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은 / (사)한국문협 밴쿠버지부 회원
다시 웃음 성형을 하기로 했다. 이 결심을 한 건 우리 강아지 스냅사진에 들러리로 등장한 내 얼굴에 충격을 받아서였다. 사실 지난 몇 달은 시간이 어떻게 갔는지 모르게 가버렸다. 정확히 말하면 한국의 혼란스러운 정치 상황을 지켜보느라 분노와 걱정으로 흘려보낸 시간이었다. 그랬더니 거기서 느낀 부정적인 감정들이 고스란히 내 얼굴에 새겨져 있었다. 그 얼굴을 보며, ‘내가 그만 세상사 물결에 휩쓸리고 말았구나!’하는 깨달음이 왔다. 그러곤 떠올린 게 바로 ‘웃음 성형’이었다.
난 아들을 간절히 바라던 집안에 둘째 딸로 태어났다. 못생긴 둘째 손녀를 본 할머니는 서운함을 이기지 못해 나를 이름 대신, “저 망둥이 것!”이라고 불렀다. 그땐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들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생선가게에서 가장 하찮고 못생긴 물고기가 바로 망둥이라고 했다. 그렇게 못난이 취급을 받으며 자랐으니 난 항상 눈물을 달고 살았고, 그런 나를 동네 사람들은 이름 대신 ‘울보’로 불렀다. 우리 집에 온 어른들은, “이 집 자식들은 인물이 참 좋네. 근데 왜 쟤가 제일 빠져?” 하며 여지없이 나를 가리키곤 했다. 항상 듣는 말이라 딱히 상처가 되진 않았다. 그런데 중2가 되었을 즈음 그 당연한 말이 조금씩 귀에 걸리기 시작했다. 거울에 비친 칙칙한 울상의 내 얼굴을 보며 이 얼굴을 좀 낫게 만들 방법이 없을까를 처음 고민한 게 바로 그때였다. 성형 같은 건 상상도 못 하던 시절이라 겨우 떠올린 아이디어가 웃음이었다. 어떻게 생겼건 웃는 얼굴은 그래도 다 좋아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무작정 웃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나한테 못생겼다고 했던 어른들이, “생긴 건 이래도 가만히 보면 얘가 제일 정이 가.”라고 하는 것이었다. 칭찬 같은 말에 난 의아하면서도 한편으론 이게 웃음의 효과인가 싶어 놀랍기도 했다.
그렇게 시작된 웃음이 내 삶에 확고히 똬리를 튼 건 아모레 아줌마를 보면서였다. 옛날엔 방문으로 화장품을 파는 그런 아줌마가 있었다. 그분들의 판매 전략은 선뜻 본품을 못사는 엄마들에게 일단 써보라며 공짜 샘플을 건네는 거였다. 그걸 보며 생각했다. ‘아! 사람들이 날 좋아하게 만들려면 나도 뭔가 공짜 샘플을 줘야 하는 거구나!’ 내가 줄 수 있는 공짜 샘플로 그때 재빨리 떠올린 게 '웃음'이었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난 거울 앞에 서서 예쁜 웃음을 연습하기 시작했다. 활짝 웃으면 광대근이 올라가면서 입꼬리를 끌어 올려 얼굴이 한층 밝아 보였다. 그리고 생각 또한 밝아지는 듯했다. 나중에 알았는데 인간의 뇌는 억지웃음을 지어도 그걸 웃음으로 인식해 엔도르핀을 분비하고 긍정 회로를 돌린다는 거였다. 그래선지 난 점점 밝고 긍정적인 사람이라는 평을 듣게 되었다. 그렇게 연습으로 만든 샘플 웃음을 남발하며 살다 보니, 어느새 내 옆엔 좋은 친구와 동료, 남편까지 생겼다. 성형수술이 얼굴을 예쁘게 하는 거라면, 웃음은 얼굴과 뇌까지 좋게 만드는 그런 효과가 있는 듯했다. 거기다 돈도 안 들고 부작용도 없는 아주 무해한 성형술이었다. 그래서 난 입술 끝에 항상 웃음을 붙이고 살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물론 그렇다고 매 순간 웃고 산 건 아니었다. 녹록지 않은 삶에 죽을 만큼 힘든 일도 있었고, 생을 끝내고 싶은 순간도 있었다. 그때마다 주저앉아 펑펑 울었다. 하지만 눈물이 마를 즈음엔 난 어김없이 거울 앞으로 기어가 억지웃음을 지으며 자신에게 말했다. ‘이번에 잃은 것만 잃고 말자. 거기에 더해 웃음까지 잃으면 내겐 남는 게 없다. 이 웃음 하나로 겨우 버텨온 삶인데, 적어도 이건 지켜내야 다시 웃을 일이 생긴다.’ 웃음은 내 삶을 받치는 하나의 축이었다. 그 웃음을 놓아버리면 내 남은 삶마저 무너질까 봐 난 무척이나 경계하며 살았다.
그렇게 지켜낸 나의 샘플 웃음이 빛을 발한 건 캐나다로 이민을 와서였다. 영어를 못 알아들을 때마다 난 그동안 갈고 닦았던 웃음으로 때우기 시작했다. 내 부족함을 알기에 더 많은 샘플 웃음을 남발하며 살았고, 다행히도 그게 통했다. 많은 사람들이 날 친구로, 이웃으로 받아들여 줬고, 내게 없던 영어까지 가르쳐줬다. 캐나다에 25년을 살았지만, 난 여전히 못 알아듣는 영어가 많다. 특히 유머는 이들은 웃겨서 웃지만, 난 지금도 못 알아들어서 웃는다.
남편이 운영하는 비즈니스엔 베트남에서 온 직원이 있다. 뭘 하라고 말하면 이 친구가 생글생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데, 나중에 보면 엉뚱한 짓을 해놓는다. 그 친구도 못 알아들어서 그렇게 웃었던 거였다. 그의 웃는 얼굴에서 내가 그랬던 시절을 떠올려 본다. 그래, 그렇게 웃으며 살자!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영어가 이해 안 돼도 웃고, 세상과 인생이 이해 안 되더라도 웃자! 그냥 그렇게 웃으며 살다 보면 삶도 차마 우리 인생에 침을 뱉진 못하리라. 혼잡한 세상사에 휩쓸려 웃음기를 잃어버린 내 얼굴에 샘플 웃음을 더하기 위해 난 다시금 거울 앞으로 가 선다. 오늘 만날 사람들에게 나눠줄 공짜 샘플로는 하얀 이빨을 드러내며 활짝 웃는 웃음을, 또 영어를 못 알아들을 경우를 대비해선 입꼬리만 살짝 올려 웃는 소심한 미소까지 입술 끝에 세심히 장착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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