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샘플 웃음

박정은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25-02-28 16:52

박정은 / (사)한국문협 밴쿠버지부 회원
  다시 웃음 성형을 하기로 했다. 이 결심을 한 건 우리 강아지 스냅사진에 들러리로 등장한 내 얼굴에 충격을 받아서였다. 사실 지난 몇 달은 시간이 어떻게 갔는지 모르게 가버렸다. 정확히 말하면 한국의 혼란스러운 정치 상황을 지켜보느라 분노와 걱정으로 흘려보낸 시간이었다. 그랬더니 거기서 느낀 부정적인 감정들이 고스란히 내 얼굴에 새겨져 있었다. 그 얼굴을 보며, ‘내가 그만 세상사 물결에 휩쓸리고 말았구나!’하는 깨달음이 왔다. 그러곤 떠올린 게 바로 ‘웃음 성형’이었다.
   난 아들을 간절히 바라던 집안에 둘째 딸로 태어났다. 못생긴 둘째 손녀를 본 할머니는 서운함을 이기지 못해 나를 이름 대신, “저 망둥이 것!”이라고 불렀다. 그땐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들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생선가게에서 가장 하찮고 못생긴 물고기가 바로 망둥이라고 했다. 그렇게 못난이 취급을 받으며 자랐으니 난 항상 눈물을 달고 살았고, 그런 나를 동네 사람들은 이름 대신 ‘울보’로 불렀다. 우리 집에 온 어른들은, “이 집 자식들은 인물이 참 좋네. 근데 왜 쟤가 제일 빠져?” 하며 여지없이 나를 가리키곤 했다. 항상 듣는 말이라 딱히 상처가 되진 않았다. 그런데 중2가 되었을 즈음 그 당연한 말이 조금씩 귀에 걸리기 시작했다. 거울에 비친 칙칙한 울상의 내 얼굴을 보며 이 얼굴을 좀 낫게 만들 방법이 없을까를 처음 고민한 게 바로 그때였다. 성형 같은 건 상상도 못 하던 시절이라 겨우 떠올린 아이디어가 웃음이었다. 어떻게 생겼건 웃는 얼굴은 그래도 다 좋아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무작정 웃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나한테 못생겼다고 했던 어른들이, “생긴 건 이래도 가만히 보면 얘가 제일 정이 가.”라고 하는 것이었다. 칭찬 같은 말에 난 의아하면서도 한편으론 이게 웃음의 효과인가 싶어 놀랍기도 했다. 
   그렇게 시작된 웃음이 내 삶에 확고히 똬리를 튼 건 아모레 아줌마를 보면서였다. 옛날엔 방문으로 화장품을 파는 그런 아줌마가 있었다. 그분들의 판매 전략은 선뜻 본품을 못사는 엄마들에게 일단 써보라며 공짜 샘플을 건네는 거였다. 그걸 보며 생각했다. ‘아! 사람들이 날 좋아하게 만들려면 나도 뭔가 공짜 샘플을 줘야 하는 거구나!’ 내가 줄 수 있는 공짜 샘플로 그때 재빨리 떠올린 게 '웃음'이었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난 거울 앞에 서서 예쁜 웃음을 연습하기 시작했다. 활짝 웃으면 광대근이 올라가면서 입꼬리를 끌어 올려 얼굴이 한층 밝아 보였다. 그리고 생각 또한 밝아지는 듯했다. 나중에 알았는데 인간의 뇌는 억지웃음을 지어도 그걸 웃음으로 인식해 엔도르핀을 분비하고 긍정 회로를 돌린다는 거였다. 그래선지 난 점점 밝고 긍정적인 사람이라는 평을 듣게 되었다. 그렇게 연습으로 만든 샘플 웃음을 남발하며 살다 보니, 어느새 내 옆엔 좋은 친구와 동료, 남편까지 생겼다. 성형수술이 얼굴을 예쁘게 하는 거라면, 웃음은 얼굴과 뇌까지 좋게 만드는 그런 효과가 있는 듯했다. 거기다 돈도 안 들고 부작용도 없는 아주 무해한 성형술이었다. 그래서 난 입술 끝에 항상 웃음을 붙이고 살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물론 그렇다고 매 순간 웃고 산 건 아니었다. 녹록지 않은 삶에 죽을 만큼 힘든 일도 있었고, 생을 끝내고 싶은 순간도 있었다. 그때마다 주저앉아 펑펑 울었다. 하지만 눈물이 마를 즈음엔 난 어김없이 거울 앞으로 기어가 억지웃음을 지으며 자신에게 말했다. ‘이번에 잃은 것만 잃고 말자. 거기에 더해 웃음까지 잃으면 내겐 남는 게 없다. 이 웃음 하나로 겨우 버텨온 삶인데, 적어도 이건 지켜내야 다시 웃을 일이 생긴다.’ 웃음은 내 삶을 받치는 하나의 축이었다. 그 웃음을 놓아버리면 내 남은 삶마저 무너질까 봐 난 무척이나 경계하며 살았다.    
   그렇게 지켜낸 나의 샘플 웃음이 빛을 발한 건 캐나다로 이민을 와서였다. 영어를 못 알아들을 때마다 난 그동안 갈고 닦았던 웃음으로 때우기 시작했다. 내 부족함을 알기에 더 많은 샘플 웃음을 남발하며 살았고, 다행히도 그게 통했다. 많은 사람들이 날 친구로, 이웃으로 받아들여 줬고, 내게 없던 영어까지 가르쳐줬다. 캐나다에 25년을 살았지만, 난 여전히 못 알아듣는 영어가 많다. 특히 유머는 이들은 웃겨서 웃지만, 난 지금도 못 알아들어서 웃는다. 
   남편이 운영하는 비즈니스엔 베트남에서 온 직원이 있다. 뭘 하라고 말하면 이 친구가 생글생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데, 나중에 보면 엉뚱한 짓을 해놓는다. 그 친구도 못 알아들어서 그렇게 웃었던 거였다. 그의 웃는 얼굴에서 내가 그랬던 시절을 떠올려 본다. 그래, 그렇게 웃으며 살자!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영어가 이해 안 돼도 웃고, 세상과 인생이 이해 안 되더라도 웃자! 그냥 그렇게 웃으며 살다 보면 삶도 차마 우리 인생에 침을 뱉진 못하리라. 혼잡한 세상사에 휩쓸려 웃음기를 잃어버린 내 얼굴에 샘플 웃음을 더하기 위해 난 다시금 거울 앞으로 가 선다. 오늘 만날 사람들에게 나눠줄 공짜 샘플로는 하얀 이빨을 드러내며 활짝 웃는 웃음을, 또 영어를 못 알아들을 경우를 대비해선 입꼬리만 살짝 올려 웃는 소심한 미소까지 입술 끝에 세심히 장착해 본다.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마지막 정류장 2025.10.31 (금)
해 저문 골목 어귀어느 사람의 하루가 천천히 닫힌다 생(生)을 실은 버스 한 대낯선 정류장에 멈추고모래시계의 마지막 알갱이를 따라앞좌석의 누군가가문 쪽으로 걸어 나간다 나는 여직흘러내리는 시간을 바라보며가라앉은 시간의 틈을 더듬어 본다 오래된 햇살 같은 이름 하나젖은 이불 깃에 스며든바람의 온도 창밖의 어둠 속으로사람들은 하나둘 그림자를 거두고나는 묵묵히 남은 모래알을 세고 있다 어쩌면 이 기다림은빛...
임현숙
기억의 집 2025.10.31 (금)
  가을빛 향연에 이끌려 길을 나선다. 마지막 열정을 불태우는 단풍나무 숲을 지나 산책길 끝의 공원묘지로 향한다. 캐나다의 공원묘지는 삶의 한 가운데 자리하고 있음에도 낯설지 않고 친근하게 느껴진다. 아마도 나뭇가지 사이로 드리운 햇살과 잘 가꿔진 잔디와 꽃들 사이를 거닐며, 죽음 또한 삶의 한 부분이라는 깨달음이 자연스레 스며들기 때문일 것이다.    ‘툭’ 하고 단풍잎 하나가 어깨 위로 떨어진다. 끊임없이 순환하는...
민정희
   미니멀리스트를 지향하지만, 아이도 많고 큰 개도 키우다 보니, 우리 집은 항상 물건이 넘친다. 희한하게도 분명 자주자주 비워내고 있지만, 어느새 비워둔 그 자리에 또 다른 물건이 쌓여 있고, 채워 지고의 반복이다. 아마 나도 모르게 비우지 못하고 물건들을 붙잡고 있는 성향을 가졌을 지 모르겠다. 마침 이를 깨닫게 된 경험을 얼마 전 하게 되었다.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가만히 테이블에 앉아서 따뜻한 커피 한잔을 마시며 오전의...
윤의정
나무와 나무 틈새 바위와 바위 틈새눈보라 살을 비벼 맞는 통한의 세모빙하도 꽃을 피운다 틈새를 메워가며 저문 노을의 궤적 가득 찬 산 허리에꼬장한 바람들이 뒤집는 산촌 풍경*삭(朔)지나 걸어 나오는 대비조차 멋진 달 로키는 돌아누워 내면의 싸움터에든든한 후원자로 교만을 경고한다무성한 내 안뜰 악습 온기 없이 싸늘한 이 겨울 민 낮 들어 땟국을 벗고 싶다로키여 수세 몰려 경(景)을 포기하지 마라白樺皮 흰 속살마저 틈새를 메워...
이상목
미조(迷鳥) 2025.10.24 (금)
  단영은 유미를 가졌을 때를 떠올렸다. 유미의 태몽은 강렬했다. 조류를 무서워하는 단영에게는 잊힐 수 없는 그럼 꿈이었다. 커다란 기와집 대문 중앙에 서 있던 단영은 무거운 대문이 스르륵 열리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윽고 작은 틈 사이를 비집고 집 안으로 들어선 건 윤기가 흐르는 까만빛의 새였다. 새는 긴 목을 똬리 틀듯 둥글게 말고 마당 바닥에 바짝 엎드렸다. 까만 깃털 안에서 번뜩이는 까만 눈동자가 단영을 올려다봤다....
고현진
  한 달 여를 아주 심하게 앓았다. 대학병원의 응급실로도 들어가고, 진통제를 먹어보고 주사를 맞아 봐도 가라앉지 않는 통증은 어디선가 보았던 그림 한 폭을 떠오르게 했다. 기억 속의 그림은 빨강과 검정의 소용돌이였다. 보고만 있어도 극도의 혼돈과 불안을 느끼게 하는, 내 몸이 빨려 들어가는 착각을 일으키게 했다. 그러나 이번 내 상황은 세탁기의 탈수 통 속에서 돌아가는 빨래 마냥 그 그림 속 휘돌이 속으로 온 몸이 아닌 머리만 빨려...
최원현
비가 내린다부슬부슬 가을비 내린다손끝마다 온통 붉은 물 들이며길 위에 홀로 서 있는가슴 위로 바람이 스친다종일 어깨를 적시는 빗방울하나 둘 떨어진 잎새는말없이 젖은 흙에 스며들고한숨처럼 가슴 두드리던바람은 발 아래 흩어지는데       비가 내린다토독 토독 떨어지는 빗소리마음에 자꾸 물이 드는 건인연이 깊어지는 것일 텐데단풍잎 소리 없이 지는 건깊어지던 우리 인연 다하여그대 떠나가는 것일 텐데우수수 이별의 시간...
강은소
메주가 뜰 때 2025.10.17 (금)
둥글게 사린 몸을삶고 찧고 매달아천형(天刑)의 조화(造化)에도해 달 맞기 몇 삭(朔)인가메말라벙근 틈새로고향(故鄕) 맛이 배어간다뒷손 없는 푸대접에너절하게 달아 말려겉으론 데데해도금이 간 깊이마다베옷의먹성(性)을 담는토속(土俗)냄새 익어간다
문현주
지난 주에 이어 계속 집도의는 캐나다에서도 이름 있는 Doctor라 했다. 수술실에 들어가니 남자가 7사람 여자 두 사람이 있다. 수술은 집도의와 보조의가 하겠지만 의대생들이 견학하는 걸 허락했던 것이다.수술은 성공적으로 잘 마무리 된듯하다. 수술을 하고 정신을 차려보니 방광에 호스를 꽂아 소변을 받아내고 양팔 혈관에 주사바늘을 고정시켜 줄이 달려있다코로 호수를 따라 식사대용 영양제가 들어간다. 또 수술한 부위에도 호스를 넣어...
박병준
 ▶지난 주에 이어 계속 암이 자리 잡은 곳, 그 위치가 어디인가. 그게 중요하다.폐라면 힘 든다. 췌장이라면 수술이 어렵다. 급성으로 여러 군데 전이가 되었다면 걷잡을 수 없이 위험하다.내게 온 곳은 목이다. 후두암이라고도 한다. 그 자리는 어떤 곳인가?매우 정교하고 복잡한 부분이다. 거기는 기도(Air way)와 식도가 만나는 곳인데 코와 입을 통해서 공기가 들어오고 또 입에서 식도로 넘어오는 음식이 지난다.또 허파에서 나오는 공기가...
늘산 박병준
늘산 본인이 암 판정을 받고 수술을 하고 퇴원을 하면서 그간에 있었던 일들을 정리하고 싶습니다. 이는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 암에서 예방될 수 있는 일에 다소나마 길잡이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면서 이 글을 시작합니다.암의 발견은 우연적일 수도 있고 필연적일 수도 있다.나는 우연적이라 생각하며 그나마 일찍 발견하였다는데 다행이라 생각한다.산에서 사람을...
늘산 박병준
다음페이지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