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그는 별이 되었다

김춘희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25-01-10 16:50

김춘희 / (사)한국문협 밴쿠버지부 회원
   한 사제가 젊은 나이에 하늘나라로 가셨다. 한국 프란치스코회 수도자로 캐나다 퀘벡주에서 선교 활동을 하셨던 서 바오로 신부님이다. 100세 시대라 불리는 요즘, 50세의 나이에 가시다니! 차라리 투병이라도 하다 떠났다면 이렇게 야속하게 느껴지지는 않을 것이다. 
  서 바오로 신부님과의 첫 만남은 20여 년 전, 몬트리올 동쪽 끝 로즈몽 길에 위치한 프란치스칸 수도원에서였다. 한국에서 선교사로 파견된 그는 사제서품을 받고 온 수줍음 많은 젊은 청년 사제였다. 서신부님은 대학 졸업 후 유망한 회사에 취직하여 안정된 앞날이 보장되었던 청년이었지만, 모든 것을 내려놓고 수도자의 길을 선택했다. 그는 오롯이 가난한 수도자가 되기를 원했기 때문에, 특히 가난과 겸손의 삶을 추구하는 프란치스코 작은형제회 수도원에 들어갔다. 세 형제 중 가장 따뜻하고 살가웠던 막내아들이 수도자의 길을 선택하자, 홀어머니는 크게 서운해했지만 그의 굳은 의지를 결코 꺾지 못했다. 그는 퀘벡에서 선교하기 위해 프랑스어를 배워야 했기에 수도원에 머무르며 언어를 익힌 후, 부임지에서 활발히 선교 활동을 시작했다.  
  한국이 전쟁의 폐허와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1950-60년 쯤, 한국을 돕기 위해 캐나다 프란치스코회 선교사들이 한국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들 중 한 분은 몇 년 전에 작고하신 나의 영적 아버지 공 신부님이었고, 또 한 분은 나를 가르치고 이끌어 주셨던 명 신부님이었다. 두 신부님은 한국에 들어와 25년 이상 선교 활동을 펼친 뒤 고향인 퀘벡주 몬트리올로 돌아왔다. 나는 몬트리올에서 공인 통·번역사로 활동하며 한인들을 위한 퀘벡 정부 불어 보급 교사로 일했기에 자연스레 명 신부님의 이끄심으로 책도 번역했고, *프란치스코 재속회도 시작하게 되었다.  
   나는 남편을 하늘나라로 떠나보낸 뒤 한동안 몬트리올과 밴쿠버를 오가며 방황했다. 그러나 손녀의 탄생을 계기로 밴쿠버에 정착하게 되었고, 서 바오로 신부님의 권유로 한인 재속회 씨앗을 밴쿠버에 심게 되었다. 2014년 내가 밴쿠버에서 재속회를 시작할 때, 서 신부님은 나의 길잡이가 되어 주셨다. 첫 양성 과정과 두 번의 서약을 준비할 때마다 그는 우리를 위해 피정을 지도해 주셨다. 신부님은 선교지에서의 소임에 충실하기 위해 밴쿠버를 방문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으므로, 우리는 퀘벡 성지순례라는 명목으로 신부님을 찾아가 양성을 받았다. 서 바오로 신부님은 우리를 위해 온 힘을 다해 유익한 지도를 해 주셨다. 그중에서도 내 마음에 깊이 남아 있는 그의 강론 내용을 나누고자 한다. 그의 가르침은 단순히 내 개인만이 아니라, 모든 이웃과 나누어야 할 소중한 메시지라 여기기 때문이다. 

*시리아 난민 아이의 죽음. 
신부님은 우리들에게 시리아 난민 어린아이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시리아 난민들이 유럽 본토로 대거 이동하던 시기에, 난민 문제는 연일 뉴스에 오르내렸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장의 사진이 TV 화면에 나타나며 전 세계 사람들의 가슴을 울렸다. 사진 속에는 너 댓살로 보이는 한 사내아이가 지중해 바닷가 모래사장에 얼굴을 파묻고 익사한 모습으로 누워 있었다. 엄마 품에서 재롱부리며 놀아야 할 어린아이가 차가운 해변에서 생명을 잃었다는 사실은 충격적이었다.  이 사진은 전 세계의 양심 있는 사람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고, 많은 이들을 슬픔과 반성에 빠뜨렸다. 신부님은 이 아이의 죽음이 누구의 책임인가를 물었다. 그의 눈에는 눈물이 맺히고 목소리마저 떨렸으며, 이 어린 생명이 어른들의 정치 싸움 속에서 희생되었음을 안타까워했다. 아이는 전쟁과 분쟁을 피해 더 나은 삶을 찾아 떠나다 변을 당했지만, 세상은 여전히 무관심하고 냉혹하다며 모두가 이 죽음에 대해 애도하고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고 강조했다. 피정에 참석했던 우리 모두도 그 사진을 보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세상은 왜 이렇게 잔인한가? 나는 누구의 이웃인가? 이 질문들은 우리를 돌아보게 했고, 세상의 고통에 더 민감하게 반응해야 한다는 깨달음을 주는 시간이었다. 

*밤하늘 별들을 보며 하느님을 만난다. 
PEI 바닷가에서 수도자들과 캠핑하던 날, 바다도 잠자는 고요한 밤에 그는 텐트를 열고 밖으로 나왔다. 머리 위로 금방 떨어질 듯 펼쳐진 무수한 별들을 보며 그는 하느님의 손길을 느꼈다. 여태껏 보지 못했던 밤의 어둠 속에 쏟아져 내리는 별들의 빛나는 모습은 창조주의 신비를 피부로 느끼게 했던 위대한 순간이었다. 그때 만났던 별들 속으로 그가 그렇게 빨리 갈 줄은 아무도 몰랐다. 
2024년 3월 15일 그는 50세의 짧은 생애를 마쳤다. 병명조차 알 수 없었고, 그저 몇 달 동안 불면증에 시달린 것뿐이다. 그토록 깨끗한 양심으로 예수님을 닮고자 했던 그는 결국 별이 되었다. 그는 가난 속에서 진정한 풍요를 찾으려 했던 프란치스칸 정신을 삶으로 실천하셨고, 그의 따뜻한 가르침은 지금도 내 삶의 길잡이가 되고 있다. 서 바오로 신부님의 짧았던 생애는 많은 이들의 마음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는 이제 하늘에서 큰 별이 되어 우리를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유언처럼 내 마음에 새겨져 있는 서 신부님의 애송시를 함께 나눈다. 
        “기뻐하라! 형제 자매님들이여! 
        만일 너를 몰라주고, 잊어버리는 사람이 되어도 기뻐하라! 
        만일 다른 사람들이 네 뜻을 반대해도 기뻐하라! 
        만일 네게 천한 일을 시켜도 기뻐하라! 
        만일 너를 쓰지 않아도 기뻐하라!
        만일 네 뜻을 청하지 않아도 기뻐하라!
        만일 너를 믿어주지 않아도 기뻐하라!
        만일 너를 말째로 두어도 기뻐하라! 
        만일 너를 찬양하지 않아도 기뻐하라! 
        만일 너를 모든 사람보다 더 중히 여기지 않아도 기뻐하라! “ 
  
*프란치스칸 재속회란 성 프란치스코의 정신을 따르는 평신도들의 모임으로, 이를 재속 프란치스코 형제회라고도 한다. 재속회에 가입하려면 2-3년 동안의 양성 과정을 거쳐 프란치스칸 성소를 확인받고, 서약식을 통해 정식 회원이 된다.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들꽃 2026.03.19 (목)
이름은 알아 무엇하랴 그저 좋은걸 나이는 물어 무엇하랴 그냥 예쁜걸 고향은 또 물어 무엇하랴 아마도 남촌일걸오직 하나 그 예쁜 얼굴로 그 여린 몸으로 왜 나왔는지 이 거친 들판에
늘샘 임윤빈
살면, 살아진다 2026.03.19 (목)
2025년 정기연주회 때의 일이다. 그 해는 갑자기 어머님이 돌아가셔서 한국을 다녀오자마자 “유엔젤 보이스”라는 한국팀의 초청 공연이 있어 슬퍼할 틈도 없이 매우 바쁘고 힘들었다. 한국에서 공연 팀을 초청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왜냐하면 한국의 인프라가 높은 수준이어서 웬만해서는 초청 팀을 만족시키기 어렵다. 나도 오케스트라 단원들과 이탈리아로 연주하러 갔을 때 초청된 입장에서 보면 이탈리아가 선진국이라는 기대치가...
아청 박혜정
봄에 기대어 2026.03.19 (목)
살면서 줄일 것이 늘어만 간다.많이 가지려고 한 것도 아닌데 꼭 필요한 걸까 생각해보면 추려낼 것 투성이다. 책과 LP를 사 모으는 건 때마다의 즐거움이고행복한 취미 생활이었다. 그렇게 쌓인 책더미를 보면 뿌듯했는데 그것도 지금은짐스럽게 느껴져서 정리대상이 되고 있다.전공어로 된 소설책을 이민오면서왕창 처분했다.남긴 책들도 한번씩 더 읽게 된 것 이외는중고서점에 팔고 나눔도 했다. 그렇게 남은 책은 나름 내게 인생...
고희경
봄을 기다리다 2026.03.19 (목)
얼레에 감긴 실처럼길고 긴 겨울더러 추운 몇 날은시린 손 비비며온기를 만들고그래도 몸이 녹지 않으면따뜻한 기억을 불러가만히 껴안고 잤다올 듯 오는 듯하면서도더디기만 한 봄남녘 여기저기에 매화꽃 피워 놓았다는데그 바람 얼른 올라와섬강 뒤덮은 얼음 녹이고언 내 몸에도 온기 나눠 줬으면
정금자
고독한 그녀 2026.03.13 (금)
고독한 그녀 오늘 그녀가 생각나네 언제가 되어야 나는 그녀의 고독을 이해할 수 있을까 사람들 틈에서 아무 일 없다는 듯 웃고 얘기하는 그녀 잘 익은 과일 속의 아주 작은 씨앗 모양 사람들 홍수 속 태풍의 눈 중앙에서 빈짝반짝 거리는 그녀 도심 한가운데서 너무나도 태연히 존재하는 병원 부속 화장터 마냥 당연한 하지만 동시에 짧은 수수께끼 같은 그녀의 모습 화장터 연기 모양 슬프게 자신의...
박락준
나의 천사들 2026.03.13 (금)
 3년이면 탈상을 한다는 말이 실감 나던 어느날, 나는 아들이 사는 밴쿠버로 이사 왔다. 살던 집을 정리하고 처분하고  미국 각지에 흩어져 사는 형제들과 한국, 그리고 유럽으로 성지 순례를 다니며 40여 년 함께 살았던 남편과의 삶을 조금씩 정리하게 되었다.  임종이 가까워 오면서 그는 아이들 걱정은 한 마디도 없었고 다만 나에게, ‘어떻게 살래?’ 를 혼잣말처럼 되뇌이곤 했다. 그리고 마지막에 ’글이나 쓰며 살아라’ 고 유언 같은...
김춘희
   누군가의 철없는 행동에 자꾸 눈살이 찌푸려진다. '이 정도는 눈치껏 해야 하는 거 아니냐', '불평을 멈추고 행동해라', '예의를 갖추고 어른스럽게 굴라'며 나는 주위 사람들을 끊임없이 판단하고 못마땅해 한다. 십 대가 된 아이들에게, 혹은 서툰 신입 교사들을 향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무언의 비난과 질책을 쏟아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작 나도 완벽한 어른이 되지 못한, 여전히 서툴고 모순된 존재라는 사실에 종종 가슴이...
권은경
암모나스 2026.03.13 (금)
군용 담요로 막아둔 겨울 창숲 사이로 스며든 별빛이내 몸에 점자처럼 박혔다 그 빛을 따라 떠오른 언덕에서흰 여우 털의 왕자가 산토리를 켰다흩어지는 음표마다내 눈 속에서 작은 우주가 흔들렸다 여섯 다리의 암모나스가평평한 등에 나를 올려외할머니의 숨결 같은낮은 자장가를 흘렸다 소나무 잎 위에서 터진박하 냄새의 별 열매가내 몸을 가볍게 들어 올렸다 보이지 않는 무지개 길들이시간의 틈을 열었다 머물 수 없다는 걸...
강애나
지난 주에 이어 계속 집도의는 캐나다에서도 이름 있는 Doctor라 했다. 수술실에 들어가니 남자가 7사람 여자 두 사람이 있다. 수술은 집도의와 보조의가 하겠지만 의대생들이 견학하는 걸 허락했던 것이다.수술은 성공적으로 잘 마무리 된듯하다. 수술을 하고 정신을 차려보니 방광에 호스를 꽂아 소변을 받아내고 양팔 혈관에 주사바늘을 고정시켜 줄이 달려있다코로 호수를 따라 식사대용 영양제가 들어간다. 또 수술한 부위에도 호스를 넣어...
박병준
 ▶지난 주에 이어 계속 암이 자리 잡은 곳, 그 위치가 어디인가. 그게 중요하다.폐라면 힘 든다. 췌장이라면 수술이 어렵다. 급성으로 여러 군데 전이가 되었다면 걷잡을 수 없이 위험하다.내게 온 곳은 목이다. 후두암이라고도 한다. 그 자리는 어떤 곳인가?매우 정교하고 복잡한 부분이다. 거기는 기도(Air way)와 식도가 만나는 곳인데 코와 입을 통해서 공기가 들어오고 또 입에서 식도로 넘어오는 음식이 지난다.또 허파에서 나오는 공기가...
늘산 박병준
늘산 본인이 암 판정을 받고 수술을 하고 퇴원을 하면서 그간에 있었던 일들을 정리하고 싶습니다. 이는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 암에서 예방될 수 있는 일에 다소나마 길잡이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면서 이 글을 시작합니다.암의 발견은 우연적일 수도 있고 필연적일 수도 있다.나는 우연적이라 생각하며 그나마 일찍 발견하였다는데 다행이라 생각한다.산에서 사람을...
늘산 박병준
다음페이지
 1  2  3  4  5  6  7  8  9  10