로 남았을 것이다. 난 패배로 다시 태어난 조지 포먼이 되었고, 지금의 조지 포먼이 더 행복하다."라고 그는 말했다. 그가 경험한 시간 속의 적절한 타이밍은 선한 일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에게는 노력한 결과가 본인이 느끼지 못하는 순간에 온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우리의 삶도 때론 좌절과 실망으로 어려움이 이어지기도 하고, 뜻밖에 전화위복의 기회가 찾아오기도 한다. 막히는 도로를 달리다 갑자기 속도 무제한 고속도로를 달릴 수 있게 되는 것처럼. 타이밍은 우리가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준비된 자에게 주어지는 선물일지도 모른다. 시간도 기회도 스쳐 지나갈 수 있다. 그러나 포먼은 자신의 삶을 통해 말한다. 인생의 승리는 패배 후 다시 일어나는데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순간은 우리가 기다리는 것보다 늦게 올 수도 있다는 것을. 그러나 그런 기회가 온다 해도 준비가 되어 있어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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