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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태의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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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 : 2025-03-14 16:18

반숙자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지금은 3월이다. 나는 꽃피는 계절이 오는 것을 시각이나 청각을 통해 아는 것이 아니라
몸을 통해서 안다. 겨우내 웅크렸던 몸이 펴일만하면 어김없이 오는 바람을
맞는다. 처음에는 발바닥을 건드린다. 사람들은 발이 시리다고 하는데 나는 시린 것이
아니라 발바닥에서 센 선풍기바람이 난다. 양말을 신어도 버선을 신어도 심지어는 보온
팩을 발바닥에 깔아보아도 효과가 없다. 

  다음에는 잘 버텨주던 허리가 아파온다. 그냥 아픈 게 아니라 꼬리뼈 위를 톱날로 써는
듯한 아리아리한 통증이다. 파스를 붙여도 안 되고 병원에 가서 물리치료를 받아도 그때 뿐
하룻밤 자면 다시 그 시늉이다. 바람은 여기서 그치는 게 아니다. 등줄기를 타고 으스스한
한기가 되어 어깨로 올라온다. 재채기가 줄나팔을 분다. 옷을 더 입어도 소용없으니 이
추위를 감당할 방법이 없다. 온몸이 뼛속까지 시리다.
  시간만 나면 베란다에 나가 햇볕 바라기를 해보나 가슴 속까지 불어오는 찬바람은 피할
도리가 없다. 컨디션이 제로다. 식구들은 겨우내 저항력이 떨어져서 그러니 특별히
건강관리를 해야 한다고 걱정이다. 하지만 나는 구식사람이라 침대에 온도를 높이고 이불을
쓰고 누워있는 것이 최상의 치료법이다. 어려서 고뿔이 들면 어머니는 어린 것을 군불을
지핀 아랫목에 이불을 둘둘 말아 술독처럼 앉혀놓고 콩나물국에 고춧가루를 쳐서 건네
주셨다. 그때 기억이 나서 콩나물국을 마시고 누워있자니 이 바람의 정체가 궁금해지는
거다.
   달력을 보았다. 경칩이 들어있는 3월, 밖엔 봄이다. 성급한 젊은이들은 반팔 티셔츠를
입고 활기차게 걷는다. 나이가 들어 몸이 계절 감각을 잃어버리고 반란을 하는 것은
아닐까, 잃어버리는 것이 어찌 계절 감각뿐이랴. 시간의 흐름도 기억의 필름도 자꾸 퇴행해
가고 몸의 감관도 둔해간다. 
  달력을 보는 동안 눈이 점점 커졌다. 어미가 된 것이 3월이었다. 그것도 한 생명이 아니라
두 아이의 출생이 3년 터울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한 달이다. 하늘이 쪼개지는 듯한 통증을
가르고, 그랬다. 허리를 예리한 톱날로 마취 없이 썰어대는 진통, 산관을 하던 어머니는
아기가 세상에 나오려고 문을 잡는 것이라 했지. 너도 그렇게 태어났다고. 일주일
간격이다. 그래서 몸이 먼저 말했던 것일까. 아무래도 불가사이해서 뒤로 되짚어
나갔다. 헤아려 가노라니 열 달이 머무는 곳이 바로 5월이다. 어째서 두 아이가 다 한
무렵에 태어난 것인가. 
  5월 탓이었다. 5월은 나를 가만두지 않았다. 신록이 피어나는 그맘때면 육체의 온 세포가
있는 대로 열리고 마음은 이를 감당 못해 또 허둥대지 않았던가. 몸이 먼저인지 마음이
먼저인지 알 길은 없다.
 이런 관능적 욕구가 그를 불러들였거나 아니면 간절하게 차오르는 그리움이 그를
조정했던지 그는 5월이면 돌아왔다. 천리 길도 마다 않고 그림전시 준비로 눈 코 뜰 사이
없어도 아카시아 피는 봄밤을 같이 보내주었다. 

  나는 여태 그 이유를 몰랐다. 왜 해마다 3월이면 죽게 앓거나 중병 들린 여자처럼
해쓱하니 양달을 찾아 드는지... 그러니까 50년도 더 넘는 세월, 내 몸은 해마다 3월이면
출산을 했던 것이다. 여인의 모태에서 열 달을 머물다 탄생하는 생명의 고리는 탯줄로
이어져 신비하다 했으나 나에게는 탯줄보다도 더 끈끈한 생명 이전의 그 무엇이 궁금해지는
요즘이다. 만주 땅을 헤매던 독립투사도 삼신할미가 부르면 고국으로 달려와서 아버지가
된다는 불가사의한 신비를 어떻게 해명하겠는가.
  오월은 심란한 계절이다. 햇빛은 꽃잎에 화사한 문신을 새기고 바람은 비밀을 풀어내
현현하는 생명으로 사람들 맥박을 벅차게 뛰게 한다. 나는 이 바람을 잉태의 바람이라
부른다. A.E.M 노아유라는 시인도 그 무리 중에 하나였던지 ‘5월 밤의 매력’ 이라는 시로
심중을 토로했다.
 
어느 5월 밤의 매력이여
그대 나에게 무슨 말을 하려는가? 
사랑에 그득찬 몸뚱이 같이
그대 나에게로 오는구나 
중략

하지만 오 바람이여
좀 더 내 곁에 머물러 있어라 
향기 풍기는 부드러운 바람이여 
< A.E.M 노아유  어느 5월 밤의 매력> 
 
  이 시를 읽으면 나를 몸살 나게 했던 아카시아 숲에 내리는 5월 밤의 바람이 되살아난다.
5월이 저질러 놓은 퀴즈를 이듬 해 3월에 풀어야 하는 비극적인 여체, 그래도 생명을 품어
키운 모체이니 거룩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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