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광고문의
연락처: 604-877-1178

잉태의 바람

반숙자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25-03-14 16:18

반숙자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지금은 3월이다. 나는 꽃피는 계절이 오는 것을 시각이나 청각을 통해 아는 것이 아니라
몸을 통해서 안다. 겨우내 웅크렸던 몸이 펴일만하면 어김없이 오는 바람을
맞는다. 처음에는 발바닥을 건드린다. 사람들은 발이 시리다고 하는데 나는 시린 것이
아니라 발바닥에서 센 선풍기바람이 난다. 양말을 신어도 버선을 신어도 심지어는 보온
팩을 발바닥에 깔아보아도 효과가 없다. 

  다음에는 잘 버텨주던 허리가 아파온다. 그냥 아픈 게 아니라 꼬리뼈 위를 톱날로 써는
듯한 아리아리한 통증이다. 파스를 붙여도 안 되고 병원에 가서 물리치료를 받아도 그때 뿐
하룻밤 자면 다시 그 시늉이다. 바람은 여기서 그치는 게 아니다. 등줄기를 타고 으스스한
한기가 되어 어깨로 올라온다. 재채기가 줄나팔을 분다. 옷을 더 입어도 소용없으니 이
추위를 감당할 방법이 없다. 온몸이 뼛속까지 시리다.
  시간만 나면 베란다에 나가 햇볕 바라기를 해보나 가슴 속까지 불어오는 찬바람은 피할
도리가 없다. 컨디션이 제로다. 식구들은 겨우내 저항력이 떨어져서 그러니 특별히
건강관리를 해야 한다고 걱정이다. 하지만 나는 구식사람이라 침대에 온도를 높이고 이불을
쓰고 누워있는 것이 최상의 치료법이다. 어려서 고뿔이 들면 어머니는 어린 것을 군불을
지핀 아랫목에 이불을 둘둘 말아 술독처럼 앉혀놓고 콩나물국에 고춧가루를 쳐서 건네
주셨다. 그때 기억이 나서 콩나물국을 마시고 누워있자니 이 바람의 정체가 궁금해지는
거다.
   달력을 보았다. 경칩이 들어있는 3월, 밖엔 봄이다. 성급한 젊은이들은 반팔 티셔츠를
입고 활기차게 걷는다. 나이가 들어 몸이 계절 감각을 잃어버리고 반란을 하는 것은
아닐까, 잃어버리는 것이 어찌 계절 감각뿐이랴. 시간의 흐름도 기억의 필름도 자꾸 퇴행해
가고 몸의 감관도 둔해간다. 
  달력을 보는 동안 눈이 점점 커졌다. 어미가 된 것이 3월이었다. 그것도 한 생명이 아니라
두 아이의 출생이 3년 터울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한 달이다. 하늘이 쪼개지는 듯한 통증을
가르고, 그랬다. 허리를 예리한 톱날로 마취 없이 썰어대는 진통, 산관을 하던 어머니는
아기가 세상에 나오려고 문을 잡는 것이라 했지. 너도 그렇게 태어났다고. 일주일
간격이다. 그래서 몸이 먼저 말했던 것일까. 아무래도 불가사이해서 뒤로 되짚어
나갔다. 헤아려 가노라니 열 달이 머무는 곳이 바로 5월이다. 어째서 두 아이가 다 한
무렵에 태어난 것인가. 
  5월 탓이었다. 5월은 나를 가만두지 않았다. 신록이 피어나는 그맘때면 육체의 온 세포가
있는 대로 열리고 마음은 이를 감당 못해 또 허둥대지 않았던가. 몸이 먼저인지 마음이
먼저인지 알 길은 없다.
 이런 관능적 욕구가 그를 불러들였거나 아니면 간절하게 차오르는 그리움이 그를
조정했던지 그는 5월이면 돌아왔다. 천리 길도 마다 않고 그림전시 준비로 눈 코 뜰 사이
없어도 아카시아 피는 봄밤을 같이 보내주었다. 

  나는 여태 그 이유를 몰랐다. 왜 해마다 3월이면 죽게 앓거나 중병 들린 여자처럼
해쓱하니 양달을 찾아 드는지... 그러니까 50년도 더 넘는 세월, 내 몸은 해마다 3월이면
출산을 했던 것이다. 여인의 모태에서 열 달을 머물다 탄생하는 생명의 고리는 탯줄로
이어져 신비하다 했으나 나에게는 탯줄보다도 더 끈끈한 생명 이전의 그 무엇이 궁금해지는
요즘이다. 만주 땅을 헤매던 독립투사도 삼신할미가 부르면 고국으로 달려와서 아버지가
된다는 불가사의한 신비를 어떻게 해명하겠는가.
  오월은 심란한 계절이다. 햇빛은 꽃잎에 화사한 문신을 새기고 바람은 비밀을 풀어내
현현하는 생명으로 사람들 맥박을 벅차게 뛰게 한다. 나는 이 바람을 잉태의 바람이라
부른다. A.E.M 노아유라는 시인도 그 무리 중에 하나였던지 ‘5월 밤의 매력’ 이라는 시로
심중을 토로했다.
 
어느 5월 밤의 매력이여
그대 나에게 무슨 말을 하려는가? 
사랑에 그득찬 몸뚱이 같이
그대 나에게로 오는구나 
중략

하지만 오 바람이여
좀 더 내 곁에 머물러 있어라 
향기 풍기는 부드러운 바람이여 
< A.E.M 노아유  어느 5월 밤의 매력> 
 
  이 시를 읽으면 나를 몸살 나게 했던 아카시아 숲에 내리는 5월 밤의 바람이 되살아난다.
5월이 저질러 놓은 퀴즈를 이듬 해 3월에 풀어야 하는 비극적인 여체, 그래도 생명을 품어
키운 모체이니 거룩하지 않는가.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아빠, 뭐 보고 있어?”이른 아침, 아빠가 텃밭 가장자리에 쪼그리고 앉아 한 무더기 풀을 들여다보고 있었어요. 잠이 덜 깬 눈으로 쪼르르 달려가 아빠 등에 기대며 물었어요.“아고, 우리 호야 깼구나. 더 자지 않고?”“어? 텃밭 풀이 다 어디 갔어요?”내 키보다 훌쩍 자란 풀들이 감쪽같이 사라졌어요.“우와! 텃밭에 풀이 다 없어져 보기 좋아요. 어젯밤에 우렁각시가 다녀갔나 봐?”“우렁각시? 하하 맞네. 착한 우렁각시.”아빠가 호탕하게 웃으며...
이정순
바람 2026.01.30 (금)
  얼굴을 스치며 지나가는 바람이라도 만나서 마음속으로 얘기를 나눠보고 싶어 진다. 바람을 쐬러 산책길에 나선다. 머리카락, 피부에 스치며 지나가는 바람에 가슴을 열고 하늘을 본다.바람은 보이지 않으나 감촉을 느끼게 한다. 하루에 한 번씩 바깥에 나가 바람이라도 쐬어야 생기가 날 듯하여, 오후가 되면 산책길에 나선다. ‘바람을 쐬는 일’은 무슨 일인가? 나무 아래에 앉아서 스스로 물어보기도 한다.운동장을 몇 바퀴 걸으면 마음속으로...
정목일
이민 삼십 년 2026.01.30 (금)
이민자 낯선 땅에 뿌리내리려 할 때마다사람들은 내게 보이지 않는 눈금을 들이민다고향이라는 눈금, 학교라는 치수그들은 나의 과거를 재는 것이 아니라자신들이 밟고 올라설 사다리의 높이를 가늠하는 중이다골목마다 교회 숲을 이루는 도시절 향기는 댓돌처럼 차고 문지방처럼 높다교회의 찬송은 매끄러운 비단처럼 반짝인다사람들은 나를 그 화려한 그물 속으로 초대한다거절의 벽을 허물고 들어가 앉은 식탁 위에서나는 비로소 이방인의 허기를...
전재민
산에는산길에는해 오르고 달 오르는 길이 새롭다 산은철따라 외로움이 피고 지는꽃들의 터전 그리움이 울어넘는산새들의 고향이다 미움도 사랑으로 옷을 갈아 입는아라리 산길 산에 오르면제 마음 봄이되어발걸음이 가볍다 산은오를수록 제 안의 저를 알아가게 하는무언의 스승 그 산길에 오르며 배움이 깊다
유병옥
동쪽의 거리 2026.01.23 (금)
독도가 앞서 밝아올 때울릉도의 등줄기인왕산의 오래된 벽봉황산의 그림자남한산성의 돌땅끝마을의 끝내 닿지 않는 손성산일출봉새천년 해안 샛바람길의 비린 새벽정동진. 호미곶사람들은산과 바다도시의 모서리마다각자의 동쪽을 세운다나는이름 하나 들고서 있었다간절곶아주 오래전간절함이 먼저 와우리 사이에 서 있었고말은해보다 늦었다빛이 오기 전 오빠는부르지 않아도 이미동쪽에 있었다가장 얇은 그 새벽나에게 동쪽은한 사람...
김회자
한글은 계시였다 2026.01.23 (금)
세계가 한국을 바라본다. Kpop의 박동, 드라마의 서사, 영화의 감정, 음식의 향기까지. 그러나 그 모든 ‘K’의 중심에는 조용히 빛나는 한글이 있다. 나는 그 사실을 오래 살고 나서야 비로소 깊이 깨닫는다. 한글은 단순한 문자도, 기술적 발명도 아니었다. 그것은 오래된 정신이 글자의 옷을 입고 세상에 다시 나타난 계시였다.우리 민족의 역사는 단군의 건국 이념에서 시작된다. 홍익인간—사람을 널리 이롭게 하라. 이 네 글자는 한 나라의 뿌리가...
심정석
 제목은 거창하게 대화의 기술이라고 했지만, 필자는 언어학자도 아니고 대화 전문가도 아니다. 다만 이제껏 살아오면서 수많은 사람과 대화하며 느낀 점들을 개인적으로 피력해 보고자 한다.  사람이 귀가 둘이고 입이 하나인 것은 말하기보다 듣기를 두 배로 하라는 뜻이다. 자기 말을 잘 들어주는 사람에게는 개인적인 고민도 털어놓고 싶고 이런저런 상담도 하고 싶지만, 잘 들어주지 않는 사람과는 말을 섞기도 꺼려진다. 남의 말을...
이현재
태풍 2026.01.23 (금)
난 바다 어디쯤외눈박이 눈을 하고달려오는 바람 하나거침없는 생이 부럽다 나 그렇게뜨겁게 산 적이 있었던가그렇게 겁 없이사랑한 적 있었던가 젖은 머리 풀고 질주하는구름기둥 끝에 매달려짧고 굵게 살다 죽는비결 한 수배워야 할까 보다
정금자
지난 주에 이어 계속 집도의는 캐나다에서도 이름 있는 Doctor라 했다. 수술실에 들어가니 남자가 7사람 여자 두 사람이 있다. 수술은 집도의와 보조의가 하겠지만 의대생들이 견학하는 걸 허락했던 것이다.수술은 성공적으로 잘 마무리 된듯하다. 수술을 하고 정신을 차려보니 방광에 호스를 꽂아 소변을 받아내고 양팔 혈관에 주사바늘을 고정시켜 줄이 달려있다코로 호수를 따라 식사대용 영양제가 들어간다. 또 수술한 부위에도 호스를 넣어...
박병준
 ▶지난 주에 이어 계속 암이 자리 잡은 곳, 그 위치가 어디인가. 그게 중요하다.폐라면 힘 든다. 췌장이라면 수술이 어렵다. 급성으로 여러 군데 전이가 되었다면 걷잡을 수 없이 위험하다.내게 온 곳은 목이다. 후두암이라고도 한다. 그 자리는 어떤 곳인가?매우 정교하고 복잡한 부분이다. 거기는 기도(Air way)와 식도가 만나는 곳인데 코와 입을 통해서 공기가 들어오고 또 입에서 식도로 넘어오는 음식이 지난다.또 허파에서 나오는 공기가...
늘산 박병준
늘산 본인이 암 판정을 받고 수술을 하고 퇴원을 하면서 그간에 있었던 일들을 정리하고 싶습니다. 이는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 암에서 예방될 수 있는 일에 다소나마 길잡이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면서 이 글을 시작합니다.암의 발견은 우연적일 수도 있고 필연적일 수도 있다.나는 우연적이라 생각하며 그나마 일찍 발견하였다는데 다행이라 생각한다.산에서 사람을...
늘산 박병준
다음페이지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