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은소 / 캐나다 한국문협
앞마당에 태산목 한 그루, 몸이 무겁다고 아우성친다.
정원수는 늦가을에 웃자란 가지를 한번 쳐내 주고 이른 봄에 한 번 더 다듬어야 한다.
나무를 가꾸는 일이 오랜 습관처럼 익숙해진 줄 알았는데 지난가을엔 때를 놓쳐 버렸다.
올봄은 더 큰 정성으로 나무를 가뿐하게 모양내야겠다. 해마다 말없이 새잎에 꽃을
피우는 나무. 새순의 꿈으로 겨울을 견디는 나무의 시간은 언제나 신기하고 묘하다.
관세음보살을 부르는 육자진언 ‘옴마니반메훔’을 독송한다.
여섯 가지 파스텔 색조 물감으로 산스크리트어 가로쓰기를 하여 예쁘게 표구를 한
육자대명왕진언 액자를 거실 정면에 걸어 놓고 틈날 때마다 외우고 외운다.
먼 이국 땅에서 연을 맺은 큰 스님으로부터 불명 ‘유심화唯心化’를 받은 지 어언
20년이다. 유심唯心이란 무엇인가. 모든 사물은 그것을 인식하는 마음에서 비롯되며
마음의 표현이 궁극의 실재가 되어 나타난다는 의미다. 유심화는 늘 마음을 다스리며
살아가라는 스님의 깊은 뜻이 담긴 이름이다.
이름에 부응하지 못하는 부끄러운 일상이 오고 간다. 육십갑자를 한 바퀴 돌아온
나이에도 맞닥뜨리는 크고 작은 일이 매번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마음의 그릇이 좁고
깊을수록 상처의 정도를 가늠하기는 어렵다. 잔뜩 멍이 든 생각들로 며칠 밤을 새우기도
하고 괜히 가까이 있는 사람을 함부로 탓하며 비난해 댄다.
지난해 봄, 5년 만에 찾아 뵌 스님은 노환에도 느긋한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옴마니반메훔’을 지극정성으로 외우면 관세음보살의 자비로 온갖 번뇌와 죄악이
소멸하고 무량한 지혜와 공덕을 얻는다. 육자진언은 연민과 지혜의 상징이다. 진언은
마음을 정화하며 자신 뿐만 아니라 고통에서 벗어나려는 모든 우리 존재의 행복을 위한
바람이다.
무게를 더하며 반복되는 일상은 점점 지루해진다.
하루하루 날이 갈수록 하릴없이 몸과 머릿속을 짓 누르며 자라나는 군살. 마음은
비틀어지고 늘어지면서 자꾸 무거워지고 여기저기 주변을 돌며 애면글면 꼰대질에
젖는다. 지나치게 늘어지거나 여물지 못한 마음은 끊어내 버려야 한다.
해마다 나뭇가지를 치고 모양을 다듬는 것처럼 몸과 머릿속에 들러붙어 웃자란 살을
툭툭 쳐내 버릴 수 있으면 좋겠다. 우리도 신묘한 나무의 시간에 기대면 새 눈이 뜨이고
뒤틀리지 않는 늘 푸른 마음이 될 수 있을까.
며칠 전 꿈에 큰 스님을 뵀다. 세랍 구순을 훌쩍 넘기신 노구로 고향 산사로 돌아가신
스님. 마음속 태산목 한 그루 같은 스님의 노환이 걱정되어 사나흘 마음이
어지러웠는데, 결국 스님께서 입적하셨다는 소식이 날아왔다.
육자진언이 온 벽면을 가득 채우도록 읊고 또 명상하는 오늘이다.
입적하신 황산 큰 스님을 추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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